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세계유산순례 - 한국의 서원]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서원, 함양 남계서원(藍溪書院)
[세계유산순례 - 한국의 서원]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서원, 함양 남계서원(藍溪書院)
  • 이호신 화백
  • 승인 2021.03.10 14: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계서원 전도' 2020.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 전도' 2020.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의 노을' 2020.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의 노을' 2020. 그림 / 이호신 화백
 

[여행스케치=함양] 함양은 당당한 인물 정공(정여창)의 고을이니  
백세에 전하는 풍모 길이 아름다운 향 사모하네 
서원에서 존숭함이 더럽히지 않음이니 
어찌 문왕에 상응할 호걸이 없겠는가

堂堂天嶺鄭公鄕 (당당천령정공향) 
百世風傳永慕芳 (백세풍전영모방) 
廟院尊崇眞不忝 (묘원존숭진불첨) 
豈無豪傑應文王 (기무호걸응문향)  

길을 떠나며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이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1450~1504)을 칭송한 시를 읇조리는 감회는 특별하다. 11년 전 (2011.3.23.)에 함양(咸陽)의 남계서원(灆溪書院)을 찾아 화첩을 펼친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니.

'남계서원과 정여창의 두류시'(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과 정여창의 두류시'(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 2011.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 2011.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2011(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2011(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서원 건축 양식의 효시, 남계서원
남계서원은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의 건립에 뒤이어, 1552년(명종7) 함양 출신의 일두 정여창을 제향(祭享)하기 위하여 건립된 초창기 서원이다.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의 전칭)이 건립되고 9년 뒤에 함양 유림인 강익(姜翼)이 주도하여 박승임(朴承任), 노관(盧棵), 정복현(鄭復顯), 임희무(林希茂) 등이 서원 건립을 결의 하였다. 공사가 있은 후 1559년(명종 14)에 완성 하고 1566년에 임금이 ‘남계(灆溪)’로 사액(賜額)을 내렸다. 남계는 서원 앞들을 흐르는 시내 이름이다.

그 후 정유재란(1597)으로 소실되어 나촌으로 옮겼다가 1612년(광해군4) 옛터인 현 위치에 다시 지었다. 남계서원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 남계서원의 중요성은 서원배치의 기원에 있다. 즉 모든 ‘서원 건축양식의 효시’라는 점이다.
서원은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이다. 크게는 제향공간(祭享空間)과 강학공간(講學空間)으로 나뉘고 지원공간과 진입공간으로 구별된다. 그런데 함양군에서 별도로 선비문화체험관을 시설하여 전체구간이 넓어졌다.

이러한 오늘의 상황을 이해하고 진입공간인 하마비(下馬碑)와 홍살문(紅箭門)을 거쳐 풍영루(風詠樓)에 이른다. 양쪽 두개의 연못을 지나 강학공간의 중심인 명성당(明誠堂)을 바라본다. 그 좌우로 서재인 보인재(輔仁齋)와 동재인 양정재 (養正齋)가 자리 잡았다. 

'남계서원의 겨울밤'2020.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의 겨울밤'2020.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 이창구 원장'(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남계서원 이창구 원장'(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집의 공간구조가 아름답다. 화첩사생을 통해 살피니 구조와 용도가 특별하다. 맞매 지붕아래 기둥은 2개로 나머지는 언덕 돌담에 의지했다. 한 칸 방에 난간과 툇마루를 내었고 앞쪽은 열린 쪽문을 두었으며 그 아래로 아궁이가 보인다. 이 집을 버텨주는 자연스레 휜 짧은 기둥이 백미로 돋보인다. 마치 장사의 다리근육 같다. 의도적인 재료 선택 듯싶다. 한옥건축 미감의 천연성(天然性)이 발휘된 경우다. 주변 환경을 그대로 이용하고 최소 공간을 용도에 맞게 설계한 안목은 현대에도 응용할 사례이다.

한편 보인재에는 별도로 영매헌(詠梅軒)이란 현판을 달았으니 매화의 노래이고, 양정재의 애련현(愛蓮軒)은 연꽃의 그윽한 향취를 일컫는다고 하겠다. 예전 이곳에 매화가 많았다고 한다. 

'명성당, 보인재, 양정재, 묘정비, 풍영루, 고직사'(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명성당, 보인재, 양정재, 묘정비, 풍영루, 고직사'(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보인재(영매헌)과 양정재(애련현)'(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보인재(영매헌)과 양정재(애련현)'(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사당, 전사청, 내삼문, 장판각'(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사당, 전사청, 내삼문, 장판각'(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사당 지붕너머로 노송이 울창
이제 주변의 묘정비(廟庭碑)와 경판각(經板閣)을 사생하고 제향공간으로 향한다. 언덕이 가파른 긴 돌계단을 올라 내삼문(內三門)에 이르는데 배롱나무들이 즐비하다. 잠시 한 여름의 경관을 상상하게 한다. 문턱을 넘자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이 우측에 마련되고 전면에 사당(祠堂)이 엄정한 분위기로 자리 잡았다. 마당에는 제사 후 소지(燒紙)를 태우는 망료위(望燎位)와 참배에 앞서 손을 씻는 관세위(盥洗位)가 양쪽에 놓였다. 

'정여창을 기린 이황의 시'(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정여창을 기린 이황의 시'(화첩). 
'일두-정여창 고택'. 그림 / 이호신 화백
'일두-정여창 고택'. 그림 / 이호신 화백

사당을 향해 경배하고 고개를 들자 지붕너머로 노송(老松)이 울창하다. 이곳에 신위(神位)를 모신 일두 정여창 선생과 제자 강익(姜翼,1523~1567), 정온(鄭蘊,1569~1641)의 영혼인양 기상이 높고 푸르다. 그중 주벽(主壁)인 ‘일두(一蠹)’는 자신이 천지간의 좀벌레라는 호(號)를 자청한 인물이다. 그의 이 겸양은 남은 편지로도 전해온다.

사방을 바라보니 남계서원의 입지공간과 주변 산세가 드러난다. 서원은 주산(主山)인 동쪽 연화산(蓮花山)줄기 끝자락 구릉지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맞은편인 서쪽의 시내(남계)와 백암산(白巖山)이 안산(案山)이 된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전이다. 그 백암산과 도숭산 아래에 지곡마을이 있고 정여창의 고택이 있다. 2011년 현장을 찾아 <일두 정여창 고택>을 그린 추억이 와락 달려온다.

'풍영루'(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풍영루'(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풍영루에서 본 남계천과 백임산'(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풍영루에서 본 남계천과 백임산'(화첩). 그림 / 이호신 화백

서향으로 앉은 서원은 남쪽 원경의 지리산 자락과 함께 일몰이 장관이다. 이 광경을 서원입구 풍영루에서 노래한 옛사람이 있다. 그 심회가 세월을 넘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다락에 오르면 넓어지는 마음과 편안한 정신이 자연 속에 자맥질하여 유연(攸然)히 스스로 얻은 뜻이 있다. 두류산(頭流山,지리산) 만첩 봉우리와 화림천(花林川,남계의 상류) 아홉 굽이 흐름에서 거의 정여창 선생의 풍표(風標)를 본다. 또한 선생의 기상을 우러러 볼 수 있으니 흡사 선생을 모신 자리에서 증점(曾點)이 쟁그랑하고 비파를 밀쳐놓던 뜻이 있는 듯해서 풍영루라고 이름 하였다.
-‘풍영루기 (風詠樓記,1841,정환필)’중에서

'선비문화 체험관'. 그림 / 이호신 화백
'선비문화 체험관'. 그림 / 이호신 화백

길손도 노을을 바라보며 화첩을 열고 세월의 회포와 풍류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고직사와 선비문화체험관을 끝으로 화첩을 닫는다. 살펴본바 남계서원은 가파른 언덕을 자연스레 타고 오르는 경관이다. 그리고 노송이 우거진 남쪽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멋스럽다. 한 겨울 눈 내린 달빛 속의 정경으로 담아내고 싶다. 아쉬운 것은 진입로 마당의 오랜 은행나무가 자취 없고, 매화와 우람한 노송들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남계서원을 통해 이심전심(以心傳心), 나눔과 보람이 함께하는 마음. 진정한 선비 정신을 기리고 새날에 실천하는 일이다. 

세계유산순례. 그림 / 이호신 화백
세계유산순례. 그림 / 이호신 화백

 

세계유산순례를 연재하며...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찬란한 인류의 유산입니다. 10년 전부터 서원을 순례하며 그림을 그려왔지만, 인문적 요소를 담을 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에 용기를 내어 붓을 들었습니다. ‘세계 유산 순례 ; 한국의 서원’을 통해 서원의 개요, 자연환경과 한옥의 아름다움을 시각적인 방법으로 소개하려 합니다. 세계문화유산인 ‘한국의 서원’의 총체적인 면모를 인문정신(人文精神)과 회화(繪畵)로 드러내어 세계유산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펼쳐가겠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