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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섬에서 하룻밤 ①] 마을과 마을, 그 사이 바다 품은 ‘해품길’, 통영 매물도
[섬에서 하룻밤 ①] 마을과 마을, 그 사이 바다 품은 ‘해품길’, 통영 매물도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0.09.1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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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물도, 소매물도, 등대도를 합쳐 매물도라고 부르며,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합쳐 소매물도로 부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통영]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대매물도·소매물도·등대도(글썽이섬)를 합쳐 매물도라 칭하는데, 통상 대매물도를 매물도, 물길이 열리면 하나가 되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합쳐 소매물도로 부른다.

매물도로 가는 배는 통영과 거제에서 탈 수 있는데, 뱃길만 놓고 보면 거제 저구항에선 30분, 통영에선 그보다 세 배는 긴 1시간 30분이 걸린다. 거주지에 따라, 혹은 찻길과 뱃길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엔 저구항에서 가기로 한다. 발열체크와 신분증 확인 후 배에 오른다. 거제에서 출발한 낮 1시 30분 매물도행 배엔 섬 여행으로 들뜬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다백리길 제5코스, 매물도 해품길
통영에 들러 산 꿀빵과 충무김밥, 또 숙소에서 먹을 저녁식사거리로 짐이 제법 되었다. 도착시간에 맞춰 나온 펜션 경운기에 배낭과 식료품 상자를 넣고 마을 끝 펜션까지 걸어간다. 2020년 8월 현재 매물도엔 식당이 단 한 개도 없다.

철로 엮어 만든 고추잠자리 뒤로 당금마을 선착장이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매물도의 빨간등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매점이 있긴 하지만 늦은 시간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싱싱한 섬밥상을 먹지 못해 여간 아쉬운 게 아닌데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단다. 마을 가스 공사 중인 인부들 밥만 책임지고 있단 게 식당 사장님의 설명이다. 숙소 예약 시 식사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웃자란 방풍나물 밭을 손보는 동네 어르신께 인사를 한다. 몇 가구 안 되는 주민들 입장에선 바다 너머 뭍에서 온 손님이 달갑지 않을 법한데 환한 미소로 반겨주신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3시쯤 길을 나선다.

당금마을을 출발해 매물도 전체를 한 바퀴 돌아 걷는 약 7km, 쉬엄쉬엄 3시간 30분쯤 걸리는 트레킹 코스를 걸을 참이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제작한 책자엔 “강원도에 목장이 있다면, 통영에는 해품길이 있다”고 적어둘 만큼 이 길 어디서든 바다 조망이 수월하다.

한산초등학교 매물도 분교는 이제 외지 손님들을 위한 야영장이 되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통영엔 미륵도 달아길, 한산도 역사길, 연대도 지겟길, 비진도 산호길 등 2013년 개통한 여섯 개의 섬 트레킹 코스 ‘바다백리길’이 있는데, 제5코스가 매물도 해품길, 마지막 코스는 매물도에서 훤히 건너다보이는 소매물도 등대길이다.

간간이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아직은 늦더위 기세가 만만치 않다. 남에서 서로 기우는 햇살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한국전력 앞에 장군봉 3km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지난여름 웃자란 풀들이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피부를 귀찮게 한다. 캠핑장에 들러 긴 바지로 갈아입는다.

넓고 평평한 초록 캠핑장은 본래 한산초등학교 매물도 분교였다. 1963년부터 2005년까지 43년간 매물도의 아이들을 키우고 길러낸 학교는 이제 외지의 객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7성급 캠핑장’ ‘백패커들의 성지’로 꼽힐 만큼 인기가 많은 곳이다.

초원처럼 예쁜 길을 따라서
길은 바다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다는 멀어졌고 좁은 길은 해안절벽과 그 사이에 자란 동백 숲, 또 낮은 초지를 감싸 안은 채 이어졌다. 숲은 그늘이 되었지만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풀밭 끝엔 여전히 뜨거운 볕이 눈부셨다. 2리터나 챙겨온 물의 절반이 금세 사라졌다.

해품길은 초원과 울창한 동백 숲이 어우러진 코스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해품길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조망이 좋은 바다백리길 제5코스 매물도 해품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백터널을 지나면 오르막이고, 그 오르막을 다 올라서면 당금마을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에 서면 거제도 남부면 일대와 어유도, 가왕도, 병대도, 장사도 등이 한눈에 보이지만 매물도와 통영 지리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겐 섬 하나하나를 판가름하여 알아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역광으로 눈부신 진행방향과는 달리 걷다 돌아본 풍경은 가히 목가적이다. 밤이면 바다의 별이 되어줄 붉은 등대와 포구에 정박한 어선 몇 척, 주황색으로 통일한 낮은 지붕과 한가로이 늘어선 텐트 몇 동, 제일 오른쪽엔 매물도 유일의 몽돌해변이 펼쳐졌다. 길게 목을 뺀 바위 하나가 보인다.

연화도의 용머리 같기도 하고 엎드려 누운 공룡 같기도 하다. 어쩌면 짙푸른 바다를 눈앞에 두고 돌로 굳은 전설 속 거북일지도 모르겠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밭을 따라 걷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장군봉과 대항마을 선착장 사이의 바다백리길 이정표.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오후에 당금마을을 출발하면 역광으로 걷게된다.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장군봉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가족과 함께 걸었던 매물도 해품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매물도는 크게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두 봉우리 사이, 당금마을에서 약 2.2km 지점에 대항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다. 가족들은 이쯤에서 하산하기로 한다. 예까지 와서 중간에 내려간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지친 체력을 억지로 쥐어짤 순 없었다. 겨우 300ml쯤 남은 물을 한 모금씩 더 마시게 하고 숙소로 돌려보낸다.

장군봉(210m)으로 이어진 숲은 텅 비어 있었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와 해벽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파르르 바람에 흩어진 풀잎 소리가 홀로 걷는 산길에 동행이 되어 준다. “장군이 군마를 타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장군봉에 닿았을 땐 그림자가 길어져 있었다. 이젠 내려서는 일만 남았다.

대항마을 선착장까진 2.8km지만 숙소인 당금마을로 가려면 1km는 더 걸어야 한다. 맑은 날엔 대마도에서 밥 짓는 연기까지 보인다는 우스갯말이 있지만 오늘은 가까운 소매물도마저 선명하질 못하다. 어둡게 색칠된 저 섬엔 누가 있을까.

등대섬의 여행객도 매물도를 바라보며 이 섬에 있을 누군가를 찾고 있을까. 마지막 물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까마귀 몇 마리가 어두워진 하늘을 배회하고 있었다.

매물도의 밤과 아침
노을은 없었다. 온 섬을 발갛게 물들일 저녁을 꿈꾸었지만 오늘의 일몰은 한없이 초라하다. 차도 찻길도 없는 작은 어촌의 야경은 소박했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흐름을 찍고 싶지만 멋지게 담아낼 실력은 없다.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지만 섬은 그 욕심마저 버리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펜션 사장님은 손님인 우리에게 열쇠를 맡기고 뭍으로 나가셨다. 편히 쉬었다 가라는 말만 남긴 채. 이쯤 되면 섬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나 다름없다. 마을 가장 끝이어서 정말로 섬마을 전부를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도, 찻길도, 식당도 없는 당금마을. 섬 끝엔 대항마을이 있다. 밤의 풍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대항마을의 낮 풍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해품길 초입에서 돌아본 매물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식당이 없으니 저녁은 직접 해먹을 수밖에 없다. 통영에서 사온 숯에 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다. 집에서 멀리 떠나와 트레킹까지 한 아이들은 허기에 지쳤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자마자 순식간에 입속으로 사라진다. 아이스박스에 넣어온 콜라도 동이 난다.

급하게 선착장 구판장으로 달려가지만 문이 닫혔다. 섬의 하루는 뭍보다 일찍 저물고 일찍 시작하는 모양이다. 한 캔뿐인 맥주를 아껴 마시며 트레킹 여독을 풀어본다. 밀물처럼 잠이 쏟아졌다.

섬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닫힌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5시였다. 일출을 기대하기 힘든 하늘빛이다. 해는 구름 너머로 숨었지만 초가을 공기를 담은 바람은 상쾌하고 달콤했다.

섬의 모양이 말 꼬리를 닮아 ‘마미도’라 불리다가 매물도가 되었다고도 하고, 메밀이 많이 자라던 섬이어서 ‘메밀도’라 부르던 것이 매물도로 굳었다는 섬은 진즉에 기지개를 켰다. 각자 흩어져 민박과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은 아직 곤한 잠에 빠졌지만 주민들은 일찌감치 바다로 밭으로 흩어져 삶을 잇고 있었다.

매물도 해운이 운항하는 매물도-거제 구간은 평소 정기선 4항차만 운항시 15:30 배편은 숙박자만 이용 가능하며, 성수기 배가 증편이 될 때는 당일 왕복도 가능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숙소를 나와 선착장으로 내려선다. 산에서 보았던 빨간 등대로 가본다. 반대편 바다로도 간다. 매물도가 섬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맑은 물에 하늘이 그대로 담겼다. 수만 년 전 생명들이 거대한 몸집을 끌고 이동했을 법한 바위가 지천이다.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무인도 어유도와 그 옆의 바위섬도 어여쁘다. 당장이라도 울퉁불퉁 해안 바위를 걷고 싶지만 슬리퍼로 갈아 신은 데다 매물도를 떠나 거제로 돌아갈 배가 곧 도착할 시간이다.

문 열린 구판장에 들러 캔커피 하나를 사들고 배를 기다린다. 어제의 우리처럼, 배에서 내려 막 섬에 발을 딛는 사람들은 상기된 얼굴이다. 떠나는 자와 도착한 자, 아쉬움과 설렘이 선착장 앞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INFO 거제 저구항

거제 저구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주소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해안길 60
문의 055-633-0051

INFO 장군봉

장군봉.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매물도 최고봉인 장군봉은 해발 210m로 당금마을 한국전력에서 3km, 대항마을 선착장에선 2.8km 떨어진 봉우리다. 당금마을에 숙소가 있다면 마을로 돌아가는 1km를 추가로 잡아야 한다. 풀숲이 많으므로 긴 바지에 등산화를 신는 게 좋다.

INFO 소매물도

소매물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매물도는 매물도에서 뱃길로 15분쯤 떨어진 섬이다. 1박 2일 일정이라면 첫날 매물도 트레킹 후 하룻밤 묵고, 다음날 일찍 소매물도에 들렀다가 등대섬을 다녀온 후 오후에 뭍으로 나가도 된다. 편의시설은 소매물도에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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