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첫사랑의 기억을 품은 봉평으로 가다, '메밀꽃 필 무렵'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첫사랑의 기억을 품은 봉평으로 가다, '메밀꽃 필 무렵'
  • 유은비 기자
  • 승인 2016.08.17 15: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현장으로
저녁에 메밀꽃밭을 찾으면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여행스케치 DB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강원] 누군가는 계절이 바뀜을 냄새로 먼저 알아차린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9월, 여전히 늦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서늘한 가을 공기를 맡아내는 이에겐 천천히 골목을 돌아나온 가을의 냄새가 느껴진다. 그 가을의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책을 들고 떠난다.

옛 추억이 하얀 꽃으로 피어나는 메밀꽃밭
가슴 깊이 자리한 기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더욱이 그것이 첫사랑이라면 비슷한 향기만 스쳐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메밀꽃이 필 무렵, 첫사랑을 만나러 봉평으로 간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온 천지가 하얀 꽃망울들로 일렁이는 메밀꽃밭의 가을. 사진 / 여행스케치 DB
물소리가 시원한 물레방아. 사진 / 여행스케치 DB

메밀꽃밭에 들어서서 눈앞에 가득한 새하얀 꽃들을 마주한 순간 허 생원이 질리도록 말했던 그 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장본인인 봉평의 메밀꽃밭에 어둠이 드리우면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 온 천지가 하얀 꽃망울들로 일렁인다.

‘연인’이라는 꽃말을 지닌 메밀꽃은 작지만 한데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황홀함을 안겨준다. 꽃밭에 들어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머릿속에 하나둘 피어나는 옛 추억에 금세 미소가 번질 것이다. 

메밀꽃의 정취를 따라 걷다 보면 물레방앗간에 닿는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물레방아는 소설 속 허 생원과 성씨처녀가 만났던 달밤의 분위기를 떠오르게끔 한다. 은은한 달빛과 하얀 꽃송이, 듣기만 해도 시원한 물소리까지, 완벽했던 메밀꽃 필 무렵의 달밤이 펼쳐진다. 

이효석문학관 전경. 사진 / 여행스케치 DB
문학관 마당에 비치된 이효석 작가의 동상. 사진 / 여행스케치 DB

물소리를 뒤로한 채 끝없이 펼쳐진 메밀꽃밭을 걸으면 안쪽으로 이효석문학관이 보인다. 이효석 작가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문학관은 들어서는 길목에서부터 곳곳에 사진을 찍기 좋은 조형물들로 가득하다.

문학관 한쪽에는 작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책을 읽고 만나는 봉평과 그렇지 않는 봉평의 차이는 크다는 것. 문학관 뒤편에는 봉평의 풍경을 액자처럼 등에 얹고 있는 이효석 작가의 동상이 있다. 작가의 옆자리는 비어 있으니 작가의 짝꿍이 되는 영광도 누려보자.

9월에 열리는 효석문화제의 전국효석백일장은 봉평의 정기를 받아 제2의 이효석을 꿈꾸는 수많은 예비 작가들을 문학관 마당으로 초대한다. 한쪽엔 이효석 작가의 동상, 다른 한쪽엔 빽빽한 메밀꽃을 두고, 나만의 숨 막히는 봉평 메밀꽃밭의 풍경을 새로이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장돌뱅이의 발걸음이 머물렀던 봉평 오일장
메밀꽃밭에서 나와 허 생원과 나귀, 동이가 개울을 건넜듯이 시내 위에 만들어 놓은 섶다리를 건너면 봉평 재래시장으로 향할 수 있다. 장터 안으로 들어가면 허 생원과 조 선달이 어딘가에서 물건을 펼쳐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과 조 선달과 같은 장돌뱅이는 전국을 떠돌며 오일장을 찾아가 장사를 했던 보부상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과거의 장돌뱅이는 사라졌지만 봉평장에서는 여전히 매월 끝자리 수가 2, 7일인 날에 오일장이 열린다.

섶다리를 건너 봉평장으로 갈 수 있다. 사진 / 여행스케치 DB
봉평 오일장 풍경. 사진 / 여행스케치 DB
침샘을 자극하는 메밀국수. 사진 / 여행스케치 DB

9월 축제 기간의 장터는 풍물 놀이패와 사람들의 어울림으로 시끌벅적하다. 전국의 유명한 먹거리는 죄다 이 장터에 가져다 놓은 것처럼 어디를 돌아보나 침샘이 폭발하는 음식들이 가득하다. 장터 중앙 무대에서는 작은 콘서트도 열려 눈과 귀가 즐거운 것은 덤이다. 맛있게 먹고, 신나게 즐기며 봉평의 가을을 만끽해보자.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6년 9월호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