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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르포] 힐링? 평창 고원마루목장길... “고통이었다”
[르포] 힐링? 평창 고원마루목장길... “고통이었다”
  • 박정웅 기자
  • 승인 2021.05.31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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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도 훼손만큼 코스 방치, 안전 위해 개선 필요
지역민 “평창군에 대신 민원 넣어달라”
사실상 방치된 길, 담당자는 확인 파악도 안돼
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 입구의 고원마루 목장길 안내도. 관리가 안 된 탓에 코스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채 방치됐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 입구의 고원마루 목장길 안내도. 관리가 안 된 탓에 코스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채 방치됐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여행스케치=평창(강원)] “그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는 말은 사실과 달랐다. 강원 평창이 자랑하는 ‘고원마루 목장길’을 걷는 건 ‘힐링’이 아닌 ‘고통’이었다. 평창군 홈페이지가 자랑하는 것과는 달리 길은 막히거나 끊어졌고 안내도는 심각하게 훼손돼 여행객들의 안전을 위해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 11일 본지는 힐링여행을 취재하고자 평창의 고원마루 목장길을 찾았다. 하지만 힐링이 된다던 고원마루 목장길은 사실상 관리가 안 된 상태로 방치됐다. 길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고 그나마 남은 이정표 몇 개는 풀숲에 반쯤 누워있었다. 고원마루 목장길을 찾는 길, 머릿속에는 시쳇말로 군부대 등 특수한 곳에서 쓰이는 ‘수색’이 맴돌았다.

평창군 홈페이지가 소개한 관광명소 '고원마루 목장길'. 지난 11일 여행객 안전을 위해 '유지 보수 중' 문구를 삽입하는 등의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고 평창군에 물었지만 31일 현재까지 별다른 조치 없이 관광명소로 소개되고 있다. 사진 / 평창군 홈페이지 캡처
평창군 홈페이지가 소개한 관광명소 '고원마루 목장길'. 지난 11일 여행객 안전을 위해 '유지 보수 중' 문구를 삽입하는 등의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고 평창군에 물었지만 31일 현재까지 별다른 조치 없이 관광명소로 소개되고 있다. 사진 / 평창군 홈페이지 캡처

군부대 수색하듯... 막히고 끊긴 고원마루목장길
‘고원마루 목장길은 파란하늘과 맞닿은 푸른 초원과 좌우로 펼쳐진 목장길을 걸으며 한우, 양, 말 등이 뛰노는 목장의 목가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길이다. ... 저 멀리 아름다운 대자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 대관령... 그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평창군이 홈페이지 관광포털(문화관광 ‘관광명소’)에 일반인에게 공개한 고원마루 목장길 소개 글이다. 

이 페이지가 소개한 코스는 ‘횡계시외버스터미널-눈꽃마을 산촌생태체험장’(총거리 약 10km, 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 난이도 보통)이다. 세부코스는 횡계시외버스터미널-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숲길-대관령켄터키목장·펜션단지-목장길-목장 전망대-사파리목장-성황당 삼거리-눈꽃마을 산촌생태체험장이다. 그 길이(12km)만 다를 뿐, 한국관광공사 걷기여행포털 ‘두루누비’에도 같은 코스가 소개돼 있다.  

그나마 발견한 이정표도 훼손이 심각하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그나마 발견한 이정표도 훼손이 심각하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고원마루 목장길 코스. 붉은 색 원 사이를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펜션단지) 약 4km 구간의 개선이 필요하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고원마루 목장길 코스(분홍 실선). 붉은 색 원 사이를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펜션단지) 약 4km 구간의 개선이 필요하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그러나 이 같은 정보를 믿고 고원마루 목장길을 찾았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전체 코스 중 의야지바람마을 농촌관광체험장-펜션단지 약 4km 구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다. 고원마루 목장길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지도보기에 익숙하지 않다면 자칫 들과 산에 갇힐 위험이 있다.

문제는 이 구간만이 아니었다. 코스의 출발지인 횡계시외버스터미널부터 의야지바람마을 농촌관광체험장까지 지방도(눈마을길·꽃밭양지길) 갓길을 이용했다. 터미널서부터 횡계교 이전까지 이렇다 할 이정표를 만나지 못해 지도앱을 참고했다.  

좌충우돌 길을 경험한 마당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원마루 목장길에 가기 위해선 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까지 가야 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터미널에서 내려 횡계로터리에서 좌회전해 횡계교 직전에서 왼쪽으로 꺾은 뒤 오른쪽에 송천을 끼고 직진하면 된다. 비교적 한산한 이면도로라서 차량만 신경 쓰고 걸으면 될 일이다. 다만 엉뚱한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무시해도 좋다.

고생 끝, 행복 시작? 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 뒤편의 양떼목장이 보이면서 마음이 들뜬다. 본격적인 목장길인가 싶어서다. 그러다 체험장 입구의 안내도에 김이 빠진다. 코스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 안내도가 이 모양이니 산속 코스는 어쩌랴.

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 인근의 목장. 코스가 제대로 관리됐다면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고원마루 목장길이 시작됐을 것이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 인근의 목장. 코스가 제대로 관리됐다면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고원마루 목장길이 시작됐을 것이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이정표 등의 코스가 사라진 상황에서 맵에서 확인했지만 경로 이탈이 잦았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이정표 등의 코스가 사라진 상황에서 맵에서 확인했지만 경로 이탈이 잦았다. 사진 / 박정웅 기자

훼손된 안내도… 방향만 잡아 가는 길, 어디서 찾나
안내도 앞에서 만난 한 지역민은 “(고원마루) 목장길을 묻는 외지인이 꽤 있다. 평창군에 문제점을 알렸지만 바뀐 것은 없다”면서 평창군에 보다 적극적인 민원을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길의 초반부터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하지만 완보할 심산으로 맵의 안내에 따라 양떼들이 보이는 목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장에서 야산으로 이어지는 구간부터 경로 이탈이 잇따랐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코스와 지도상의 경로가 따로 놀기 시작했고 수색전(?)이 펼쳐졌다. 

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 인근의 목장에서 야산 방향으로 길이 끊긴다. 사유지인 듯 경계는 울타리로 가로막혔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의야지바람마을 체험장 인근의 목장에서 야산 방향으로 길이 끊긴다. 사유지인 듯 경계는 울타리로 가로막혔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코스로 다시 돌아온 듯 싶었지만 또다른 울타리가 길을 가로막았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코스로 다시 돌아온 듯 싶었지만 또다른 울타리가 길을 가로막았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울타리와 숲의 낭떠리지를 지나 맵이 안내한 대로 따라가면 이같은 경사진 들판을 만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울타리와 숲의 낭떠리지를 지나 맵이 안내한 대로 따라가면 이같은 경사진 들판을 만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코스가 있던 곳, 목장이나 밭 등 사유지 경계에는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목장, 들판, 숲을 가로질렀다. 중간 목적지로 정한 차항리 펜션단지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경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올라선 트랙에는 울타리나 낭떠리지 등의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다. 

그렇다고 출구가 없는 곳에서 포기할 수 없는 노릇. 어쨌든 중간 목적지인 펜션단지까지는 가야 했다. 드넓은 들판에서 멀찍이 기울어진 이정표를 발견한 기쁨도 잠시였다. 길은 금방 자취를 감췄다. 방향만을 잡고 펜션단지로 향하는 길, 멧돼지 발자국이 많았고 온몸은 거미줄 범벅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펜션단지. 멀리 황병산이 보인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차항리 펜션단지. 멀리 황병산이 보인다. 사진 / 박정웅 기자
펜션단지부터는 고원마루 목장길 본연의 길이 이어진다. 사진 / 박정웅 기자
펜션단지부터는 고원마루 목장길 본연의 길이 이어진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우여곡절 끝에 차항리 펜션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앞길을 가늠해봤지만 몇 번의 걸음에 접었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멀리 보이는, 펜션단지로 향하는 차로로 산을 내려와 길을 우회했다. 

펜션단지부터 코스의 종점인 눈꽃마을 체험장까지는 길이 이어져 있었다. 특히 펜션단지부터 목장전망대 구간의 풍광은 빼어났다. 이곳이 왜 고원마루 목장길인지 실감케 했다.

평창군은 고원마루 목장길이 방치된 사실조차 몰랐다. 이날 전화로 연결된 평창군 담당자는 “(목장길이 있는) 대관령면과 논의하고 지방의회와 협의해 길을 개선하겠다”고 사과했다. 

또 길을 개선하는 사이에 코스만을 보고 찾아오는 이가 없도록 홈페이지에 관련 조치를 사전에 취할 수 없냐는 질문에는 “내부적으로 논의한 뒤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주가 지난 현재, 고원마루 목장길은 별다른 조치 없이 여전히 평창의 관광명소로 소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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