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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休 여행] 태화강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는 울산여행
[休 여행] 태화강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는 울산여행
  • 유은비 기자
  • 승인 2016.08.30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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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사색여행
잔잔한 태화강의 모습. 태화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여행을 떠나보자. 사진 / 유은비 기자

[여행스케치=경남] 여행길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은 사진만이 아니다. 가을 길에서 떠올렸던 사소한 것 하나까지 우리의 뇌는 전부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풍이 붉게 물들기 전에 태화강을 이정표 삼아 사색의 물결이 일렁이는 동해까지 가보자.

자연 안에 폭 안겨있는 오영수문학과 전경. 사진 / 유은비 기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서린 오영수문학관

언양에 닿은 태화강의 물줄기는 난계 오영수 소설가를 길러냈다. 동해가 놀이터가 되었을 그의 유년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의 작품 <갯마을>에 등장하는 해순의 모습도 겹친다.

갯마을에서 살아가던 해순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다. 상수라는 인물에게 겁탈을 당하고 쫓겨나다시피 마을을 떠난 해순은 산골 마을에서 상수와 살지만, 곧 바다의 품이 그리워 갯마을로 돌아온다. 동해를 잊지 못하는 해순의 마음은 작가 자신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오영수 작가의 작품과 유품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 내부. 사진 / 유은비 기자

오영수문학관은 난계 오영수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그의 유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2014년 1월 21일에 개관했다. 문학관 1층에는 오영수 작가의 흉상과 창작실을 재현해 놓은 모형과 작가의 단편집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영수 작가의 아들이자 조각가인 오윤 씨가 직접 만든 오영수 작가의 데스마스크도 볼 수 있다. 사진 / 유은비 기자

2층의 난계홀에서는 오영수 작가에 대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문학관에서 나오면 벤치 한쪽 끝에 팔걸이를 하고 앉아 있는 오영수 작가 동상을 볼 수 있다. 마치 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는 듯하다.

의자에 앉은 채로 사람들을 기다리는 듯한 오영수 작가의 동상. 사진 / 유은비 기자

함께 여행길에 오른 백승훈 시인은 “오영수 작가는 따뜻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며 오영수 작가와 천상병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영수 작가가 어찌나 천상병 시인을 아꼈는지 자신의 집에서 기식하도록 해주고 매일 아침 술값과 차비를 챙겨줬다고 한다.

하루는 오영수 작가가 용돈을 안주자 천상병 시인이 작가가 감춰둔 만년필을 숨겨서 애를 먹였다고. 그만큼 서로를 의지하고 보듬으며 문학의 길로 나아갔던 문인들을 떠올리며 오영수 작가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해순이와 작가가 사랑했던 울산의 풍경을 담으러 발걸음을 옮겨보자.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가는 길. 태화강의 물줄기인 대곡천이 흐른다. 사진 / 유은비 기자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찾아서, 울산반구대암각화

북쪽에서부터 흘러 내려와 사연호를 거쳐 태화강으로 합류하는 대곡천에는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그것. 실제 암각화의 모습을 보려면 물길을 따라 산속 깊이 들어가야 한다.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 멀리서 그림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사진 / 유은비

유유히 걷다 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 아래쪽에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를 발견하게 된다. 꽤 거리가 있어 막상 근처에 세워져 있는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보려 해도 그림을 구별해 내기는 쉽지 않다.

돔 형태로 되어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전경. 사진 / 유은비 기자
울산반구대암각화 박물관 내부 모습. 사진 / 유은비 기자

그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싶다면 울산암각화박물관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반구대 암각화와 선사시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에 새겨진 바위 그림인 천전리각석 모형을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다.

새끼를 밴 고래부터 거북이, 물개, 상어, 호랑이, 표범 등 매우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과 선사인들의 생활 모습, 사냥 모습 등 200여 개가 넘는 숨은그림찾기를 해보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바위에 그림을 그렸던 시절 이곳에는 강물이 흐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사람과 동물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계속해서 흙이 파이고 그 사이로 물이 비집고 들어왔을지도. 이런 상상을 해 보며 다시 태화강 물줄기로 합류한다.

울창한 대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십리대숲. 사진 / 유은비 기자

대숲에 불어오는 바람, 십리대숲

태화강변의 십리대밭은 강을 따라 약 10리에 걸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대나무밭이다. 공업 도시에서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자리 잡기까지 울산 시민들의 노력이 컸다고 하니 십리대숲은 울산 시민의 자랑이자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이런 대숲에 들어서면 대나무 잎이 부대끼는 소리가 파도처럼 시원하게 들려온다. 울창한 숲이 만들어 놓은 자연 터널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까지 단박에 식혀준다.

만회정에 오르면 태화강이 바라다 보인다. 사진 / 유은비 기자

대숲을 지나면 눈앞에 태화강변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금만 걸으면 태화강이 구불거리며 흐르는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만회정이 나온다. 만회정은 널찍한 마루 형태로 되어 있는데 잠시 앉아 숨을 고르며 쉬었다 가기 좋다. 뒤로는 대숲을 끼고 앞으로는 시원한 강줄기를 바라보며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자.

대왕암 공원 입구에 있는 용 모양의 미끄럼틀. 사진 / 유은비 기자

태화강의 마지막 종착지, 대왕암공원

울기등대의 모습. 사진 / 유은비 기자

대왕암공원에 들어서면 짭조름한 바닷물 냄새와 함께 강력한 해풍이 사람들을 반긴다. 조금만 더 가면 동해가 펼쳐진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대왕암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대왕암 전설에 나올법한 용이 거대한 미끄럼틀이 되어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있다.

경주 앞바다에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있다면 울산 앞바다에는 문무대왕비의 수중릉이 있다. 문무대왕비 또한 죽어서 호국용이 되겠다 하여 바다에 묻혔다. 왜적으로부터 동해를 지키고 나아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신라왕과 왕비는 모두 바다에 남은 것이다.

대왕암공원 안쪽 깊이 들어가면 두 개의 등대를 볼 수 있는데 앞쪽의 키가 작고 통통한 등대가 울산 최초의 등대로 알려진 울기등대이고 뒤쪽에 있는 늘씬하고 기다란 등대가 1987년에 새워진 새 등대이다.

울기등대는 1910년 일본이 군사목적으로 세운 등대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문무대왕비의 혼이 서려있는 대왕암 공원에 일제의 군사용 등대가 있다는 점이다. 동해의 한없이 짙푸른 물을 보니 문무대왕비의 애석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새로 지어진 등대. 사진 / 유은비 기자
시원하게 쏟아지는 수도꼭지 분수. 사진 / 유은비 기자

 

문무대왕비의 무덤인 대왕암으로 향하자. 대왕암까지 연결되어 있는 대왕교의 모습이 예전의 것과 사뭇 다르다. 대왕교는 지난 3월, 20년 만에 새 단장을 마쳤다. 다리에 조명이 설치되어 저녁에 대왕암을 방문하면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완공된 대왕교의 야경. 사진 제공 / 울산 동구청 공원녹지과

동해에 닿으면 태화강의 임무도 끝이 난다. 울산만을 빠져나와 새파란 동해로 물이 섞이면 한순간에 강은 바다가 된다. 흩트려 놓았던 강줄기가 바다로 모여 망망대해를 이루듯이 여름을 거쳐 가을이 되기까지 수많은 생각들로 뒤덮였던 우리의 머릿속도 물고가 트이고 사유의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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