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7월호
지친 심신의 평화를 위해 걷지요
지친 심신의 평화를 위해 걷지요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7.11.27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원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남원 지리산 둘레길의 전경.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남원] 늦가을 햇살은 까칠한 법이다그런데 지리산 둘레길에서 마주한 햇살은 아직 따사롭다남원시 운봉에서 주천까지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서로 웃음을 교환한다.

전국걷기연합 사람들이다. 전국에 6천명 남짓 회원이 있는데 그 가운데 몇 사람이 첫째 주말에 번개모임을 했다.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한 성균관대 김범식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고위공무원, 사업가, 회계사, 성악가, 예비역 군간부, 작가 등등. 이들은 걷기를 통해 삶에 활력을 찾은 경험자들이다.

‘굶어도 좋으니 어디든지 하루 종일 걷고 싶다’어느 재소자가 출소 후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대답했다고 한다. 그뿐이랴.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은 단 몇 분이라도 햇볕을 쬐며 단 몇 걸음이라도 스스로 걷고 싶다고 말한다.

갱년기 후유증으로 몸져누워 있던 중년 여성들이 방안에 있다 죽으나 밖에 다니다 죽으나 어차피 죽는 일이니 밖에 돌아다니다 죽겠다고 걸어 다니다 건강을 되찾았고, 마침내 걷기에 매료되어 매주 전국 각지로 걷기 여행을 다닌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들길을 걷고 있는 여행객들. 사진 / 박상대 기자

학생들과 사회단체, 직장인들에게 걷기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김범식 교수는 “매주 첫 번째 토요일마다 장거리 여행을 하는 초토회, 매달 한 번씩 하늘의 별이 뜨면 별과 함께 한강변을 걷는 한강별밤걷기회, 전국에 흩어져 있는 대한걷기협회 등 여러 동호회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거창한 구호나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걸으면서 산책을 하고,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내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혼자 걷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걸으면, 더 유익한 일들이 많다. 이런 저런 핑계로 눕고 싶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내가 못 본 것을 다른 사람 눈을 통해 볼 수도 있다.

옛 추억을 만나고 미래를 보험들다

운봉면 하천길을 따라 걷는데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이 보인다. 200여 년 전, 마을에 우환이 끊이지 않아 우울해 하던 때, 한 스님이 거친 바람이 정면으로 들어와서 그러니 마을 가운데 숲을 조성하여 거친 바람을 맞으라고 조언하여 조성한 비보림이다.

몇해전 전국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지정된 숲이다. 자작나무과에 속한 서어나무 200여 그루가 멋진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대파를 수확하고 있는 농민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서어나무 숲 뒤쪽 밭에서는 농부들이 대파를 수확하고, 그 옆 밭에서는 김장용 배추가 탐스럽게 자라고, 그 이웃 밭에서는 날씬한 무가 날씬하고 싱싱한 몸매를 뽐내고 있다.

남원 추어탕에 들어가는 무청 시레기의 최대 산지가 운봉 들녁이라고 한다. 운봉의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섭씨 2도 정도 낮고, 땅이 걸져서 무가 튼실하게 자라고 일찍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천둑을 따라 걷는데 진보라색 갈대꽃이 시선을 끌어간다. 갈대숲 사이 맑은 물에서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다. 누군가 늦가을에 하천에서 붕어랑 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여 먹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둘레길에는 산과 들과 계곡과 작은 호수가 공존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자연 속을 걷는 동안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현상만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창고를 드나든다. 내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고향 마을의 담장과 골목과 시내를 떠올리고,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과 들꽃들을 보며 옛시절을 함께 보낸 벗들과 형제들을 떠올린다

“걷기는 미래를 위한 보험이기도 합니다. 20, 30년 뒤 가족과 나의 건강과 행복,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예요. 오늘의 걷기는 만병통치약이기도 합니다.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소화불량, 불면 등 38가지 각종 병마를 예방하거나 치유하는 힐링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걷기는 생활스포츠예요. 걷기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김범식 교수는 걷는 동안 쉼 없이 걷기예찬론을 편다. 그리고 틈틈이 앞사람이나 옆사람의 걸음걸이를 관찰하고 원 포인트 레슨도 해준다.

한쪽 발이 팔자모양을 한 경우, 양쪽 발이 팔자걸음을 하는 경우, 탑돌이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한다. 팔자로 벌어진 방향을 따라 탑을 돌 듯 걸으면 된다. 양쪽 발이 다 팔자인 경우 두 방향으로 번갈아가서 원을 그리며 걷는 훈련을 하면 바로 잡힌다.

걸음걸이가 균형을 잡지 못하면 훗날 상체가 균형을 잃고 한쪽 어깻죽지가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걷는 것이 다리와 발만의 일이 아니고 팔과 손이 함께하는 행동이라는 것! 한쪽 손의 작은 습관이 몸의 균형을 깰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구룡폭포와 구룡계곡에 흠뻑 취하다

주천면 노치마을에 들어서니 참 오래된 마을이라는 기운이 풍긴다. 마을 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이끼가 짙게 덮인 돌담과 옛집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을 구경하며 골목을 기웃거리는데 노치샘이 있다. 먼 옛날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할 때 이 마을을 거쳐 갔다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어쩌면 장군도 이 샘물을 맛보고 갔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백두대산을 타는 산꾼들은 정령치와 봉화산 중간지점에 있는 노치마을을 통과하는데 이곳에서 샘물로 목을 축이고 산을 오른다.

지리산 둘레길에 있는 무인양심가게에서 막걸리를 꺼내 목을 축인 여행객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주천면은 옛날 대가야시대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는 곳인데 농기구를 비롯한 철기를 제조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주천리가 있다. 주천면에는 남원이 자랑하는 구룡폭포가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구룡폭포를 거치는 코스와 거치지 않는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한다. 구령폭포가 천지를 울리는 우렁찬 소리와 기다란 광폭을 펼쳐놓은 듯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남원시내 쪽에서 걷기에는 너무나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운봉 쪽 구룡정에서 시작하면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걷기가 어렵지 않다.   

용 아홉 마리가 살았다는 구룡폭포는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고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낸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숲길을 따라 걷다가 철계단을 3분 정도 내려가니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산길 초입에서 들리던 새소리나 바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세상의 모든 소리는 폭포수에 먹혀버리고울긋불긋 물들어가던 가을산의 매력도 폭포수에 휩쓸려 버렸다오직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우렁찬 소리를 내뿜으며 쏟아지는 물기둥뿐이다.

구룡폭포를 뒤로하고 길을 걷는다폭포수를 따라 깊은 계곡이 이어지고계곡을 따라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중장년 어른들 중에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특히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다고 말한다그런데 걷기 동호회 사람들은 한꺼번에 무리하지 않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통해 무릎통증을 고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대한걷기협회 사람들은 진정한 걷기의 전도사들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계곡을 따라 걷는데 파란 물이 걷는 여행객을 유혹한다. 발을 담갔다 가면 발이 더 편안할 것이라고, 발에도 휴식을 주라고! 그럴 것이다. 잠시라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피로가 싯겨 내려갈 것이다. 매끈한 바위에 앉아 맑은 물에 손을 담갔더니 손이 시리다.

무수히 많은 바위와 그 바위를 타고 넘는 맑고 고운 물소리들, 계곡을 채우고 있는 숲과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뭇잎들이 여행객을 붙잡는다. 걷다가 힘들면 쉬었다 가라고!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2월호 [동행취재]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