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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돌담길 따라 마을 한 바퀴, 익산 함라마을
돌담길 따라 마을 한 바퀴, 익산 함라마을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6.09.30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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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잣집 담이 마을 담장길로…
긴 담장이 인상적인 익산 함라마을 전경.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익산] 마치 지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익산 평야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담황색 담장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보인다. 

가세를 짐작게 하는 커다란 가옥들과 감나무, 밤나무, 탱자나무 등이 심어진 정원… 그를 감싸고 있는 담장. 이 담장을 넘어 바깥으로 흐드러진 담쟁이 덩굴이 시선을 사로잡는 곳, 익산 함라마을이다.

흙과 돌을 한 켜 한 켜씩 쌓아 만든 토석담으로 이루어진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길은 약 2km에 달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이 담장길은, 익산에 이름난 만석꾼들인 삼부잣집 담이 마을길을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만석꾼이 셋이나 살았으니 집의 크기도 알만 하다. 집들이 워낙 커 삼부잣집의 담이 마을길이 되었고, 이 길에 19세기 마을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쌓아 올리고, 덧붙이며 지금에 이르렀다. 

담장 둘레만 340m가 넘는 김안균 가옥. 사진 / 김샛별 기자

인심은 함열인데… 함라 삼부잣집

각 고을의 자연풍경을 찬미하는 <호남가>에는 특별한 구절이 있다. ‘인심은 함열인데’라고 말하는 구절이다. <호남가> 안에 고을의 마음 씀씀이를 자랑거리로 삼은 것은 오직 함열뿐이다. 

조해영, 김안균, 이해영 삼부자는 경쟁이라도 하듯 어려운 이들에게 곳간을 활짝 열어주었으며 당시 신문기사에서도 여러 번 언급이 될 정도였다. 

얼마나 인심이 좋았는가를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함라마을을 걷다 보면 절로 깨닫게 된다. 함라마을을 이루고 있는 삼부잣집이 그 가세를 짐작케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아 방치되었으나 여전히 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조해영 가옥. 사진 / 김샛별 기자

유칠선 익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조씨 집안은 함라마을에 가장 먼저 정착해 사실상 이 주변이 조씨 집성촌으로 꾸려졌다”고 조해영 가옥에 관해 설명한다. 

마을 입구에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조해영 가옥은 출입문부터 남다르다. 열두 개의 대문이 있는 이 가옥은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방치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위세를 실감케 한다.

일제시대 때 농장 운영을 통해 부를 부축한 이 가옥은 조해영이 소유하긴 했으나 조용규의 고조부가 먼저 집을 지었고 증조부와 조부를 거쳐 조용규까지 4대에 걸쳐 지어졌다. 

본래 4천여 평이 넘고, 방의 개수만 90칸이 넘었다고 전해지나 한국전쟁과 피난생활에 집 일부를 헐값에 팔며 지금 남은 것은 본채와 새방채, 농장채, 솟을대문과 문간에 있는 행랑채만이 남아 있다.

사진 좌측은 조해영 가옥 내부 꽃담, 우측은 일본식으로 지어진 별채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담장 너머 근대 한옥 구경

삼부잣집의 담이 곧 함라마을의 옛 담장길이라 자연스럽게 삼부잣집을 구경하면 함라마을 한 바퀴 산책하게 된다. 그 중 안까지 들어가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조해영 가옥뿐이다.

조해영 가옥의 대문채 안쪽으로는 ‘꽃담’이라 불리는 화려한 담장이 자리한다. 꽃담은 화장벽돌을 이용해 각종 문양을 베풀어 쌓은 담장을 일컫는다.

붉은 벽돌로 쌓은 뒤 네모나게 흰 회칠을 하고 학, 사슴, 구름, 연꽃과 산삼 등 십장생을 돋아나게 그린 이 꽃담은 단순한 담장이 아니라 대문을 들어서 만나는 바람벽의 기능을 한다.

꽃담을 지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오래된 뽕나무와 얕은 우물이 나오고, 그 뒤로 비밀스러운 별채가 자리한 것을 볼 수 있다. 조해영 가옥의 별채다.

두 단의 이중 지붕이 독특한 별채는 집 전체를 돌아 기둥을 세우고 유리문이 달려 있는데 이는 전통 한옥이 아닌 일본식 건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외에도 전통적인 한옥은 툇마루에 지붕이 없는데, 서쪽 툇마루에 달린 지붕(캐노피)을 달아 비나 눈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등 주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한옥의 한 유형인 근대 한옥의 흔적이다.

전형적인 토석담과 일부 전돌담, 판축담 등 다양한 담들이 혼재되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풍요로움이 깃들어 있는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길을 걸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여러 담이 어울려 빚어낸 멋

2006년 등록문화재 제263호로 등록된 익산 함라마을 담장은 모양새가 다양하다. 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전통 담장들과 달리 토담, 담장, 전돌을 사용한 담 등 여러 형태의 담들이 혼재해 있다.

그뿐 아니다. 익산 함라마을의 담장길을 따라 걷다 보면 중간중간 색이 다른 담장들이 가운데 끼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담장을 수리하면서 기존 담장의 흙과 색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담장이 끼어 있는 것마저 여러 시간이 혼재된 담장, 그만의 멋을 더한다.

함라산 임도(林道)
익산 함라마을을 감싸고 있는 함라산의 산세를 멀리서 살펴보면, 몸에 염주를 두르고 장삼을 펄럭이는 노승이 두 팔을 펼쳐 들어 마을을 감싸는 형국이다. 함라마을의 집터는 노승의 시주그릇이 놓인 자리로 만석꾼이 셋이나 난 이유가 명당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익산 함라마을은 양반길이라 이름 붙은 함라산 둘레길 2코스와 연결되어 있다. 마을을 걷다 보면 어느새 줄기가 낮은 구릉을 이루며 이어진 함라산 둘레길로 합류하게 된다. 둘레길은 함라산 정상을 넘어가는 길과 이어지는데, 이보다는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일 없이 마치 평지를 걷는 듯 금강을 따라 쭉 이어지는 임도를 걷길 권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함라산 임도에서 볼 수 있는 금강과 평야 풍경.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한라산 임도를 걷다 들를 수 있는 숭림사.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아름답기로 소문난 금강과 덕양정의 일몰. 사진 / 김샛별 기자

함라산을 둘러가는 임도는 탁 트인 금강과 평야, 서천 갈대밭을 조망하며 걸을 수 있다. 중간중간 쉼터가 잘 마련되어 있고 함라산 자연 휴양림과 야생차밭, 산림문화체험관이 있으니 구경해볼 것. 임도를 걷다 ‘똥바위 지게길’을 이용해 다시 함라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임도는 숭림사, 입점리 고분, 웅포 곰개나루 등과도 이어져 있으므로 돌아오지 않고 입맛에 맞게 둘레길을 걸어볼 수도 있다. 

웅포 곰개나루에서 금강의 노을을…
임도에서 함라마을로 돌아가는 대신 더 걷고 싶다면, 웅포 곰개나루까지 걸어보자. 웅포 곰개나루는 금강을 따라 펼쳐지는 산책로가 일품으로 유람선 선착장과 캠핑장이 함께 있어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는 곳이다. 임도를 걸어 내려오는 시간을 일몰 시각에 맞추면 금강 너머로 지는 일몰을 볼 수 있다. 특히 덕양정에서 바라보는 서해안 낙조가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웅포 곰개나루의 덕양정에도 함라마을 삼부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덕양정은 원래 진포대첩에서 순절한 선열들의 넋을 추모하고 풍어를 기원하며 위령제와 풍어제를 지내던 용왕사를 허물고 세워진 것. 덕양정이란 현판 글씨는 조선 순조때 태어난 명필 호산 서홍순이 썼다. 서홍순은 창암 이삼만의 수제자로 전주의 이삼만, 남원의 강남호와 함께 호남 3대 명필로 꼽힌다. 이 현판은 잠시 덕양정이 폐쇄되었을 때 그의 후손이 가져갔으나 일본인 손에 들어가게 됐고 이후 함라 만석꾼인 조용규(‘조해영 가옥’의 조해영의 아버지)가 큰 값을 치르고 간직하다 해방 후 웅포양로원에 희사했다. 지금도 그 현판은 웅포 양로원에 있으며, 현재 덕양정 현판은 원본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덕양정 앞에는 수령이 300~400년 된 팽나무 5그루가 운치를 더한다. 해질녘 실루엣으로 남은 팽나무와 덕양정의 모습 너머로 모든 것이 붉게 물드는 풍경과 함께 하루가 저문다.

Info 익산 함라마을
주소 전북 익산시 함라면 수동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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