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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그리운 고향역에 시(詩)가 흐르다, 영동 황간역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그리운 고향역에 시(詩)가 흐르다, 영동 황간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0.09.21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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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시가 인상적인 영동 황간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영동] 어쩌면 기차역은 시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흘러간 세월만큼 무수한 만남과 이별이 쌓이고, 하루해가 뜨고 지고 또 계절이 바뀌며 수많은 은유와 상징을 빚어낸다.

충북 영동에 자리한 황간역은 그렇게 탄생한 시들이 항아리째 익어간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고향역을 지키려는 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회를 열어 제법 옹골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황간역 구 역사 모형.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황간역 내부에 마련된 갤러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황간역 곳곳에 전시된 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지 올해로 115년째인 황간역은 한 세기가 넘는 어마어마한 역사를 품고 있다. 이용객이 줄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기차역은 역장과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문화명소로 재탄생시켰다.

수시로 시화전과 음악회가 열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무인카페와 자전거 대여 서비스도 운영된다. 마을의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들은 천천히 걸어서 돌아보기에도 좋다. 철도유산으로 가치가 높은 추풍령역 급수탑과 영동을 대표하는 여행지인 월류봉, 반야사, 노근리평화공원도 멀지 않다.     
   
한 편의 시를 닮은 기차역
황간역은 지난 2015년 개설 110주년을 맞았다.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지 올해로 115년째, 한 세기가 넘는 어마어마한 역사를 품은 기차역인 셈이다. 하지만 삼각 지붕에 푸른 기와를 얹은 정겨운 옛 역사는 1988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항아리에 쓰인 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시가 흐르는 기차역, 황간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정겨운 고향역을 떠올리게 하는 황간역 플랫폼.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자들을 위한 무인카페 표지판.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새로 지은 황간역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찾아볼 이유가 없는 평범한 모습이다. 그나마 영동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 꾸준하게 유지됐던 여객수요도 점차 줄어들어 보통역의 지위까지 위태로웠다. 평생을 기찻길 위에서 보낸 반백의 철도원은 이곳에 문화를 입히기로 했다.

지난 2012년 황간역에 부임한 강병규 역장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황간역을 살리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기차역을 찾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역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주민들과 함께 황간의 풍경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작은 음악회도 마련했다.

시골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항아리에 시를 적고 그림을 그려 기차역 곳곳에 전시하기도 했다. 대부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들인데, 그 배경이 황간이나 근처 추풍령이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시조문학의 큰 별로 꼽히는 고 정완영 시인도 힘을 보탰다.

그의 시 <외갓집 가는 날>에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풍경들이 묘사돼 있는데, 시인의 외갓집이 황간역에서 10km 남짓한 거리의 상주 모동이었던 것. 그 특별한 인연을 계기로 황간역은 수시로 시화전이 열리는 낭만적인 기차역이 되었다. 굳이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가보고 싶은 역이 된 것이다.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됐다. 비어 있던 대합실 2층을 무인카페로 꾸며 누구든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광장 한편에 비치된 노랑자전거를 이용해 마을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자전거여행도 가능하다.

어느덧 80회를 넘긴 작은 음악회는 전국에서 꾸준히 찾아오는 발길들이 이어진다. 퇴임 후에도 황간역의 명예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병규 전 역장은 블로그 ‘황간역, 내 마음의 고향 간이역’에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INFO 황간역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하옥포2길 14 

옛 이야기 따라 마을 한 바퀴
황간역 주변엔 마을의 오랜 이야기를 간직한 공간들이 꽤 많다. 모두 걸어서 돌아볼만한 거리라 반나절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먼저 기차역 앞을 지나는 초강천을 건너면 영창의원과 신평이용원이 마주 보고 자리한다.

100년 넘은 이발소 신평 이용원.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단정한 모습의 황간향교.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담벼락에 쓰인 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창의원을 설립한 조용호 선생은 황간고등학교를 지을 때 자신의 땅을 기증했다. 그의 부친은 황간중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신평이용원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100년이 넘은 이발소다. 동네 어르신들 말로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도 깊이 관여해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중간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단다.

초강천을 끼고 자리한 황간초등학교는 황간역이 문을 연 이듬해인 1906년에 개교했다. 충청북도에선 네 번째로 오래된 학교다. 일제강점기 생활기록부 등 다양한 역사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초등학교 뒤편 언덕엔 조선 시대 정자인 가학루가 자리한다. 1393년 황간의 현감 하첨이 짓고 경상도 관찰사 남공이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가학(駕鶴)’이란 이곳 정자에 누워 있으면 마치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시대 정자인 가학루.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마침 한 어르신이 가학루에 누워 한낮의 햇살을 피하고 있었는데, 사방이 탁 트인 구조라 제법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과연 그 이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최근에는 주변으로 나무가 크게 자라 시원한 전망을 즐길 수 없음이 아쉬웠다.

가학루와 이웃한 황간향교는 가학루보다 한 해 늦은 1394년에 창건됐다. 원래는 황간현 뒷산에 세워진 것을 1666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고,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고는 하나 단정하고 엄격한 모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INFO 신평이용원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황간로 28

INFO 황간초등학교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남성1길 25

INFO 황간향교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구교리길 88

추풍령역 급수탑, 월류봉까지…주변 볼거리도 풍성
기차여행을 즐긴다면 근처 추풍령역의 급수탑을 놓쳐선 안 된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됐던 시설로, 추풍령역 급수탑은 현재 남아 있는 급수탑 중 유일하게 평면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급수탑의 유형이 표준화되기 이전인 1939년, 과도기적 형태로 지은 것으로 철도사적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사각형 평면이 특징인 추풍령역 급수탑.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추풍령역 급수탑.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비극의 현장인 노근리 쌍굴다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노근리 평화공원의 전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청아한 풍경의 반야사.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내부엔 워싱턴 펌프와 배관 시설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외벽엔 6·25전쟁 당시 총탄 흔적도 남아 있어 역사적 의미도 크다. 예전엔 추풍령역을 통해 관람 가능했으나 지금은 주변에 공원이 조성돼 언제든 이 특별한 철도유산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동을 대표하는 여행지인 월류봉과 반야사, 노근리평화공원도 황간역에서 멀지 않다.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란 낭만적인 이름의 월류봉은 깎아지른 절벽과 그 아래로 흐르는 물 맑은 초강천, 그리고 한 폭의 동양화처럼 바위 끝에 올라앉은 정자가 아름답다.

최근에는 월류봉 주변으로 둘레길이 조성돼 이 같은 풍광을 천천히 걸으며 즐길 수 있다. 반야사의 절경은 황간역과 인연을 맺은 정완영의 시조 <반야사>에도 등장한다. “숨어 핀 들국화가 별빛처럼 뜨는 골짝”, “부처가 이 골에 산다고 물소리가 아뢰더라” 등 맑고 깨끗한 절집 풍경을 청아한 시어로 담아냈다.

한국전쟁 당시 이뤄졌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된 평화공원도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여전히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쌍굴다리와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은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보도록 한다. 

INFO 추풍령역 급수탑공원
주소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추풍령로 447

INFO 월류봉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INFO 반야사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

INFO 노근리평화공원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목화실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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