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막여행②] 모래언덕 위에 낙타의 발자국을 아로새기다

2004-07-26     이분란 객원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느릿느릿

[여행스케치=인동] 드디어 낙타가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낙타는 아침부터 무엇을 먹었는지 열심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낙타도 소처럼 되새김질을 하는구나. 그저 낙타의 모습 하나 하나가 호기심 그 자체였다. 이 녀석들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멀고 먼 길을 왔던가.

낙타는 예상 밖으로 무척이나 예쁘게 생겼다. 기린처럼 목도 길고 키도 엄청 크다. 털은 말처럼 엷은 갈색 또는 짙은 흙색을 띈다. 전체적인 느낌이 상당히 세련되고 우아하다. 사막을 상징하는 동물이라 약간 거칠거나 못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아니다. 몸매도 상당히 날씬하고 속눈썹도 얼마나 긴지…. 나는 금세 낙타에게 반했다. 

낙타를 골랐다. 눈에 띄게 옅은 갈색 털을 가진 낙타였다. 이제부터 사막에서의 짝이자 내 발이 되어줄 친구이다. 낙타는 탈 때부터 쉽지가 않다. 그들의 성향 자체가 네발을 접어서 구부린 채 앉아 있는데 그 앉은 위치에서 가슴 높이에 있는 낙타 안장까지 뛰어 올라야 한다.

사막의
아무도

주저앉은 낙타가 천천히 일어설 때는 엄청나게 몸을 흔드는데 그 흔들림이 장난 아니다. 마치 로데오 경기를 하는 듯 온 몸이 좌우 앞뒤로 마구 요동을 친다. 안장 위에 얹힌 짧은 손잡이 막대를 두 손으로 꽉 잡고 몸의 중심을 뒤로 젖히며 자연스럽게 낙타의 움직임을 타면 되는데 지레 떨어질까 봐 겁을 먹고 엄마야~ 소리를 지르게 된다. 그러다가 완전히 일어서고 나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 마치 로데오 게임에서 이긴 듯.

이 느린 짐승을 타고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미리 걱정한 건 완벽한 나의 실수였다. 느리지만 일정한 템포로 이동하는 낙타에 몸을 의지한 채 흔들흔들 가다 보니 오히려 졸음이  쏟아진다. 낙타는 생각보다 너무 얌전하고 온순하다. 20여 마리가 나란히 줄을 지어 한 줄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말처럼 뛰어가려니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달리고 싶어도 달려갈 성질의 동물이 아니다. 괜히 힘차게 발길질을 해 보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가끔 몰이꾼들의 호통과 채찍에는 속도를 내는 듯하다. 특별히 뛰어다니는 놈이 없다. 오히려 변화 없는 속도감에 이렇게 무료하고 심심할 수가 없다.

20년
야영할

여기저기에서 뛰어보라고 발길질에 채찍을 휘두르는 친구도 있다. 아마 이들에겐 사파리 여행의 안전을 위해서 이렇게 이동하도록 훈련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더운 날씨에 힘든 건 사람뿐만 아니라 낙타도 마찬가지인 보다. 낙타를 통솔하던 대장이 쉬어가자며 멀리 나무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몰이꾼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나뭇가지를 한아름 해와 요리를 한다.

그들의 식습관대로 쨔이 (인도식 밀크홍차)부터 끓여 나온다. 우리가 식사 전에 물을 마시듯 그들은 차부터 마셨다. 오히려 목이 마르다고 생수를 들이키는 것 보다는 이 끓인 차 한 잔이 갈증 해소에는 더 효과적이었다. 사람들은 능숙했다. 불을 지피는 사람, 튀겨내는 사람, 밀가루 반죽을 하는 사람, 뭔가를 휘저으며 끓이는 사람.

드디어 인도의 주 요리인 그 유명한 짜파티(으깬 밀가루 반죽을 전을 부치듯 얇게 펴서 구운 빵) 몇 장과 몇 가지 야채를 볶아 조린 걸쭉한 커리(curry)가 접시 한 장에 담아져 나온다. 근데 수저나 포크가 없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며 눈을 맞추었더니 웃기만 한다. 그냥 인디언 스타일대로 손으로 먹으라는 것이다.

더위와

밥을 먹었으니 서둘러 떠나는가 싶었는데 모두들 털썩 눕더니 낮잠을 잔다. 햇빛이 강한 오후에는 이렇게 음식을 해 먹고 낮잠을 자면서 쉬엄쉬엄 놀다 가는 것이다. 충분히 쉰 덕분인지 3시간을 쉬지 않고 이동했다. 오래 타고 보니 몸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드디어 오랫동안 '사막' 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속에 상상해 오던 그 모래 언덕 (sand dune)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여기저기에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부드러운 모래를 깔고 앉아 바라보는 사막의 일몰은 정말 예술이다.  

아름다운

완전히 해가 저물고 나서야 낙타에서 내려왔다. 우리의 컨디션을 아는지 몰이꾼들은 모래 바닥을 정리하더니 매트리스를 깔끔하게 깔아 놓는다. 모래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매트리스 없이 모래 위에 벌렁 누웠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다. 이내 몰이꾼이 나를 흔들며 밤에는 추워서 안 된다고 얼른 매트리스로 올라가라고 한다.

어둠이 짙어 올수록 차갑게 식어가는 모래 바닥을 보니 닥쳐올 추위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들의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정성에 오늘밤 사막에서의 첫 야영이 결코 추울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