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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제의 영광을 모아볼 수 있는 백제문화단지
백제의 영광을 모아볼 수 있는 백제문화단지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8.01.16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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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의 역사적 고증 끝에 만들어져
백제문화단지 탐방이 시작되는 사비성 정문 정양문. 사진 /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부여] 백제가 남긴 역사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찬란한 꽃을 피웠다. 그러나 실제 유적들은 대부분 땅 속에 묻혀있는 고고학적 유물이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은 별로 없는 실정. 백제문화단지를 찾으면 이에 대한 실망감을 해소할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는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7년에 이르는 역사적 고증 끝에 만들어졌으며, 현재까지 1400년 전의 백제 모습을 가장 잘 재현해놓은 곳이다.

능사의 30m 목탑을 복원한 모습 사진 / 노규엽 기자

부여시대의 사비성과 능사뿐 아니라 서울 몽촌토성 자리로 추정되는 백제의 첫 도읍인 하남위례성까지 복원되어 있어 백제 문화의 찬란함을 느껴볼 수 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복원지를 무슨 이유로 유적과 아무 관련이 없는 장소에 만들어놓았을까? 이해문 충청남도 백제역사문화관 학예연구팀장은 그 안에 숨겨진 깊은 뜻을 밝혀준다.

“분명한 형태가 남아있지 않은 유적을 현재까지의 고증만으로 기존 자리에 복원한다면 그것이 더 문제입니다. 새로운 증거물이 발견되면 고증이 한층 더 나아갈 수 있는데, 이미 건물을 지어놓았다면 부술 수도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그런 복원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을 깊은 땅 속으로 영영 묻어버리는 일도 될 수 있죠.”

직접 걸으며 느끼는 백제 문화의 향기

백제문화단지 탐방은 사비성 정문인 정양문을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곧장 보이는 것은 백제의 부여시대 궁궐을 재현해놓은 사비궁. 흔히 봐오던 왕궁의 형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정말 제대로 복원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에 대해 이해문 팀장은 “당시 백제가 중국 당나라의 유행을 따라 왕궁을 지은 것”이라고 말하며, “그때 정립된 왕궁 디자인의 기초가 조선시대 경복궁까지 이어져왔다”고 말한다. 기억을 떠올려 통일신라부터 고려와 조선까지 건물들의 외양은 큰 틀의 차이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말에도 쉽게 수긍이 간다.

생활문화마을 전경. 사진 / 노규엽 기자

사비궁 오른편으로는 백제왕릉원(능산리고분군) 옆에서 터가 발견되어 발굴이 진행 중인 능사를 고증해 놓았다. 30m에 이르는 목탑이 특히 눈에 띄는 본 사찰은 당시 왕궁사찰의 위엄을 짐작케 한다.

능사 뒤편으로는 백제의 대표적 고분형태를 볼 수 있는 고분공원이 있고, 사비궁 반대편에는 백제시대 백성부터 귀족까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생활문화마을을 조성해 놓았다.

백제역사문화관에서도 백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이곳에서 가장 재미난 것은 하남위례성 복원지. 목책으로 경계 지은 성벽은 낯이 익지만, 볏짚으로 지붕을 얹은 왕궁이라니! 기원전에 세워졌을 위례성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만, 실제 초가지붕으로 100칸의 왕궁을 지은 모습을 보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한편, 백제문화단지 관람료에는 백제역사문화관 입장료도 포함되어 있다. 문화관 내의 유물들도 모두 복제품이지만 유구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다.
 

Info 백제문화단지
주소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374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동절기 오후 5시까지ㆍ매주 월요일 휴관)
이용요금 성인 4000원, 청소년ㆍ군경 3000원, 어린이 2000원
문의 www.bh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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