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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One Day Trip Recipe] 걷기 딱 좋은 계절, 산청으로 대원사계곡길에서 지리산둘레길까지
[One Day Trip Recipe] 걷기 딱 좋은 계절, 산청으로 대원사계곡길에서 지리산둘레길까지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0.10.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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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청정계곡과 고찰 대원사를 만나는, 대원사계곡길
평지 일색인 지리산둘레길, 수철~성심원 코스... 4시간이면 충분
걷고 싶게 만드는 대원사계곡길 / 황소영 기자
걷고 싶게 만드는 대원사계곡길 / 황소영 기자

[여행스케치=산청] “가을이 길 위로 쏟아져 내렸다. 볕은 눈부셨고 곡식은 반짝반짝 윤을 내며 알차게 익어갔다. 유난히 견디기 힘든 한해였지만 계절은 무럭무럭 삶을 살찌우며 지친 걸음을 위로한다.”

“경상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산청은 동쪽으로 합천군과 의령군, 서쪽으론 함양군과 하동군, 북으로는 거창군과 맞닿는 등 험준한 산악지형에 둘러싸였다.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 천왕봉(1915m)을 위시해 철쭉과 억새로 유명한 황매산,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웅석봉, 붓 끝을 닮은 필봉 등 이름난 산들이 많은 곳이다.”

산음현으로 불렸던 산청(山淸)은 조선 영조 43년(1767)에 지금의 이름, 즉 한자 그대로 풀자면 ‘산’과 ‘맑음’의 고장이 되었다, 산이 깊으면 계곡도 깊은 법, 산청의 산들은 어김없이 깨끗한 물줄기를 풀어놓았고 그 물은 강이 되어 바다로 흘렀다. ‘거울같이 물이 맑다’하여 이름 붙은 경호강은 생초면에서 산청읍을 거쳐 진주의 진양호까지 간다.

고기를 잡는 낚시꾼도 많지만 여름이면 래프팅을 즐기려는 인파로 북적이는 강이다. 양천강은 생비량면과 신안면을 관통해 생비량천으로도 불린다. 합천과 의령에서 산청으로 흘러와 남강이 되는 물줄기다.

힘차게 흐르는 대원사 계곡 / 황소영 기자
힘차게 흐르는 대원사 계곡 / 황소영 기자

도란도란 대원사계곡길
덕천강은 지리산과 가장 가까운 강이다. 중산리계곡의 물과 대원사계곡의 물이 덕산에서 합류해, 이른바 양단수가 된다. 지리산을 사랑해 지리산에서 삶을 마감한 조선중기 처사 남명 조식(1501~1572)의 시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 아희야, 무릉이 어디 메오 나는 옌가 하노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일대엔 남명이 후학을 양성한 산천재와 덕천서원, 또 근래에 지은 남명기념관 등이 있다.

오늘은 양단수 중 하나인 대원사계곡을 걸어볼 참이다. 지리산 청정계곡과 고찰 대원사를 동시에 볼 수 있어 찾는 이가 많은데, 왕복 7km로 쉬엄쉬엄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산행처럼 힘들지도 않고, 부러 무거운 배낭을 멜 필요도 없다. 길 끝 반환지점에 식당들이 밀집됐다. 물 한 병 들고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길, 세상 소음을 물소리로 정화하고 폐부 깊숙이 지리산 공기를 듬뿍 들이켤 수 있는 길이다.

대원사 버스정류장 안쪽에 ‘대원사계곡길’이라고 쓰인 입구가 있다. 오른쪽 아스팔트 도로로 쌩쌩 달리는 차들은 저 아래 계곡 옆에 이렇게 예쁜 숲이 있단 걸 알지 못한다. 오솔길은 수십 년을 살아온 나무로 빼곡하게 덮였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순이면 알록달록 가을 색으로 물들어 더더욱 고울 숲이다. 한동안 이어지던 길은 대원사 일주문 직전에서 차도 옆 인도로 이어진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이다. 이 일주문을 기준으로 길은 지리산 속살에 한껏 다가선다.

대원사는 수덕사 견성암, 울주군 석남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참선도량에 꼽힌다.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후 수차례 보수하며 이어졌는데 여순사건 당시 빨치산 토벌로 모두 불타 없어졌고, 6.25전쟁이 끝난 직후 법일스님에 의해 재건됐다.

보물 제1112호로 지정된 다층석탑은 출입이 금지돼 담장 너머 멀리서 보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 절의 장점은 문화재에 있지 않다. 한눈에도 정갈한 산사의 모습에 마음이 차분하고 평화롭다.

대원사 계곡 옆에 누군가 싸아둔 돌탑. 지나는 이들은 새로운 탑과 추억을 쌓으며 즐거워한다 / 황소영 기자
대원사 계곡 옆에 누군가 싸아둔 돌탑. 지나는 이들은 새로운 탑과 추억을 쌓으며 즐거워한다 / 황소영 기자

대원사 앞에서 다리를 건너면 숲도 계곡도 훨씬 더 지리산답다. 누군가 계곡 옆에 돌탑을 쌓아뒀다. 시킨 것도 아닌데 지나는 이들은 하나둘, 돌탑의 키를 높이거나 수를 늘리느라 걸음을 멈추곤 한다. 바위 옆에 바짝 붙은 데크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길의 종점 유평마을이다.

일제강점기 때 화전민들을 한 곳으로 모아 세운 유평은 이제 대원사계곡길과 이 계곡을 거슬러 천왕봉까지 오르는 등산객들, 부러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산촌마을로 변신했다. 길은 여기서 끝나지만 하루가 끝난 건 아니다. 가을은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오후 걷기를 위해 수철마을로 이동한다.

지리산둘레길 수철~성심원 구간 초반은 가지런한 논 사이로 이어진다. 길가의 농산물엔 허락없이 손을 대지 않는다 / 황소영 기자
지리산둘레길 수철~성심원 구간 초반은 가지런한 논 사이로 이어진다. 길가의 농산물엔 허락없이 손을 대지 않는다 / 황소영 기자

설렁설렁 지리산둘레길
지리산자락 5개(남원·함양·산청·하동·구례) 시군, 120여 개 마을을 잇는 295km의 지리산둘레길 중 산청을 지나는 코스는 동강~수철, 수철~성심원, 성심원~운리, 운리~덕산인데 난이도나 차량 회수를 고려할 때 가장 좋은 길은 수철마을에서 시작해 지막마을~평촌마을~대장마을~경호강변~바람재~성심원으로 이어진 12km의 수철~성심원 코스다. 넉넉히 4시간이면 충분한데다 평지 일색이라 부담이 없다. 성심원으로 가려면 이정목의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야 한다.

수철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샛노란 들판이 펼쳐진다. 모진 여름과 태풍으로 얼룩진 초가을을 보내고도 들녘은 무럭무럭 땅의 기운과 태양의 온기를 흡수해 살을 찌웠다. 모세의 기적처럼 길은 들녘 사이를 정확히 관통해 이어졌다.

투명한 햇살과 뭉게구름 아래서 금빛은 유독 더 눈부시다. 밤도 감도 대추도 석류도 토실토실 광택이 난다. 하지만 함부로 먹어선 안 된다. 자식처럼 돌보고 가꾼 농부들의 결실이다.

그나저나 저건 뭐지? 기다란 무언가가 시멘트 길 위에 누웠다. 가만히 다가가니 슬쩍 움직여 논두렁으로 사라진다. 으악, 뱀이다! 뱀은 산에만 사는 게 아니다. 걸음을 서두르며 간간이 뒤를 돌아본다. 혹시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뱀은 뱀대로 할 일이 있다. 걷는 이만 가슴이 콩닥댄다. 작대기만 봐도 놀라 멈칫 걸음을 멈춘다. 발목까지 올라온 중등산화에 긴바지를 입어 그나마 든든하다. 넓은 길에서 만난 꽃뱀이라 안심이다.

대장마을을 지난 길은 경호강과 합류하는 금서천변으로 이어진다. 경호2교 아랜 ‘차박’으로 불리는 캠핑족들이 쉬고 있다. 구간 종점 성심원에 닿기까진 이 강과 함께 한다.

2교 아래를 지나 경호1교를 건넌 다음 다시 2교, 그러니까 뒤집은 유(U)자 형태로 길을 잇는다. 강 너머로 좀 전에 본 차박 캠퍼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길 위의 풍경들은 거울처럼 잔잔한 강물 속에 담겼다.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은 무엇을 낚고 있을까.

딱 두 개의 화살표뿐이었던 이정목이 내리교 너머에선 세 개로 나뉜다. 지나온 검은색은 하나지만 가야 할 빨간색은 둘이다. 여기서 선녀탕과 한밭마을로 길이 나뉘는데 숲속인 선녀탕으로 가면 약 4km의 거리가 추가로 늘어난다(총거리 15.9km). 나뉘었던 길은 바람재에서 다시 하나가 된다.

오전에 대원사계곡길을 걸었으니 이번엔 왼쪽 강변길을 걷기로 한다. 물이 찰랑대는 사방댐을 지나 좁은 길을 나서면 숲에 가려졌던 강이 재차 드러난다. 설렁설렁, 힘을 쓰지 않아도 어느새 성심원에 닿는다.

우리나라 3대 비구니사찰로 꼽히는 지리산 대원사. 보물 제1112호로 지정된 다층석탑이 있다 / 황소영 기자
왼쪽 계곡과 오른쪽 도로 사이에 오롯이 놓인 트레킹 코스. 단풍이 물들 10월 하순이나 11월 초에 오면 좋다 / 황소영 기자

“대원사에 들러 무슨 신기한 보물이라도 있는가 찾는 분이 있다면 곧 실망하겠지만, 나는 이런 깊은 산속에 호젓한 산사가 깃들여 있다는 사실, 절집의 맑은 분위기, 그리고 비구니들이 용맹정진하고 있다는 숙연성 때문에 몇 번을 찾아왔어도 실망하지 않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중에서 --

 

원데이 산청 여행 레시피

① 대원사 버스정류장(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원사계곡길’ 입구를 따라 들어선다. 초입에서 대원사까진 2.2km이다. 대원사를 둘러본 후 다리를 건너 숲길을 걷다가 유평마을에서 큰길 또는 왔던 길을 따라 정류장으로 돌아온다. 왕복 7km로 쉬엄쉬엄 4시간쯤 걸린다.

② 대원사 버스정류장에서 19km 거리에 지리산둘레길 6구간(수철~성심원) 출발점인 수철마을이 있다. 수철마을 버스정류장을 등지고 걸어가면 마을회관 옆으로 둘레길 이정표가 있다. 지막마을을 지나 평촌마을로 이어진 길은 대장마을을 벗어나 경호강으로 이어진다.

③ 경호강을 벗어난 길은 바람재에서 성심원으로 이어진다. 성심원 다음엔 7구간(성심원~운리)으로 길이 이어지지만 하루 코스라면 딱 6코스까지가 좋다. 총 12km로 4시간이면 충분하다. 성심원에서 차를 세워둔 수철마을까지의 택시비는 1만7000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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