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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2월호
[겨울 야경을 만나다 ① 경남 통영] 통영에서 만나는 ‘세 벼랑’ 빛의 정원 디피랑에서 동피랑과 서피랑까지
[겨울 야경을 만나다 ① 경남 통영] 통영에서 만나는 ‘세 벼랑’ 빛의 정원 디피랑에서 동피랑과 서피랑까지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1.01.1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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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피랑 야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디피랑 야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통영] “몽치가 산골에서 처음 이 항구에 왔을 때, 이곳이 그에게는 경이로운 신천지였다. 항구 가득히 정박한 작은 배들과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장식한 어마어마하게 큰 윤선이 뱃고동을 울리며 입항하는 광경이며 (중략) 잡화상의 밤은 화려했으며 홍등가의 불빛은 그 얼마나 매혹적이었던가.”박경리 소설 <토지> 중에서

동피랑 야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피랑 야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그 옛적의 통영 역시 야경이 멋진 번화가였던 모양이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한국의 나폴리’로 불릴 만큼 어여쁜 곳이니깐! 다만 1년 넘게 전 세계를 괴롭힌 바이러스 때문에 거리엔 불 꺼진 상점들이 늘었고 “불경기를 모른다”는 이곳마저도 그 어느 때보다 적막한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한산도, 비진도, 연대도, 연화도, 욕지도, 매물도, 소매물도 등 통영엔 가볼 섬도 참 많지만 이번엔 도시의 불빛을 찾아 야경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내겐 너무 아름다운 너의 밤”대중가요의 가사 한 줄을 가슴에 안고 남쪽 끝 항구도시의 겨울 속으로 한 발짝 들어서본다.

밤에 더 볼거리가 풍부한 남망산공원의 디피랑.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밤에 더 볼거리가 풍부한 남망산공원의 디피랑.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비밀공방'에서는 바닷속 풍경과 나전칠기 문양 등화려한 디지털 쇼가 펼쳐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비밀공방'에서는 바닷속 풍경과 나전칠기 문양 등화려한 디지털 쇼가 펼쳐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디피랑, 남망산에 세워진 빛의 정원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지워진 벽화는 어디로 갔을까요? 라고, 디피랑은 묻고 있었다. 디피랑은 지난해 가을, 디지털미디어아트를 이용해 만든 ‘빛의 정원’이름이다. 2년마다 새로운 그림으로 바뀐다는 통영의 대표적 벽화마을 동피랑과 서피랑, 지워진 그림들은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 임무를 완수한 두 피랑의 옛 벽화들이 남망산공원에 모여 신비한 축제를 펼친다는 테마로 조성된 디피랑 야경은 벌써부터 입소문이 나 찾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동절기(10월~2월) 기준 운영시간은 저녁 7시부터 밤 12시(입장 마감은 10시). 포장도로와 숲길이 섞인 약 1.5km의 산책로로 넉넉히 1시간쯤. 폭우나 폭설 등 악천후가 아닌 이상 개장하지만 안전한 관람을 위해 편한 신발과 옷을 입는 게 좋다.

일찌감치 예약을 하고 매표창구에서 결제를 한다. 노란색 손목 입장권을 붙이고 직원의 안내에 맞춰 한 발짝 들어선다. 번잡하지 않게 시간당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어둡고 낯선 공간에서 멈칫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걷기를 반복한다. 곧이어 바닥에 불빛이 투영되고 사방에서 숲의 소리가 들린다. 추운 밤공기를 걷고 있는 방문객을 환영하는 빛이다. 하얀색 대형 텐트와 파란 불빛의 모닥불에선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났다. 가짜 불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가만히 손을 내밀어 온기를 느낀다.

직원의 통솔 하에 ‘잊혀진 문’이 열린다.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큼직한 코를 단 토지대장군의 기세에 어깨가 움츠러들 때쯤 왼쪽 숲에서 그야말로 한 편의 동화 같은 영상이 상영된다. “어둑해진 하늘, 커다란 달이 떠오르면 신비한 숲이 열리고 산꼭대기에선 지워진 벽화들이 살아 움직이는 축제가 벌어진단다.”디피랑의 수호신 캐릭터 피랑이의 설명을 듣고 반짝이 숲을 지나면 화려한 동백나무 영상쇼가 펼쳐진다. 입구에서 라이트볼을 구입한 사람들은 모형 나무 구멍에 동그란 공을 넣어본다. 그때마다 나무는 화려한 불빛 꽃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빛의 폭포를 지나 닿은 곳은 ‘비밀공방.’배드민턴장이 몽환적인 영상관으로 완벽히 탈바꿈했다. 바닥과 벽 사면으로 통영의 특산품 나전칠기 문양, 고래가 헤엄치는 바다 속 풍경 등이 펼쳐졌다. 20여 개의 프로젝터를 활용한 덕인지 공방에 갇힌 사람들은 감탄에 감탄을 쏟아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뻥 뚫린 하늘에선 희미한 별들이 쏟아졌다.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면 영락없는 꿈속이었다. 깨지 않아도 좋을 꿈,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남망산공원 디피랑에서 허우적허우적 환상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디피랑.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디피랑.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디피랑
생명의 벽, 이상한 발자국, 잊혀진 문, 반짝이 숲, 오래된 동백나무, 빛그물, 신비폭포, 비밀공방, 빛의 오케스트라 등 15개의 테마로 이뤄졌다. 이용요금은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예매 전 할인 정보를 확인한다. 월요일 휴무. 문의_ 1544-3303

동피랑 정상의 동포루.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피랑 정상의 동포루.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중앙시장 뒤편의 동피랑 마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중앙시장 뒤편의 동피랑 마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피랑, 철거 예정지에서 관광명소로
겨울은 황량한 계절이다. 꽃을 기대하기엔 여전히 추운 날들, 모든 것이 잿빛으로 우울할 때 알록달록 빛깔로 여행객을 부르는 통영의 세 벼랑! 앞서 소개한 디피랑 벽화들은 모두 동쪽 벼랑 ‘동피랑’의 것이었다. 벼랑, 아니 푸근한 언덕에 서면 허전한 겨울도 파스텔처럼 화사하다. 중앙시장을 벗어나 골목길을 올라서면 벌써부터 강구안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남파랑길을 알리는 리본을 따라 전망대가 있는 동포루까지 가보기로 한다.

동피랑의 좁은 골목마다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졌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피랑의 좁은 골목마다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졌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포루를 중심으로 낡고 오래 된 벽면에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원래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만 복원해 공원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2007년 시청과 시민단체 등 18개 팀의 참여로 벽화를 그렸고, 그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통영 내륙의 대표 관광지로 성장했다. 드라마 촬영장소가 되고 ‘인생샷’명소가 된 것! 천사 날개 아래서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고 기다릴 정도였다. 버려질 뻔한 마을에 생기가 돌았지만 한편으론 직접 거주하는 주민들께 폐가 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런 길이기도 하다. 가능한 조용히 돌아보는 게 좋다.

시청 홈페이지에 적힌 노선은 중앙시장(나폴리모텔)~까망길~동피랑갤러리~<빠담빠담> 드라마촬영지~동피랑구판장~동포루이다. 마을 안내도를 보지만 아무래도 꼭 그렇게 갈 필욘 없을 것 같다. 어긋난 골목마다 들어선 낮은 집들과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좁은 길들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보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쨍한 블루와 빛바랜 옐로우, 지금은 사진 속에 담기지만 머잖아 또 다른 그림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잊힐 작품들, 오늘의 동피랑은 오늘밖에 없다. 하여 몇 번을 가도 새로운 공간처럼 여행객을 맞는다.

중앙시장.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중앙시장.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중앙시장
남해안 최대 수산시장 중 하나로 뒤편 언덕에 동피랑마을이, 바로 앞에는 강구안으로 불리는 포구가 있다. 갓 잡은 활어와 싱싱한 해산물을 구할 수 있어 통영시민은 물론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충무김밥과 꿀빵 상가도 이 일대에 밀집돼 있다. 연중무휴다.

동피랑.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동피랑.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동피랑마을
별도의 입장료나 휴무 없이 상시로 방문할 수 있는 통영의 대표적 관광지다. 마을 주변으로 숙소, 식당, 카페 등이 많다. 주차는 통제영유료주차장 등에 할 수 있다.
주소 경남 통영시 동피랑1길 6-18
문의 055-650-7400

사진작가들이 뽑은 촬영 명소로도 선정됐던 서피랑.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작가들이 뽑은 촬영 명소로도 선정됐던 서피랑.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서피랑, 김약국의 딸들을 기억하며
서피랑 99계단엔 유난히 박경리(1926~2008) 선생의 흔적이 많다. 선생의 고향이자 소설 <김약국의 딸들> 주배경이 이 근처인 까닭이다. “간창골에서 얼마를 가파롭게 올라가면 서문이 있다. 그곳을 일컬어 서문고개라 한다. 서문 밖에는 안뒤산의 한 줄기인 뒷당산이 있는데…”우수에 어린 눈빛을 죽을 때까지 갖고 있었을 것만 같은 김약국, 그런 그의 눈동자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아내 한실댁 그리고 그들 사이의 다섯 딸, 울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던 억울함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작품이었다.

99계단에서 올려다본 겨울 하늘이 유난히 맑다. 계단에 덧칠해진 파랑은 하늘빛과 맞물려 이국적 색감을 자아냈다. 두 개의 엉덩이 의자에 하나 둘 아이들이 앉는다. 아이들은 짓궂다. 짓궂어서 아이다. 커다란 모형 엉덩이를 벅벅 긁고 그 손을 콧구멍에 댄 채 찌푸린 얼굴을 한다. 장난기가 가득하다. 피아노 계단에서도 신이 났다. 발을 옮길 때마다 도에서 레로, 레에서 미로 음정이 달라진다. 짧은 다리를 이리저리 옮기며 아는 곡을 연주한다. 겨울에도 초록인 커다란 벼락당 후박나무가 피아노 곡조에 맞춰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든다.

서피랑 정상의 서포루에 서면 통영의 중심항인 강구안과 미리 다녀온 동피랑, 또 여황산 정상의 북포루가 보인다. 그 때문인지 전국 사진작가들이 뽑은 촬영 명소로도 선정됐었다. 보통 서호시장(새터시장)~명정동주민센터~99계단~명정샘~백석시비~공덕귀여사 생가~서피랑터널~서포루~벼락당~피아노계단~한산대첩 병선마당 순으로 꼼꼼히 돌아보지만 그렇게 가지 않았다고 탓할 사람은 없다. 여행은 자유다.

서피랑공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서피랑공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서피랑공원
서피랑에는 서포루, 윤이상과 함께 학교 가는 길, 서피랑문학동네, 뚝지먼당 99계단, 피아노계단, 벼락당과 후박나무 등이 있다. 인근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으며 상시 개방한다.
주소 경남 통영시 충렬로 22
문의 055-650-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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