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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반백년 역사를 추억으로 되살린 보성 득량역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반백년 역사를 추억으로 되살린 보성 득량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0.11.1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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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역 추억의 거리 전경
득량역 추억의 거리 전경

[여행스케치=보성]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고무줄 사이를 껑충대며 부르던 노래는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기찻길 옆엔 번듯한 건물들이 세워졌고, 칙칙폭폭 기적 소리 요란했던 철도 위엔 고요히 시간만 쌓인다. 그래도 기차역에서 열 걸음 남짓이면 오막살이도 행복했던 시절의 정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남 보성의 작은 간이역, 득량역이다.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득량역은 한때 기차역 앞에서 오일장이 열릴 만큼 번성했다. 그러나 새 길이 나고 자동차가 다니면서 북적이던 기차역은 인적 드문 시골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다행스럽게 간이역 활성화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여행자들이 하나 둘 득량역을 찾기 시작했다. 대합실 한편엔 철도유물들이 전시되고 역무원 유니폼도 직접 입어볼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랑스런 간이역 풍경은 SNS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득량역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추억의 거리도 볼거리를 더한다. 득량이란 지명에서 유래한 이순신 관련 벽화부터 역전이발관, 행운다방, 꾸러기문구사, 득량국민학교 등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정겨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역무원 체험
득량역의 꼬마역무원.
역무원 체험
역무원 의상체험을 할 수 있다.
역무원 체험
득량역에 전시된 완목식 신호기.

득량역, 추억으로 다시 태어나다
1930년 처음 영업을 시작한 득량역은 한때 기차역 앞에서 오일장이 열릴 만큼 번성한 중심가였다. 장날이 되면 대합실은 반가운 이웃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랑방으로 바뀌었고, 즐비한 가게들마다 손님이 넘쳤다. 그러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일장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고 새 길이 뚫렸다. 자동차와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결국 가게들도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 오랜 세월 득량 사람들과 함께 늙어가던 기차역마저 허물어지면서 북적이던 득량역은 인적 드문 시골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득량역이 간이역 문화디자인사업에 선정됐다. 평범했던 기차역이 깔끔하게 단장을 마치자 보성군에서 나서 장도 보고 공연도 즐기는 문화장터를 열었다. 마침 남도해양관광열차가 정차하면서 여행자들이 득량역을 찾기 시작했다. 이듬해엔 간이역 활성화프로젝트가 추진돼 낡은 사진으로만 남을 뻔 했던 수많은 추억들이 대합실 한쪽 벽을 가득 채웠다.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역무원 유니폼은 물론, 차표를 확인할 때 사용했던 개표가위와 단선철도에서 열차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놓았던 통표 등 다양한 철도유물도 전시됐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겨운 간이역 풍경도 SNS에서 관심을 모으면서 이제는 보성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떠올랐다.

득량역 추억의 거리에서 이순신 장군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득량역 추억의 거리에서 이순신 장군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순신을 지켜내고 소원바위가 지켜주는 득량마을
“내가 득량역에 온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신에게는 아직 열두 가마니의 득량쌀이 남아 있사옵니다.”
득량역을 나서자 제일 먼저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그린 벽화들이 눈에 띈다. 무슨 이유인가 했더니 득량(得粮)이란 지명과 연관이 있단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금의 득량도 근처에서 왜군과 대치할 때 보성 조양창에서 병사들의 식량을 조달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군량미는 전쟁의 승리를 좌우하는 귀한 자원이었으니 이후 ‘양식을 얻는다’는 의미의 득량이란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장군이쓴 <난중일기>에도 “저녁에 보성 조양창에 이르니 사람은 하나도 없고 창고 곡식은 봉한 채 그대로였다”며 “군관 네 명을 시켜 지키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새삼 수많은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갔던 이순신과 이 작은 기차역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득량역에서 바라본 소원바위.
득량역에서 바라본 소원바위.

득량역에 숨은 또 하나의 볼거리는 소원바위다. 득량역 정면에서 오봉산을 바라보면 오른쪽 능선에 거북이 모양을 한 바위가 선명하다. 예부터 득량 사람들은 이 소원바위가 액운을 막고 복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덕분에 소원바위가 보이는 마을에선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고 한다. 바위 모양이 세 마리 거북이 산을 오르는 모습이라 소원을 빌 땐 꼭 세 번을 이야기해야 한다.

득량국민학교 내부.
기념품숍에서 바라본 추억의 거리.
득량국민학교 내부.
득량국민학교 내부.
득량국민학교 내부.
이제는 주인을 잃어버린 50년 역사의 역전이발관.

응답하라, 그리운 시절이여! 추억의 거리
기차역을 나와 열 걸음 남짓 걸었을까. 역전이발관과 행운다방, 꾸러기문구사, 득량국민학교 등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정다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추억의 거리’다. 지금은 벽화가 대부분이지만 원래는 개인 수집품으로 꾸며진 거리 박물관이었다. 빨간색 공중전화부터 대통령 담화문, 각종 포스터와 광고지까지 70~80년대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누구든 반가워 할 전시품이 가득하다.

추억의 거리는 이곳에서 50년 넘게 이발관을 운영한 공병학씨와 그의 아내이자 행운다방 안주인인 최수라씨, 이들 부부의 아들 공주빈씨가 함께 아이디어를 냈다. 어릴 때부터 낡고 헌 물건에 관심이 많았다는 아들은 툭하면 고물 덩어리를 주워왔다. 어른이 되어선 직접 옛 물건들을 사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쌓인 수집품들이 창고 하나로 가득이었다.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느니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전시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텅 빈 가게가 대부분이었던 거리는 그렇게 추억을 소환하는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소박한 규모로 시작한 추억의 거리는 몇 년 새 다양한 벽화와 포토존이 추가됐다. 만화방이 있던 자리엔 기념품가게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보성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차나무를 집에서 직접 키워볼 수 있도록 만든 키트가 흥미롭다.
오랜만에 행운다방을 찾았더니 여주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어느 겨울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할아버지가 구워주는 떡을 받아먹던 네 살 아이는 어느새 열한 살이 되었다.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황금비율을 자랑하던 다방커피는 세련된 원두커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소파와 탁자, 심수봉과 조용필의 LP판은 그대로여서 고마웠다. 다방을 나서는 길에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더니 올해 초 세상을 떠나셨단다. 한참 먹먹한 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반백년 득량 사람들의 머리를 매만지던 할아버지도 그렇게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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