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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진귀한 풍경 속에 감춰진 역사의 아픔을 보다
진귀한 풍경 속에 감춰진 역사의 아픔을 보다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11.30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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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10코스 : 화순~모슬포
제주올레 10코스는 산방산과 송악산 등 자연 풍경과 근대 역사 이야기를 함께 볼 수 있는 걷기 좋은 길로 손꼽힌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서귀포]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4기까지 5회에 걸쳐 분출된 용암으로 형성된 화산섬 제주도. 그 중 약 100만 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서귀포 지역에는 처음 제주가 만들어지던 때의 모습이 남아있다. 제주 올레 10코스가 화산섬의 신비를 보며 걷는 아름다운 길이 되는 이유이다.

제주 올레는 아름다운 제주 바닷가와 오름, 숲 등을 지나며 힐링을 즐기는 대한민국 걷기여행 1번지. 그 중에서도 겨울철에 걷기 좋은 곳은 산방산과 송악산 등을 지나는 10코스다. 안은주 (사)제주올레 사무국장은 “제주 서남쪽 해안 풍광과 겨울에도 푸릇한 이색적인 밭 풍경을 볼 수 있는 코스”라며 “자연뿐 아니라 송악산 주변에 남은 일제시대의 역사 흔적도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제주 지질 트레일과 함께 가는 산방산 코스
제주올레 안내소가 있는 화순 금모래해변이 올레 10코스의 시작점이다. 백사장 모래에 금이 함유되어 있어 이름도 금모래해변인 화순해수욕장은 현재 대규모 공사를 하는 중. 산방산 낙석 위험 때문에 해안 쪽으로 새 도로를 건설하는 중인데, 이로 인해 10코스도 육지 방면으로 산방산을 돌아가도록 변경되어 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다시 해안을 따라 기존 코스를 운영할 예정이라 한다.

임시 우회 코스인 산방산 방면의 길은 제주 지질의 특이함을 지닌 오름을 지나는 ‘썩은다리 탐방로’로 이어진다. (사)제주올레 ‘길동무’ 신청으로 10코스를 함께 한 천혜경씨는 탐방로 주변의 흙빛 바위를 두드려보라고 권했다. 꿀밤을 때리듯 바위를 두드리자 ‘콩~콩~’하는 소리가 나면서 딱딱한 바위를 때리는 느낌이 아니다. 천혜경씨는 “화산재가 굳으며 만들어진 응회암이라는 암석”이라며 “속이 빈 바위 같은 응회암들이 쌓여 바닥을 이루고 언덕을 만든 것이 제주의 지질 특성”이라고 재미난 사실을 알게 해준다.

바위인듯, 흙인듯 헷갈리는 응회암. 제주도를 형성한 지질의 신비함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다. 사진 노규엽 기자

이어 전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산방산은 한라산과 연관된 전설을 지닌 산이다. 오랜 옛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슴을 잡으려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찌르고 말았다. 아픔에 노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졌는데, 그것이 산방산이라는 이야기다. 천혜경씨는 “실제로 조면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방산은 한라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과 같고 백록담이 패인 크기와 비슷하다”며 “이 근방에서는 산방산만 조면암인 점이 재미있는 전설을 만들게 한 것 같다”고 말한다.

지닌 이야기만큼이나 산방산은 보기에도 흡족한 경관을 지녔다. 화순 방면에서는 푸른 숲을 머리에 쓴 바위산이 보는 방향에 따라 둥글다가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니 산방산 하나에서 여러 모습이 보이는 것. 산방산을 에둘러 가는 마을길에서 제주 특유의 돌담을 지나는 재미도, 두 봉우리가 뿔처럼 솟아있는 단산이 보이는 점도 제주 올레 10코스의 매력을 더한다.

Info 제주올레 ‘길동무’란?
제주올레길을 같이 걸으며 길에서 만나는 역사, 문화, 지질, 식생 등을 설명해주는 해설사를 부르는 명칭. (사)제주올레에서 진행한 아카데미 교육을 수료한 자원봉사자들로, 아카데미 자원봉사자는 줄여서 ‘아카자봉’으로 칭한다. 

Tip 제주 올레를 걸으며 풍경과 함께 길에 담긴 지식을 함께 얻고자 한다면 제주올레 홈페이지를 이용해볼 수 있다. 무료로 진행하는 ‘아카자봉과 함께 걷기’는 정해진 날짜와 코스에 맞춰 신청하면 되고, 유료인 길동무 신청은 3인 이상 단체일 경우 1주일 전까지 신청하면 된다.

사계항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영부인이 해녀를 만났다는 내용을 담은 조형물이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사계리 바닷가에 두둥실 뜬 오형제 섬
산방산 주변을 둘러보고 나면 사계항을 만나며 드넓은 제주 남쪽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망망한 대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건 단연 형제섬. 이름 탓에 섬이 두 개인 걸로 생각되지만, 물 위로 몸을 드러낸 아주 작은 바위섬까지 합치면 오형제이다. 천혜경씨는 “크기별로 1, 2등인 두 섬 중에 작은 쪽이 형”이라고 알려주며 “형이 오래 산만큼 파도와 세월에 치여 크기가 작아진 모습이 사람 인생과 비슷하게 생각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사계항에서 송악산으로 향하는 해변 길을 걸으며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형제섬을 바라보는 게 이 구간의 포인트. 송악산에 가까워지면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화석 산지’를 지나는데, 직접 들어가 볼 수 없어 먼발치에서만 보게 해놓은 점은 아쉽다.

형제섬과 나란히 포즈를 잡은 해변의 커플. 사진 노규엽 기자

마라도 가는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송악산 입구는 총 17.5km에 이르는 제주 올레 10코스에서 걷는 거리를 단축할 수 있는 분기점이다. 송악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곳이 같은 지점이므로 송악산을 패스하면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는 것. 그러나 송악산에 올라 제주 비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릴 이는 별로 없다.

송악산을 오르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조금만 오르면 바다 전망이 탁 트이며 평평한 가파도와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까지 보인다. 초원처럼 펼쳐진 길을 걷는 송악산 둘레길은 주상절리를 보는 재미도 있는 곳. 위에서 아래로 뻗은 수직절리의 특징을 지닌 송악산 주상절리는 오르막을 오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또한 운이 좋은 날에는 가까운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을 볼 수도 있으니, 휘파람을 부는 듯한 해녀의 숨비소리가 들리면 바다를 유심히 살펴보자.

송악산을 이루고 있는 수직 주상절리는 보는 것만으로 감탄의 연속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제주 근대 역사의 아픔도 훑는다
송악산 다음 코스는 섯알오름을 넘어가는 길. 오름으로 향하기 전에 10코스를 조금만 벗어나면 섯알오름 일제동굴진지도 들어가 볼 수 있다. 일제가 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부터 전투사령실, 탄약고 등 중요 군사시설을 지하에 감추기 위해 만든 곳. 개미집처럼 얽힌 동굴은 전쟁 유적으로서의 가치와 역사 교육 현장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단, 동굴 내 조명시설이 전혀 없으니 안전하면서 구석구석을 잘 보려면 강한 빛을 지닌 후레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올레 코스로 돌아와 섯알오름을 오르면 고사포진지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섯알오름을 내려서는 자리에서 ‘4ㆍ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를 만난다. 사상의 통제를 위해 명확한 확인 절차도 없이 무차별하게 사람들을 죽였던 장소에서 제주사람들의 서러움과 슬픈 역사를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올레 코스를 잠시 벗어나 들러볼 수 있는 섯알오름 일제동굴진지. 사진 노규엽 기자
섯알오름 아래에는 제주4.3사건 때 희생됐던 영령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섯알오름 이후로 펼쳐지는 평야지대는 제주의 논밭을 보며 천천히 걷기 좋다. 군데군데 터널처럼 보이는 시설은 일제 때 비행기 격납고로 사용됐던 곳. 이처럼 섯알오름 인근은 일제강점기 말부터 한국전쟁 초기까지의 역사 유적이 확인되는 길이다.

제주의 논밭 사이를 유유히 거닐다 짧은 숲 구간을 통과하면 다시 바다를 가까이 만나며 운진항에 들어선다. 모슬포항과 붙어있는 운진항에는 하모 최남단 해수풀장이 있는 등 리조트 시설도 있다. 이곳에서 마을길을 이어나가 모슬포항 인근으로 빠져나가면 10코스의 종착점. 출발지인 화순 해수욕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바로 택시정류장이 있어 택시를 이용하기도 편하다. 요금은 1만원이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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