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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인류의 미래를 뒤집은, 다빈치 뮤지엄
인류의 미래를 뒤집은, 다빈치 뮤지엄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7.10.30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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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유일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박물관

 

[여행스케치=제주] 세계는 지금 인공 지능 로봇 개발에 열풍이다. 바둑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알파고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의료계 인공지능 의사인 왓슨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인류 최초로 로봇을 생각해 낸 사람은 누구일까? 그 궁금증을 제주 다빈치 뮤지엄에서 풀 수 있었다.

500년 전 로봇을 구상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해부학 연구와 공방의 도제공으로 일하면서 인체의 움직임을 완벽한 지렛대와 운동장치라는 원리를 확신하고 인류 최초로 로봇을 스케치한 인물이다. 

미래에서 온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빈치 뮤지엄의 이세미 도슨트(전시해설사)는 “많은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미래에서 온 과학자라 부르는 이유는 바로 로봇을 설계했기 때문”이라며 “그는 인간과 같은 관절 기능을 통해 앉거나 구부리고 머리를 움직이는 로봇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실제 다 빈치가 스케치한 로봇은 무장한 중세 기사의 모습처럼 보였다. 다빈치 뮤지엄 전시실에는 그가 구상한 도안대로 실제 모형을 제작해 전시하고 있는데, 인간의 관절 부위을 밧줄과 도르래로 연결해 작동하게 되어 있다. 

20세인 1472년 예술가로의 재능을 인정받은 다빈치는 비행과 잠수 도구는 물론 군사 무기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활동을 해 왔다. 위대한 천재 문명 디자이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놀라운 과학과 예술의 세계를 제주 다빈치 뮤지엄에서 만났다.

다빈치는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인간도 날개를 달면 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인간의 피부 조직과 비슷한 박쥐의 날개를 고안했다. 그러나 인간의 팔은 새처럼 강한 팔의 힘이 없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빈치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새의 몸체에 사람이 들어가서 조정을 할 수 있는 글라이더를 고안해 낸다. 가죽 안장에 비행사가 앉고, 뻥 뚫린 구멍으로 조망을 하고  오른 쪽, 왼쪽 손잡이를 통해 방향을 조정하는 기능까지 첨가했다. 

과연 다빈치는 글라이더 비행에 성공했을까? 이세미 도슨트는 “정답은 알 수가 없다. 아쉽게도 비행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기록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록상 인류 최초로 첫 비행에 성공한 사람은 1903년에 12초 동안 36m를 난 라이트 형제이다. 

500년 전 스케치한 낙하산을 실제 실험해 보니...
다빈치가 생전에 남겼던 스케치 중 낙하산을 실제로 실험한 예도 있다. 지난 2008년 스위스의 비행전문가가 낙하산을 만들었다. 이 전문가는 무려 150층 높이의 상공에서 비행을 시도했다. 결과는 비행에 성공했다. 최초의 낙하산보다 300년이나 앞선 이 스케치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실험 가능한 발명품이라는 것이 입증된 사례이다. 

글라이더를 비행하는 비행사의 강인한 체력을 위해 다빈치가 구상한 것은 인류 최초의 전신운동 기구이다. 팔, 다리는 물론 목의 근육을 풀어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전쟁을 혐오하는 평화주의자였지만, 무기를 많이 개발한 군사무기 전문가이기도 했다. 이세미 도슨트는“다 빈치가 무기를 개발한 이유는 왕과 군주로부터 지속적인 후원을 받기 위해서였다”며 “하지만, 평화주의자인 그는 자신의 무기 디자인에 결점을 집어넣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작업물을 잘 알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을 ‘다빈치코드’라고 부른다.

다빈치코드, 거울로 비춰야만 비밀 풀려
‘다빈치코드’는 해부학에 심취한 다 빈치의 그림 기록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당시에는 죽은 인간의 신체를 해부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빈치는 지하 창고에서 몰래 하거나 시체 썩는 냄새를 단축하기 위해 한 손으로는 해부하고, 한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면서 양손으로 작업을 했다.

다빈치는 글을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작성했으며, 알파벳 F나 C도 뒤집어서 쓰는 특이한 글쓰기를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것을 ‘다빈치코드’라고 말한다. 다 빈치는 수첩 형태의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아이디어가 떠 오를 때면 이런 형태의 글쓰기로 그림이나 글을 남겼다.

다빈치 기록물인 ‘다빈치코드’ 거울에 비쳐야만 정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안 까닭이다. 다빈치의 수기노트(코덱스)는 현재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각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그중 여러 쪽의 원고를 모아 책 한 권을 만들려고 했던 코덱스 해머는 미국의 빌 게이츠가 1994년 경매로 샀다.

그가 남긴 수첩을 ‘코덱스’라고 하는데, 분량이 1만5000장으로, 3만여 쪽에 이루는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기록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현재는 3/4이 분실되고, 나머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다빈치는 전쟁 시 신속하고 튼튼한 다리가 되어 여러 명이 건너갈 수 있는 아치교를 고안해 냈다. 아치교는 서로 엇갈리게 끼워 고정하는 간단한 원리인데, 쉽게 세우고, 간단하게 분해하는 장점이 있다.

최후의 만찬, 그림 속에 이야기를 덧붙인 불후의 명작
다빈치뮤지엄 2층에는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 식당에 그려진 벽화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 예술과 과학으로 완성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불후의 명작으로 일컫는 최후의 만찬에 대한 이세미 도슨트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장면이다. 이날 예수는 모두에게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한다. 

“너희들 중 누군가가 나를 로마에 팔아넘길 것이다”
다빈치는 예수의 이 한마디에 놀라는 제자의 표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그려 놓았다.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손사래를 치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욱하는 성격의 제자는 칼을 들어 누구인지를 찾고 있으며, 미래를 바라보는 제자는 그 배신자를 바라보고 있다. 

예수를 로마에 팔아넘긴 댓가로 은 30냥을 받은 제자는 얼굴빛이 어둡고, 같은 대접에 손을 뻗어 빵을 먹으며, 무리에서 벗어나 몸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바로 가롯 유다다. 이 작품에는 또 하나의 다빈치코드가 숨겨져 있다. 바로 3명씩 짝을 이루고 있으며, 창문도 3개를 그려 넣었다. 이 3의 숫자는 성부, 성자, 성모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찾아가 ‘성령의 아이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수태고지, 비현실적인 10등신의 비너스 그림 등 다양한 회화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다빈치 명화 카페 및 아치교를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존이 있다.

상식을 뒤집고, 생각을 뛰어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생각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제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Info
아시아 유일의 다 빈치 과학박물관
다빈치 뮤지엄

아시아에서 단 하나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으로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신비로운 그의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태리에서 직접 공수한 200여 점의 작품들을 테마별로 구성해 마치 현지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입장료 성인 9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7000원
도슨트(전시해설사) 운영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 간격
주소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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