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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1월호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맛집으로 변신한 폐역, 그리고 옛 진주역·반성역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맛집으로 변신한 폐역, 그리고 옛 진주역·반성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0.08.14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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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모양의 그림으로 장식된 카페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찻길 모양의 그림으로 장식된 카페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진주]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는 폐역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세월의 때를 걷어내고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여행지로, 혹은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건 정말 운이 좋은 경우다. 대개 잡초 무성한 쓸쓸한 폐역으로 버려지고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 식당과 카페로 변신한 폐역이 있다. 경전선의 폐역인 옛 진주역과 반성역의 유쾌한 변신이 궁금하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꽤 오랫동안 진주의 관문 역할을 했던 옛 진주역은 경전선 복선전철화와 함께 폐역되면서 냉면집으로 변신했다. 요란한 간판에 빼앗긴 시선을 가다듬으면 삼각지붕과 길쭉하게 낸 창문 등 옛 기차역의 전형적인 건축양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식당 뒤로는 잡초 무성한 플랫폼 너머 차량정비고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근처엔 일본인학교도 남아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더한다. 폐선된 경전선의 또 다른 폐역인 반성역은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한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냉면집으로 변신한 옛 진주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차역이 냉면집으로? 옛 진주역
폐역의 다양한 변신은 늘 흥미롭지만 옛 진주역은 상상 그 이상이다. 기차역 주소를 찾아갔는데 웬 냉면집 간판이 호화롭게 걸려 있다. 그러나 당혹감도 잠시, 요란한 간판에 빼앗겼던 시선을 가다듬으니 옛 기차역의 전형적인 건축양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삼각지붕과 세로로 길쭉하게 낸 창문, 식당의 쓰임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몇몇 표지판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니 ‘진주(晋州)’라고 적힌 역명이 건재하다. 그렇다. 여긴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에서 꽤 큰 규모를 자랑했던 진주역이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옛 진주역에서 맛보는 냉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냉면집으로 변신한 기차역 내부가 궁금해 일단 식당으로 들어섰다. 현관 오른쪽에는 삼성그룹의 전신인 대구 삼성상회에서 사용했다는 국수기계와 1930년대 냉면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무쇠 냉면기계가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은행에서나 볼 법한 번호표 출력기도 놓여 있었는데, 주말엔 꽤 오랜 기다림을 감수해야 하는 맛집이라고 하니 갑자기 입안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섞음냉면을 주문했다.

물냉면에 비빔냉면 소스를 올려 보다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이 집의 인기메뉴란다. 짭짤한 육전과 매콤달콤한 가오리회가 올라간 냉면은 후덥지근한 날씨와도 잘 어울렸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식당을 둘러보니 나무로 짠 천장과 가운데 놓인 무쇠난로 등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 대합실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한쪽 벽에는 옛 진주역의 풍경을 담은 그림이 이곳이 한때 진주의 길목이었음을 애써 기억하는 듯 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차역의 흔적을 따라 걷다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처음 영업을 시작한 진주역은 꽤 오랫동안 도시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애초 마산까지만 놓였던 기찻길은 1931년 밀양까지 확장됐고, 1968년 경전선에 편입되면서 광주까지 오고가는 황금노선으로 인기를 끌었다. 자연스레 기차역을 중심으로 도심이 발전했고 근처에 진주성과 국립진주박물관 등이 자리해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즐겨 찾았다. 그러나 지난 2012년 경전선 복선전철화와 함께 진주역을 가좌동으로 새롭게 옮겨 가면서 옛 진주역은 처량한 폐역으로 남았다. 이 과정에서 역사와 주변 토지가 민간에 낙찰되면서 냉면집과 주차장이 들어서게 된 것.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옛 진주역 나무천장.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식당 뒤편으로 옛 기차역의 흔적을 찾아 걸어보기로 했다. 기찻길은 모두 거둬낸 상태였지만 플랫폼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잡초가 플랫폼 높이만큼 무성하게 자랐지만 머릿속으로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그려볼 수 있는 주요한 단서가 돼준다. 그 너머로는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차량정비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치형의 출입구와 건물 정면의 둥근 창, 지붕 트러스를 받치는 버팀목 등이 1925년 당시 진주역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옛 진주역의 차량정비고.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건축은 물론 철도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이곳은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내부 출입은 어렵지만 울타리 너머 내부 구조를 엿볼 수 있어 기차여행자들 사이에선 귀한 볼거리로 꼽힌다. 차량정비고 왼쪽으로는 하늘 높이 솟은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눈부신 황금빛이 붉은 벽돌과 어우러져 계절의 정취를 즐기기에도 좋다. 옛 진주역 광장 주변엔 이름도 정겨운 역전식당과 기차역 주변에 으레 자리했던 여관골목도 남아 있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지는 풍경이지만, 곧 국립진주박물관이 이곳으로 옮겨 온다고 하니 몇 년 후엔 냉면집으로 변한 기차역이 또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궁금해진다.     

INFO 옛 진주역
주소 경남 진주시 진주대로879번길 18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배영초등학교 구 본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근처에 남은 또 하나의 일제 건축물, 배영초등학교 구 본관
옛 진주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남아 있다. 배영초등학교 구 본관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1938년 일본인 전용학교인 진주공립심상소학교로 지어졌다.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2층 건물은 아치형의 현관과 길쭉한 창문, 돌림띠를 둘러 장식한 처마 등 상당히 화려한 인상을 풍긴다. 그네들을 위한 학교였으니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괘씸한 마음이 든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옛 진주역 주변의 여관골목.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해방 이후 진주공립국민학교로 다시 개교한 이곳은 이듬해 배영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꿨고, 1996년 배영초등학교가 됐다. 1998년 학교가 신암동으로 옮겨 가면서 구 본관으로 불리게 된 이 건물은 진주에 남은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 건물이다. 여러 차례 증축과 보수를 거치며 변형된 모습도 눈에 띄지만 주요 구조는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건축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덕분에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INFO 배영초등학교 구 본관
주소 경남 진주시 비봉로23번길 8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풍부한 크림과 달콤한 맛이 특징인  반성역커피.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카페가 된 기차역, 옛 반성역
옛 진주역과 함께 경전선에 속했던 반성역도 복선전철화와 함께 폐역의 운명을 맞았다. 옛 반성역은 기차역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한 카페로 다시 태어났는데, ‘레일로드’란 이름부터 이곳이 기차역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카페 내부에도 기찻길 모양의 그림으로 장식했고 메뉴 중엔 역 이름을 딴 반성역커피도 존재한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자전거 여행자들의 쉼터로 사랑받는 반성역 카페.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잡초 무성한 플랫폼.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내가 찾은 평일엔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주말엔 자전거 복장을 한 이들로 꽤 북적인다. 폐선된 경전선을 따라 자전거길이 만들어지면서 이 길을 달리는 여행자들의 쉼터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카페 주변으로 자전거보관소가 곳곳에 자리한 것도 그 때문이다. 기차 대신 자전거를 기다리는 기차역 카페라니, 이만하면 꽤 낭만적인 변신이 아닌가 싶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카페로 변신한 옛 반성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옛 반성역
주소 경남 진주시 일반성면 동부로1960번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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