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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물질 나가던 해녀들의 '숨비소리길'
물질 나가던 해녀들의 '숨비소리길'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7.01.03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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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를 만나는 트레킹 코스
별방진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주 하도리 풍경.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제주 해녀들의 삶이 묻어나는 길, 숨비소리길은 유명한 트레킹 코스는 아니다. 오히려 동네 산책에 가까운 4km가 조금 넘는 짧은 코스다. 개통한지 몇 년이 지나서야 요즘 들어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제주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무형 문화재에 등재되었기 때문. 우리나라의 19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동안 차오르는 숨을 참다 수면 위로 올라와 내쉬는 소리를 뜻하는 ‘숨비소리’의 이름을 딴 숨비소리길은 2012년 제주해녀박물관이 생기며 해녀축제 기념을 위해 개통한 길.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어촌마을처럼 보이는 길 곳곳엔 해녀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제주해녀박물관에서부터 별방진까지 걸어돌아오는 숨비소리길. 사진 / 조용식 기자

해녀들의 사랑방, 불턱

숨비소리길은 마을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다시 마을로 이어지는 길로 세화 해수욕장이 있는 제주 해녀박물관에서부터 해안도로를 쭉 끼고 돌아 마을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순환코스.

길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건 불턱이다. 불턱은 해녀들이 바람을 피해 잠수복을 갈아입기 위해 둥글게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좁은 입구와 가운데 불을 지피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하도리 서동에 있는 보시코지 불턱. 사진 / 김샛별 기자

탈의실이자 몸을 녹이는 대기실이기도 하고, 몸을 말리며 잡아온 수산물을 손질했던 공간. 자연스레 상군·중군·하군 해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장이었다.

이한영 해설사는 “하군 해녀가 상군 해녀에게 물질기술을 넌지시 묻고, 좋은 어장을 서로 공유하며 해녀회의도 진행되는 등 해녀 공동체의 사랑방이었다”고 설명했다.

해안도로에는 서동 불턱, 모진다리 불턱, 보시코지 불턱 등이 있는데 그 중 모진다리 불턱은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다. 또한 제주 내 불턱 중에서 완성도가 높으며 디자인적 요소도 높은 편이다. 

바닷돌을 이용해 고기떼들을 쉽게 잡을 수 있는 갯담, '무두망개'. 사진 / 김샛별 기자

길 곳곳 유적들을 살펴볼 수 있어

걷다 보면 바닷가에 쌓아 놓은 돌담도 눈에 띤다. 무두망개다. 하도리 서문동에 위치한 갯담인데, 자연스런 겹담 형식으로 둘러쌓고 바닷물을 이용해 밀물에 들어 왔던 고기떼들이 썰물이 되면 그 안에 갇히는 것을 이용해 고기잡이를 하는 방법으로 원담이라 불리기도 한다.

서문동 무두망개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모래톱에 있지만 해초가 많이 붙어 있을 정도로 식생상태가 좋다.

숨비소리길에는 해녀문화유적만 있는 건 아니다. 서동 불턱 주변엔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진 환해장성이 있다. 환해장성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축, 보수된 제주 특유의 방어유적이다. 조금 더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 ‘탐라의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별방진도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24호인 별방진. 사진 / 김샛별 기자

별방진은 제주시대 제주도 동부지역 최대 기지였던 성으로 마을을 감싸고 보호하는 타원형 석성. 1973년 4월 13일, 제주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2,390자이고 높이는 7자라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선 헌종 14년(1848)에는 목사 장인식이 고쳐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성의 둘레는 950m 정도다. 이 위에 오르면 하도리 풍경과 하얀 등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닫힌 삼싱당 전경. 사진 / 김샛별 기자

밭담길 따라 세화 마을 구경

별방진에서 마을로 돌아가는 숨비소리길은 제주 올레21코스의 일부다. 제주 올레길 중 가장 마지막에 오픈한 21코스는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출발해 종달바당까지 걷는 코스. 역올레로 별방진에서 낯물밭길을 이용해 제주해녀박물관까지 이번엔 마을과 밭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푸른 바다를 보며 걸었던 것과 달리 마을길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낮은 돌담 너머로 기웃대며 심어진 귤도 구경하고, 가로수로 야자수가 심어져 있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당근이 유명한 구좌읍답게 당근잎이 푸릇하고, 군데군데 노란 유채꽃도 피어 있다.

그 중 이한영 해설사가 발길을 멈춘 곳은 허름하게 닫힌 집 앞. 그는 “그냥 집처럼 보이지만 아이를 낳게 하고, 잘 보살펴주는 산육신인 여씨할망신위를 모시는 삼싱당”이란다.

“제주는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말이 있다”는 그는 “제주 전역에 300여 개소 이상 신당이 존재했었으나 개발 이후 방치되거나 없어졌다”고 말했다. 정월 12일(대제), 2월 12일(영등맞이), 7월 12일(백중맞이), 10월 12일(시만국대제) 등 제일(祭日)에 큰굿을 벌였으나 중단된 지 오래 되었다고.

굳게 닫힌 삼싱당 안을 볼 수는 없지만 아이를 두고 물질을 나가며 잘 보살펴달라 여씨할망에게 소원했던 어머니의 마음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제주해녀박물관 전경. 사진제공 / 제주해녀박물관.

해녀의 삶,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해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숨비소리길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인 해녀박물관에 들어가보자. 1960~1970년대 해녀의 살림살이와 불턱을 재현해놓은 전시실부터 제주의 음식문화, 영등 신앙 등 해녀들의 의식주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다.

재연해놓은 해녀의 집 유물들은 모두 실제 해녀가 사용했던 것을 기증받은 것으로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해녀박물관 외부에는 해녀들이 물질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외례장소인 해신당도 재현돼있으니 보고갈 것. 이한영 해설사는 “해녀굿(잠수굿)은 생업과 의례가 하나가 된 모습”이라고 했다.

제주해녀박물관 내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탐. 사진제공 / 제주해녀박물관

또한 제주해녀박물관 앞에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도 세워져 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2년 1월 구좌읍과 성산읍, 우도면 일대에서 일제의 식민지수탈 정책과 민족적 차별에 항거한 해녀들이 일으킨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항일운동. 이 운동은 여성들이 주도한 항일운동으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이한영 해설사는 “하도리는 제주에서 해녀들이 가장 많은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화해녀민속시장을 비롯해 해녀박물관이 이곳에 있는 건 단순히 해녀가 많아서가 아니라 해녀항쟁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라며 상징성을 강조했다.

에메랄드빛 아름다운 바다와 한적한 숨비소리길, 한 번쯤 해녀문화를 눈 여겨 보고 걷는다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마치 해녀들의 숨비소리처럼 들려올 것이다. 거센 파도와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강인함이 스며들어 있는 그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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