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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천사의 사랑과 희망을 담다
천사의 사랑과 희망을 담다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7.10.13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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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매곡동 우영마을

[여행스케치=순천] 옛 순천부 읍성 터로 1000년 역사의 중심지였던 전남 순천의 원도심 지역인 ‘문화의 거리’. 700년 된 동네 골목길에는 4대, 5대를 걸쳐 살았던 100년 가까이 된 기와지붕이 살갑게 반기는 모습이다.

문화의 거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매곡동 우영마을에는 ‘매산등 천사의 약속’이라는 이름의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시도된 곳이다.

700년이란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골목길로 들어선다. 1920년대 지어진 한옥 기와지붕과 굴뚝 위의 고양이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적색의 벽돌담을 따라 대문 옆으로 부부 얼굴의 문패도 특이하다. 전남 순천 향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서문 성곽골목의 또 다른 이름은 '700년 골목길’이다. 

천천희(天千喜) 걸어가는 근현대 역사길 ‘천길’

100여 m의 700년 골목길을 따라나서면 근현대 역사길인 ‘천길’이 나온다. 서문의 성곽 복구  공사가 한창인 천길을 따라 매산여자고등학교 방향으로 향하면 100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매산등에 정착하면서 세운 근대적 병원, 학교, 교회 시설 등의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한옥 예술 공간인 ‘since 1920 기억의 집'에서 만난 이강숙 디투문화공동체 관장은 “천길을 따라 올라가면 매산등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공공미술 6점을 만날 수 있다”며 “매곡동의 자랑인 홍매화, 100여 년 전 선교사들의 역사, 그리고 효자마을의 효자문 등의 고유 문화자원을 토대로 마을미술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매산등 천사의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문화 소외 마을의 환경을 개선하고, 지역주민과 학생들에게 소통과 희망을 선사하며,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는 취지에서 지난 2016년에 완성됐다.

순천의료원이 있는 의료원 공원과 마주하는 곳에는 매산등 기독교 성지의 하나인 조지와츠 기념관이 있다. 1925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기념관은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제127호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지난 1962년 순천 수해로 이 지역에 결핵 환자가 급증하자 1963년부터 결핵 환자를 위한 진료소를 개설하여 현재까지 진료소로 활용되고 있다. 1층은 기독진료소, 2층은 한국 박물관 및 사무실, 3층은 침실과 거실이 있는 주택으로 꾸며져 있다. 

‘인생의 봄’을 알리는 홍매화, 담벼락에 담다
매산등 기독교 성지는 조지와츠 기념관을 비롯해 매산중학교 내의 매산관, 프레스톤 선교사 가옥, 코잇 선교사 가옥, 순천 선교부 외국인 어린이 학교, 순천식 기독교 역사박물관 등이다.  

매산중학교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효자마을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이곳에서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인 우영마을 ‘봄날은 온다’를 만날 수 있다.

이강숙 관장은 “순천은 홍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봄을 알리는 홍매화를 담벼락에 아트 타일벽화로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에게 인생의 봄이 온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위로 올라가면 또 하나의 공공미술인 ‘둠벙’이 나온다. 둠벙은 매산길과 우영마을 사이에 농수로 쓰려고 만들어 둔 곳이다. 복개로가 놓이면서 사라진 둠벙 이야기에 착안해 자연석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마을의 소통과 쉼터 역할을 할 수 있게 조성했다.

효자마을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효자문이 있다. 화평부원군 20세손 김종석은 부친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수혈하는 등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호남 사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 후에 조정에 효자문을 건립하게 되는데, 이를 착안해 효자손이라는 작품이 탄생했다. 검지에 상처를 감싸고 있는 조형물은 마을의 자투리 공간을 정원으로 만들어 김종석을 기리는 효자문 앞쪽에 설치됐다. 

효자마을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는 마을이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인상을 받았다. 이는 하루에 2시간 정도 마을을 다니며 휴지를 줍는 ‘호랑이단’의 활약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처음 만났던 돌담길이 나온다.

매산등 담벼락에 천사(1004)들의 희망을 담다
순천 매산여고 앞 시멘트 담장에는 천사의 자전거와 함께 1004개의 세라믹 접시가 부착되어 있다. 담장 위의 자전거는 선교사들을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로 당시에는 마냥 신기했다고 한다. 이런 선교사의 자전거를 예술적으로 재현하고 조명을 달아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파란 하늘과 자전거 그리고 1004개의 세라믹 접시에는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질문에 이강숙 관장은 “선교사가 처음 들여온 자전거 바퀴를 착안해 마을주민과 매산중, 매산여고, 금당중학교 1004명의 학생이 공동으로 작업한 공공미술”이라며 “세라믹 접시에는 희망이 담긴 그림을 그려 매산등 언덕에서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매산여고를 지나면 순천 기독교 역사박물관과 타일벽화길이 나온다. 타일벽화길은 1912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된 존 크레인 목사의 부인 플로렌스 여사가 순천에 머물면서 한국의 들꽃에 얽힌 전설을 채집하며 1931년 발간한 ‘한국의 들꽃과 전설’에서 발췌한 것이다. 벽화길에는 무궁화를 비롯해 제비꽃, 창포, 채송화, 고추, 인동꽃 등 우리의 들꽃들이 소개되어 있다.

타일벽화길이 끝나는 지점에 거대한 가방이 하나 놓여 있다. 바로 ‘천사의 가방’이다. 이 작품은 무려 4번의 공간 이동(?)을 하는 시련을 겪었다. 선교사들이 순천에 가지고 온 철재 가방을 재해석한 천사의 가방은 최근에 옮긴 장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작업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관장은 “순천에 병원이 들어섰던 당시의 진료 모습과 영상들을 역사 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연말까지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해 작품의 연장 선상으로 매산등의 랜드마크 기능과 함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 평화로운 동네 임청정, 1박 2일 촬영지
다시 순천 문화의 거리로 빠져나온다. 남문터에서 시작되는 자연 역사길은 박항래상, 팔마비를 지나 문화의 거리로 들어서는 코스이다.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갤러리, 공방, 문화센터, 체험학습, 공연장, 작은 도서관 등이 만들어진 문화의 거리에는 체험문화를 할 수 있는 공방이 30여 곳이 있다. 

한옥글방과 서문터비를 지나 순천향교로 이어지는 자연 역사길에는 칠보공예 두드림, 카페 순수다, 골목책방 그냥과 보통, 문화예술창작소 풍선껌 등을 만날 수 있다. 순천향교를 빠져나오는 골목길을 따라 나오면 1박 2일에서 소개된 ‘엄청 평화로운 동네’임청정과 임청대가 나온다. 그 옆으로 마을 주민들의 소공원으로 자리한 임청정원과 옥천서원을 따라 옥천길로 내려오면 자연역사길의 시작점인 남문터를 만나게 된다.  

“아직도 2% 부족하고 서툴지만, 지역의 미술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스스로 일궈내는 문화의 거리이기에 더욱 값지다”는 이강숙 관장. 그의 말처럼 공공미술이 마을에 예술적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의 문화를 재생시키고, 지역주민과 이곳을 찾는 여행자 모두가 문화예술을 통해 마음이 풍족해지는 여행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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