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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추억의 포구에서 새우젓의 포구로 거듭나는 강화도 외포리  
추억의 포구에서 새우젓의 포구로 거듭나는 강화도 외포리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1.08.12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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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기행] 강화도 외포리
사진 / 박상대 기자
새우젓 일번지로 거듭나고 있는 외포리 수산시장.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강화]강화도 내가면 외포리, 왕년에 삼산면 석모도 가는 여객선을 탔던 포구였다. 석모대교가 개통된 후 외포리 포구 수산시장은 새롭게 변신했다. 새우젓 일번지로 거듭나고 있는 외포리와 석모도를 다녀왔다.

외포항을 알리는 조형물.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항을 알리는 조형물.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리 수산시장에서는 국내산, 자연산 생선을 주로 판매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리 수산시장에서는 국내산, 자연산 생선을 주로 판매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강화도 새우젓의 원조가 외포리 수산시장이라고 한다. 새우젓 종류만 해도 육젓, 추젓 등 여러 종류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강화도 새우젓의 원조가 외포리 수산시장이라고 한다. 새우젓 종류만 해도 육젓, 추젓 등 여러 종류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수많은 청춘남녀의 추억이 남아 있는 외포리항
외포리항에 차를 세우고, 옛 선착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진한 갯벌 색깔 바닷물이 잔잔하다. 사람들이 붐비던 선착장은 한산하다. 여객선도 없고 어선들도 서너 척 닻을 내리고 서 있다. 갈매기들이 어선에 앉아 졸고 있다. 외포리 바닷바람은 보드랍고 향기가 난다. 삼복더위 한복판인데 바람에 습기가 없고 고슬고슬하다.

옛 생각이 난다. 베이비붐 세대는 물론 그 이후 밀레니엄 세대까지 외포리는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낭만포구였다. 서울에서 강화대교를 건너 서쪽 끝에 있는 포구, 지척지간에 있는 석모도까지 여객선이 다녔다. 한여름 성수기 때는 30분 간격으로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배가 다녔다. 

여행객들은 10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배를 타고, 배 안에서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나눠 주는 체험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청춘들은 갈매기들한테 새우깡을 빼앗기면서 까르르 웃고 맑고 고운 추억을 가슴에 새겼다.

외포항은 어촌뉴딜사업을 통해 더 아름답고 편안한 포구마을로 변신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항은 어촌뉴딜사업을 통해 더 아름답고 편안한 포구마을로 변신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배를 타고 석모도로 건너간 청춘들은 보문사나 민머루 해변으로 달려갔다. 보문사는 눈썹바위로 유명한, 기도발이 좋다는 사찰이다. 백사장 길이가 1km인 민머루 해변은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이었다. 물이 그리 맑지 않아서 물속에서 노는 시간보다 모래사장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민머루 해변은 해넘이 광경이 아름다워서 사진작가들도 자주 찾아갔다. 해변에서 캠핑이 가능하고 주변에 숙박업소도 여러 집 있었다. 

청춘들은 마지막 배를 놓치기 일쑤였다. 해변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놓치기도 하고, 해넘이 광경에 취했다가 놓치기도 했다. 어쨌거나 먼 훗날 “그날 마지막 배만 놓치지 않았어도 저 사람이랑 결혼 안 했을 텐데…”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석모도와 외포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섬이고 포구였다. 그런데 2017년 6월 석모대교가 개통되면서 그런 추억은 다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석모대교가 개통한 후 외포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전국을 살펴볼 때 연도교가 개통한 후 기존 포구들은 기능이 위축되고, 예스러움이 사라졌다. 포구를 주름잡던 상권도 시들해졌다. 

“큰 영향이 없어요. 관광객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상가나 음식점 매출은 크게 줄지 않았어요.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지요.”

외포리 수산시장상인회 남궁희 총무는 코로나19만 없었으면 큰 문제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평일인데도 수산시장에는 손님들이 오가고 있었다.

외포리 수산시장에서는 순국산 어패류와 강화도산 새우젓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리 수산시장에서는 순국산 어패류와 강화도산 새우젓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리에서 석모도로 이어진 석모대교.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리에서 석모도로 이어진 석모대교. 사진 / 박상대 기자

불탄 수산시장 어민들과 상인들이 재건축 
2020년 3월, 외포리 수산물직판장(수산시장)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새벽에 화재가 발생해서 아침에 진압했지만 점포 18개 중 12개가 전소되고 여러 창고가 불에 타버렸다. 시장 전체가 불에 탄 것이나 다름없었다.

갑작스러운 화재와 코로나19로 수산시장은 방문객이 감소하고 심각한 침체기를 겪었다. 7개월 동안 상인들과 어촌계원들은 힘을 모아 재기를 도모했다.

외포리 수산시장은 예전 건물보다 세련된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섰다. 연면적 1482㎡로 점포 18개소, 사무실, 화장실 등을 갖춘 현대식 시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어촌계원들은 상당 금액 자부담을 투입해서 건축물을 지었다고 자랑한다. 

외포리 수산시장은 다시 개장했다. 처음 시장에 들어선 손님들은 깜짝 놀란다. 수산시장이 너무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세련되었기 때문이다. 수산시장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고, 길바닥에도 물기가 거의 없다. 

외포리 어민회 최대권 총무.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리 어민회 최대권 총무. ​사진 / 박상대 기자​
강화도의 명물인 밴댕이 회무침. 막걸리랑 먹으면 더 맛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강화도의 명물인 밴댕이 회무침. 막걸리랑 먹으면 더 맛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돈 좀 많이 투입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용오 어촌계장은 “시장을 재건축하고 꾸민 비용은 전적으로 상인들과 어촌계에서 부담했고, 다 지어서 강화군에 기부채납한 상황이다”고 한다. 아직 수산시장은 미완성이다. 이 시장 안에 새우젓과 외포리의 역사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장을 꾸미고, 별도로 새우젓 홍보관을 만들어 새우젓 명품화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굳이 수산물 직판장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는 거의 모든 수산물이 어촌계 어부들이 바다에서 직접 잡은 수산물을 어촌계 상인들이 직접 판매하기 때문이다. 

“외포리에는 우리 마을 어민들이 직접 잡은 새우로 만든 새우젓만 판매합니다. 강화도 새우젓이란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이지요. 지금도 100% 우리 어민들이 수협창고에서 숙성시킨 새우젓만 팔아요. 수입산을 갖다 팔 생각도 않지만 만에 하나 그러다가 걸리면 쫓겨납니다. 대신 우리 마을에서 직접 생산할 수 없는 명란젓은 동해안 것을 팔지요. 횟감이나 조개류도 반드시 국산만 판매합니다. 상인들도 알고 손님들도 알아요.”

최대권 외포리 어민회 총무는 곧 수산물품질관리 단체로부터 원산지 품질관리를 잘한 덕분에 표창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각종 새우젓, 밴댕이젓, 멸치젓, 황석어젓 등 각종 젓갈과 건새우, 멸치, 미역 등 해조류를 판매한다. 반건조한 참조기를 사는데 주인은 “구이도 좋고 조림도 좋아요. 맛있게 잡수세요”한다. 

외포리 북쪽 해변에 있는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 수산시장에서 데크길로 연결되어 있다. 790여 년 전에 삼별초군이 이곳에서 진도로 출항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외포리 북쪽 해변에 있는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 수산시장에서 데크길로 연결되어 있다. 790여 년 전에 삼별초군이 이곳에서 진도로 출항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외국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망양돈대. 망양돈대 주변에는 아름드리 해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외국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망양돈대. 망양돈대 주변에는 아름드리 해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망양돈대 숲길과 삼별초군 출병지
외포리에는 수산시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십 개 음식점이 있다. 횟집이나 칼국수집, 강화도 대표 횟감인 밴댕이회무침과 삼식이탕, 토속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과 카페도 있다. 물론 펜션도 많이 있다.

또한 외포리는 역사적인 유물도 있다. 강화도 마을마다 있는 돈대가 이곳에도 있다. 마을 북쪽 언덕에 망양돈대가 있다. 망양돈대는 거대한 바위 언덕에서 석모도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데, 돈대 앞에 숲을 이루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망양돈대 오르는 입구에 삼별초 항쟁비가 있다. 790년 전, 고려의 무신정권 시대. 무능한 정권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나라를 버리고 강화도로 숨어들었다. 몽골군은 고려 정권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40년간 전국을 유린했다. 고려의 정예병인 삼별초는 이따금 본토로 나와 몽골군을 무찔렀으나 역부족이었다. 

전열을 가다듬고 군사력을 키워 몽골군을 물리칠 각오를 다지며 진도로 떠났는데, 바로 이곳 외포리에서 출항했다. 1천 척의 배에 군수품을 싣고 호국의지를 다졌던 사람들, 비록 패배의 역사를 남겼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들의 숭고한 호국의지를 기리고자 유허비를 세웠다.

 

석모도 보문사. 사진 / 박상대 기자
석모도 보문사. 사진 / 박상대 기자

석모도 보문사

석모도는 외포리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섬인데, 지금은 석모대교로 이어졌다. 수도권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관광지이며, 유명한 사찰 보문사가 있다. 
석모도는 해안선 길이 41.8km이고, 해명산(309m), 낙가산(267m), 상봉산(316m) 등 높은 산이 연결되어 있다.
보문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한 사찰이자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알려졌다. 불교 신도들 사이에서는 기도발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 눈썹바위의 마애석불좌상 앞에서 바라본 해넘이 풍광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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