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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담 넘어 마음 가는 마을
담 넘어 마음 가는 마을
  • 양수복 기자
  • 승인 2017.12.19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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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 남사예담촌
'옛 담 마을' 남사예담촌의 담장길. / 사진 양수복 기자

[여행스케치=산청] 700년 선비의 고장이라는 거창한 수식어에 긴장했을까. 뻣뻣하게 남사예담촌에 들어섰다. 처마에는 대롱대롱 감들이 매달려있고 동네 충견들이 이방인을 향해 짖어댔다. 평범하고 정겨운 장면들이 이어져 금세 마음이 월담한 듯 마을에 정을 붙이고 말았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남사예담촌의 옛 담. / 사진 조아영 기자

마을에 들어서면 담과 길이 보인다. 동행한 정구화 문화관광해설사는 “마을의 길은 딱 하나”라며, 골목길은 다 집으로 연결되어있어 오가는 통로 하나로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길은 마을의 담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옛 담 마을’이라는 뜻의 마을 이름에 걸맞게 돌 하나, 흙 한 줌 허투루 놓지 않은 듯 아늑한 멋이 있는 담장은 마을 인근 사수강의 돌과 흙으로 만들어졌다. 담을 따라 걷다 유독 담장이 높고 멋있는 ‘최씨고가’와 만났다.

최씨고가의 대문. / 사진 양수복 기자

최부자댁 집이야기

“만석을 하려면 3개 군의 땅을 소유해야했대요.” 한때, 최부자댁으로 불렸던 만석꾼 최씨의 집은 시간이 흘러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117호로 지정되었다. 그만큼 옛날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볼거리가 많이 남아있다.

먼저, 최가댁에는 집 안에도 내외담이라는 담장이 둘러져 있다. 남자들이 안채를 엿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 때문에 안채와 바깥채를 잇는 줄을 당겨 사람이 왔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최씨고가의 화장실에서 시범을 보이는 정구화 해설가. / 사진 양수복 기자

최부자댁은 화장실도 독특했다. 화장실이 2층 높이에 위치한데다 문이 없었다. 인분을 퇴비로 이용했던 때라 위에서 일을 보면 곧장 아래서 재를 뿌려 퇴비를 만들었단다.

게다가 화장실이 좁아서 볼일을 보는 동시에 긴 곰방대를 입에 물 수가 없어서 문이 없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문보다 볼일을 보면서 담뱃대를 걸치는 일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약 백여 년 전부터 최씨 일가가 살았던 최씨고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면서 고택의 이야기를 더하고 있다. 게다가 여행자를 위한 민박도 운영하고 있어 하룻밤 머물며 마을의 생활을 체험해볼 수도 있다.

나무에 쌓인 시간

양반가의 높은 토담과 민가의 낮은 돌담은 겉으로 봐도 쉽게 구분이 간다. 담 하나로도 집안 사정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높은 담장 너머로 까마득하게 높이 선 나무가 보이면 그 집은 분명 유서 깊은 반가가 틀림없다.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300년 된 회화나무. / 사진 양수복 기자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인 ‘이씨고가’로 가는 길에도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300살 회화나무가 있었다. 이 회화나무는 서로 맞닿아있는 형상인데, 마치 부부가 껴안은 것처럼 보여 ‘부부 나무’라고도 불린다.

이 골목은 “마을에서 기가 가장 많이 흐르는 곳이라고 해서 양쪽에 나무를 심어서 기를 분산했다”고 한다. “여기를 지나면 좋은 기를 받을 수 있으니 얼른 지나갑시다.”라고 말하는 정 해설사를 따라 사이좋은 회화나무 사이를 지나왔다.

삼신할머니나무의 배꼽을 만지면 소원하던 아이를 점지해준다는 말이 전해져온다. / 사진 양수복 기자

이씨고가의 대문을 넘어서면 또 다른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삼신할머니나무다. 배꼽을 어루만지면 바라던 아이가 생긴다는 말이 전해져오는 수령 400년의 나무 배꼽은 이미 반질반질했다.

집을 빠져나오려는데 대문에 머리가 걸렸다. 그 때 정구화 해설사가 설명했다. “옛날에 갓을 쓰고 이 문을 오가면 고개를 숙이게 되니까 임금님이 계신 북쪽으로 인사를 드리게 됐던 거죠.” 이름 난 선비들이 많이 난 마을이라 일상 속에서도 예를 갖추는 태도가 배어있었다.

이씨 고가에서 조금 더 간 ‘하씨고가’에는 670년 된 매화나무가 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 원정공 하즙이 심은 매화나무인데, 매화를 위한 시를 한 수 남겨 원정매라고도 한다.

원정공 하즙이 심은 매화나무 '원정매'. / 사진 양수복 기자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원정매는 지금은 고사하고 말았으나, 씨와 뿌리에서 식재한 후계목 두 그루가 옆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할아버지 나무 혼자 있을 때보다 손자 나무 두 그루가 있는 것이 더 사이가 좋아 보이죠?” 정구화 해설사의 정다운 한 마디에 고사한 매화나무에 대한 아쉬움이 가신다.

효심 깊은 아들이 심었다는 감나무. / 사진 조아영 기자

하씨고가에서는 효심 깊은 감나무 한 그루도 찾아볼 수 있다. 600년이 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감나무는 원정공의 증손인 하연 선생이 어머니에게 감을 선물하기 위해 일곱 살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린 아들의 효심과 더불어 지금도 감 말리는 풍경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감의 고장, 산청의 수백 년 전 감사랑을 짐작해볼 수 있다.

충무공의 하룻밤 정취를 따라

홍매화가 눈에 띄는 이사재 전경. / 사진 양수복 기자

마을 곁의 사수강변을 걷다보면 뜰에 연분홍빛 홍매화가 눈에 띄는 이사재가 보인다. 이사재는 예담촌의 니구산과 사수강을 한 글자씩 따서 지어진 이름이며, 밀양박씨의 시조 송월당 박호원의 집이다. 이 집과 관해서는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진다.

이순신은 정유재란이 발발하고 원균의 모함으로 파직되고 권율 장군 휘하로 들어갔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영전에 인사를 올리고 길을 떠나던 중 하룻밤을 이사재에서 머무른 것. 정유년 여름날의 이 일화는 난중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이 하룻밤을 머무른 이사재. / 사진 양수복 기자

이사재까지 보았으면 다시 마을 초입으로 돌아가 마을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하는 전망대에 올라보자. 마을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남사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용 두 마리가 꼬리에 꼬리를 문 형태라고 한다. 용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지 않아 싸우지 않기 때문에 아 마을에 정이 넘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남사예담촌. 가운데에 있는 주차장이 눈에 띈다. / 사진 양수복 기자

마을을 내려다보는데 가운데에 있는 주차장이 눈에 띈다. 지금의 주차장 자리는 약 400년 전부터 빈 공간으로 남겨둔 곳이다. 정 해설사는 “남사마을은 반달처럼 생겼는데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그 공간이 차면 기울까봐 절대 건물을 짓지 않았다”고 내막을 설명한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져서 지금은 주차장으로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에 해가 될까 노심초사했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화백의 눈이 멈춘 마을

마을을 다 둘러보고도 아쉬움이 남아 대숲 사이로 따뜻한 불빛을 켜는 아트샵에 들러 마을의 풍경을 그린 책을 뒤적였다. 그 때 운이 좋게도 외출했다 들어오는 이호신 화백과 마주쳐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호신 화백은 10년 전부터 남사예담촌을 오가며 마을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작업 활동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화백의 눈으로 본 마을은 어떨까 궁금해 이화백에게 남사예담촌 여행에 좋은 계절을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대숲 사이로 보이는 이호신 화백의 아트샵. / 사진 조아영 기자

“일반적으로는 봄의 매화, 가을의 감나무를 추천하지만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어요. 바로 회화나무들이죠. 나무가 가진 기운은 뼈대에 있다고 생각해요. 잎이 다 떨어져 적나라하게 뼈대를 드러내는 겨울이야말로 남사예담촌만의 뼈대를 볼 수 있는 계절이 아닐까요?”

과연 그 말을 듣고 보니 하늘을 찌르고 선 역사 깊은 나무들의 기운이 전해져오는 듯했다. 수백 년 고목들 앞에서는 수십 년을 사는 사람이 초라해보일지라도 거슬러 올라가면 나무를 심은 사람이 분명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사람이 모여 살아 마을을 이루고 나무와 흙, 돌을 비롯한 자연물이 역사로 남는 마을, 남사예담촌의 정수는 사람과 자연을 함께 느끼는 것이었다.

Info 남사예담촌
주소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897번길 10
문의 http://namsaye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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