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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나주 밀레날레 마을
나주 밀레날레 마을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7.05.25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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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야그보따리'가 미술로
나주목의 객사 정청, 금성관.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나주] 전주와 함께 전라도의 중심이었던 나주는 오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아쉽게도 지금 나주목이라 불리며 오랫동안 지역 행정과 지방 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목사고을은 문화재 발굴 및 복원을 하느라 기존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비우는 중이다.

나주읍성권 복원을 위한 마을의 변신은 반길 일이지만, 나주를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어쩐지 조금 아쉬움을 남길 수 있는 중간과정. 비워지고 방치된 그 공간을 나주를 풀어내는 마을미술이 잠시 점거했다.

고샅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미술
금성교를 지나 나주 읍성권의 중심으로 걸어가면 골목 끝에 금성관이 보인다. 그 길에 금성관보다 먼저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물이 있다. 언뜻 보기에도 오래된 건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천 개가 넘는 반투명한 바구니로 감싸져 있어 햇빛에 반짝인다.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이 건물에 호기심이 동해 사람들은 샛길로 빠지듯 이곳으로 들어간다. 이 건물은 밀레날레마을미술 Ⅰ관이자 인포메이션에 해당하는 건물.

최현주 나주 밀레날레 마을미술 감독은 “나주의 독특한 이야기를 미술로 풀어낸 작품들이 마을 곳곳에 퍼져 있다”며 “한강을 닮은 나주천, 마을 중심부를 지나 나주읍성 서성문, 금성관 뒤편까지… 고샅길을 걸으며 마을미술을 만나보라”고 소개했다.

Info 밀레날레 마을미술 Ⅰ관 인포메이션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1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을 촬영하기도 했던 나주향고. 사진 / 김샛별 기자
나주목문화관 내부. 사진 / 김샛별 기자

나주의 야그가 징검징검 숨어 있는 서부길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길은 서부길과 동부길로 나누어져 있는데, 읍내를 크게 한 바퀴 도는 동부길은 자전거로 도는 것이 좋고, 서부길(약 3km)은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기 좋은 거리이다.

서부길은 조선시대 서부면에 해당하는 길로, 다른 지역 향교보다 훨씬 규모가 큰 나주 향교를 중심으로 조선 향리들이 살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효숙 나주 문화관광해설사는 “서부길은 좁고 작은 골목골목에 붙은 이름들의 연원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고 설명했다.

조상 대대로 명당터로 소문난 명당거리, 곡식 창고가 있었던 사창거리, 어깨가 닿을 정도로 비좁은 골목이라 정분이 났다는 연애고샅길, 마을의 가장 큰 대로라 함께 모여 보리타작을 했다는 보리마당거리… 이 골목길들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럽게 금성관, 정수루, 목사내아 금학헌, 최부와 양 부자 집터, 서성문, 나주향교, 이로당, 향청터, 남파 고택 등을 만날 수 있다.

고려초기에 축조된 나주읍성은 일제가 훼손해 북문터에 기초석만 남아 있지만, 서성문은 복원을 마친 상태. 나주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 <군도>가 서성문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금성관에서 서성문까지 고샅길을 걷다 지칠 것을 알았는지 관광안내소와 주막 그리고 벤치가 자리한다.

벤치의 한 켠에는 나주의 고지도가 청동으로 표현되어 있다. 옛 마을을 만져보며 천천히 지금의 마을풍경을 감상케 하는 <시간벤치-나주에 앉아, 보다> 작품이다.

벤치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배꽃 향기를 모으다>가 눈에 띈다. 문영주 마을미술 프로젝트 주민회장은 “마을 주민들이 작가가 준비해준 배꽃 모양의 도자기에 저마다 열심히 채색한 결과물”이라며 “주민들이 함께 만든 이 작품은 어떤 계절에 와도 나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배꽃 향기를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을 안에 있는 총 4개의 시간벤치는 각각 600년 된 나무들 아래와 정수루 앞에 있어 고샅길을 걷다 지칠 때쯤 앉아 쉬기 좋다. 그 배치가 마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미술을 짐작케 한다.

Tip
동부길은 조선시대 동부면에 해당하는 길로, 주로 일제강점기를 지나 근현대사를 만날 수 있다. (구)금남금융조합~(구)나주잠사~금성교~(구)나주경찰서~5·18민중항쟁과 무기고~전라우영터~(구)나주역~(구)화남산업과 나주곰탕~나주 오일장~북망문~향토음식전수관(구.불로주조장)이 코스이다.

약 5km 정도로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금남동 주민센터 뒤에는 동부길을 둘러볼 때 이용하면 좋은 자전거 대여기가 설치되어 있다.

나주곰탕에 관한 이모저모를 알려주고, 도예공방으로도 활용 가능한 유영대의 <나주곰탕뭐시기> 내부. 사진 / 김샛별 기자
자동연주 그랜드피아노가 지나는 이들을 붙들어 앉힌다. 전종철의 <사색의 향기> 작품. 사진 / 김샛별 기자

나주의 재해석
고샅길을 따라 걸어 다시 마을광장에 도착한다. 곰탕골목 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 피아노와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 그 정체가 궁금해 안으로 발길을 들어서면 <사색의 둥지>라는 팻말과 함께 의자가 놓여 있다. 연주자 없이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 선율에 호기심이 동한다.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낡은 교회 건물은 천연염색이 유명한 나주의 특성을 반영하는 쪽빛 타일로 조금씩 물들어 있고, 건물 벽면의 커다란 영상에 사람들이 직접 올리는 다양한 나주의 풍경과 인물들이 재생된다.

‘나주’ 하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나주곰탕, 전라도의 방언 ‘거시기’를 작품화 한 공방으로 활용 가능한 <나주곰탕머시기>와 어떤 물건들을 교환, 판매할 수 있는 그야말로 ‘거시기’를 파는 <거시기공방>이 유머러스하다.

관아 복원 예정지로 텅 비어 주차장으로만 활용되던 공간에는 나주향교를 중심으로 유서 깊은 학구적 도시인 나주의 정신이 이어지길 바라는 <매일정원도서관>이 있다. 겨울에야 완성된 이 이동식 도서관에 심어둔 등나무는 아직 피지 않았지만 한여름, 우거진 등나무와 빈 공간 사이 주민들이 내온 화분들로 인문과 자연, 사람이 어울리는 공간이 된 마을이 그려진다.

오가며 편하게 들러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매일정원도서관>. 사진 / 김샛별 기자
무엇이든 사고 팔고 교환할 수 있다. 그래서 <거시기가게>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우리네 이야기는 미술이 되고…
곡식세금 전국 1위, 전국 최대 규모 관아와 향교, 전국 5대 읍성, 작은 서울 등 조선시대 나주는 전라도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수탈과 주변 도시들의 발달로 나주는 이제는 오래전 역사와 문화재를 간직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천 년의 시간이 사라지지는 않는 법. 나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야그 보따리’를 풀어놓는 <우리네 야그 좀 들어보소>는 이야기의 사투리인 ‘야그’의 곳간이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는 보자기는 나주가 자랑하는 천연 염색된 보자기들이다. 이 보자기를 풀면 열쇠가 나오는데, 열쇠에 붙은 번호를 확인해 맞은편 벽의 상자를 열면 옹골지고 구수한 나주의 ‘야그들’이 들어 있다.

그 뿐 아니다. 가장 안쪽 벽면의 커다란 입술이 버튼을 누르면 나주 설화들을 들려준다. 가운데 놓인 야그 테이블에 앉아 야그를 읽거나 듣고, 또 함께 앉아 야그를 나눌 수도 있는 그야말로 ‘야그 사랑방’이다. 입과 귀가 소통하는 시끌벅적한 야그공간. 나주 우리네 이야기는 이곳에서 새로운 야그 보따리를 끝없이 만들어낸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6월호 [아트투어]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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