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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바다와 하늘, 그 어울림의 극치...제10코스 앵강다숲길
바다와 하늘, 그 어울림의 극치...제10코스 앵강다숲길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1.08.1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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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걷기여행] 제10코스 앵강다숲길
남해에는 독일마을 외에도 미국마을이 있다. 바래길은 미국마을을 우회해 이어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에는 독일마을 외에도 미국마을이 있다. 바래길은 미국마을을 우회해 이어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한때는 10코스 ‘앵강다숲길’의 출발지였다가 9코스 ‘구운몽길’이 된 원천마을의 파도 소리는 꼭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한다. 바다와 새, 언뜻 공통점을 찾기 힘들지만 엇비슷한 두 개의 소리 덕분에, 뭍으로 움푹 파인 이 바다의 이름은 앵강만이 되었다.

이번 구간은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화계마을~호구산 임도~미국마을~두곡ㆍ월포해수욕장~홍현해라우지마을~가천다랭이마을까지 이어진 15.6km의 길로 휴식 포함 7시간쯤 걸린다. 거리는 지난달 걸었던 9코스보다 2km가 짧은데 오히려 소요 시간은 1시간이 늘었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구간 막판 가천마을로 가는 산길 오르막에 지칠 수 있으므로 초ㆍ중반 체력 안배에 힘쓴다. 앵강다숲길은 남파랑길 제42코스이기도 하다.

이번 구간에선 두곡·월포해수욕장을 비롯해 숙호마을 앞, 홍현마을 앞 해변을 지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번 구간에선 두곡·월포해수욕장을 비롯해 숙호마을 앞, 홍현마을 앞 해변을 지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중간중간 숲길로 이어져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중간중간 숲길로 이어져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600살쯤 된 화계마을의 느티나무. 매해 새순의 모양으로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600살쯤 된 화계마을의 느티나무. 매해 새순의 모양으로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번 10코스의 이름은 앵강다숲길로 앵강만에서 시작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번 10코스의 이름은 앵강다숲길로 앵강만에서 시작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앵강만을 품은 화계마을
7시간이 걸린다니 아무래도 일찍 서두르는 게 좋다. 해가 짧은 계절은 말할 것도 없고, 해가 긴 계절은 그만큼 더워서 폭염이 무르익기 전에 끝내는 게 좋다. 남해터미널에 도착해 금평마을로 가는 8시 20분발 버스를 탄다. 관광지가 아닌 마을이어서 여느 때보다 심장이 더 콩닥댄다. 제때 하차하지 못하면 15.6km에 거리를 더 추가해야 한다.

“기사님, 금평마을요. 앵강만에 있는 마을 말이예요.” “여기서 내린 다음 이 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됩니다.” 버스는 미조를 향해 유유히 사라졌고, 차에서 내린 승객만이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10코스 초입인 탐방안내센터에 도착했을 땐 오전 9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센터에 들러 목을 축인다. 길은 센터를 바라보고 우측, 건물 옆을 돌아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근처에 붙여진 여러 가지 깃발과 리본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근처에 붙여진 여러 가지 깃발과 리본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옹벽 위에 쓰러져 있는 바래길 이정표.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옹벽 위에 쓰러져 있는 바래길 이정표.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담벼락에 그려진 귀여운 복어가 맑은 하늘과 맞물려 청량감을 더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담벼락에 그려진 귀여운 복어가 맑은 하늘과 맞물려 청량감을 더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작은 어선은 물을 떠나 길옆 뭍에서 졸고 있었고, 해풍이 부는 길가엔 은빛 멸치가 맛난 냄새를 풍기며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었다. 식욕을 돋우는 냄새였다. 간신히 참고 길을 벗어난다. 더운 날씨에 홀로 걷는 길이 결코 쉽진 않지만 멋진 하늘과 구름이 구간을 끝내는 순간까지 내내 동행이 돼 주었다.

길은 바다를 등지고 화계마을로 이어졌다. 마을 앞 바다에 목단꽃 같은 섬이 있어 ‘화계’란 이름이 붙었다.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600살쯤 된 느티나무였다. 예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새순으로 한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이를테면 새잎이 한꺼번에 같이 피면 모내기를 한 번에 끝내 풍년이 들고, 위아래로 나누어 피면 적기에 비가 오지 않아 두세 번에 걸쳐 모내기를 해 풍년이 안 된다는 얘기다. 

혹은 잎이 바다 쪽 가지에 먼저 피면 풍어, 육지 쪽에 먼저 피면 풍년이란 말도 있다. 올해는 어떤 모양의 잎이 났을까? 나무는 바래꾼에게도 고마운 존재다. 여름엔 시원한 쉼터가 되어 준다.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
구간 시점으로 바래길 관련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코스별 완주 기념배지도 이 센터에서 구입 가능하다. 개당 2000원.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경우 남해버스터미널에서 미조항 버스를 타고 금평마을에서 하차한다. 요금은 1700원이며 20분쯤 걸린다. 센터 옆으로 10코스 초입이 있다.
주소 경남 남해군 이동면 성남로 99
문의 055-863-8778

미국 문화와 전통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미국마을. 다만 바래길이 미국마을 앞을 바로 지나진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미국 문화와 전통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미국마을. 다만 바래길이 미국마을 앞을 바로 지나진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름을 대표하는 배롱나무꽃.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름을 대표하는 배롱나무꽃.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호구산 자락에서 미국마을로
2차선 아스팔트를 건넌 길은 호구산(626.7m) 아래로 이어진다. 바다와 마을이 멀어진 대신 산은 그만큼 가까워졌다. 첫발을 뗀 순간부터 저 멀리 뾰족한 암봉이 범상치 않았다. 남해군 유일의 군립공원 호구산, 그중에서도 돗틀바위 일대다. 길은 넓지만 오르막이라 제법 땀이 솟는다. 새끼 뱀 한 마리가 긴장한 자세로 얼어붙었다. 다행히 독사는 아니었다. 뱀 앞에 쪼그려 앉아 대답 없는 말을 걸어본다. 

오르막이 잠잠해지면 왼쪽으로 길이 꺾인다. 호구산에서 내려와 용문사 방향으로 가는 임도다. 길은 다시 양 갈래로 나뉘었다. 바래길은 왼쪽, 용문사는 오른쪽. 원효대사가 금산에 지은 보광사를 옮겨와 새로 창건한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절집이다. 임진왜란 중엔 이 절의 승려들이 의승군을 조직해 왜적에 맞서 싸웠다. 당시 사용됐던 깃발과 무기, 또 보물 제1849호 대웅전, 제1446호 괘불탱 등의 문화재가 있다.

남해군립공원인 호구산에서 앵강만 일대가 잘 보인다. 앵강만은 원천마을의 파도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군립공원인 호구산에서 앵강만 일대가 잘 보인다. 앵강만은 원천마을의 파도소리가 앵무새 소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마을과 마을, 바다와 바다로 이어진 10코스 앵강다숲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마을과 마을, 바다와 바다로 이어진 10코스 앵강다숲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더운 계절엔 무리할 필요가 없다. 그늘이나 쉼터가 나오면 물을 마시고 쉬어준다. 식수는 넉넉히 챙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더운 계절엔 무리할 필요가 없다. 그늘이나 쉼터가 나오면 물을 마시고 쉬어준다. 식수는 넉넉히 챙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산을 등지고 내려서면 아래로 알록달록 예쁜 집들이 보인다. 남해, 하면 흔히 독일마을을 떠올리지만 남해엔 미국 문화와 전통주택을 체험할 수 있는 미국마을도 있다. 아쉽게도 바래길은 미국마을을 직접 거치진 않는다. 

이미 오전 11시 35분, 배가 고팠다.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운데 도저히 마을로 내려설 방법이 없다. 허기진 배는 바닥에 말라붙은 지렁이도 오징어 다리처럼 보이게 한다. 얼른 해수욕장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늘 있는 산길도 좋지만 파도 치는 바다가 몹시도 그리운 더위였다.

호구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호구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호구산
납산과 원산 등으로 불리는 호구산은 남해에서 유일하게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호구산이란 이름은 산의 형상이 호랑이를 닮아서 또는 옛날 지리산에서 건너온 호랑이가 이 산에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에 서면 앵강만과 반대편 강진만이 잘 보인다. 산행은 용문사나 염불암에서 시작하며 왕복 4km이다.
주소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길 166-11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은 10코스의 종점이자 다음에 걸을 11코스의 시점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은 10코스의 종점이자 다음에 걸을 11코스의 시점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막판 숲길에서 체력 방전
바래길은 이동면을 벗어나 남면으로 접어들었다. 화계마을에서 건넜던 2차선 아스팔트를 다시 만났다. 도로를 따르던 길은 횡단보도 너머의 바다로 가 닿았다. 파도 소리는 도로에서도 들렸다. 쌩쌩 달리는 차들의 소음보다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가 더 크고 선명했다. 바람은 산에서보다 훨씬 맹렬했고, 맹렬한 만큼 아름다웠다.

 두곡과 월포, 두 마을에 걸친 해변이어서 하나의 이름인 두곡ㆍ월포해수욕장으로 불리는 이 바다의 원래 이름은 순월개. 활처럼 휘어진 모양을 본 따 붙여진 지명이다. 방풍림으로 조성한 소나무 숲에 자리를 편다. 배낭 안에 넣어온 빵과 음료로 뒤늦은 허기를 달랜다.

두포월곡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여행객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두곡·월포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여행객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제10코스는 남파랑길 제42코스이기도 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제10코스는 남파랑길 제42코스이기도 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해수욕장을 막 벗어나려는데 카페 간판이 보인다. 7시간은 휴식을 포함한 소요 시간이다. 바다를 마주 보고 앉아 얼음이 잔뜩 든 커피를 마신다. 하아, 살 것 같다. “점심으로 빵만 먹었다고요? 이거라도 드세요.” 여주인은 잘라서 쪄낸 단호박을 내민다. 혼자였지만 심심하지 않은 건 저 예쁜 바다와 하늘, 그리고 사람 덕분이다. 

남해의 바다는 민트색으로 깊었고, 하얀 구름을 인 하늘은 푸른색으로 높았다. 태양은 땅의 모든 것을 태울 기세로 이글댔지만 풍경은 더위 속에서도 어여쁨을 뽐냈다. 이 해변을 지나면 숙호마을까지 언덕을 넘어야 한다. 숙호에서 바다와 만났다가 도로로 올라선 후엔 홍현해라우지마을로 길이 이어진다.

홍현마을에도 방풍림이 있다. 해송, 상수리나무, 팽나무, 이팝나무 등이 주를 이루는데 ‘아무리 추워도 이 숲의 나무는 절대 땔감으로 쓸 수 없다’는 마을 법이 있고, 주민들 스스로도 그 법을 잘 지켜 2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유지돼 있다고 한다. 

홍현의 바다는 두 개의 산 사이에서 더 힘이 넘쳤다. 북쪽의 호구산, 동쪽의 금산(681m)은 앵강만을 지키는 든든한 산군이다. 종점에 다다를수록 체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늘이 나올 때마다 쉰다. 물도 충분히 마신다. 더위 앞엔 장사가 없다. 무리할 이유도 전혀 없다.

“여기부터 약 2.5km는 해안숲길입니다. 트레킹화, 등산스틱 권장”이라고 쓰인 노란 안내판이 보인다. 그늘이라 시원했지만 이미 13km를 걸어온 이에겐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등산로 같은 숲길을 나선다.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에서 이번 길이 끝난다. 늦은 휴가를 즐기려는 인파를 지나 도로로 올라선다. 다음 구간은 여기서 시작한다.

달뜨는 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달뜨는 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달뜨는 바다
펜션 겸 카페로 두곡ㆍ월포해수욕장 끝 지점에 있다. 바닷가 주위로 펜션, 매점, 식당 등이 있지만 바래길 바로 옆에 있는 건 이 카페가 유일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 4000원.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펜션의 경우 조식이 제공된다.
주소 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111번길 24-20
문의 0505-356-9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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