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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테마여행 ] 경북 문경에서 만나는 3가지 맛, 술 향기에 취해보는 한 해 마무리 여행
[이달의 테마여행 ] 경북 문경에서 만나는 3가지 맛, 술 향기에 취해보는 한 해 마무리 여행
  • 글 사진 박은하 여행작가
  • 승인 2020.11.1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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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중인 술병들
스파클링와인 숙성실.

[여행스케치=문경] 나는 애주가다. 전국 어디를 가든, 세계 어디를 가든 여행지에서 술을 맛본다. 독일 맥주여행, 프랑스 와인여행이 부럽지 않은 대한민국 우리 술 여행. 경북 문경에 다녀왔다. 요즘 문경에서 만드는 술이 인기다. 각종 국제행사 만찬주로 선정되는가하면 주류업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웅장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아담한 양조장에서는 시간을 품은 농익은 술 향기가 퍼진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원액을 뽑아내던 증류기.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원액을 뽑아내던 증류기.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원액을 뽑아내던 증류기.
프랑스 꼬냑 지역 전통 증류방식인 샤랑트식 증류기.

소백산자락이 내려오는 충북과 충남, 경북이 만나는 고갯길에 문경이 있다. 조선시대 영남지역 선비들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갈 때 문경을 지났다. 문경(聞慶)의 지명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우리는 축배를 든다. 축하주로 마시기 좋은 술을 문경에서 찾았다. 좋은 술 곁에는 좋은 사람이 함께 하기 마련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문경의 와인, 맥주, 막걸리를 추천한다. 주종은 다르지만 그윽한 술 향기만으로도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미세한 기포가 살아있는 오미로제 스파클링와인.
미세한 기포가 살아있는 오미로제 스파클링와인.

세계 유일 오미자 와인 오미나라

“어디에서도 맛본 적 없는 오묘한 맛이 나요.”
오미자 와인을 한 입 머금는 순간 오감이 깨어난다. 문경에는 오미자로 술을 빚는 특별한 양조장이 있다. 문경읍 진안리 문경새재 입구 천년 주막터에 세워진 오미나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집채만 한 증류기가 대문을 대신해 손님을 맞이한다. 실제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원액을 뽑아내던 구리 증류기다. 양조장 입구로 들어서면 은은한 술 향기가 코끝에 와 닿는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기가 오르는 듯하다.
문경 오미나라는 마스터 블렌더 이종기 명인이 운영하는 양조장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농대를 졸업한 후 주류회사에 입사해 패스포트, 썸씽스페셜 등 대표적인 국산 위스키를 개발했다. 27년간 몸담았던 직장생활을 마치고, 2013년 문경 주흘산 아래 양조장을 세워 오미자, 사과 등 문경 특산물을 이용해 술을 만들었다.
오미자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절반을 문경이 차지한다. 오미자는 스스로 방부 작용을 해서 일반 와인보다 발효시간이 길다. 18개월 이상 발효한 오미자를 오크통에 숙성해 랙킹(다른 저장통으로 이동)과 여과를 거쳐 스틸와인을 만든다.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 18개월 이상 발효한 오미자를 병으로 옮겨 발효와 숙성, 리들링(병돌리기), 탑업(누손량 채우기) 등의 과정을 거친다.
양조장 관람 동선을 따라 와인발효실, 제품 포장실, 증류실, 숙성실, 시음실 등을 차례대로 둘러볼 수 있다. 와인 제조공정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알라딘 요술램프를 연상케 하는 증류기다. 프랑스 꼬냑 지역의 전통 증류방식인 샤랑트식 증류기를 사용한다. 스파클링 와인병을 거꾸로 세워놓은 숙성실 또한 볼거리다.
양조장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시음이다. 전통 제조방법으로 만든 다양한 술을 시음할 수 있다. 그중에서 3년의 시간을 오롯이 견뎌낸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연분홍의 고운 빛깔과 은은한 향이 매력적이다. 미세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도 특징이다.

경북 문경 지역맥주 양조장 가나다라 브루어리.
경북 문경 지역맥주 양조장 가나다라 브루어리.

수제맥주 전성시대, 가나다라 브루어리

바야흐로 맥주전성시대다. 치맥, 피맥, 책맥, 낮맥, 혼맥 등 가볍게 즐기는 맥주문화가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가장 맛있는 맥주는 어떤 맥주일까? 양조장에서 갓 뽑아 마시는 신선한 맥주다. 몇년 사이 수제맥주 붐이 불면서 지역 맥주 양조장이 주목받고 있다. 문경에는 가나다라 브루어리가 대표적이다.
경북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손꼽히는 진남교반 근처 유곡동에 가나다라 브루어리가 있다. 거대한 한옥으로 지어진 맥주공장이 시선을 압도한다. 1층은 양조장, 2층은 시음장(탭룸)으로 구성되는데 시음장 창문 너머로 맥주 공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높은 천장 아래 굵직한 서까래가 뻗어 있는 양조장에는 사람 키의 두 배 정도 되는 맥주 탱크가 여러 대 서있다. 평일에 방문하면 맥주를 제조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맥주를 만드는 재료 홉, 맥아, 효모.
맥주를 만드는 재료 홉, 맥아, 효모.
맥주를 만드는 재료 홉, 맥아, 효모.
가나다라 브루어리 탭룸,
맥주를 만드는 재료 홉, 맥아, 효모.
맥주공장 시설 발효조, 숙성조 등.

맥주 맛은 물, 홉, 맥아, 효모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물이다. 물에 들어있는 미네랄이 맥주 풍미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백두대간에 걸쳐있는 문경은 청정한 자연을 배경으로 좋은 물이 나기 때문에 맥주 맛 또한 좋을 수밖에 없다.
가나다라 브루어리의 대표 맥주는 문경 특산물 오미자를 넣어 만든 오미자 에일이다. 상면 발효방식으로 만든 에일 맥주에 문경 오미자의 풍미를 담았다. 독창적이면서도 풍부한 향이 특징인데 쓴맛이 덜하고 상큼한 바디감이 느껴져 맥주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오미자 에일 외에도 문경새재 페일에일, 점촌 IPA, 주흘 바이젠 등 문경의 지역 색을 담은 맥주를 만든다. 맥주 종류별로 하나씩 담아 맛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다양한 맥주를 시음하며 취향에 맞는 맥주를 탐구해 봐도 좋겠다.

전미화 작가가 디자인한 막걸리 라벨.
문경 가은읍 아자개장터 안에 있는 두술도가.
전미화 작가가 디자인한 막걸리 라벨.
전미화 작가가 디자인한 막걸리 라벨.

우리쌀로 빚은 전통주, 두술도가 희양산 막걸리
문경으로 떠나는 술 여행. 와인, 맥주에 이어 막걸리를 맛볼 차례다. 문경 가은읍은 석탄산업이 흥했던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동네였다. 2만 여명이 넘는 주민이 모여 살면서 읍내에 아자개 장터가 형성됐다. 폐광 이후 예전 명성과는 달리 조용한 마을이 되었지만 오일장이 서는 매 4, 9일만큼은 활기가 느껴진다.
장터에 들어서면 어깨를 나란히 한 초가집 여러 채가 손님을 맞는다. 그중 한곳이 두술도가다. 두술도가는 김두수, 이재희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양조장이다. 부부는 술 빚는 일이 좋아 막걸리 양조를 시작했다. 막걸리 맛을 결정하는 3대 요소는 물, 쌀, 누룩이다. 두술도가 막걸리는 희양산 자락에서 무화학 비료, 무농약으로 농사지은 우렁이 쌀과 우리밀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막 걸렀다고 해서 이름 붙은 막걸리지만 더 이상 막 만든 싸구려 술이 아니다.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밑술 작업 5일, 덧술을 한 후 발효까지 3주가 걸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저온 창고에서 한 달을 더 숙성시켜 완성한다. 인내와 보살핌이 더해져 느리게 술이 익어간다.
두술도가에서 빚는 희양산 막걸리는 알코올도수 9도와 15도 두 가지다. 9도는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 15도는 묵직하고 담백하다. 두 막걸리 모두 인공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아 텁텁한 끝맛 없이 맑고, 경쾌하다.
소박하게 술 빚는 이들 곁에 가면 사람 냄새가 난다. 좋은 쌀로 우리 술의 역사를 잇는 두술도가의 대표 부부도 그렇다. 시음을 하며 술 담그는 방법과 전통주에 깃든 의미도 들을 수 있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잔을 부딪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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