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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소박한 어촌과 화려한 펜션의 조화
소박한 어촌과 화려한 펜션의 조화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1.09.13 0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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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걷기여행 ⑩] 제11코스 다랭이지겟길
유구마을의 조그만 항구. 이 마을을 지나 평촌마을로 길이 이어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지선 포함 19개 코스인 남해바래길도 이제 반환점을 넘어 11코스로 접어들었다. 남해는 이동면을 기준으로 크게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남은 구간은 왼쪽, 그러니까 남해의 남서쪽 해안을 따라 하동과 연결된 남해대교까지 이어진다.

이번 구간은 가천다랭이마을~빛담촌~항촌마을~몽돌해변~사촌마을~유구마을~평산마을까지 이어진 13.5km의 길로 휴식 포함 5시간쯤 걸린다. 지난달 걸었던 10코스(앵강다숲길)보다 2.1km가 짧고 소요 시간도 2시간이 적다. 유난히 펜션이 많은 수려한 길이지만 풀베기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여름은 물론 초가을까진 반드시 긴 바지를 입어야 한다. 목이 긴 중등산화를 신으면 여러모로 편하다. 다랭이지겟길은 남파랑길 제43코스이기도 하다.

순방향으로 진행할 땐 빨간색 화살표를 따른다. 반대방향에서 시작했다면 파란색 화살표.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가천다랭이마을 앞 구간 안내도. 10코스 앵강다숲길과 11코스 다랭이지겟길의 교차점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출발
남해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 10분이었지만 가천행 버스는 9시 35분에나 있었다. 이른 시각이라 문을 연 카페도 없었다. 어찌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 택시를 타기로 한다. 

“가천다랭이마을요!”“다랭이마을도 좋지만 그 뒤의 산은 더 좋습니다.”기사님은 설흘산(481m)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구간 시점인 가천마을과 중간 기점인 선구마을은 모두 설흘산 산행의 초입이다. 따라서 이번 구간 어디서든 바위가 멋진 응봉산(472m)~설흘산 능선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오늘은 산행 때문이 아니라 바래길 11코스를 걷기 위해 나선 길이다.

삿갓배미로도 불리는 가천마을의 다랭이논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항촌마을 지나 선구마을 가는 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가천은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해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논의 숫자를 세어보니 한 개가 모자라더란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그냥 가려고 벗어둔 삿갓을 집어 들었는데, 그 아래 논 한 배미가 있었다 하여 ‘삿갓배미’로도 불리는 계단식 논 말이다. 아직은 초록이 더 많은 삿갓배미들도 머잖아 황금빛으로 물이 들 터. 한낮엔 땀으로 옷이 젖었지만 바람은 한결 가을색을 띄고 있었다.

마을을 바다 쪽으로 밀어내고 길은 도로를 따라 내륙 방향으로 이어졌다. 길옆엔 어여쁜 펜션들이 늘어섰다. 펜션이 많다는 건 그만큼 경치가 좋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나온 다랭이마을을 필두로 13.5km 대부분이 남쪽 바다를 휘돌아 연결됐다. 그렇다고 바다 옆으로만 이어진 길은 아니다. ‘초콜렛펜션’의 하얀 철문을 들어선 후엔 산길로 접어든다. 

펜션 손님들의 복작대는 소리가 숲 너머로 멀어졌다. 여름 장마는 짧았지만 태풍과 가을장마가 길어지면서 숲속 생명들은 마지막 더위를 영위라도 하듯 한껏 키를 높이고 있었다. 풀이 무성한 길에선 발밑의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무언가 밟힐까 긴장을 하며 숲을 빠져나온다.

설흘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설흘산
구간 종점인 가천다랭이마을과 중간 경유지인 선구마을은 설흘산(481m) 등산로이기도 하다. 선구마을~응봉산(472m)~설흘산~가천다랭이마을까지의 산행 거리는 약 7km로 휴식 포함 4시간 30분쯤 걸린다. 설흘산 정상엔 봉수대가 있다.
주소 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1156-8

이번 구간은 유독 펜션단지를 많이 지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는 섬이지만 밭농사도 많이 짓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항촌마을과 그 뒤로 멀어진 빛담촌 펜션 단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11코스는 남파랑길 43코스이기도 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예전엔 다랭이지겟길이 1코스였지만 지난해 전 구간이 개통되면서 11코스로 바뀌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예전엔 다랭이지겟길이 1코스였지만 지난해 전 구간이 개통되면서 11코스로 바뀌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와 숲길의 적절한 조화
길은 여전히 높은 곳에 있었고 바다는 왼쪽 아래서 비치 색으로 출렁였다. 길이 낮아지면 세상은 일순간 알록달록 화려한 빛깔로 바뀐다. ‘빛담촌’ 펜션 단지다. 주말여행에 나선 이들이 퇴실 준비를 하느라 바빠 보였다. 펜션 아래 편의점에 들러 목을 축이고 도로 너머의 항촌마을로 들어선다. 바다는 다시 키보다 낮은 위치로 일렁였다.

 “원래는 더 예쁜데 어제 비가 오는 바람에 바다 색이 저렇게 탁해요.”바래길 옆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다. 아침에 부러 택시를 탄 것도 이런 여유 때문이었다. 

“바래길 걸으시나 봐요?” 옆 테이블 손님은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다. 그의 말처럼 색감은 덜했지만 항촌마을의 바다엔 동글동글 까맣게 빛나는 몽돌이 있다. 먼 바다로부터 밀려온 파도는 몽돌에 부딪혔다 바다로 물러섰다. 샤글샤글, 바다 그 자체의 소리와 커피 안의 얼음 소리가 경쟁하듯 경쾌하게 들려왔다.

항촌마을 앞 몽돌해변. 마을의 재산이므로 갖고 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선구마을이다. 앞서 잠깐 말한 설흘산의 대표적 등산로다. 노거수 쉼터를 지나 오른쪽은 산길, 왼쪽은 바래길이다. 산꾼과 바래꾼이 번갈아 오가는 곳이어서 쉼터 앞엔 해충기피제가 있다. 

“사촌마을로 넘어가는 길에 벌이 많아요. 조심하세요.” 역방향으로 출발해 항촌에서 마주친 분들이 해준 말이었다. 장수말벌은 땅속에 집을 짓는데 자칫 모르고 지났다가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얼굴을 제하고 온몸에 골고루 분사한다. 무성한 숲엔 벌이나 진드기만 사는 게 아니다. 그늘 덕에 시원했지만 잠시 쉴라치면 왜왱, 까만 모기들이 땀 냄새를 맡고 몰려왔다.

날씨는 오락가락했다. 맑아지나 싶으면 구름이 몰려와 땅 위를 어둡게 했다. 흐린 하늘과 맞물린 사촌해수욕장은 흑백화면 같았다. 짧은 해변은 숲으로 이어졌고, 숲을 나서면 바다 옆 유구마을에 닿는다. 

몇몇 배들은 바다를 떠나 뭍으로 올라와 있었다. 뱃전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간다. 배는 땅 위에 있었지만 쉬는 동안은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신이 났다. 목책이 박힌 해안 바위지대를 걷는 것도 재밌다. 바위를 밟을 때마다 몸은 휘청였지만 그것조차도 바래길 걷기여행의 묘미였다. 물끄러미 바다를 응시하는 낚시꾼들을 지척에 두고 길은 또 숲으로 들어간다. 의외로 만만치 않은 코스다.

오션라운지 펜션&카페.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오션라운지 펜션&카페
항촌마을 몽돌해변 앞 펜션&카페로 바래길 바로 옆에 있어 쉬어가기 좋다. 펜션의 경우 비수기 2인 기준 15만원 안쪽이며, 커피는 4000원이다. 항촌마을을 전후해 CU편의점, 식당(알로하와이), 카페(사촌마을 남바다) 등이 있다.
주소 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1031번길 48
문의 0507-1443-3364

유구마을 지나 닿는 평산마을. 이번 구간의 종점이자 다음 구간의 출발지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겨울엔 주로 시금치를 재배하지만 요즘은 고구마와 참깨가 주를 이룬다. 농산물엔 허락없이 손대지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풀베기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길. 초가을까진 긴 바지를 입는 게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소한 들꽃(닭의장풀)들이 걷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가 보이는 언덕
시멘트 포장 임도가 나오면서 막혔던 시야가 트였다. 바다 너머로 멀어진 응봉산 암릉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아래 조금 전 지난 선구마을과 사촌해변이 보였다. 전날 하루 종일 내린 비는 남해의 붉은 흙을 포장도로 위로 쏟아 부었다. 마치 뻘 위를 걷는 것처럼 걸음을 뗄 때마다 푹푹, 발이 진흙 속으로 빠졌다. 깊이 빠진 만큼 꺼내는 일은 힘들었다. 끈적해진 등산화 바닥엔 나뭇잎이 달라붙었다. 웅덩이에 들어가 신발창을 씻고 길을 잇는다.

구간 종점부로 갈수록 풍경은 더 예뻤다. 언덕 위에 서면 드넓은 남쪽 바다가 펼쳐져 보였다. 크기를 짐작하기도 어려운 거대한 화물선 한 척, 그리고 호위하듯 그 뒤를 둘러싼 여러 척의 배들이 까만 점처럼 콕콕 박혔다. 

저 배들은 무엇을 싣고 어디서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옛날 이 섬은 고립된 땅이었지만 높은 곳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던 이들의 꿈은 넓고 광대했을 지도 모른다. 마을로 내려선 길은 일순간 도로를 버리고 유턴하듯 풀밭으로 돌아선다. 2미터 앞쯤에 풀숲을 지나는 뱀 한 마리가 보인다. 녀석도 까끌대는 풀이 싫은지 상체를 들고 도망치듯 달려간다. 가을까진 조심해야 할 게 많다. 자연의 품속엔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엔 밭이 있었다. 흙들은 한결같이 혈기에 넘쳤고, 해풍은 짠내를 빼고 언덕까지 날아왔다. 겨울엔 이 언덕에 시금치가 가득했다. 지금 저 밭에 뿌리를 내린 식물은 아마도 고구마나 참깨인 모양이다. 어르신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밭을 오가느라 분주해 보였다. 이제 종점인 평산마을이 지척이다. 구간 안내판을 지나 도로로 막 올라섰는데 남해로 가는 버스가 온다. 얼른 손을 들어 차를 세운다. 운이 좋았다. 다음 구간은 평산마을에서 시작한다.

INFO 바래길작은미술관
구간 종점인 평산마을에 있는 문화공간이다. 2011년 폐쇄 및 방치된 보건소를 개조한 것으로 2015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무료관람이 가능하지만 코로나19의 상황에 따라 개방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주소 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로1739번길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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