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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등대 여행] 안산 누에섬등대전망대,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등대섬
[등대 여행] 안산 누에섬등대전망대,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등대섬
  • 손수원 기자
  • 승인 2010.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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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누에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 = 안산] 이곳은 배를 타고 가지 않는 섬이다. 누에를 꼭 닮아서 누에섬으로 불리는 이 섬에는 하루에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 바다를 걸어갈 수 있다. 그리고 섬 안에는 밤 바다를 달리는 배들의 길을 밝혀주는 고마운 등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은 진도가 가장 유명한데, 이곳 탄도항의 바닷길도 규모는 작지만 운치로 보자면 진도에 버금간다. 더구나 음력 2~3월쯤에 한 차례씩만 바닷길을 보이는 ‘귀한’ 진도 바닷길에 비해 누에섬의 바닷길은 언제든 하루에 두 번씩 열리니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대중적인’ 모세의 기적인 셈이다. 

오늘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바닷길이 열리는 날이다. 길이 드러나는 것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탄도항에 도착했다. 누에섬이란 섬을 가기 위해 탄도항에 왔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미 섬에 도착해 있는 셈이다.탄도는 지금은 안산의 외곽지역이지만, 시화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화성 마산포에서 배를 타고 드나들던 섬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섬이 문명에 의해 육지로 바뀐 것이다. 

바닷길이 열리면 아이들과 함께 갯벌체험도 해볼 수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바닥을 드러낸 갯벌에 섬과 섬을 잇는 시멘트길이 보인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탄도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숯섬(炭島)’이란 뜻이다.
“옛날에는 이 섬에 참나무가 많았대요. 섬사람들은 그 참나무를 밤새도록 태워 숯으로 만들어 화성에 내다 팔았답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탄도 분이신데 탄도를 ‘숯무루(‘무루’는 심마니들이 나무를 부르는 말)’라고 부르시더군요.”

탄도항 주변의 한 식당 주인은 “다 그렇게 변하는 게 아니겠냐”며 이제는 지나간 추억일 뿐이라고 말한다. 육지가 되어버린 탄도에는 더 이상 참나무도, 밤새도록 숯을 만드는 이도 없다. 탄도 숯이 유명해지면서 너도나도 몰려들어 참나무를 베어 가버린 탓이다. 숯을 만들어 팔던 섬주민의 후손들은 이제 고깃배를 타거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전망대에는 한 바퀴 빙 둘러서 쌍안경이 설치되어 사방으로 절경을 볼 수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그나저나 누에섬은 저만치 멀리에 있는데 바다에 물이 빠지면 어디쯤에서 길이 나타난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바다 물살이 빨라진다. 이윽고 육지 쪽에서 가까운 곳부터 하얀 시멘트 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모세의 기적에 그럴싸한 레드 카펫이 아닌 시멘트 길이라니…’하는 생각도 잠시. 이내 육지에서 섬까지 길이 이어지는 광경을 보고는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이 누에섬등대전망대에 근무하는 이들의 출근시간이다. 길이 나자 차 한 대가 유유히 누에섬을 향해 달린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유난히 세찬 바닷바람에 차를 얻어 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왕 건너는 바닷길, 한 걸음 한 걸음 풍취를 만끽하고픈 마음도 든다. 

길 위에 서자 이곳이 과연 바다였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넓은 갯벌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렇게 누에섬의 기적은 거창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조용히 매일 반복된다.

전망대를 방문한 기념으로 스탬프를 쿡 찍어보자. 사진 / 손수원 기자

길이 열리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또 다른 절경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길 중간에 까마득히 높이 솟은 세 대의 풍력발전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풍력발전기는 우리나라에서 갯벌에 세워진 최초의 풍력발전기로, 작년 12월 30일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모처럼 바람이 세게 부는 덕분인지 머리 위에서 발전기의 거대한 날개가 ‘붕붕~’ 소리를 내며 세차게 돌고 있다. 기둥 높이만 50m, 날개 길이는 25m나 되니, 날개의 크기만큼 바람을 타고 도는 소리도 거대하다.

길가 갯벌에는 부부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부부바위’가 있다. 안개가 짙게 낀 어느 날, 부부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단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부부가 탄 배가 가라앉고 말았다. 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다리던 삼 형제는 며칠 밤을 지새우다 돌이 되어버렸고, 부부도 혼백만 돌아와 바위가 되어버렸단다. 그 사연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어느 곳에도 이정표나 안내판 같은 게 없어 처음 오는 이는 어느 바위가 그 부부바위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수시로 물이 드나드는 곳이라 이정표를 만들기 어렵다면 작은 비석으로라도 그 위치를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갯벌 사이사이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칠게. 사진 / 손수원 기자

육지에서 누에섬까지는 1.2km 정도지만 발전기와 길 양쪽으로 늘어선 갯벌이며 갯바위들을 구경하며 걸으니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인지 갯벌을 누비며 다녀야 할 칠게들이 보이지 않는다. 갯벌에 와선 요 녀석들이 발밑으로 숨바꼭질을 하고 다녀야 제 맛인데…. 

누에섬에 당도하고 언덕배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전망대로 가는 가파른 길이 눈에 들어온다. 등대전망대 안은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서인지, 오늘따라 꽃샘추위가 유난히 심술을 부리는 탓인지 한산하기 그지없다. 

배가 등대를 보고 운항하는 장면을 축소해 만들어놓은 전시물. 누에섬의 모양이 꼭 누에를 닮았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어제까지만 해도 방문객들이 꽤 있었는데, 오늘은 바람이 너무 불어서 이제야 첫 손님을 맞이하네요.”
전망대 관리 직원은 아무래도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에 전망대가 있으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지난 2월부터 무료개방이 되어 주말이면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로 진도 바닷길 못지않은 장관을 이룬단다. 

‘길라잡이의 빛’이라는 주제의 1층 전시관 동선을 따라-실내가 매우 아담해서 동선이랄 것도 없지만-오른쪽으로 가니 누에섬을 조그맣게 축소한 모형 전시물이 보인다. 빨간 버튼을 누르니 바닥에 붙어 있는 줄만 알았던 작은 통통배가 ‘뿌앙~’ 소리를 내며 바다 위를 항해하기 시작한다. 이 전시물은 등대의 유래와 배가 불빛을 보고 길을 찾아가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모형이다. 음성 설명이 나오지만 누에를 꼭 닮은 섬 주위를 슬금슬금 기어가는 작은 배를 보느라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어 번을 더 눌러보고서야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가 등대가 쏘는 빛과 음파를 종합해서 방향을 잡고 항해를 한다는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작은 모형으로 본 누에섬은 정말로 꿈틀꿈틀 기어가는 누에를  꼭 닮았다.

누에섬등대전망대 전경. 사진 / 손수원 기자

모형 전시물 옆에는 화면을 통해 배를 몰아볼 수 있는 체험시설이 들어서 있다. 이 역시 빨간 버튼을 누르고 기어를 앞으로 미니 화면 속에서 서서히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둥근 조정관을 좌우로 돌리니 배가 방향을 바꾼다. 나름 10년 무사고 베스트 드라이버라 자부하건만 화면을 보고 하는 배 운전은 영 형편없다. 불쑥 솟은 바위란 바위에 모조리 뱃머리를 내다 박으며 연신 경고음이 들려온다. 비록 가상으로 배를 몰아보는 체험이지만 아이들이라면 무척 재미있어 할 듯하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 이야기와 세계의 등대, 등대에서 불을 밝히기 위한 등과 축전지, 등대원의 하루 등의 전시물들이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배를 운전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기가 좋다. 사진 / 손수원 기자

2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탁자가 마련되어 있어 차 한잔 마시며 통유리 너머로 펼쳐진 갯벌을 감상하면 좋겠다. 3층 전망대에서는 누에섬 주변의 섬인 대부도와 제부도, 풍도, 영흥도 등의 풍경을 쌍안경을 통해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 섬들을 또렷하게 볼 수는 없었으나 가장 가까운 전곡항에 떠 있는 수십 척의 배들은 색다른 장관을 보여준다. 제부도를 바라보면 작년에 설치된 바다낚시터인 피싱피어가 바다 쪽으로 팔을 펼치고 있다. 

전망대에서 계단을 더 오르면 등탑이지만 이곳은 관람객이 들어가지 못한다. 누에섬 등대는 지금도 여전히 밤이면 불을 밝힌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닷길이 닫힌 저녁에도 탄도항을 찾아 이 등댓불을 바라보곤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 전시물. 사진 / 손수원 기자

아담한 등대전망대를 모두 둘러보는 데는 20분이 채 안 걸린다. 아직 물이 들어오려면 네다섯 시간이나 남았지만 누에섬 자체가 워낙 작은 섬이라 섬 주위를 일주하는 데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재미있는 등대원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전시물. 사진 / 손수원 기자

설렁설렁 걸어 다시 육지로 돌아 나온다. 바다는 여전히 갯벌을 드러내고 길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육지에 나와서도 쉬이 자리를 뜰 수 없다. 아직 누에섬에 볼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누에섬 최고의 절경인 일몰이 남아 있다. 

탄도항은 누에섬을 배경으로 일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으나, 그 풍경에 풍력발전기가 더해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도 좋지만 현대의 것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이처럼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면 이것도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해질 무렵, 누에섬등대전망대와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진 풍경을 담으려 탄도항에 몰려든 사진가들. 사진 / 손수원 기자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사이 물길도 어느새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하나둘씩 모여든 사람들은 각기 좋은 자리에 삼각대를 펼치고 수평선에 해가 걸치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또렷한 오메가(Ω)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바다를 향해 떨어지던 태양이 이내 수평선과 맞닿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지고 연방 셔터를 눌러댄다. 찰나의 순간, 고단한 하루를 떠나보내는 이날의 해는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그와 동시에 바닷길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며 누에섬에서 일어났던 모세의 기적도 꿈처럼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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