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서의 초대⑥] 여행지에서 읽은 시, 임제 선생의 영모정

2004-07-16     이민학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나주] 구진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5분 정도 내려가면 우측으로 나주 임씨의 집성촌 회진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 입구 언덕에 조선시대 풍류 문인으로 이름 높았던 백호(白湖) 임제(1549~1587) 선생의 발자취가 어린 영모정이 있다.

임금의 명을 받고 부임지로 가는 길에 기생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하는 추모시를 지었다가 파직을 당한 일화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만 정작 선생의 시세계는 호방하면서도 현실참여적이었다.

임제

나주시에서 발간한 임제 시선집에 나오는 ‘한의 농촌’은 피폐한 농촌을 묘사하면서 ‘이 저리 흩어져 처자조차 버리면서/어제 한 집 오늘 한 집 또 떠나가는구나/남으로는 짐 운반 북으로는 징병일세’등 구구절절이 농민들의 고초를 토로하였다. 당파싸움에 휩쓸린 정계를 한탄하여 관직을 버리고 친구와 풍류를 찾아 명산을 주유하며 숱한 시를 남겨 당대에서도 명문장가로 꼽혔다.

선생은 임종할 때 “오랑캐들도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는데 유독 우리 조선만 중국을 황제의 나라로 여기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고 죽은 들 무슨 뜻이 있으랴”며 자녀들에게 곡(哭)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기상을 담은 시가 나주 다시면 임제 선생 묘 앞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