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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돌담길 따라 마을 한 바퀴,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따라 마을 한 바퀴, 군위 한밤마을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6.10.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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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여행스케치=군위] 군위군은 경북의 명산 팔공산을 사이에 두고 대구광역시와 맞닿아있는 고장이다. 팔공산이 북쪽으로 팔을 뻗은 산자락 아래 대율리라는 아담한 마을이 있는데, 순수 우리말로 한밤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제주도를 닮은 돌담으로 유명하다. 
예부터 돌이 많았던 한밤마을은 그 돌을 그대로 이용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사진 노규엽 기자

그리고 1390년 무렵 한밤마을에 부락을 이룬 부림 홍씨의 14대손 홍노라는 사람이 마을 이름 안에 밤 야(夜)는 좋지 않다 하여 음이 같은 밤 율(栗)로 갈아 쓴 것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일’이나 ‘대’는 크거나 많음을 뜻하므로, 팔공산 북편의 너른 산자락에 바짝 붙은 마을이라 밤이 길다는 의미로 이름 붙였다는 것이 정설이다.대율리(大栗里)라는 이름으로 인해 밤이 풍성한 마을로 짐작하기 십상이지만, 군위 한밤마을에 밤나무는 많지 않다. 이름에 얽힌 사연에 따르면 처음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은 일야(一夜)라는 이름을 썼고, 950년경에 이르러 대야(大夜)라고 고쳤다 한다.

한밤마을 입구 조형물. 뒷편으로 경북의 명산 팔공산 자락이 보인다. 사진 노규엽 기자

돌과 바람, 자연이 빚은 마을

마을 역사를 좀 더 파고들면 한밤마을이 제주도를 닮았다는 이야기에 수긍이 간다. 예로부터 제주도에는 돌과 바람, 그리고 여자(해녀) 등 세 가지가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중 여자를 제외한 돌과 바람이 한밤마을에도 많으니 제주도를 닮았다는 게 순 억지는 아닌 셈이다.

류미옥 군위군 문화관광해설사는 “마을 터를 잡을 때부터 땅을 파면 돌이 나와 그 돌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지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30년 큰 홍수가 났을 때 팔공산의 돌들이 한밤마을로 쓸려왔고, 사람들은 그 돌로 담장을 쌓았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재해를 활용해 마을을 꾸몄다는 것.

경북 군위 특산품인 사과. 한밤마을 내에도 집과 집 사이에 과수원이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비단 집뿐이 아니다. 마을 내에 자리 잡은 과수원 등의 밭에도 돌담을 둘러놓은 것이 한밤마을의 특징이다. 이에 대해 류미옥 해설사는 “돌이 많아지고 보니 바람 때문에 농사가 시원치 않았던 것을 떠올리고 돌담으로 바람을 막은 것”이라고 한다.

자연의 훼방에 부드럽게 대처한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 한밤마을에서는 시골동네의 한적함을 즐기면서도 ‘자연 위에 세운 마을’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경험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공간, 성안숲
한밤마을 걷기는 마을 북쪽 입구의 성안숲부터 시작한다. 성안숲은 팔공산 자락이 마을의 동ㆍ서ㆍ남 방면을 성처럼 둘러싸고 있는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홍천뢰 장군이 의병을 훈련시켰던 곳이기도 하고, 마을을 보호하는 신성한 공간으로의 의미도 깊다.

한밤마을 북쪽에 위치한 성안숲.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등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 노규엽 기자

도로 양쪽으로 각각 늘어선 성안숲에는 몸을 이리저리 뒤튼 소나무들이 마을의 모습을 보일락말락 감추어준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겨울의 찬바람을 막는 것이 주목적이었을 테고, 여름에는 솔바람이 휘도는 쉼터 역할도 했을 것이다. 현재는 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는 908번 도로로 인해 숲이 양쪽으로 갈라졌지만, 옛날에는 숲도, 마을도 규모가 더 컸다고 한다.

한밤마을 돌담 골목길. 사진 노규엽 기자

성안숲에서 살펴봐야 할 것은 도로 서쪽 숲(입구 기준 오른쪽)안에 있는 진동단(鎭洞壇)이라는 이름의 돌솟대다. 화강암으로 세운 솟대의 꼭대기에는 오리 한 마리가 앙증맞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진동단은 한밤마을의 풍수지리학적 위치와 연관이 있다. 배의 형세를 띤 한밤마을이기에 돛대 또는 닻의 역할을 하는 진동단을 세워 ‘움직임을 다스려’ 달라는 기원을 하는 것. 특히 1930년의 대홍수 이후로는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것인지, 현재의 진동단 솟대는 1966년 아예 화강암으로 세운 것이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밤마을에는 어디에도 우물이 없다. 마을 자체가 배의 형상이니 우물은 배에 구멍을 뚫는 거나 마찬가지란 이유에서다. 우물이 없는 것이 마을이 형성된 때부터인지, 대홍수 이후부터 만들어진 금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풍요 속 빈곤’인 한밤 돌담길
성안숲을 둘러보고 나면 본격적인 한밤마을 산책이 시작된다. 한밤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간략한 마을 안내도가 있으니 참고하자. 길이 얼기설기 얽혀있어 복잡해 보이지만 어떤 길에서든 마을 중앙으로 향하면 대율리 대청을 찾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율리 대청을 등대로 삼으면 복잡한 돌담길 안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한밤마을에서 특별히 볼 것은 보물 제988호 석조여래입상이다. 마을 안에 있는 작은 절 대율사 내에 있는 불상으로, 겉으로는 일반 가옥과 구분이 어려워 일부러 찾지 않으면 지나쳐버리기 쉬운 곳이다.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율리 대청. 사진 노규엽 기자

한밤마을 산책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대율리 대청도 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은 한때 학동들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쓰였으며 지금은 마을의 경로당이자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단다.

벽 없이 사방이 훌훌 트인 구조가 시원스럽고 집 전체에 마루를 깔아 누구에게라도 편한 쉼터를 제공해준다. 본디 대청이란 공간이 집의 가운데에 있는 마루를 뜻하는 것인바, 대율리 대청도 한밤마을의 정 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행사가 있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마을 한가운데에 모이니 겉모습만큼이나 의미가 멋진 공간이 또 있을까.

한밤마을에는 여전히 삶을 일구어가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대율리 대청 옆으로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4호인 남천고택이 있다. 한밤마을뿐 아니라 군위군에서도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부림 홍씨 집안에 대대로 이어져오고 있는 고택이다.

조선시대 상류층의 주거공간을 볼 수 있는 중요 자료이지만, 숙박이용객들 외에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단, 이곳에서 1박을 머무르면 한옥숙박체험 및 각종 전통체험이 가능하다.

한편, 현재 한밤마을 내의 가옥들은 내부로 들어가 구경하는 일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집이야 당연히 그렇겠지만, 개방이 가능한 가옥들도 마찬가지.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대율사도 보수공사 중이라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홍석규 한밤마을운영위원장은 “현재 일손이 부족해 잠시 관리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하며, “올해 말까지 마을사람들과 논의를 마쳐 내년부터는 마을 안내를 재개할 것”이라는 예정을 밝혔다.

인위적인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한밤마을 돌담. 사진 노규엽 기자

지금은 돌담길 산책에서 의미를 찾을 수밖에

주요볼거리를 체크한 다음에는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면 된다. 한밤마을은 돌담길을 따라 골목을 도는 것만으로 충분히 볼 것이 많다. 생각보다 마을이 넓어 천천히 거닐며 사색의 시간을 가지기도 알맞다. 

콘크리트 담벼락이 아닌 굴곡진 돌담들이 이어져 푸근한 이미지를 준다. 사진 노규엽 기자

차가 지나다닐 만큼 넓은 길과 곁가지를 치며 나타나는 좁은 골목길들. 딱딱한 콘크리트 담벼락 대신 돌담들이 굴곡을 그리며 이어지는 모습. 이런 풍경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 빠져보면 한밤마을 돌담이 급격히 친숙하게 느껴진다.

돌담 위로 심심치 않게 보이는 감나무, 산수유나무 등은 자급자족을 하던 시절의 증거. 한창시절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군침 깨나 흘리게 했을 풍경이다. 돌담에 자리 잡은 이끼와 담쟁이덩굴도 반갑게 느껴지고, 돌 틈을 비집고 나온 여러 종류의 꽃들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도 편안함을 더해준다.

잡풀 없이 말끔한 돌담과 이끼와 덩굴에 가려 형상조차 보이지 않는 돌담. 시선만 주면 안이 훤히 보이는 낮은 돌담을 가진 집들과 내부가 궁금해 까치발을 들게 하는 높은 돌담을 가진 집들.

마을 전체가 제 멋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런 규칙 속에 쌓인 세월이 한밤마을 돌담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다.

돌담길을 걷는 사이 한밤마을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Info 군위 한밤마을

주소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티로 2137-3

문의 www.hanbam.net

 

Tip 주차정보

한밤마을 중앙의 대율리 대청에 차량 몇 대를 주차할 공간이 있다. 승합차까지는 진입 가능. 대율리 대청에 주차 공간이 없다면 한밤마을 북쪽 입구 옆에 주차장이 있다(입구 조형물 바로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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