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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느리게 걷는 강릉유람
느리게 걷는 강릉유람
  • 유은비 기자
  • 승인 2016.12.06 14: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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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숲과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으로
경포호에 비친 강릉의 아침. 사진 / 유은비 기자

[여행스케치=강원] 강릉 여행은 옛 선조들이 찾았던 명소들을 찾아 걷는 것에서 시작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수백 년간 선조들이 걸었던 길 위의 풍경은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강릉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호수와 바다, 오죽 숲 그리고 그 지역 위인들이 함께 일궈낸 강릉의 오랜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비친 강릉의 아침 풍경을 본 적이 있는가? 뜨는 해를 보기 위해 경포해변으로 가는 길, 하지만 정작 발길을 붙잡은 것은 경포호의 절경이다. 하늘의 모든 움직임을 담아내려는 듯 경포호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계속해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다. 붉게 번지는 하늘과 그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호수가 강릉의 고요한 아침을 불러온다.

경포대 위로 올라 서면 경포호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유은비 기자

경포호에서 아침을
경포호 맞은편의 건어물 상점들이 문을 열 무렵, 그 사이사이 자전거 대여점들도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두발 자전거와 사륜마차, 이인용 자전거가 골고루 진열되어있어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볼 나만의 이동수단을 고르는 즐거움을 준다. 경포호 자전거 길에 올라 페달을 밟아본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약 십여 분을 달려 경포대에 도착한다.

울창한 나무들 뒤에 숨어 자칫 못보고 지나치기 쉬운 경포대. 사진 / 유은비 기자
경포대의 위치를 나타내는 작은 비석 하나. 사진 / 유은비 기자

“여행객들 중에 경포해변은 많이 찾아도 정작 봐야할 경포대는 보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말마따나 경포대는 그리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데다가 아래쪽에서 보면 키 큰 나무들에 둘러 싸여 있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자전거를 끌고 경사진 길을 조금 올라간 후에야 경포대를 가리키는 작은 비석이 나온다.

경포대는 예로부터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낭만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과 호수와 바다, 술잔에 비친 달과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서 빛나는 달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에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을 노래하며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 치부했던 경포대. 하지만 그 시절의 영광은 어디로 묻혀버린 것인지, 언덕 위에는 누대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경포대에서 바라본 경포호의 모습. 사진 / 유은비 기자

신발을 벗고 경포대 안으로 들어가 양 옆의 마루에 앉아서 경포호를 내려다본다. 과거 경포호는 현재 크기보다 3배가량 더 컸다고 하니 그 당시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모습은 바다처럼 광활했을 것이다. 거기에 우후죽순 솟아나는 빌딩들도 없었을 테니 옛 선조들은 경포대에 올라 호수를 넘어 동해까지도 눈에 담았으리라. 그런 아쉬움을 위로라도 하듯 누대 깊숙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강릉 제일의 만석꾼의 집, 선교장 전경. 사진 / 유은비 기자

대문 열어 베품을 실천했던 왕족의 집
경포대 마루에 앉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경포호의 물줄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경포가시연습지와 경포생태저류지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선교장으로 가보자.

선교장은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후손 이내번이 강릉에 터를 잡으며 지은 집이다. 그 당시 경포호가 집 앞까지 닿아 있어 배로 다리를 만들어 호수를 건너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교장이라는 이름도 ‘배다리 집’이라는 뜻이다.

선교장은 99칸의 대저택으로 조선시대에도 관동팔경을 유람하며 강릉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쉼터가 되어주었다. 지금도 선교장에서는 한옥스테이를 운영하며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한옥스테이가 처음 시작된 곳이 선교장이라고 한다.

활래정의 모습. 여름이 되면 연꽃이 못을 가득 메운다. 사진 / 유은비 기자
'줄행랑'의 어원이 되는 길죽한 행랑채. 사진 / 유은비 기자

선교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활래정.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른다는 뜻을 지닌 이 정자는 시인묵객들이 머물며 예술을 꽃피웠던 곳이다. 활래정 뒤로 본채와 안채가 크게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물은 행랑채이다.

행랑채는 보통 노비나 집에서 일을 거드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하지만 선교장의 행랑채는 묶을 곳 없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숙소로 사용되어왔다. 선교장 운영관리자 김동환씨는 “일자로 길게 지어진 행랑채는 원하는 만큼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돈이 없는 여행객들은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미안한 마음에 새벽같이 도망가기도 했다”며 “우리가 흔히 쓰는 ‘줄행랑’이라는 말도 이곳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선교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쉼터였을 뿐만 아니라 강릉에 흉년이 들면 곡식창고를 열어 배고픈 이웃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옷을 기워주었으며 몸을 뉘일 곳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의 왕족이었던 이내번과 그의 후손들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대대로 나눔을 실천했다는 사실은 크나큰 감동을 안겨준다.

과거 선교장 사람들이 백성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보고자 만들었던 초가집, 초정. 사진 / 유은비 기자

선교장 기와집들 사이에 보이는 초가집, 초정은 안채주옥 뒤편 높은 곳에 지어졌다. 조선시대 왕족이란 이름으로 부귀를 누리고도 남았을 그 당시 선교장 사람들이 굳이 초정을 지었던 것은 백성들의 생활을 몸소 체험해 보기 위한 것. 백성들의 애환을 느껴보고 집 문을 열어 그들에게 기꺼이 베풀었던 왕족인 것이다.

선교장을 둘러싸고 있는 산 위로 둘레길도 조성되어 있다. 선교장 휴게쉼터 뒤쪽으로 오르면 선교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율곡의 이종사촌인 권처균의 호가 집의 이름이 된 오죽헌. 사진 / 유은비 기자

사임당의 숨결이 머무는 곳
2017년 1월 방영 예정인 이영애, 송승헌 주연의 TV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와 함께 강릉 곳곳이 드라마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강릉을 찾는 관광객들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나고 자란 오죽헌은 드라마 속에선 결코 빠질 수 없는 곳. 사임당이 거닐던 오죽헌 앞마당에 이제는 배우 이영애가 그 흔적을 좇아 걷는다. 이 시대에 새롭게 그려질 사임당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죽헌으로 가본다.

오죽헌 시립박물관과 율곡기념관, 초충도 화단까지 포함하는 드넓은 부지 전체를 오죽헌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오죽헌은 자경문을 지나고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오래되고 고즈넉한 한옥의 이름이다.

오죽헌 주변에 자라난 검은 대나무. 사진 / 유은비 기자
신사임당 동상 앞에서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어머니의 모습. 사진 / 유은비 기자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의미의 율곡 이이의 가르침, 견득사의가 새겨진 석상. 사진 / 유은비 기자

율곡의 이종사촌인 권처균이 이 집을 물려받고 주위에 검은 대나무들이 많다고 하여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그의 집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 것이다.

율곡 이이의 외가인 오죽헌에서는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최춘옥 오죽헌 문화관광해설사는 “율곡이 열여섯이 될 때까지 그의 스승은 어머니인 신사임당”이었다며 “최고의 학자를 길러낸 신사임당은 예술가 이상의 학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슬하에 일곱 자녀를 둔 신사임당이 자녀들을 모두 가르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잃지 않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며 “스스로가 행동하며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는 어머니이자 현대 여성들 못지않게 자기 개발에 소홀함이 없었던 여인”이라고 말했다.

사임당 배롱나무. 주위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 유은비 기자
어머니 사임당과, 첫째 딸 매창, 율곡 이이가 사랑한 나무, 율곡매. 사진 / 유은비 기자

600년 전 오죽헌을 지으며 정원수로 심었을 율곡매와 사임당 배롱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임당과 그의 첫째 딸 매창 그리고 율곡이 사랑했던 매화나무는 매창의 매화도(梅花圖), 율곡의 매초명월(梅梢明月) 등 그들의 그림과 시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이 함께 누렸을 오죽헌 구석구석을 눈에 담아 본다. 올곧은 대나무가 집 주위를 둘러싸고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와 세속의 탈을 벗는다는 불교적 의미를 지닌 배롱나무가 양 옆을 지키고 있다.

경포호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지어진 오죽헌에서 학문과 예술의 꽃을 피웠던 그들을 삶을 떠올려보며 오죽헌 툇마루에 앉아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맞는다.

Info 사임당 배롱나무
배우 이영애씨는 결혼 후 오죽헌을 찾아와 배롱나무를 만져도 보고 사임당과 율곡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 후 이영애씨가 쌍둥이를 낳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배롱나무를 만져 대서 지금은 만지지 못하도록 선을 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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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2019-11-03 20:27:46
유일한 유은비기자님 언제나 행복하시고 건승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