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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그섬엔 커피 내리는 할매들이 산다
그섬엔 커피 내리는 할매들이 산다
  • 박정웅 기자
  • 승인 2021.06.15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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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통영 욕지도 섬여행
정겨운 할매바리스타와 고구마라떼 한잔
빛바랜 일제의 잔재, 좌부랑개 골목투어
욕지바다를 바라보는 천재화가 이중섭
경남 통영시 욕지면 욕지도 좌부랑개 마을 전경. 사진 / 박정웅 기자
경남 통영시 욕지면 욕지도 좌부랑개 마을 전경. 사진 / 박정웅 기자

[여행스케치=통영(경남)] 바싹하게 잘 구워낸 누룽지처럼 고소하다. 빛깔 고운 게 맛도 끝내 준다. 할매(할머니)가 내어줬으니 정이 듬뿍 담겼다. 그래서 고소하다는 표현보다는 구수하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뱃길로 한 시간, 경남 통영 욕지도 할매바리스타의 자색고구마라떼 얘기다.

8월 8일 ‘섬의 날’ 취재 차 지난 8~9일 욕지도를 찾았다. 제법 큰 섬인 욕지도는 일주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자전거 타기에 좋다. 약 25km 코스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졌다. 땡볕에 땀깨나 쏟았다. 할매바리스타를 찾은 이유이다. 

할매바리스타의 공식 명칭은 욕지도 할매바리스타 생활협동조합이다. 욕지항에서 가까운 좌부랑개(자부마을)에 있다. 배에서 내려 반시계 방향으로 일주도로를 조금만 가면 만난다. 일주도로는 말 그대로 원점회귀 코스다. 때문에 욕지도 여행의 시작과 끝은 할매바리스타에서 하면 된다. 

이정순 할매바리스타 이사장(왼쪽)과 김삼임 할머니. 현관 왼쪽 벽면의 벽화는 이 이사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을 고려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운 좋게 할매바리스타 얼굴 격인 이정순 이사장(72)을 만났다. 전체 일곱 분의 할머니가 계신데 수상한 세월이라 두 분씩 교대로 나오신단다. 이날 이 이사장은 김삼임 할머니(86)와 짝이었다. 

“바리스타요? 믹스커피 마시는 시골 할머니들이 아메리카노 맛이나 알았겠어요?”

할매바리스타를 여쭸더니 이 이사장이 웃으며 반문했다. 할매바리스타가 마을기업으로서 커피를 처음 내린 건 2014년이다. 앞서 할머니들은 통영 시내에 있는 한 대학의 바리스타 과정을 수료했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좌부랑개에는 욕지도의 다른 마을에 비해 홀로 계신 할머니들이 많다. 소일거리 겸 찾은 게 바리스타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수업을 위해 뱃길로 통영을 오갔다. 배 시간을 따라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할머니들이 통영을 오고가고 또 바리스타 선생님이 픽업을 하는 게 만만치 않아서였다. 이때 할머니들의 기지가 발휘됐다. 

이 이사장은 “(바리스타) 선생님 한분만 욕지도로 오시면 서로 편하지 않겠냐는 할머니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마을회관에서 수업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할매바리스타 내부. 코로나19 여파에 테이크 아웃 판매만 하고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할매바리스타 내부. 코로나19 여파에 테이크 아웃 판매만 하고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고생 끝이었을까. 학교에는 커피머신 등 기기가 있었는데 마을회관에 그런 시설이 있을 리가…. 그는 “집에서 휴대용 버너와 프라이팬을 갖고 와서 콩을 볶았다. 태워먹기 일쑤였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할머니들은 좌충우돌 끝에 바리스타 과정을 마쳤다. 때마침 마을기업의 기회가 찾아왔다. 12명의 할머니가 의기투합했다. 30만원씩 출자금을 내놓으면서 생활협동조합의 모습을 갖춘 것. 욕지도 할매바리스타 생활협동조합의 탄생 비화다. 

할매바리스타는 다양한 매체가 조명했다. 보통 섬에는 커피전문점이 드문 데다 더구나 지역 할머니들이 커피를 내린다는 점에서다. 덕분에 할매바리스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탔다.  

2019년에는 큰 상을 받았다. 지역자원을 활용해 일자리 창출 및 소득 증대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9년 7월 행정안전부 우수마을기업이 됐다. 앞서 이 이사장은 2017년 11월 아시아태평양도시관광진흥기구(TPO)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이 이사장에겐 숙제와 꿈이 있다. 마을기업 지원은 통상 10년간인데 앞으로 남은 기간 자립 기반을 단단히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서 할매바리스타와 함께하기를 빈다”고 덧붙였다. 

자전거여행 전후 커피 한잔은 여행의 피로를 덜게 한다. 할매바리스타에서는 욕지도의 특산품인 고구마 메뉴를 추천한다. 욕지도에는 고구마가 많다. 논 대신 비탈진 밭이 많은 지형 탓이다. 예로부터 빈속을 채우는 데는 고구마만한 것이 없다. 그런 고구마를 할매바리스타에서 보다 값지게 맛보자. 고구마라떼나 빼데기(고구마 말랭이)죽이 바로 그것이다.

가령 여행 전 빼떼기죽으로 속을 가볍게 챙기는 건 어떨까. 여행 후에는 시원한 고구마라떼로 갈증과 허기를 잡는 식이다. 이왕이면 눈도 호강할 겸 조금 더 비싼 ‘자색’ 고구마라떼로 말이다. 

할매바리스타 맞은 편은 선창이다. 선창 앞에는 할매바리스타의 쉼터가 마련돼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할매바리스타 맞은 편은 선창이다. 선창 앞에는 할매바리스타의 쉼터가 마련돼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할매바리스타 맞은 편 선창에는 그늘막을 드리운 쉼터가 여럿이다. 욕지바다와 모밀잣밤나무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하다. 양쪽으론 욕지도 명물인 고등어회 등을 내놓는 포차가 즐비하다. 오른쪽 모밀잣밤나무숲 언덕에는 ‘욕지도풍경’을 그린 천재화가 이중섭이 앉아 있다. 붓과 팔레트를 든 채 욕지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좌부랑개마을 모밀잣밤나무숲 언덕의 이중섭 전망대. 이곳에서 '욕지도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이중섭 전망대의 이중섭 동상. 사진 / 박정웅 기자
이중섭 전망대의 이중섭 동상. 사진 / 박정웅 기자
이중섭 전망대 알림판의 '욕지도풍경'. 사진 / 박정웅 기자
이중섭 전망대 알림판의 '욕지도풍경'. 사진 / 박정웅 기자

할매바리스타 뒤쪽에는 일제강점기 잔재가 많다. 일제는 1910년대부터 욕지도를 수탈했다. 고등어 등 수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좌부랑개는 천혜의 포구를 자랑했다. 때문에 이 같은 그림자는 ‘근대어촌발상지 좌부랑개(자부마을) 거리’로 남아 있다. 자부마을 지명 또한 일제의 잔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할매바리스타 뒤편의 좌부랑개 거리. 일제 잔재가 많은 근대문화유산거리쯤 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할매바리스타 인근의 좌부랑개 거리. 일제 잔재가 많은 근대문화유산거리쯤 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일제강점기 당시 안방술집을 묘사한 좌부랑개 거리 벽화. 사진 / 박정웅 기자
고등어 염장을 하는 여인들을 그린 벽화. 사진 / 박정웅 기자
고등어 염장을 하는 욕지도 여인들을 그린 벽화. 사진 / 박정웅 기자
당구장(왼쪽)과 간독. 간독에는 염장을 하는 조형물을 배치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당구장(왼쪽)과 간독. 간독에는 염장을 하는 조형물을 배치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간독 내부 조형물. 사진 / 박정웅 기자
간독 내부 조형물. 사진 / 박정웅 기자
일제강점기 당시 욕지주재소 쓰인 건물. 사진 / 박정웅 기자

어부나 상인 등 욕지도에 머문 일본인 수는 2000명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좌부랑개 골목이 밤낮으로 들썩였을 법하다. 여자를 둔 술집이 40여곳이 성행했는데 일본 게이샤를 둔 곳도 있었다. 안방술집거리엔 명월관을 비롯해 여관, 이발소, 당구장, 간독(고등어 염장하는 곳) 등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위쪽 골목에는 주재소(파출소), 우편국, 욕지고등심상소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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