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기행] 조기가 마르는 법성포~젓갈이 곰삭는 설도포구까지! 걷어낼 것 없는, 영광!

2003-11-15     여행스케치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할머니가

[여행스케치=영광] 그 옛날 질퍽한 파시의 소란스러움은 사라지고, 영광은 옛 영광을 잃었지만 여전히 포구는 싱싱한 갯내음을 진하게 풍긴다. 햇볕이 닿아 따가운지 따사로운지 살짝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포구가 정겹다.                  

나른한 햇살이 쏟아지는 넓은 마당이 있는 집! 영광의 첫 이미지가 그랬다. 영광 터미널은 신선하다. 대개 터미널 밖에 좌판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영광은 터미널 안에 좌판 시장이 있다. 꽃게가 벌떡 다리를 세우고 맑은 바닷물에 푸짐하게 담겨있다. 영광의 바다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터미널부터 쉽게 느낄 수 있다.

시장의 어수선함이 아닌 단아한 노인이 마당가에서 콩 타작을 하는 정겨운 인상을 풍겼다. 옛 영광을 잃었다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여전히 영광굴비는 인기가 많다. 영광의 잊혀져가는 매력을 찾아서 포구여행을 떠났다.

걸대에

행자가 붉게 핀 법성포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는 전망대에서 보면 넉넉한 풍광을 자랑한다. 포구 가장자리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물 빠진 갯벌에는 뱃길이 드러난다. 새우깡에 길들여지지 않은 갈매기는 돛대 끝에 서서 한가롭게 바다를 바라본다. 포구 앞 상가에는 굴비들이 해풍에 마른다. 입안 가득 군침이 저절로 돈다.

영광 칠산바다에 봄이면 산란을 하려는 조기가 찾아온다. 이 조기를 잡아서 1년 이상 간수를 뺀 소금에 절여 말리면 영광굴비가 된다. 바닷바람, 소금, 햇살, 습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어울러져 짭짤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법성포 주위에는 2백여 곳의 굴비집이 있다. 걸대에 걸린 굴비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바다에서 막 잡혔을 때의 놀란 표정 그대로다.  

마을 언덕에서 지붕너머로 법성포를 바라보니, 행자가 붉게 피었다. 행자는 갯나물이다. 마을 할머니가 배고픈 시절에는 행자를 삶아 쌀에 섞어서 밥을 했단다. 행자를 삶으면 물은 붉은 빛이 되고 행자는 푸른색을 내는데 지금이야 굶지 않으니 먹을 일이 없다며 갯벌을 저녁 빛으로 붉게 물들이는 행자에 대해 알려준다. 갯벌이 곱다.

설도포구

농게의 붉은 다리가 벌떡 서는 설도포구
설도포구는 젓갈냄새가 난다. 법성포보다 한가롭고 더 포구답다. 육젓, 오젓, 중하젓 등 새우젓으로 유명한 포구다. 밴댕이젓, 조기젓, 꼴뚜기젓, 갈치젓, 잡젓 등 손가락으로 꼽고도 또 꼽아도 모자라는 다양한 젓갈이 많다. 새우젓은 탱글탱글하고 껍질이 얇아야 좋다. 특히 짜야 개운하다. 설도포구의 젓갈이 맛있는 것은 펄에서 잡은 새우와 물고기를 염산에서 나는 천일염으로 담기 때문이다.

설도포구의

서울 사람들은 흰 새우젓을 좋아하고 광주사람들은 빨간 새우젓을 좋아한다며 아주머니가 맛보라고 집어주시는 데 정말 짜다. 젓갈 곰삭는 냄새가 짜다. 갯벌에는 다양한 종류의 게가 있다. 붉은 다리가 예쁜 농게는 움직이는 꽃처럼 바지런히 다닌다. 어찌나 귀엽던지 포구 아래로 내려가 숨죽이고 기다렸건만 구멍 속에서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아, 포구에서 소주에다 껍질째 씹어 먹은 오도리 맛을 잊을 수 없다.

19km

칠뫼가 손닿을 듯 백수해안도로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일곱 개의 섬이 백수면 앞바다를 따라 있다. 단순하면서 소박한 이름. 옛 사람은 칠뫼라 했다던데, 19km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섬은 손닿을 듯 하다 금세 작아진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 바다를 향한 두 개의 비각을 볼 수 있다.

정유재란

‘정유재란 열부순절지’ 정유재란(1597) 당시 왜적을 피해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등에 산 동래·진주 양정씨 문중 부인 12명이 각기 남편들이 전사 또는 포로가 되자 비각이 있는 칠산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왜적에게 몸을 더럽히느니 죽음을 택한 여인들의 정절. 그래서 그런가 바다는 유난히 애절하게 보인다.

4월에는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는 해당화 30리 길. 가을에는 섬을 물들이는 단풍이 곱고 겨울은 눈이 아름다운 바다. 해안도로의 바람이 따뜻하다.  

공옥진

영광에서 만난 사람
공옥진 선생님 댁 철재 대문이 열려있다. 우리가 간다는 전화를 받고 미리 열어둔 것이다. 단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익고 있다. 줏어먹을 사람이 없어서 노랗게 익은 감이 아깝게 섞어간다. ‘병신춤’으로 잘 알려진 공옥진 (72세) 선생님은 온 몸을 뒤틀면서 추던 춤으로 사람들의 눈물을 쑥 빼내던 분이다.

선생님은 작았다. 큰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을 압도하던 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았다. 최근에 사랑니를 빼고 덧나서 말을 많이 아끼셨다. 선생님을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아픈 중에도 찾아오는 손을 배려하신다. 나는 말문이 막혀서 그냥 얼굴 뵈려왔다며 질문을 접었다.

“다 나으면 다시 무대에 서야지.” 춤이 대한 열정이 여전히 뜨겁다. 선생님은 작업실을 구경시켜 주신다. 안쪽에는 그동안의 선생님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사진과 상패, 포스터가 있다. 마루는 반질반질 윤이 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던지 마루를 밟을 때 마다 널빤지가 밑으로 내려앉는다.

배웅해주시는

마당에 나와 손수 익은 감을 따서 반으로 갈라 먹여주셨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먹여주듯 주시는 감을 홀딱홀딱 잘도 받아먹었는데…. 춤을 전수할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다. 집을 나서는데 선생님은 대문 앞에 서서 떠나는 차를 향해 합장을 하고, 백미러에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드신다.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는 사람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