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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청정도시에서 만나는 ‘단풍의 전설’
청정도시에서 만나는 ‘단풍의 전설’
  • 홍원문 객원기자
  • 승인 2017.10.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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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가을 감성 여행지 3선
비수구미 마을 트레킹을 하는 도중 볼 수 있는 파로호의 가을 풍경. 사진 홍원문 사진작가

[여행스케치=화천]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봄을 상징하는 벚꽃이 제주를 시작으로 남녁에서 시작된다면 가을 단풍은 북녘에서 제일먼저 소식을 전해준다. 국내에서 제일 춥다는 철원과 함께 가장 추운 도시로 알려진 화천. 공장 하나 없는 청정도시로 단풍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오지 여행 일번지, 비수구미계곡
아흔아홉구비 해산령 정상에서 비수구미마을까지 내려가는 약 6km 트레킹 코스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단풍을 만나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흐르는 계곡물은 마셔도 좋을 정도인 청정 1급수. 그 맑은 물을 마신 오방색 단풍들은 앞을 다투어 곱게 물들어 간다.

계곡마저 붉게 물들은 비수구미에서 맛난 산채비빔밥으로 가을 맛을 만끽하고 평화의댐으로 길을 잇는다. 파로호를 옆에 두고 가는 길은 ‘한국의 차마고도’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에 단풍으로 수놓인 길이 이어진다.

비수구미 계곡의 맑은 물을 마신 단풍들이 오방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사진 홍원문 사진작가

파로호 상류에 위치한 이 길은 이른 아침에 찾으면 더욱 좋다. 물안개가 피어나며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되는 가운데, 뺨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에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그 와중에 이른 시간부터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을 마주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길고 긴 여운. 하지만 낚싯대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강태공의 기색을 보니 하루 종일 끈질기게 기다릴 태세다. 물 위에서 춤을 추는 물안개와 강태공의 여유로움이 가을을 닮았다. 사진 여행의 묘미는 이런 풍경과 만날 때 더욱 감성이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평화의댐에서 다시 해산령으로 오르는 길에서는 자작나무의 고운 자태가 더해지며 울긋불긋한 산하를 만나게 된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해산의 단풍은 단연코 절정이다. 설악산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딱 질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해산령을 내려와 풍산리 마을에 다다르면 이제는 노란 은행나무 숲길이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460번 지방도를 따라 이어지는 은행나무 길은 약 1km 정도로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나무의 절경이 발길을 잡는다. 햇살이 퍼지면서 기온이 올라가지만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이 마음을 식혀준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을 볼 때면 “와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Tip 비수구미 입구 가는 법
화천읍에서 평화의댐으로 길을 잡는다. 구부렁대는 산길을 오르면 해산터널이 나오는데, 터널이 통과하자마자 우측에 주차할 공간과 비수구미 입구가 있다.

화천 산소길에도 번져가는 가을 풍경
풍산마을에서 처녀고개를 넘어 딴산유원지를 경유하면 북한강변을 따라 산소길이 시작된다. 화천읍으로 향하는 길목에 김훈 작가가 작명하였다는 ‘숲으로 다리’가 나타나고, 다리가 이어주는 마을 살랑골에도 가을이 담겼다. 산을 넘어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보석같이 빛이 나고, 잔잔한 물속에도 가을빛이 역력하다.

풍산마을에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의 향연. 사진 홍원문 사진작가

산소길을 따라 가는 산책도 참 낭만적이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서 따사로운 햇살이 참 좋다. 억새풀도 곱게 피어나는 북한강변의 산소길은 이름처럼 마구 산소를 뿜어내는 듯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 이 산소길이 청정도시 화천을 대변하는 장소인 것 같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느티나무 숲 속 기찻길에도 수북이 낙엽이 쌓이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며 연인들의 속삭임이 들릴 것 같은 장소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이런 곳에서 프러포즈를 하면 200% 성공할 듯한 분위기다.

산천어 축제가 열리는 ‘화천천’에 자리한 숲에도 가을이 무르익으며 축제를 준비하는 듯했다. 다가올 2018년 산천어 축제는 1월 8일부터 시작한다. 축제장 주변을 서성이다보니 지난 축제의 감흥이 되살아나며, 약 두 달 남은 산천어 축제가 벌써 그리워진다.

Info 딴산유원지
주소 강원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1313-3

아를테마수목원에는 여러 나무들이 종별로 심겨져 있어 더 아름답다. 사진 홍원문 사진작가

사랑나무 아를테마공원에서 연인을 만나다
화천을 빠져나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사랑나무가 있는 아를테마수목원을 찾았다. 다양한 나무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자작나무 길에서 깨알이 쏟아지는 연인들도 마주쳤다. 그들은 “사랑나무를 찾아왔다가 자작나무 길이 너무 아름다워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고 했다. 파란 하늘과 노란 자작나무 잎새들. 이 순간만은 오로지 두 연인을 위한 길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감동을 주는 마력이 있는 나무, 스스로에게 작위를 부여해 ‘자작’이라 이름 붙은 것일까? 자작나무 길 외에도 아를테마수목원에는 메타세콰이어 길, 측백나무 길, 단풍나무 길 등이 있어 북한강의 속삭임을 들으며 연인이나 친구들과 산책하기 좋다.

누군가의 사랑을 확인시켜줄 반지교가 그림 같이 눈에 들어오면 사랑나무도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나무 주변 풍경은 가을이면서 겨울도 함께 보인다. 사랑나무는 수몰된 거례리 마을의 흔적이다. 1965년 춘천댐 준공으로 인공호수 춘천호가 생겨났고, 화전발전소 아래까지 바다와 같은 호수를 만들어놓았다. 수몰되기 전 거례 마을은 약 200호 이상이 드넓은 들판에서 풍요롭게 살았다 한다.

거례 마을에는 화천에서 규모가 꽤나 큰 교회가 있었다. 화천 지역의 어느 학교에도 없던 풍금이 있었을 정도니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교회 위 언덕에 있던 느티나무가 바로 사랑나무다. 교회를 비롯한 마을 전체가 수몰되니 마을사람들은 뿔뿔이 헤어지고, 일부는 지금의 거례리에 새 둥지를 틀었다. 느티나무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고, 하천부지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쉴 수 있는 그늘을 내어주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으로 하천부지에 있던 농지를 모두 회수하고 지금처럼 공원이 조성된 것이다.

수몰된 거례리 마을의 흔적인 사랑나무. 사진 홍원문 사진작가
사랑나무는 마을 주민들에게 그늘을 제공했던 고마운 나무다. 사진 홍원문 사진작가

공원화되면서 화천군에서는 주변을 재정비했고, 느티나무 주변에 꽃들을 심고 가꾸었다. 북한강변 호수와 어우러진 느티나무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들판 강변에 홀로 서 있는 느티나무를 ‘왕따나무’라고 불렀다. 수몰된 마을 이야기를 전해주는 나무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그래서 어느 사진작가가 사랑을 전파하던 교회가 있었고, 마을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정황에 근거해 새로이 ‘사랑나무’라 불렀다. 블로그와 SNS 등 사진사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의 새 앨범 수록곡 ‘귀를 기울이면’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화천의 가을은 산골 사람들의 순수함과 겸손을 닮은 듯하다.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순수하게 가을을 빚어 놓는다. 화천 사람들의 마음 색도 이런 색이 아닐까. 고운 단풍과 고운 자작나무처럼 영원히 질리지 않을 그런 색. 짙어가는 가을과 조급히 찾아오는 겨울 사이를 오고가는 화천 여행은 행복 바이러스가 번지는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준다. 올 가을, 그 길에서 화천의 낭만을 즐긴다.

Info 아를테마수목원
주소 강원 화천군 하남면 거례리 514-1
※주차비 무료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1월호 [slow travel]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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