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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박상대의 소설 속 여행지] 이문열의 '시인詩人'이 살았던 영월 영월 김삿갓면에 잠든 시인 김병연을 만나다
[박상대의 소설 속 여행지] 이문열의 '시인詩人'이 살았던 영월 영월 김삿갓면에 잠든 시인 김병연을 만나다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0.10.19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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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김삿갓면 / 박상대 기자
영월 김삿갓면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영월] 작가 이문열에게 영월은 고향도 아니요, 잠시 머물렀던 곳도 아니다. 그러나 타고난 ‘운명’이 조선후기 천재시인 김삿갓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1991년 발표한 소설 <시인詩人>에는 영월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영월읍내에서 김삿갓유적지까지 <시인>을 들고 다녀왔다.

영월읍내 관풍헌 / 박상대 기자
영월읍내 관풍헌 / 박상대 기자

김병연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장소 관풍헌
10여 년 뒤, 소설<시인>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 문학평론가 김형수는 “자신의 속내를 가장 잘 쏟아낸 매우 우수한 작품이다”고 평가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작가 이문열의 타고난 운명이나 속내를 자세히 알고 있는 문인조차 많지 않았을 때였다.

미리 밝히자면 김병연은 반란군에게 항복하고 목숨을 부지한 조부 때문에 벼슬하고 출세하려던 인생이 시인으로 바뀌었고, 이문열은 대학교수를 하다 6.25때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다른 꿈을 거두고 소설가가 되었다. 소설<시인>은 찬찬히 읽어보면 이런 두 사람의 운명이 수많은 행간 속에 담겨 있다.

기자는 20여 년 전에 읽었던 소설<시인>을 다시 꺼내 읽은 후 영월로 달려갔다. 20대 초반 김병연과 형(병하)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병두)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영월읍내와 하동면 와석리(어둔리)를 찾아간 여행길이다.

들판보다 산이 더 많은 고장 영월. 말이 좋아 산수가 맑고 풍광이 아름다운 고장이지 90년대까지도 탄광촌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탄광이 문을 닫고, 광부 숫자보다 수십 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고장이다.  

김삿갓면 관광지를 알리는 안내판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 박상대 기자
김삿갓면은 주민들의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 박상대 기자

오랜만에 영월읍에 이르러 관광지도를 펼쳐든 기자는 다른 고장에 없는 면(面) 이름을 발견했다. 김삿갓면, 무릉도원면, 한반도면. 일찌감치 천문대를 만들고, 곤충박물관과 민화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개발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행정구역 이름까지 사람 이름이나 지형 이름으로 바꿔놓다니…. 이처럼 세련되고 과감한 영월군의 마케팅 감각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영월읍내에서 김삿갓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영월역 앞에 있는 관풍헌이다.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살이를 하다 홍수가 나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두 달간 살면서 자규시를 짓고, 나중에 사약을 받았다는 곳. 동행한 이갑순 문화관광해설사는 “청년 김병연이 백일장에서 조부 김익순을 책망하는 시를 써서 장원을 차지했다는 바로 그 장소가 바로 여기 관풍헌 자리다”고 말한다.

김삿갓유적지와 김삿갓문학관의 경계지점인 노루목교 / 박상대 기자
김삿갓유적지와 김삿갓문학관의 경계지점인 노루목교 / 박상대 기자

산천이 수려한 김삿갓면 가는 길
영월읍내에서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룬다. 남한강은 강원도에서 시작하여 충청도 땅을 휘감아돌다 경기도를 지나면서 한강이 되고 서해로 흐른다.

영월읍내에서 남한강을 따라 동남쪽으로 달린다. 여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레프팅을 즐기는 남한강. 저 유명한 고씨동굴을 지나 직진하면 충북 단양이 나오고, 좌회전하면 김삿갓면이 있다.      

왼쪽으로 응봉산과 덕기산이 튼실한 등성이를 자랑하며 뻗어 있다. 세련된 수묵화처럼 펼쳐진 암벽과 소나무숲 아래로 수십 미터 절벽이 이어지고, 그 절벽 밑으로 옥동천이 흐른다.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나 채소를 다듬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까닭 없이 정겹다. 차를 세우고 포도나 열무, 고추를 사는 여행객들이 눈에 띈다.

김삿갓계곡에는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고 길변에 여행객을 위한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 박상대 기자
김삿갓계곡에는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고 길변에 여행객을 위한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 박상대 기자

하천을 따라 김삿갓면사무소와 옥동리를 지나면 김삿갓계곡 안쪽 김삿갓유적지에 이른다. 강원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알리는 이정표 바로 앞이다.

김삿갓유적지는 이제 김삿갓공원이 되었다. 김삿갓공원은 입구에서부터 돌에 새겨진 시비와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시인이 앉아 있는 모습과 서 있는 모습, 머리만 만들어놓은 조각상 등 시인의 자유분방함을 엿보게 한다. 시인의 묘역 입구 작은 개울 건너 조그만 판잣집 앞에 하얀 한복을 입고 삿갓을 쓴 사내가 서 있다. 멀리서 봐도 김삿갓 시인을 닮았다.

김삿갓 묘역은 판잣집을 가로질러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사로운 햇볕이 든다. 상석이나 묘비(詩仙蘭皐金炳淵之墓)가 자연석 그대로다. 시인이 봤다면 그런대로 만족할 듯하다. 자연스럽고 소박하다. 난고(蘭皐)는 난초가 피는 언덕이다.

김삿갓유적지에는 김병연 시인의 조각상이 여럿 만들어져 있다 / 박상대 기자
김삿갓유적지에는 김병연 시인의 조각상이 여럿 만들어져 있다 / 박상대 기자

많은 전설을 담고 있는 김삿갓유적지
당초에 이곳에는 대엿 기의 묘가 있었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 향토사학자 박영국과 군청 공무원이 수년간 수소문하고 찾아다닌 끝에 이곳에 김삿갓시인이 누워 있음을 확인했다.

김삿갓유적지에 있는 유적비 / 박상대 기자
김삿갓유적지에 있는 유적비 / 박상대 기자

김병연은 1863년 화순에서 사망했다. 3년 뒤 둘째 아들이 이곳으로 유골을 이장했다. 묘역을 살펴보고 돌아나오자 한복을 입은 사내가 작은 판잣집 안으로 들라고 인도한다. 판잣집은 일명 해설사의 집이고, 사내는 김삿갓 전문해설사라고 한다.

사내는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고 ‘돌아온 김삿갓’이라며 허허 웃는다. 이곳에 찾아든 지 16년 되었다. 경상도 땅에서 체육관을 하며 살다가 혈혈단신 전국을 떠돌며 세상을 주유하던 중 이 골짜기에 이르렀다.

“다 쓰러져간 집(김삿갓 가족이 살던 집)에서 일주일 동안 끙끙 앓다가 일어났어요. 여러 잡귀들과 싸우다 살아난 거죠. 시인의 영혼이 나를 일으켜 세운 겁니다. 하하하. 그러니까 내가 150년 만에 돌아온 김삿갓입니다. 하하하”   

집을 고치고 길을 다듬었다. 작은 사당도 짓고, 주변 텃밭도 손질했다. 농사를 짓고 산채를 뜯어 자급자족하기 위해 농기계들도 장만했다.

소설 <시인>은 김병연 형제와 어머니가 정선에 살다가 신분이 밝혀져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다가 다시 영월로 이사하고, 영월읍내에서 살다가 또다시 상동면 와석리로 숨어들었다고 쓰고 있다.

대역죄인의 후손으로 멸문을 면했지만 연좌제가 완전히 폐지되지 않는 한 선비에게 벼슬길이 열릴지 장담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병연 형제는 사람들 눈이 없는 깊은 산골로 몸을 피해 조용히 살자고 뜻을 모았다.

그리고 상동면 와석리 두메산골을 선택했고, 출세와 선비의 길을 포기한 형이 장사해서 번 돈으로 산골에 집을 짓고, 전답을 사고, 밭을 개간하였다. 오직 농사를 지으면서 병연 형제는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았고, 병연의 부인 황씨는 첫째 아기를 임신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가난했지만 먹을 것 걱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 시선 간섭받지 않으니 무릉도원에 사는 격이었다. 책을 멀리하고 산골 농부로 땀을 흘리던 병연은 첫째 아들(학균)을 낳아 어엿한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 며칠 지났을 때, 어머니가 손자를 보았다는 기쁨을 감추고 깊은 한숨과 탄식을 토해냈다. 시아버지가 고을 원님인 덕분에 대궐 같은 집에 살다가 대역죄인이 되어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목도한 한 맺힌 어머니였다.

“고추야 달고 나왔다만 저 불쌍한 목숨을 어찌할꼬. 이 첩첩산골에 농투성이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짐승같은 그 한살이(生)가 물밑같이 훤하구나.”
어머니의 탄식은, 집안이 몰락하여 산골에 숨어 살아야 하는 서글픔과 출세를 포기하고 서책을 멀리한 체 농사를 짓고 있는 작은아들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었다. 

얼마 후 김병연은 집을 나섰다. 한양 언저리에서 본명을 감추고 문객이 되어 살면서 신분회복과 벼슬길에 오를 기회를 엿보곤 했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인은 대역죄인의 후손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고 과객이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김삿갓 묘역에서 옛 거주지로 가는 초입에는 여러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다 / 박상대 기자
김삿갓계곡 초입 풍경 / 박상대 기자
김삿갓 묘역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계곡 / 박상대 기자

시인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다 가출한 어둔리 산골
영월군에서 김삿갓의 가족이 살던 집과 동네를 복원했다. 돌아온 김삿갓은 앞장서서 걸으면서 말했다. “시인의 묫자리도 명당은 아니고, 집터도 명당이 아니지요. 작은 개울을 건너면 충청도 땅이고, 다시 이쪽으로 건너면 강원도 땅이지요. 모두 11번을 건너야 그 집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김삿갓 묘역 / 박상대 기자
김삿갓 묘역 / 박상대 기자

판잣집을 나와 1.8km 산길을 오른다. 지금이야 임도가 있어서 걷기 편하지만 옛날에는 바깥에서 난리가 나도 모를 만한 오지였다. 출신 성분이 불량한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 딱 알맞은 산동네(어둔리)다. 지금은 이웃에 한 집이 더 살고 있는데 예전에는 몇 집이 더 살았다고 한다.

김병연은 세상을 떠돌던 중 우연히 영월 사람을 만나 형이 사망한 이야기를 듣고 가족이 있는 어둔리로 돌아왔다. 형이 죽고, 어머니는 가문이 엉망진창이 되도록 며느리의 소임을 제대로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50살 늙은이가 되어 친정(홍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병연은 그곳에서 다시 눌러앉아 살았는데 그 사이에 둘째 아들(익균)이 태어났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병연은 평생의 상징물이 된 삿갓을 머리에 쓰고 집을 나섰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조상을 가리고, 서방님을 세상에 빼앗기는 아내의 애절한 눈빛을 가린 채 집을 나섰다.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살기에 어둔리는 적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갈등과 번민을 야기시킨 모든 인연을 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훗날 유골이 된 아버지를 전남 화순에서 억지로 이곳 영월 땅으로 모셔온 것이다. 그 후손들은 이제 어둔리에 살지 않는다. 

김삿갓 묘역 입구에 있는 해설사의 집 / 박상대 기자
김삿갓 묘역 입구에 있는 해설사의 집 / 박상대 기자
김삿갓묘역 입구에 있는 해설사의 집에서 김삿갓 시인 관련 해설을 해주는 '돌아온 김삿갓' / 박상대 기자
김삿갓묘역 입구에 있는 해설사의 집에서 김삿갓 시인 관련 해설을 해주는 '돌아온 김삿갓' / 박상대 기자

이토록 음습한 외딴집, 김삿갓의 부인과 아들이 살았던 집에는 지금 ‘돌아온 김삿갓’이 홀로 살고 있다. 먼 옛날, 어렸을 때 절에 맡겨둔 아들이 성인이 되어 이곳으로 아버지를 찾아왔지만 달래고 달래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먼 옛날 김병연이 읊었던 “저물어 한 가지에 같이 자던 새도 날이 새면 서로 각각 날아가거니, 보아라 인생도 이와 같거늘...” 시를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돌아온 김삿갓’은 지금 하얀 한복을 입고, 삿갓을 쓴 채 묘역을 찾아온 여행객들에게 김삿갓의 생애와 인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밖에 김삿갓면 여행지

김삿갓문학관
김삿갓유적지 맞은편 다리를 건너면 김삿갓문학관이 있다. 시인과 관련된 다양한 책자와 연구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서 김삿갓복장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어가는 여행객들이 많다고 한다. 월요일은 휴관.
주소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216-22


묵산미술관
긱삿갓유적지 조금 아래 계곡 중간쯤에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진 미술관 건물을 볼 수 있다. 2001년 10월에 한국화가인 임상빈 화백이 만든 곳이다, 영뤄지역의 산수를 그림 아름다운 풍경화를 많이 볼 수 있다. 화요일 휴관.
주소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697-6   


조선민화박물관
영조대왕 초상화, 구운몽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구운몽병풍, 당현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그린 곽분양행락병 10폭 등 귀한 그림들이 있다. 박물관 관장이 미국 쇼더비 경매에서 경매 받아온 작품이다. 다양한 조선민화도 여러 점 전시되고 있다. 월요일 휴관.
주소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432-10 김삿갓 계곡 내


산꼬라데이길
김삿갓면 예밀리와 주문리를 잇는 ‘산꼬라데이길’은 강원도 산골 마을의 매력을 잘 담고 있는 길이다. 강원도 사투리로 산골짜기를 뜻하는 이 길은 인공적인 시설을 배제하고 망경대산의 주요 능선을 다채로운 테마로 나눈 길이다. 총 길이는 27.5km로, 예밀길에서 모운동길까지 8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모운동길에서 출발해도 된다.


예밀와인체험센터
산꼬라데이길 시작점인 예밀마을에 있는 와인시음장. 일교차가 큰 산골 마을답게 당도 높은 포도가 많이 자란다. 2019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예밀와인에 취하면 영월 여행이 더 달콤해진다. 저렴한 값에 와인을 구매할 수도 있다.
주소 영월군 김삿갓면 예밀촌길 229-3   

 

고씨굴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 싸운 고씨 일가가 피난한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석회동굴. 천연기념물 제219호. 동굴 내부에는 종유석, 곡석, 석순 등 생성물이 잘 발달되어 있어 볼거리가 다양하다. 남한강을 건너 동굴까지 풍광도 아름답다. 보존 상태 또한 탁월하여 학술적ㆍ자연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이웃에 동굴생태관과 아트미로공원이 있다.
주소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산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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