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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고마나루 전설을 아시나요?
고마나루 전설을 아시나요?
  • 홍리윤 기자
  • 승인 2017.09.05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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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따라 떠나는 여행 '공주 고마나루'
공주보에 오르면 금강과 고마나루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홍리윤 기자

[여행스케치=공주] 금강은 공주에선 웅진강, 부여에선 백마강으로 볼리는 등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품은 이야기도 많다. 금강에 흐르는 숱한 전설 가운데 곰의 슬픈 이야기가 있는 공주 고마나루를 찾았다.

공주터미널에서 서쪽으로 5km쯤 떨어진 웅진동에는 고마나루라 불리는 곳이 있다. 금강 변 따라 시원하게 펼쳐진 수백 그루 솔밭이 연미산을 배경으로 절경을 이룬다. 뛰어난 경치 덕에 명승 제21호로 지정된 고마나루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백제의 두 번째 수도인 웅진(공주)에서의 역사가 고마나루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금강에 흐르는 암곰의 전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이다. 공주는 곰나루라고도 불렀고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썼다. 장길수 국사편찬위원회 지방자료조사위원은 “곰과 관련된 이러한 명칭들은 고마나루의 암곰에 관한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설명했다.

한 나무꾼이 연미산(燕尾山)에 나무하러 왔다가 그곳에 사는 암곰에서 잡혀갔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곰은 나무꾼을 남편으로 삼고 함께 몇 년을 살았다. 그렇게 두 명의 자식까지 두었으나 인간 세상이 그리웠던 남자는 틈을 타 도망치고 만다. 뒤늦게 알고 쫓아간 곰이 돌아오라고 애원하며 소리쳤지만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노를 저어 강을 건넜다. 이를 비관한 곰은 두 자식과 함께 금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고마나루 설화는 백제가 곰을 신성시하며 종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고마나루 강변에는 곰사당, 웅진단 터 등 전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고마나루의 곰사당은 조선 시대 향교의 대성전을 본 떠 아담하게 만들었다. 사진 홍리윤 기자

곰사당과 돌곰 이야기

고마나루 답사의 첫 목적지는 공주보와 잇닿은 솔밭 끝자락에 위치한 곰사당이다. 마을 사람들은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암곰이 강에 빠져 죽은 뒤 인근 강가에 풍랑이 자주 일어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길수 위원은 “공식 명칭은 웅신단인데 보통 곰사당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1972년에 이 자리에서 백제 유물로 추정되는 돌곰 상이 발견되었는데 당시에는 곰사당이 없었다고 한다. 전에는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근래에 들어 지은 것이다.

조선 시대 향교의 대성전을 본 떠 아담하게 지은 곰사당은 낮은 담을 두른 채 그윽한 모습. 담벼락 중앙의 문으로 들어서면 곰사당이 있다. 그 앞뜰에는 '웅신단비'라는 비석 하나가 서 있는데 ‘고마나루 전설’이 새겨져 있어 귀로 들은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곰사당 앞뜰의 웅신단비에는 고마나루 전설이 새겨져 있다. 사진 홍리윤 기자
1972년에 출토된 돌곰 상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있고 이를 본 떠 만든 것을 곰사당 안에 모셨다. 사진 홍리윤 기자

곰사당 안으로 들어서면 돌곰 상을 마주하게 된다. 출토된 돌곰 상은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있고 이를 본 떠 만든 것을 사당 안에 모셨다. 몸 뒤쪽을 웅크린 채 앞다리는 곧추세우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데 단순한 형태의 소박한 모습이다.

장 위원은 “곰나루 전설은 백제가 공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그들이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며 “백제는 북쪽 만주 지역에서 내려온 부여족이 세운 나라인데 이 종족은 곰을 토템으로 신성시 여겼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는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국호를 남부여라 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솔 내음 따라 이야기 길

곰사당을 나오면 한갓진 언덕을 따라 솔밭이 길게 펼쳐져 사색을 즐기며 걷기 좋다. 언덕 따라 이어진 솔밭을 거닐다 보면 띄엄띄엄 서 있는 또 다른 곰상들을 볼 수 있다. 어린 두 자식을 안고 있는 어미 곰부터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는 듯한 곰까지, 소나무 사이사이 곰나루의 슬픈 사연이 서려 있다.

고마나루 솔밭을 걷다 보면 또 다른 돌곰 상들을 만나게 된다. 사진 홍리윤 기자

곰사당과 가까운 곳에 옛 고마나루 터가 있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이자 웅진 백제 시대 가장 큰 나루터의 이름이기도 했다. 나루 구실을 잃은 지는 이미 오래지만, 웅진 백제 시대에는 중국, 일본, 고구려 등과 문물을 교역하던 국제 항구로 이용되었다.

솔 내음따라 쭉 걷다 보면 솔밭 끝자락에서 연미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웅진수신지단(熊津水神之檀)이라 새겨진 비와 제단이 있는 이곳은 ‘웅진단 터’.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국가에서 금강의 수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이다. 장길수 위원은 “2011년 발굴 조사 때 제사에 쓰였던 제기와 기와, 전돌 등이 출토됐다”고 설명했다.

옛 고마나루 터. 나루 구실을 잃은 지는 이미 오래지만, 웅진 백제 시대에는 국제 항구로 이용되었다. 사진 홍리윤 기자
웅진단 터의 모습. 백제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가에서 금강의 수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이다. 사진 홍리윤 기자

공주보를 건너 이야기의 끝

고마나루 여행길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공주보’다. 장 위원은 “고마나루를 찾는 사람들은 보통 솔밭이 있는 언덕 쪽만 둘러본다”며 “곰이 빠져 죽었다는 '강 건너 언덕'까지 봐야 고마나루를 제대로 봤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주보를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에 닿는다. 고목이 드리운 그늘에 서자 솔밭에서 봤던 것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반대편에서는 소나무 사이를 걷는 일에 집중하며 강 너머 연미산을 바라봤다면 이곳에서는 금강 그 자체가 시야에 꽉 차도록 들어온다.

강을 건너기 위해 쉬지 않고 노를 저어야 했을 나무꾼과 솔숲 사이로 사라진 남편을 원망하며 몸을 던졌을 곰. 금강은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채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 언덕에서 바라본 금강과 고마나루 전경. 솔밭에서 봤던 것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홍리윤 기자

Info 고마나루

주소 충남 공주시 백제큰길 2045 일대

Tip 고마나루 가는 법

공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101번이나 125번을 타고 문예회관에 내린 후 도보로 1km 이동한다. 시내 곳곳에 설치된 공공자전거를 이용해도 좋다. 솔밭 서쪽으로 대형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공주 고마나루 주변 여행 정보

이학식당

1954년부터 국밥을 말아내던 것이 지금껏 이어져 오는 곳. 대표메뉴는 공주 향토 음식인 ‘장터국밥’으로 얼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돼지 앞다리에 붙어 나오는 부위인 ‘쫄떼기’를 넣어 끓인 찌개도 별미다.

메뉴 공주국밥 8000원, 쫄떼기(소) 2만원

주소 충남 공주시 가구점길 6

 

유가네칼국수

조미료 없이 자연산 밀복과 가다랑어로 육수를 낸다. 단골메뉴는 살아있는 활바지락과 싱싱한 채소를 넣어 끓인 복·해물 칼국수. 시원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끝내준다.

메뉴 복·해물 칼국수 7000원, 수육 1만5000원

주소 충남 공주시 원댕이길 8

 

고마나루돌쌈밥

공주 택시기사가 추천한 맛집. 무공해 채소와 맛깔스러운 밑반찬으로 쌈밥을 차려내는데 한 끼 푸짐하게 즐기고 싶을 때 제격이다.

메뉴 주물럭돌쌈밥 1만6000원, 불고기쌈정식 1만3000원

주소 충남 공주시 백미고을길 5-9

 

부자떡집

1982년 공주 산성시장 모퉁이에 개업해 대박을 내면서 공주의 명물이 됐다. 공주 향토 떡인 인절미와 쫄깃한 부자떡이 특히 유명하다. 홈페이지에서도 주문 가능.

메뉴 흑임자인절미 3500원, 부자떡 8000원

주소 충남 공주시 용당길 11

www.bujaddu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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