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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섬, 노도를 보며 걷다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섬, 노도를 보며 걷다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1.07.1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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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걷기여행 ⑧] 제9코스 구운몽길
노도를 마주한 대량마을의 논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노도를 마주한 대량마을의 논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조선후기 문신 서포 김만중(1637~1692)은 예조참의, 공조판서, 대사헌, 홍문관대제학 등을 지내다가 1687년(숙종 13) 평안도 선천에 유배되었고, 2년 뒤엔 경남 남해 노도로 유배와 결국 그 섬에서 삶을 마감했다. 이 구간의 이름이 ‘구운몽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이번 구간은 천하마을~상주해수욕장(은모래비치)~대량~두모~벽련~원천~바래길탐방안내센터까지 이어진 17.6km의 길로 휴식 포함 6시간쯤 걸린다. 원래는 원천항까지였지만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10코스(앵강다숲길) 초반부에 있던 안내센터까지로 구간을 변경했다. 따라서 9코스는 원래보다 2.1km가 늘었고, 10코스는 이번 구간이 길어진 만큼 짧아졌다. 구운몽길은 남파랑길 제41코스이기도 하다.

천하마을과 바다 사이의 옹벽엔 예쁜 그림과 좋은 글귀들이 적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천하마을과 바다 사이의 옹벽엔 예쁜 그림과 좋은 글귀들이 적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암벽 위에 자란 샛노란 원추리들은 모두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암벽 위에 자란 샛노란 원추리들은 모두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를 향해 얼굴을 돌린 샛노란 원추리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를 향해 얼굴을 돌린 샛노란 원추리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천하와 금포마을을 지나
석 달 연속 찾은 마을이지만 이번에 만난 천하마을은 그전에 만났던 느낌과는 확실히 달랐다. 7코스(화전별곡길)와 8코스(섬노래길)는 마을 앞 2차선 아스팔트 도로에서 끝나거나 시작했지만 이번 코스는 도로에서 곧장 마을 안길로 들어가 바다와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안내판 사진을 찍고 막 출발하려는데 마침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두 사람이 내린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양산에서 온 노부부로 제주올레길, 지리산둘레길, 태안해변길, 양평물소리길 등 전국의 둘레길과 산길을 분주히 다닌 분들이다. 남해에서만도 벌써 여드레. 조창석 씨 내외는 일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활력에 넘쳤다.

치자나무 꽃길을 지나면 곧 상주해수욕장에 닿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치자나무 꽃길을 지나면 곧 상주해수욕장에 닿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코스 종점을 바래길탐방안내센터로 변경하면서 거리도 17.6km로 늘었다. 이정표는 늘기 전에 설치한 것.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코스 종점을 바래길탐방안내센터로 변경하면서 거리도 17.6km로 늘었다. 이정표는 늘기 전에 설치한 것.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와 길 사이엔 어깨 높이의 옹벽이 있었다. 바다는 길과 단절됐지만 옹벽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빛깔은 바람에 부딪혀 싱그럽게 빛났다. 옹벽엔 예쁜 그림과 좋은 글귀가 적혔다. 바다를 볼 수 있는 언덕마다 펜션들이 한 줄로 늘어섰다. 하지만 물메기 통발의 원조이자 주산지인 금포는 바로 옆 마을과는 풍경이 달랐다. 겨울이면 집집마다 줄에 꿰어 말려놓은 물메기들이 즐비한 곳…. 길은 금포마을을 뒤로 하고 산으로 이어졌다. 여름이라도 반바지보단 긴바지가 낫다.

숲 너머로 보이던 바다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진한 베이지 색의 암벽이 바다 쪽으로 흘렀고 바래길은 그 암벽과 산 사이로 숨어들었다. 안전을 위해 쳐둔 목책 옆으로 샛노란 원추리가 만개했다. 꽃들은 모두 바다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 앞을 서성이다 숲으로 들어선다. 사격장과 작은 군부대를 지나면 곧 은모래비치로 불리는 상주해수욕장에 닿는다.

천하마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천하마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천하마을
구간 초입인 천하마을은 7코스(화전별곡길)의 종점이자 8코스(섬노래길)와 9코스(구운몽길)의 출발점이다. 세 개 구간이 만나는 곳이므로 출발 시 유의해야 한다. 9코스는 바래길 안내판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소 경남 남해군 미조면 남해대로 400-1

은모래비치로 불리는 상주해수욕장과 구름을 덮어 쓴 금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은모래비치로 불리는 상주해수욕장과 구름을 덮어 쓴 금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대량마을과 그 너머 노도. 삿갓섬으로도 불리는 노도는 서포 김만중이 삶을 마감한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대량마을과 그 너머 노도. 삿갓섬으로도 불리는 노도는 서포 김만중이 삶을 마감한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마을과 마을 사이, 낮은 산을 넘어
상주 해변은 이제껏 보아왔던 바다와 달랐다. 모래 위에 발자국을 찍어본다. 등산화의 딱딱한 바닥창을 뚫고 보드란 촉감이 머리끝까지 찌릿하게 올라왔다. 그냥 가기 아쉬워 한참을 걷다 바래길로 돌아온다. 저 멀리 선 금산(681m)은 하얀 구름모자를 쓴 채 잠잠하다. 초입에서 약 4.3km를 걸었고 앞으로 13.3km쯤 남았다. 오가는 차가 거의 없는 길은 대량마을과 맞닿은 산기슭에서 끝났다. 높거나 험한 산은 아니었다.

숲을 나서자마자 발아래로 낮아진 설흘산(481m)과 응봉산, 그 앞 바다 위 노도가 보였다. 옛날 저 섬에서 배를 젓는 노를 많이 생산했다 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혹은 삿갓이 바다에 떠있는 것 같다 해서 삿갓섬으로도 불린다. 하얀색 건물에 빨간 십자가를 단 작은 교회를 지나 소량으로 향한다. 대량과 소량은 모두 양아리 소속이다. 약 400년 전쯤 임진강가 양아리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 살면서 기존 마을 이름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어촌과 어울리는 양아리의 작은 교회.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어촌과 어울리는 양아리의 작은 교회.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량마을의 어여쁜 바다. 이 바다를 지나 두모마을로 길이 이어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량마을의 어여쁜 바다. 이 바다를 지나 두모마을로 길이 이어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량의 작은 포구엔 낚시를 즐기는 한 남자와 고양이처럼 우는 갈매기뿐이다. 처음엔 아기인 줄 알았다. 바다에 웬 아기 울음소리?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지만 당연히 아기는 없었다. 하얀 몸에 잿빛 날개를 단 새 한 마리만 에메랄드빛 바다 위를 가르며 날고 있을 뿐. 저 녀석은 새우맛 과자 대신 싱싱한 멸치로 배를 채웠을지도 모르겠다. 벌렁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길을 잇는다.

두모는 달리 ‘드무개’마을로도 불리는데, 드무개는 화재가 날 경우를 대비해 물을 담아둔 큰 항아리를 일컫는 말이다. 화마가 드무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도망을 가면 불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두모캠핑장 한쪽 그늘에 앉아 배낭을 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양산 부부팀도 준비해온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주인 잃은 개 한 마리가 덥수룩한 털을 날리며 어슬렁댄다. 개에게 딱히 줄 음식이 없어 미안한데 개미들은 무얼 먹었는지 하나 같이 크고 통통하다.

정비가 잘 된 숲이지만 풀이 무성한 곳도 더러 있다. 민감한 피부라면 반바지보단 긴바지가 낫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정비가 잘 된 숲이지만 풀이 무성한 곳도 더러 있다. 민감한 피부라면 반바지보단 긴바지가 낫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벽련항에 정박된 어선들. 노도로 가는 배는 이 벽련마을 선착장에서 탈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벽련항에 정박된 어선들. 노도로 가는 배는 이 벽련마을 선착장에서 탈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량마을로 가는 길. 대량과 소량은 임진강가에서 살던 이들이 이주해 정착한 마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량마을로 가는 길. 대량과 소량은 임진강가에서 살던 이들이 이주해 정착한 마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성진과 여덟 선녀 이야기, 구운몽
마지막 낮은 산, 그러니까 금포와 상주해수욕장 사이, 상주와 대량 사이의 숲에 이어 세 번째를 넘어서면 벽련마을이다. ‘문학의 섬’ 노도로 가려면 이 벽련선착장을 이용해야 한다. 노도는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등을 남긴 김만중이 생을 마감한 섬이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줄거리는 알려진 대로다. 소사미(어린 중) 성진이 석교 위의 여덟 선녀와 “언어를 수작하고 꽃을 던져 희롱”한 죄로 인간 세상에 환도해 여덟 명의 여인과 사랑도 하고, 높은 지위까지 올라 부귀가 극에 달하지만 결국 하룻밤 꿈이었다는 것. <구운몽>을 쓴 곳이 노도는 아니라지만 서포가 삶의 마지막까지 걸었던 땅, 그를 위로했던 바다, 어머니를 그리며 올려봤을 하늘은 틀림없는 남해였다. 330여 년 전에도 노도는 저렇게 바다에 있었고, 금산의 바위는 우뚝하고, 상주의 은모래는 햇살에 반짝였을 것이다.

아슬아슬 오가는 차량을 피해 걷다 만난 매점은 그야말로 오아시스다. “마시고 가도 되나요?” 매점 아저씨는 건물 밖 테라스를 가리켰다. “문을 꼭 닫으세요.” 처음엔 그 당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테라스로 향한 문을 열자마자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에 몸이 휘청인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쾅! 바람에 밀려 문이 닫힌다. 여차하면 도로의 차들까지도 날려버릴 기세였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음료로 목을 축인다. 아, 살 것 같다.

도로에서 바라본 바다 풍ㅇ경. 원천항까지는 찻길이므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도로에서 바라본 바다 풍ㅇ경. 원천항까지는 찻길이므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인도가 마땅히 없는 차도에선 안전에 유의한다. 이 차도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매점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인도가 마땅히 없는 차도에선 안전에 유의한다. 이 차도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매점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나무 숲이 인상적인 앵강만. 구간 종접으로 탐방안내센터가 코앞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나무 숲이 인상적인 앵강만. 구간 종접으로 탐방안내센터가 코앞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구간 종점인 바래길탐방안내센터까지는 멀지 않은 데다 평지라 부담이 적다. 볕을 피해 아침 일찍 걸어도 이쯤까지 왔다면 한낮인 게 흠이긴 하지만 말이다. 태양은 이글이글 그늘 없는 바닷가로 쏟아져 내렸다. 대피하듯 안내센터로 들어가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긴다. 차를 세워둔 천하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시간을 알아보는데 양산팀이 흔쾌히 태워주겠단다. 고맙습니다! 염치 무릅쓰고 신세를 진다. 걸었던 길을 되짚어 차는 유유히 동쪽으로 멀어져갔다. 남해는 여전히 아름답다. 300년 전에도 지금도 슬픔을 위로할 만큼 눈부신 곳이다.

벽련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벽련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벽련항
노도까지 가는 배는 하계(4월~9월)의 경우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하루 6회 운항하며 요금은 어른 3000원이다. 10분 걸린다. 단, 둘째 넷째 수요일엔 운항하지 않는다. 벽련마을 버스 정류장 옆에 숙박과 카페를 겸하는 ‘솟대하우스(055-863-4374)’가 있다.
주소 경남 남해군 상주면 남해대로1299번길 50
문의 010-4045-2720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사진 / 황소영 기자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구간 종점으로 바래길 관련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코스별 완주 기념배지도 이 센터에서 구입 가능하다. 개당 2000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방문 전 전화로 운영 여부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 배차 간격은 뜸하지만 센터 앞 마을에서 구간 초입인 천하마을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주소 경남 남해군 이동면 성남로 99
문의 055-863-8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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