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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8월호
고구마와 무를 서리해 먹던 벗들이 그립습니다
고구마와 무를 서리해 먹던 벗들이 그립습니다
  • 박상대
  • 승인 2014.11.10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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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전북] 벗이여, 가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확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가을날 저는 호남평야의 한복판을 걷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벼들이 서로 이파리를 부딪치며 내는 바스락 소리가 정겹게 들렸습니다.

노랗게 익어가는 낟알은 토실하게 여물었고, 이삭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들판 가운데 드문드문 새를 쫓는 허수아비들이 서있고, 논밭을 가로질러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줄이 쳐져 있더군요. 여기저기 빈 깡통이 매달려 있기도 했습니다. 고구마, 콩, 무 등이 자라고 있는 밭을 볼 때는 옛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답니다. 

새들을 쫓기 위한 농부들의 설치는 오랜 세월동안 보아온 풍경입니다. 시골에서 살던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행을 할 때마다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먼 옛날 우리들이 경험한 추억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대도 기억할 겁니다. 하굣길에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의 밭에서 고구마나 무를 서리해 먹던 일을! 막 캐낸 고구마와 무를 잔디에다 쓱싹 문질러서 흙을 털어내고 우걱우걱 씹어 먹던 고구마와 무의 달콤한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며칠 뒤 밭주인이 길목을 지키고 서서 범인을 확인할라치면 우리는 너나  없이 절대로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지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못된 손버릇이고 비양심적인 일이었지만 그 시절에는 참으로 스릴 있는 일이고, 행복을 만끽한 순간이었지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들판을 걸으면서 옛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함께 고구마나 무를 서리해서 나눠 먹었던 소년들, 망을 봐주었던 소녀들이 생각나는 여행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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