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 녹차향과 함께 한 보성의 하루, 그리고 남도 김치-보성 다향울림촌②

2019-04-24     유인용 기자

[여행스케치=보성] 보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녹차다. 보성 녹차는 단순히 마시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녹찻물로 족욕도 하고 목욕도 한다. 녹차를 먹인 돼지 ‘녹돈’은 보성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판매되는 돼지고기 브랜드다. 

보성에서의 둘째 날, 하루 동안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마침 밖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먼 길 떠날 것 없이 율포 주변을 돌아보기로 결정하고 펜션 1층으로 내려가니 ‘따끈한 녹찻물에 발 담그고 가라’며 박명숙 사무장이 손을 이끈다.

보성 녹차, 피부에 양보하세요

다향울림촌 1층의 카페에서는 보성 녹차를 활용한 족욕을 체험할 수 있다. 1만원에 족욕과 음료 한 잔이 포함된 패키지다. 음료는 녹차부터 생강차, 홍차, 유자차, 레몬차 등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보성에 도착한 이후 녹차를 맛보지 못한 터라 녹차를 주문했다.

차를 우려내는 동안 족욕기에도 물을 채웠다. 온도를 알맞게 맞춘 물에 녹차팩을 넣으니 물 색이 금세 변하며 녹차향이 은은히 풍겼다. 따뜻한 물에 발을 넣자마자 ‘으아, 시원하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발을 담그고 얼마 안 있으니 잘 우려낸 녹차가 정갈한 다기에 담겨 나왔다. 다향울림촌에서 판매하는 녹차는 가장 처음 딴 찻잎으로 만든 ‘우전’이다. 음력 3월 중순인 곡우를 전후해 여린 찻잎을 덖어 만드는 우전은 녹차 중에서도 최상품에 속하며 순한 맛이 특징이다.

박명숙 사무장은 “똑같은 찻잎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차의 종류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차는 차나무의 이파리를 채집해 덖어 말린 것이다. 황차는 찻잎을 발효시켜 만들어 이름 그대로 황색을 띈다. 떡차는 찻잎을 익힌 뒤 절구에 찧어 진액을 활용해 만든 것으로 옛날에는 과거 길에 오르는 선비들이 물갈이를 하지 않기 위해 챙겨 다녔다고 한다.

녹차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30분 정도 족욕을 즐기니 그간 많이 걸으며 누적된 피로가 사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녹차는 향균과 해독 작용뿐 아니라 보습에도 탁월하다’는 박명숙 사무장의 설명과 같이, 뜨거운 물에 한참을 담그고 있었는데도 발이 건조하지 않고 오히려 보송했다.

율포에서는 녹차탕에 온몸을 담가 목욕도 즐길 수 있다. 보성군에서 운영하는 ‘율포해수녹차센터’는 족욕탕을 비롯해 해수녹차탕, 노천탕, 사우나까지 모두 갖춰 관광객뿐 아니라 보성 주민들도 즐겨 찾는다. 1회 이용권은 대인 7000원이지만 30매를 한 번에 구입하면 12만원으로 1회당 4000원 꼴이다. 녹차 족욕이 꽤 좋아 해수녹차탕에도 호기심이 생겼지만 일단 다음을 기약하고 율포해수욕장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보성 녹차 먹인 녹돈, 칼칼한 맛의 남도 김치

율포해수욕장 인근은 오토캠핑장과 콘도가 있어 특히 주말에는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해안을 따라 소나무 군락이 조성돼 그냥 걷기에도 좋다. 밤이 되면 조명이 반짝이면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비가 내리니 대낮인데도 길에 사람이 없어 빗소리를 벗 삼아 유유자적 모래사장을 걸었다.

여느 바닷가 동네가 그렇듯 율포해수욕장 근처도 횟집과 카페가 많은 관광지다. 탁 트인 시야로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카페에 자리를 잡고 비에 젖은 몸을 잠시 쉬었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차 아이스 음료도 보성에서 마시니 보다 특별한 느낌이다.

저녁거리로는 무엇을 사볼까 고민하며 인근 마트에 들어서니 녹차를 먹인 돼지 ‘보성 녹돈’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숙소 냉장고에는 입소하면서 받아둔 김치가 있어 궁합이 꽤 잘 맞을 듯 싶었다.

정육점 주인은 “녹차는 지방을 분해하는 성질이 있어 녹차 먹인 돼지는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또 “보성 녹돈의 경우 삼겹살이든 목살이든 일반 돼지고기보다 한 근에 2000~3000원 가량 비싼데 최근엔 돼지고기 값이 많이 올라 녹돈이나 일반 고기나 가격이 비슷하다”고 귀띔한다.

녹돈 목살 두 덩어리와 깻잎, 쌈장을 사 저녁상을 차렸다. 녹돈만큼 생소했던 것은 남도식 김장 김치였다. 양념이 배춧잎 사이사이에 그득하게 스며들어 김치 색이 아주 빨갰다. 새콤하고 아삭한 김치에 익숙한 입맛이다 보니 남도 김치는 칼칼하고 풍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입맛도 그 지역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깻잎에 고기 한 점과 김치를 얹어 입 안 가득 씹고 있자니 하루 종일 빗길을 걸었던 수고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귀농을 하게 된다면 상추나 깻잎과 같은 쌈채소는 텃밭에서 키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끈한 녹차 족욕으로 아침을 시작해 녹돈으로 차린 한 끼 식사로 하루를 끝냈다. 귀농을 고려한다면 어떤 일을 하면서 생활할지도 결정해야겠지만 지역 특색과 음식 등 해당 지역을 다방면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본격적인 귀농에 앞서 해당 지역을 얕게나마 미리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를 꼭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