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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토박이가 소개하는 내 고향] 매화 사랑꾼 박정열과 함께 하는 매화 여행, 운룡매를 아시나요? 진주 매화 숲, 진주  
[토박이가 소개하는 내 고향] 매화 사랑꾼 박정열과 함께 하는 매화 여행, 운룡매를 아시나요? 진주 매화 숲, 진주  
  • 이동미 여행작가 / 사진 윤규식, 이동미 여행작가
  • 승인 2021.03.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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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가 가득한 진주 매화 숲의 박정열 배덕임 부부.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매화나무가 가득한 진주 매화 숲의 박정열 배덕임 부부.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진주] 봄이 되면 코끝이 간질간질해진다. 어디선가 바람결에 살랑살랑 봄 내음이 날아오는가 보다. 그 바람을 따라가다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매화향과 매화 꽃잎이 난분분(亂紛紛)한 곳, 그곳은 진주였다. 

조선 선비들이 사랑한 것이 네 가지 있었으니 매(梅)난(蘭)국(菊)죽(竹)의 사군자(四君子)다. 조선의 선비는 아니지만, 남쪽에서 매화꽃이 핀다는 소식이 들리니 가슴이 콩닥거린다. 오늘은 활짝 핀 매화를 마중하러 진주로 달려간다. 

홍매가 활짝 핀 진주 매화 숲의 길섶.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홍매가 활짝 핀 진주 매화 숲의 길섶.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가슴이 콩닥거리게 만드는 매화꽃.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가슴이 콩닥거리게 만드는 매화꽃.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온갖 매화를 만날 수 있는 진주 매화 숲
진주에는 ‘진주 매화 숲’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굴곡이 있는 능선과 고불고불 길섶을 살리며 자연스레 매화나무가 자란다. 잘 익은 와인처럼 붉은빛의 홍매(紅梅), 청초한 백매(白梅), 꽃받침이 푸른 청매(靑梅), 어사화처럼 가지가 늘어진 수양매(垂楊梅), 한 나무에 다섯 색깔 꽃이 피는 오색매(五色梅)…. 매화와 사랑에 빠진 매화 사랑꾼 일목(一木) 박정열(朴正烈) 어르신이 가꾼 1만 5천여 평의 매화 숲이다. 천천히 걸으며 구경만 해도 족히 두 시간은 걸리는 매화 숲은 박정열 어르신과 배덕임 사모님이 땅을 일구고 나무를 돌보며 살뜰히 살핀 곳, 두 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봄소식을 담뿍 담은 홍매가 만개했다.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봄소식을 담뿍 담은 홍매가 만개했다.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두 손을 꼭 잡고 매화농장을 거니는 정겨운 모습.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두 손을 꼭 잡고 매화농장을 거니는 정겨운 모습.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매화는 흰 거와 뿕은 거, 두 가지가 있다 아입니까?” 

농장을 거닐며 사분사분 어르신의 매화 이야기를 들어본다. 꽃잎이 흰 백매는 꽃받침이 자주색으로 은은한 멋이 있고, 꽃받침이 푸른 청매는 상서로운 기운이 있으며, 홍매는 그저 붉은 매화가 아니라 미색에서 미홍색, 검붉은 흑매(黑梅)까지 색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꽃잎은 다섯 장으로 가장자리가 매끈한 것이 일반적이지만 레이스 끝자락처럼 우아하게 주름 잡힌 것도 있다. 

또 꽃잎이 두 겹인 겹 매화 뿐 아니라 꽃잎이 세 겹, 다섯 겹이기도 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꽃송이 하나에 꽃잎이 25장이나 된다는 말이다. (이렇듯 꽃잎이 겹을 이룬 꽃을 만첩(萬疊)이라 한다) 동지 전에 피는 조매(早梅), 눈이 내릴 때 피는 설중매(雪中梅) 등 색과 모양뿐 아니라 꽃피는 시기에 따라서도 구분하니 매화를 부르는 이름은 헤아릴 수 없고, 진주 매화 숲에서는 이러한 꽃을 다른 곳보다 일찍, 그리고 늦게까지 즐길 수 있다. 

낙지(落枝)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진주 매화 숲의 일목매(一木梅).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낙지(落枝)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진주 매화 숲의 일목매(一木梅).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운룡매를 어루만지는 박정열 어르신.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운룡매를 어루만지는 박정열 어르신.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구불구불 하늘로 승천하는 용, 운룡매
문헌상 매화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24년(41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라는 문구이니 매화의 역사는 2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는 지리산 자락 단속사의 정당매(政堂梅)로 강희안의 조부인 강회백이 심은 것인데 600년의 세월을 전하며 아직도 새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오랜 역사와 긴 생명력만큼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 매화다.

“이거는 운룡매(雲龍梅, 학명 : Prunus mume 'Tortuous Dragon')입니다.” 

곧게 뻗어 올라가는 일반적인 매화나무와 달리 구름 속을 비상하는 용의 형상처럼 구불구불 자라기에 ‘운룡매’라는 이름의 매화 품종이 있다. 진주에는 ‘매화나무에 오르는 용’ 전설이 있는데 운룡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진주시에서 1983년에 발행한 『내 고장의 전설』에 수록된 이충걸(李忠傑)이란 사람의 이야기다. 

이충걸은 재능이 뛰어나 어려서부터 한번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고 읽은 책은 줄줄 외웠지만, 신분이 미천해 출세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주 방백(方伯)이 잠깐 잠이 들었는데 용 한 마리가 촉석문(矗石門, 진주성의 동쪽 관문) 밖 매화나무에 기어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이 하도 기이해 달려가 보니 이충걸이 매화나무에 몸을 기대 쉬고 있었다. 말을 시켜보니 예사롭지 않아 신분을 양민으로 고쳐주고, 학문에 힘쓰도록 하였더니 급제하여 대사헌, 병조판서가 되었다고 한다. 

매화에 오르는 용 전설이 서린 진주성의 촉석문. 사진/이동미 여행작가
매화에 오르는 용 전설이 서린 진주성의 촉석문.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의암에서 바라본 진주성과 촉석루. 사진/이동미 여행작가
의암에서 바라본 진주성과 촉석루.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한 떨기 매화꽃 같은 진주성
촉석문을 지나 진주성에 들어가면 남강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촉석루(矗石樓)’가 있다. 촉석루는 진주교방(晉州敎坊)을 중심으로 진주검무(晋州劍舞,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를 비롯해 고전 시조, 가야금, 서화 등 조선 제일의 교방문화(敎坊文化)와 풍류가 펼쳐지던 곳이다. 진주교방에서 연주된 『교방가요』(敎坊歌謠 1872) 중에 매화타령이 있다. 이 때문에 촉석루에 앉아 남강을 바라보면 “좋구나! 매화로구나…. (중략)…. 사랑도 매화로다.”라는 매화타령이 귓가에 맴돈다. 

또 다른 소리도 들린다. 1919년 3월 18일에는 진주 권번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남강 변을 돌아 촉석루로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었다. 진주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다. 찬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맨 먼저 꽃을 피워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꽃처럼 진주 권번 처자들의 결기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촉석루 옆으로는 의기사(義妓祠)가 있고 남강 강가로 내려가면 의암(義岩)이 있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끌어안고 한 떨기 꽃처럼 남강으로 떨어진 논개의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다. 

촉석루에서 바라보이는 의기사 입구. 사진/이동미 여행작가
촉석루에서 바라보이는 의기사 입구.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촉석루에서 남강을 감상 중인 방문객. 사진/이동미 여행작가
촉석루에서 남강을 감상 중인 방문객.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꽃보다 향기로운 칠보화반, 진주비빔밥
진주성(晉州城, 사적 제118호)은 전라도 지방을 지키는 길목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싸움이 매우 치열했던 곳이다.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수적 열세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성안의 관ㆍ군ㆍ민은 똘똘 뭉쳐 장렬하게 싸웠으나, 아쉽게도 성을 지킬 수 없었다. 진주성이 함락되기 하루 전, 진주성에 남아있던 백성과 군인들은 성에 남아있던 소를 잡았다. 남겨놓아봤자 적군의 식량으로 쓰일 터, 눈물을 머금고 가족 같은 소를 잡은 것이다. 성민 들은 모두 모여 모자라는 그릇을 모아 밥과 나물을 한데 넣고 소를 잡아 만든 육회를 얹어 비벼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소뼈로는 국을 끓여 먹었으니 최후의 만찬이자 진주비빔밥의 유래다. 진주비빔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놋그릇에 담고 다섯 가지 나물을 담은 후 고추장을 얹고 육회를 한 줌 덧얹어 마무리한다. 그 색과 모양이 아름다워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 불리는 진주비빔밥에는 요즘도 소고깃국이 함께 나온다. 흑매 한 송이를 올려놓은 듯 아름다운 비빔밥 한 그릇이지만 그 유래를 들여다보면 이만큼 비장하고 결기 가득한 음식이 있을까 싶다.

진주성 옛 사진전에 전시된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1972년 촉석루 모습. 사진/이동미 여행작가
진주성 옛 사진전에 전시된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1927년 촉석루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봄기운이 완연한 진주성을 남강 건너에서 본 모습. 사진/이동미 여행작가
봄기운이 완연한 진주성을 남강 건너에서 본 모습. 사진 / 이동미 여행작가

진주는 매화향 가득한 절개의 도시
진주 매화 숲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나니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양화(養花) 편〉의 '매화도'가 생각난다. "매화 향기가 사람을 감싸고는 뼛속까지 스며든다"라는 글귀다. 그래서일까? 진주 여행 내내 모든 것에서 매화향이 느껴지고, 모든 것이 매화로 보인다. ‘진주성은 물 위에 뜬 수성(水城)’이라는 진주성 해설사의 설명에도 찻잔 속에 떠 있는 매화꽃 잎이 그려진다. 

진주에 가거들랑 진주 매화 숲을 둘러보고, 진주성 역사 속 매화 이야기를 음미해보자. 매화 숲에서 뼛속까지 매화향(梅香)이 스며서인지 진주를 떠나도 온몸에서 매화향이 풍겨 나온다. 봄날, 매화는 어디서든 피련만, 매화는 진주고, 진주는 매화다.

진주 여행! 진주 토박이의 Pick 5. 
1. 진주 매화 숲 자연스러운 미를 간직한 만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 948-3.
2. 아뜰리에 혼 서각, 현판, 생활소품, 차실 가구 등 목공예의 체험과 강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진주시 집현면 지내길101번길 45.
3. 진주성 사적 제118호 진주시 본성동.
4. 수류헌(樹流軒) 100년 된 가옥과 현대미술의 융복합 공간으로 핸드드립 커피가 자랑이다. 진주시 비봉로39번길 16. 070-8199-6011.
5. 유정장어 45년 전통의 진주성 공북문 맛집이다. 진주시 진주성로 2. 055-746-9235.

 

미니 인터뷰. 

일목 박정열은 누구?
박정열 어르신.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일목 박정열 어르신.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매화향이 진동하는 박정열 어르신의 집.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매화향이 진동하는 박정열 어르신의 집.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일목 박정열 어르신은 진주시 만경동 89번지에서 태어난 진주 토박이다. 매화와 수십 년째 열애 중인 매화 사랑꾼으로 원래 직업은 조경가이다. 때문에 어르신의 집과 정원은 그 어디에 눈길을 두어도 ‘눈맛’이 좋은 ‘작품 그 자체’다. 조경을 다루다 보니 분재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매화와 인연을 맺어 이십여 년 전부터 매화 숲을 가꾸고 계신다. 하지만 어르신의 매화농장은 이름이 없다. 상업적인 접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매화가 좋아 10년 후쯤이면 예쁜 매화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매화나무를 심고 잡초를 뽑고 가지를 어루만졌다. 

농장에 없는 매화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달려가 사오고, 때론 얻어오며 매화밭을 가꾸고 있으니 ‘아직 매화를 모아가고 있는 중’이라 표현하신다. 한 번은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과실수로 키우던 매화나무가 폐기처분 될 운명에 놓였기에 이를 옮겼으니, 지금은 굵은 밑동의 우아한 매화나무가 되었다. 이렇듯 지금의 매화 숲을 이룬 건 순전히 ‘매화꽃 사랑’ 때문이다. 꽃이 피니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기 시작했고 농장 이름도 주소도 마땅치 않으니 ‘진주 매화 숲’이란 검색어가 생겼다.

매화꽃이 활짝 핀 나무 대문 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계신 박정열 배덕임 부부.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매화꽃이 활짝 핀 나무 대문 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계신 박정열 배덕임 부부.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진주 매화 숲 박정열 어르신 곁에는 매화꽃보다 우아하고 환한 웃음의 배덕임 사모님이 계신다. 사모님의 매화사랑 역시 더하면 더했지, 박정열 어르신과 다르지 않다. 두 분의 사랑과 세월이 담긴 매화농장을 거닐다 보면 매화나무에 번호표가 보인다. 2년 전 수술로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대신해 시간 날 때마다 번호표를 붙이고 사진을 찍어 정리하는 아들 박민철 씨의 손길이다. 어릴 때부터 매화밭에서 매화와 함께 자란 아들은 건축 공부를 했고 매화밭과 아버님 가까이에서 역시 나무와 관련된 목공예를 하고 있으며 진주 공예 창작지원센터 센터장이기도 하다.

아들 박민철 씨의 손길이 느껴지는 2층 다실에서의 박정열 어르신 내외. 사진/윤규식 여행작가
아들 박민철 씨의 손길이 느껴지는 2층 다실에서의 박정열 어르신 내외. 사진 / 윤규식 여행작가

진주 매화 숲은 사랑을 담뿍 받은 매화나무가 야생성을 보전받으며 자연 교잡과 수정을 통해 자생한다. 또 매실이 떨어져 자연 발아하고 씨앗이 품고 있던 유전 정보를 발현시키며 인공성을 배제한 자연조건에서 번식하는 생태환경의 보고다. 앞으로 십 년, 또 다른 이십 년이 지나며 그 가치는 더해질 터이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진주 매화 숲은 박정열, 배덕임 부부와 아들 박민철 씨의 조건 없는 사랑과 손길이 담긴 공간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많은 가족이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매화 감상을 즐기는 따스한 공간으로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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