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 충주] 한때 주석 광산으로 이름깨나 날렸던 충주 앙성면은 그 특별한 토질 덕분에 온천수가 범상치가 않다. 사이다처럼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기도 하고 심지어 붉은색을 띠는 물도 있다. 다만 이렇게 개성이 뚜렷한 온천이 수안보온천에 밀려 크게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었는데, 요사이 한우 전문 판매장까지 들어서며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충주의 온천’이라 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것이 ‘수안보온천’이다. 워낙 유서 깊은 온천이 코앞에 있다 보니 ‘앙성온천’은 그 이름마저 생소하다.
앙성온천단지로 가는 길은 여느 시골마을을 찾아가듯 한적하기만 하다. 감곡IC에서 능암리까지 불과 10분 남짓 달리는 사이 창밖으로 비치는 ‘촌스러운’ 풍경에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이윽고 휑한 벌판 사이로 크고 작은 온천욕장이 옹기종기 모인 ‘온천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요사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규모 온천관광단지에 비교한다면 앙성온천단지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시설이나 규모는 물론, 10여 개의 온천 사이로 여전히 허름한 민가들이 남아 있는 풍경은 영락없이 여느 시골마을의 그것이다. 덕분에 관광지에서 느껴지는 번잡함은 덜하다.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기념비에 쓰여 있는 온천의 유래. 앙성면은 1960년대 1000여 명의 광부가 생활했을 정도로 한때 유명한 주석광산이었다. 하지만 폐광된 이후 여느 폐광촌과 다름없이 마을에는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1980년대 중반에 놀랍게도 온천수가 솟구쳤다.
그 후 몇 년 동안 이곳저곳에 온천욕장이 세워지며 마을의 주가는 치솟았다. 특별한 토질 탓인지 온천수가 범상치가 않았는데,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탄산온천이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그 성분이 온천마다 달라 노란색이나 붉은색을 띠는 것도 특이했다. 이렇게 개성 있는 온천이 포진해 있음에도 수안보온천에 비해 잠잠한 것은 의문스럽지만, 어쨌거나 개발의 광풍에서 한걸음 물러난 덕분에 지금은 관광지와 시골 특유의 풍경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
온천마을 곳곳에서는 저마다 개성 있는 온천들이 지친 몸을 불러 세우고 있지만, 그중에서 나지막한 산 아래 자리한 ‘능암온천랜드’로 향했다. ‘설탕을 타면 사이다 못지않은 강한 탄산온천수’라는 소문에 호기심이 고조된 참이었다.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온탕에서 몸을 데운 후에 탄산원탕에 스르륵 몸을 밀어 넣었다. 2~3분 지나자 큼지막한 탄산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와 피부에 살갑게 달라붙는다. 제주도 산방산탄산온천(2009년 12월호 참조)과 비교해도 탄산이 더 풍부하고 물도 꽤 차다. 찬물에서 굵은 탄산수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자니 머리털이 주뼛주뼛 서는데, 할머니들은 미동도 않고 진득이 앉아 계신다.
“뭐가 춥다고 그려? 우린 내내 이러고 앉았어도 하나도 안 추워. 요즘엔 이 물 때문에 이사를 와버리는 할머니들도 있을 정돈디…. 아픈 데 말끔히 나아서 나간 사람도 여럿 봤어.”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사신 할머니들은 온천이 생긴 이후부터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매일의 일과처럼 굳어졌단다. 온천에서 살다시피 하면서도 새삼 이 물에 목욕해 상처가 말끔해졌네, 이 물을 먹고 갑갑했던 속이 확 풀렸네 하며 온천수의 효험을 말씀하시는 것이 즐거우신 모양이다. 과연 이 탄산온천수는 혈액의 흐름을 좋게 해 심장병이나 고혈압에 좋고, 탄산이 소화를 도와 마셔도 그만이란다.
할머니들은 ‘물 좋은’ 온천장이 하나 더 있다며 건너편을 가리키신다. 바로 유엔스파호텔 지하에 자리한 ‘가마골온천’이다. 가마골온천은 능암온천랜드에 비해 탄산 기포가 미세한 대신, 유황, 게르마늄 등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과연 직접 보니 황토를 풀어놓은 듯 누런 빛깔을 띠는 차가운 온천수 역시 범상치 않다.
“내가 여기저기 다 다녀봐도 여기 물 만한 데가 없어. 그러니까 한 번 온 사람들이 또 오고, 아는 사람들이 다시 찾고 그러는 게지.”
적지 않은 나이에도 탄탄한 몸을 자랑하는 권부자 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마골을 찾다가 아예 관리인으로 들어앉았다고 한다. 이처럼 이 마을 온천들은 뜨내기 손님보다는 마을 주민들이나 마니아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평소 냉탕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나도 온몸에 박하를 바른 듯 ‘쏴’ 해지는 차가운 온천수의 쾌감을 점차 즐기게 됐다.
연이은 온천욕에 몸이 가뿐해지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이쯤에서 ‘배꼽시계’가 출출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당연한 수순.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을 곳곳에서 ‘참한우마을’이란 간판이 반가운 손짓을 한다.
‘참한우마을’은 판매장에서 한우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주변 12개의 음식점에서 직접 구워 먹는, 익히 알려진 영월 다하누촌과 비슷한 시스템이다. 요사이 조용하던 마을은 이 한우직판장이 들어서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단다. 고즈넉한 온천과 토종 먹을거리가 더해져, ‘보양 여행지’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참한우마을은 한우 1등급만 고집하지도 않고, 특정 지역의 소만을 판매하지도 않지요. 그저 믿고 먹을 수 있는 한우를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앙성농협 최한국 상무는 주변 온천들과의 접근성도 좋지만, 기존의 모둠 고기로만 판매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손님이 원하는 부위를, 원하는 크기로’ 썰어주는 참한우의 ‘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한다. 거품이 확 빠진 저렴한 가격으로 한우를 구입해 포장해 갈 수도 있고, 지정 음식점에서 신선한 한우의 ‘참맛’을 즐겨도 좋을 일이다.
방금 구입한 신선도 100%의 한우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진다. 핏기가 가신 고기 한 점을 입속에 넣었더니 보드라운 살점에서 배어나온 진하고 고소한 육즙이 입 안 가득 퍼진다. 피로가 싹 풀린 가뿐한 몸에 한우 고기까지 들어가니 속이 든든하게 채워지는 느낌이다.
일본의 경우 전통 마을의 분위기를 느끼며 료칸에서 그 지역의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온천마을이 많은 해외 여행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일본만큼 인프라가 발달했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식으로 소박하게 꾸린 온천과 토종 먹을거리가 더해진 여정은 꽤나 만족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