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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테마여행] 박문수, 정도전, 원균을 만나는 조선 시대 진위현(振威縣) 여행
[이달의 테마여행] 박문수, 정도전, 원균을 만나는 조선 시대 진위현(振威縣) 여행
  • 이동미 여행작가
  • 승인 2021.02.26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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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진위현의 인물인 삼봉기념관의 저녁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평택 진위현의 인물인 삼봉기념관의 저녁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여행스케치=평택]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태조(太祖)부터 순종(純宗)까지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8년간 지속되었다.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는데, 조선 시대 경기도 평택의 작은 고을 진위현(振威縣)에서는 걸출한 인물이 셋이나 나왔다. 이들을 따라 조선 시대 진위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조선 개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삼봉 정도전, 위민을 실천한 어사 박문수, 임진왜란 때의 장수 원균이 그들이다. 정도전은 조선 초기(제1대 태조), 원균은 중기(제14대 선조), 박문수는 후기(제21대 영조)의 인물이며, 박문수는 문신, 원균은 무신, 정도전은 총괄기획을 맡은 사람이라 3인 3색의 여행이 흥미롭다.

삼봉 기념관 초입의 말채나무.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삼봉 기념관 초입의 말채나무.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삼봉 정도전을 모시는 문헌사.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삼봉 정도전을 모시는 문헌사.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태조가 내린 '유종공종' 어필이 문헌사 현판으로 걸려있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태조가 내린 '유종공종' 어필이 문헌사 현판으로 걸려있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봉화 정씨 집성촌에 자리한 삼봉 기념관
진위면 은산리 산대마을은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후손인 봉화 정씨의 집성촌이다. 이곳에 삼봉 기념관이 자리하는데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건 ‘말채나무’다. 정도전이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계룡산 일대를 답사하다 쉬면서 말 채찍으로 사용하던 나뭇가지를 꽂아놓은 것이 자라 말채나무가 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에는 말채나무가 시들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거의 죽은 듯 하였으나 해방 후 다시 살아나 높이 30m 둘레 1.5m의 거목이 되었다. 삽목한 2년생 나무를 문중에서 이곳 삼봉 기념관에 이식했다. 

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삼봉집(三峯集) 목판(木板)이 전시된 삼봉 기념관이 있다. 삼봉집에는 조선왕조의 건국 이념이기도 한 정도전의 정치, 경제, 철학 사상이 망라되어 있는데, 정조 15년(1791) 대구 지방에서 왕명에 의해 삼봉집을 간행할 때 만든 목판을 보관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목판을 비롯해 영정, 교지, 시문, 친필액자, 친필서간문 등 관련 유물 12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계단을 더 오르면 문헌공(文憲公) 정도전의 불천위를 봉안하고 제를 올리는 문헌사(文憲祠)가 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개국 창업과 수도 한양 건설의 공로가 으뜸이라는 의미로 ’유종공종(儒宗功宗)’이라는 어필을 내렸는데 이것이 현판으로 걸려있다.

삼봉 기념관 평택시 은산길 58-4, 문의 031-666-1385,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원균 장군 묘 인근의 벽화.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원균 장군 묘 인근의 벽화.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원균 장군의 묘.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원균 장군의 묘.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원균 장군 묘 발치의 말 무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원균 장군 묘 발치의 말 무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도일동에서 태어나고 잠든 원균 장군
임진왜란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과 원균(元均, 1540~1597)이 있다. 원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을 통솔하는 절도사로서 이순신과 협력 또는 경쟁하면서 크고 작은 해전을 이끌었다. 원균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란 최초의 해전인 옥포해전에서 대승하였고, 여러차례 걸친 크고 작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선조 30년(1597) 거제도 인근 칠천량(漆川梁)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원균은 권율(權慄), 이순신과 함께 선무1등공신으로 책록되어 원릉군(原陵君)에 봉해졌다. 이때의 원릉군원균선무공신교지(原陵君元均宣武功臣敎旨)는 보물 제1131호로 지정되어 문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현재 원균 장군 묘는 시신의 행방을 확인할 수 없어 유품을 묻어 조성했다. 봉분에서 보았을 때 왼쪽으로 원균 장군의 생가가 있던 곳이 보이며, 앞쪽으로는 내리 저수지와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원균 장군 묘의 아래쪽에 작은 무덤이 있는데 이는 원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천 리를 달려와 원균 생가에 신발과 담뱃대를 놓고 죽은 말의 무덤이라 전해진다. 

원균 장군 묘 평택시 도일동 산 82

향교 중 풍수가 가장 좋다는 진위 향교.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향교 중 풍수가 가장 좋다는 진위 향교.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의 내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의 내부.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에 전시된 박문수 관련 어린이용 도서.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에 전시된 박문수 관련 어린이용 도서.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박문수의 외가댁은 무봉산 자락의 연주혈 
호조 참판, 병조판서,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 1691~1756) 역시 진위현 사람이다. 고령박씨진사공파 지관제종증에서 2009년 발행한 ‘박문수 약전(略傳)’에 따르면 박문수는 숙종 17년(1691) 9월 8일 진위현 향교동(현재 진위면 봉남리 아곡마을)에서 아버지 박항한(朴恒漢)과 어머니 경주 이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출산은 친정에서 하는 관습이기도 했지만, 이후 경제적 교육적으로 박문수는 외가의 도움을 받으며 자랐다. 아곡(牙谷)마을은 박문수의 외조부 이세필이 낙향해 이룬 마을로 풍수지리상 연주혈(連珠穴)의 명당자리다. 

어사바군수가 '낙조'라는 시를 지었다 전하는 진위천.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어사바군수가 '낙조'라는 시를 지었다 전하는 진위천.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박문수가 자란 아곡마을에서 이어지는 삼남길을 트레킹 하는 사람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박문수가 자란 아곡마을에서 이어지는 삼남길을 트레킹 하는 사람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어사 박문수가 놀이터로 삼았을 아곡마을 외조부 댁 옆의 노거수.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어사 박문수가 놀이터로 삼았을 아곡마을 외조부 댁 옆의 노거수.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과 연계되는 어사전과 어사 국밥.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과 연계되는 어사전과 어사 국밥.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어린 박문수는 무봉산 능선을 오르내렸고 서해에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는 진위천을 바라보며 자랐다. 경종 3년(1723) 박문수는 ‘낙조(落照)’라는 글로 급제해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 벼슬길에 오르는데 이때 지은 ‘낙조’는 진위천에서 바라보던 낙조라 한다. 혈이 좋은 아곡마을과 풍수지리가 으뜸인 진위향교를 배경으로 자라났기에 박문수가 곧은 인성과 명석한 판단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에 전시된 마패.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에 전시된 마패.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진위현 관아터이자 독립만세 운동 자리의 표지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진위현 관아터이자 독립만세 운동 자리의 표지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진위현 관아에 있던 기초석이 진위 면사무소 앞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진위현 관아에 있던 기초석이 진위 면사무소 앞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볼수록 빠져드는 조선 시대 진위현 여행
아곡마을에서 산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전라, 충청,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삼남길로 박문수도 이 길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사실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파견된 적이 없고, 영남별견어사(嶺南別遣御史)로 임명되어 영남에 파견된 적은 있다(1727년, 영조 3). 하지만 위민 정책을 입안•시행했으며 권력에 굴종하거나 주위 눈치를 보지 않았던 인물이니 시대를 불문하고 백성들의 로망이 되는 정치인이었다. 백성들의 믿음에 의해 박문수는 ‘영원한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렇게 조선 시대 진위현에는 개국의 마스터플랜을 짠 기획자, 용감한 무신, 강직한 문신이 있었다. 계층별, 직업별, 동선별 이야기가 담뿍 담긴 진위현 여행은 흥미롭다. 

미니 인터뷰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 장승재 관장
 
아곡마을을 돌아보며 설명하는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 장승재 관장.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아곡마을을 돌아보며 설명하는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 장승재 관장.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박문수 관련 자료를 설명하는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 장승재 관장.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박문수 관련 자료를 설명하는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 장승재 관장.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박문수의 청렴과 위민정신은 시공을 초월합니다.“

암행어사 하면 박문수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관련된 TV 드라마는 10편, 영화 4편, 다큐멘터리 3편, 대중가요 11곡, 판소리, 창작오페라 등 박문수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많습니다. 그는 시공을 초월한 인기스타죠.

하지만 정작 박문수의 고장 평택에는 이렇다 할 박문수 관련 콘텐츠가 없어 아쉽습니다. 박문수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과 유적, 문화자원을 스토리텔링하고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진위현의 인물로 정도전, 원균과 비교해 박문수 콘텐츠는 매우 미약하다. 이에 내 고향의 가치를 제대로 살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평택 출신의 장승재 관장이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을 열었다. 박문수의 위민(爲民)정신과 성품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암행어사를 테마로 하는 아카데미, 테마여행 프로그램, 어사또 길 탐방과 어사또 음식 체험 등의 박문수 관련 콘텐츠 개발에 앞장서고자 한다. 

이제 첫걸음을 떼었으니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태 박문수를 제대로 조명하길 기원하고 있다.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에는 구영국(具永國) 황칠 명인이 그린 박문수 초상화, 조선 시대의 마패, 박문수 관련 아동 서적이 있고, 박문수 문화관 아래층 진다인(031-662-5570)에서는 어사 국밥과 어사 전 등 어사또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박문수 외에도 진위현에는 안성 남사당패에게 영향을 준 진위현 출신 인물 ‘유세기(柳世基)’, 보물 제567호 철조여래좌상을 모신 만기사(萬奇寺), 한양으로 가던 옛길 삼남길과 이순신 백의종군 길, 평택 섶길 등 박문수와 더불어 돌아보면 좋을 장소와 인물, 이야기가 넘쳐난다. 

암행어사 박문수 문화관 평택시 진위면 진위서로 127. 문의 031-668-9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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