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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역사문화기행] 해동사와 청태전, 우드랜드까지, 숨은 역사와 명차의 고장 장흥에 머물다 
[역사문화기행] 해동사와 청태전, 우드랜드까지, 숨은 역사와 명차의 고장 장흥에 머물다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1.02.19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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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가 우거진 우드랜드 산책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편백나무가 우거진 우드랜드 산책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장흥]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남도의 끝자락. 산과 들과 바다를 두루 품은 장흥은 예로부터 명망 있는 문인들이 많고 의로운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 문림의향(文林義鄕)이라 불렸다. 이들의 숭고한 뜻이 깃든 명소들을 둘러보고 천년 명차인 청태전을 음미하다 보면 장흥에서 보내는 하루가 금세 저문다. 

장흥 읍내에서 북쪽으로 15분가량 떨어져 있는 해동사는 항일 운동의 거장인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당이다. 내부에는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그의 좌수장이 찍힌 유묵 복제본, 작은 괘종시계가 걸려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괘종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9시30분에 멈춰 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시간이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안중근 의사. 작은 시계 안에 담긴 그의 충정이 지금도 큰 울림이 되어 메아리치는 듯 하다. 

매년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제례가 열리는 해동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매년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제례가 열리는 해동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간에 멈춰있는 시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간에 멈춰있는 시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안중근 의사의 숨결이 배어나는 해동사
무엇보다 장흥에 해동사가 건립된 사연이 감동적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안중근 의사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장흥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이곳 유림인 안홍천 선생과 죽산안씨 문중의 도움이 크다. 안중근 의사는 민족의 영웅이지만 사실 광복 이후 독립운동가로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 남은 가족들마저 해외를 떠돌거나 어렵게 살던 탓에 제사조차 지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한 안홍천 선생은 뜻있는 이들과 힘을 모아 1955년 고려의 유학자인 죽산안씨 안향 선생을 배향한 만수사 바로 곁에 한 칸짜리 작은 추모 건물을 마련한 것이다. “같은 안씨라 해도 죽산안씨인 안홍천 선생과 순흥안씨인 안중근 의사는 본관이 달라 사실상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뜻과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신 거죠.”

당시 전쟁 때문에 나라 전체가 피폐해진 상황임을 감안하면 개인들이 나서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순옥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마도 문림의향 장흥에 흐르는 의로운 정신이 해동사 건립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탑.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탑.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안중근 의사 순국 90주년인 2000년에 해동사는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3칸짜리 건물로 증축해 어엿한 사당의 모습을 갖췄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매년 안 의사를 기리는 제례가 열린다. 앞으로 해동사 일대에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과 역사공원, 애국 탐방로, 메모리얼 파크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해동사를 나서며 아직 해외에 있는 그의 유해가 하루 빨리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죽거든 해방된 조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는 그에게 자유로운 삶을 빚진 우리 후손들이 지켜야 할 약속이나 다름없다.

해동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해동사.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해동사
주소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 

전시패널과 영상 등을 활용한 기념관 전시실 내부 모습.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전시패널과 영상 등을 활용한 기념관 전시실 내부 모습.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장흥 출신의 대접주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장흥 출신의 대접주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동학농민혁명군의 마지막 격전지 석대들
구한말 격변의 시대에 들불처럼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장흥에서도 맹렬히 타올랐다. 사자산과 억불산, 제암산 등이 둘러싸고 있는 드넓은 석대들은 정읍 황토현과 공주 우금치, 장성 황룡과 함께 동학농민혁명군의 4대 전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아쉽게도 다른 지역에 비해 석대들 전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떨쳐 일어난 사람들이 밤낮없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최후의 격전지에 장흥동학혁명기념관이 서 있다. 

“강과 바다를 끼고 있는 장흥은 100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물산들이 모이고, 앞선 의식들을 빠르게 받아들였던 선진적인 지역이었어요. 나라가 기울고 관리들이 부패하면서 농민들의 삶이 더욱 궁핍해가는 때에 장흥은 이미 동학농민혁명이 급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형성되어 있었던 거죠.”기념관 직원인 최예숙씨의 해설 덕분에 어렵게만 느껴지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 동학농민혁명이 흥했던 만큼 장흥에는 대접주만 5명이 있었다. 닭을 키우던 장태를 활용해 군관과 일본군의 신식총을 막아낸 장태 장군 이방언도 장흥 출신 대접주이다. 

전시관은 작고 아담하지만 안에 담긴 내용은 묵직하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게 된 시대적 배경과 전투 과정들이 오목조목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1894년 12월 1일부터 장흥에서 치러진 15일 간의 항쟁은 석대들에서 결국 최후를 마감한다. 이후 농민군에 대해 자행된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은 가슴 아픈 역사일 수밖에 없다. 

여성 농민군 지도자였던 이소사와 13세의 나이에 석대들 전투를 지휘했던 소년 장수 최동린, 수많은 농민군을 피신시켰던 소년 뱃사공 윤성도의 이야기들도 눈길을 끈다. 이들의 후손들이 전하는 인터뷰 영상은 묻혀 있던 역사 속 인물들을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들어준다. 전시를 관람하기 전에 영상물을 시청하면 이해가 더 쉽다. 영상물은 15분 내외로 역사적인 사건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장흥동학혁명농민기념관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읍성로 2
문의 061-864-6531

아름다운 정경과 그윽한 차 향이 어우러진 평화다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아름다운 정경과 그윽한 차 향이 어우러진 평화다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납작하게 빚은 찻잎을 실에 꿰어 걸어 놓은 청태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납작하게 빚은 찻잎을 실에 꿰어 걸어 놓은 청태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향기로운 꽃향이 퍼지는 찻잔.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향기로운 꽃향이 퍼지는 찻잔.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천년을 내려온 그윽한 차 향에 취하다
해가 지기 전 발걸음을 돌려 평화마을로 들어선다. 둑방길을 따라 늘어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와 잔잔한 저수지가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이다. 운치 있는 풍경에 반해 잠시 쉬어가고 싶던 차에 평화다원이 눈에 띄었다. 장흥의 명차인 청태전을 맛보고 싶다면 절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곳이다.

청태전은 녹차를 발효시켜 만든 일종의 떡차로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고유의 전통 발효차이다. 가운데 구멍 난 모양이 엽전과 비슷해 전차 또는 돈차라고 불렸으며 주로 남도 지역에서 많이 마셨다. 발효된 찻잎이 마치 푸른 이끼처럼 보여 청태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오래 둘수록 더욱 맛이 깊고 좋아지는 특징이 있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청태전은 조선시대 이후 차 문화가 쇠퇴하면서 오랜 시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었다. 청태전의 가치가 재발견된 건 평화다원 김수희 대표가 2008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 세계녹차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김수희 선생이 출품한 청태전은 전 세계 차 명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국내에 청태전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다. 2011년도에 열린 같은 대회에서 청태전은 또다시 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명실공히 세계적인 명차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김수희 대표는 지금도 평화다원에서 직접 청태전을 빚고, 끓이며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그윽한 차 향기를 선사한다. “청태전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죠. 특별한 법도를 따질 필요가 없어요. 그저 찻잎 한 덩이 넣고 펄펄 끓여내면 됩니다.”김수희 대표가 말하는 청태전은 한마디로 ‘편안함’이 깃든 차이다. 온도와 시간에 맞춰 차를 우려내야 하는 어려움 없이 김이 모락모락 날 때까지 손쉽게 끓여 마시면 된다. 

그래서일까. 맛에서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떫은 느낌 하나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차 맛에 ‘아, 이래서 명차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장흥의 차밭은 대부분이 야생이다. 자연이 키워낸 찻잎으로 만든 청태전은 깔끔하고 청량한 맛을 품고 있다. 한 번 맛보면 자꾸만 찾게 되는 청태전만의 매력이다. 

평화다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평화다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평화다원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외평길 170
문의 061-863-2974

편백나무 숲을 거닐다보면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된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편백나무 숲을 거닐다보면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된다. 탐방로에 톱밥이 깔려 푹신한 톱밥산책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사철 푸른 편백나무 숲과 흥이 넘치는 토요시장
장흥을 여행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와 토요시장이다. 억불산 자락 아래 위치한 우드랜드는 수령 40~50년 된 편백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룬 장흥의 대표적인 힐링 명소다. 숲에 들어서면 편백나무 특유의 향긋한 내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숲길을 느긋하게 산책하며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한결 가뿐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하늘 높이 뻗은 나무 아래 가슴을 펴고 크게 한 번 숨을 들이 마셔본다. 순식간에 몸 안 구석구석 맑고 청량한 기운이 가득 차오른다. 

우드랜드에는 편백나무 외에도 철 따라 은목서와 금목서가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고, 가을이면 맥문동이 보랏빛 카펫을 이룬다. 숲 안에는 목재문화체험관과 편백소금찜질방, 난대자생식물원 등 체험 거리도 많다. 차 한 잔 음미하며 산림욕을 하거나, 따사로운 햇빛 아래 족욕을 즐기는 카페도 있으니 시간을 넉넉히 두고 여유롭게 둘러보기를 권한다. 

만약 장흥을 토요일에 여행한다면 토요시장은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 코스다. 코로나로 인해 장이 서는 동안 이어지던 각종 행사들은 진행이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장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장흥 특산품인 표고버섯을 비롯해 파프리카, 키조개, 낙지, 무산김 등 싱싱한 제철 식재료들이 사시사철 시장을 풍성하게 만든다. 흥정만 잘하면 후한 인심과 덤이 절로 따라오니, 지갑을 자주 열면서도 되려 기분이 좋아진다.

토요시장은 미식가들에게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이다. 시장 주변에 별미인 장흥삼합 집들이 몰려 있는데 심지어 한 집 걸려 한 집이 장흥삼합 메뉴를 내걸고 있을 정도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품질 좋은 장흥 한우에 바다 향 가득한 키조개와 향긋한 표고버섯을 겹겹이 얹어 먹는 맛이란! 장흥삼합은 산과 들, 바다의 영양과 맛을 한 번에 얻는 일석삼조의 영특한 음식이다. 맛깔스럽게 여행을 마무리하는 데에 이만한 별미가 또 있을까 싶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숲에서 삼림욕을 즐겨보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우드랜드길 180
관람시간 오전 8시~오후 6시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61-864-7911 www.jhwoodland.co.kr 

INFO 장흥 토요시장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토요시장3길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과 우드랜드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임시 휴관할 수 있으니 여행 전에 운영 여부를 문의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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