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국악의 한가운데, 남원의 소리를 찾아서
국악의 한가운데, 남원의 소리를 찾아서
  • 양수복 기자
  • 승인 2018.02.05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편제 가락 따라가는 음악 여행
송흥록 명창의 고향 '비전마을'에 세워진 그의 동상 뒤로 생가가 보인다. 사진 / 양수복 기자

[여행스케치=남원]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 두 마당이 남원을 배경으로 한다. ‘가왕’, ‘국창’으로 불리는 판소리 명창들이 줄줄이 계보를 잇고 소리 한 가락 못해도 ‘귀명창’이 되는 곳. 남원은 우리 소리의 본향이다. 

남원의 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첫 장단은 운봉에서 시작한다. 신라의 음악가 옥보고 선생이 운봉에서 거문고를 전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 후기에는 판소리 동편제 유파를 확립하고 ‘가왕’으로 불린 송흥록 명창이 운봉읍 비전마을에서 태어났다.

비전마을에는 송흥록 명창의 생가가 복원되었고, 인근에는 국악의 성지가 조성되어 있어 남원 소리의 주춧돌이 된 인물과 역사를 두루 살펴보는 소리 여행의 첫걸음을 떼어볼 수 있다. 

송흥록 명창의 생가. 사진 / 양수복 기자

가왕과 동편제의 탯자리, 비전마을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서편제와 달리, 동편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최명순 남원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이동이 쉽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섬진강을 경계로 동•서편에서 다르게 나타났던 판소리 형식을 후대에 와서 ‘제’라는 양식으로 정리한 것”이며 “송흥록 명창은 남원, 구례, 순창 등지에 흩어진 소리를 한데 모아 동편제로 확립하면서 판소리 역사의 ‘중시조’로 남았다”고 말한다.

비전마을의 송 명창 생가에는 동편제를 창시하고 진양조를 완성했으며, 메나리조를 전라도 소리의 선율에 도입한 그의 업적이 오롯이 담겨있다. 입구부터 송 명창의 동상까지의 길은 일직선으로 나 있다. 애절한 소리가 특징인 서편제와 달리 굵은 울림을 내는 동편제의 직선적인 소리를 길로 표현한 것이다.

송 명창의 생가를 복원한 초가집 내부에는 가구가 없어 다소 쓸쓸하지만, 집 앞마당에 설치된 24개의 동그란 판과 5개의 사각기둥 조형물이 공간을 채운다. 동판은 판소리 진양조장단의 24박을 의미하고 사각기둥은 경상도 민요의 메나리조에 사용되는 5개 구성음을 표현한 것이다. 

진양조장단의 24박을 의미하는 동판 조형물. 사진 / 양수복 기자
메나리조의 5개 구성음을 표현하는 5개의 사각기둥 조형물. 사진 / 양수복 기자

집안에서 한 명의 명창이 배출되기도 어려운데, 송씨 일가는 3대에 걸친 명창 집안이다. 송흥록 명창의 동생인 송광록 명창, 송광록 명창의 아들과 손자인 송우룡 명창, 송만갑 명창 등 ‘명창’들이 일가족에 즐비하다. 최명순 해설사가 이 집안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송광록 명창은 송흥록 명창의 동생이자 북 장단을 맞추는 고수였어요. 그런데 함께 소리하러 다녀도 버는 돈은 반절에 불과한 데다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이 서러워 고수를 그만두고 제주로 건너갔대요. 그곳에서 소리를 연마하고 명창이 되어 돌아왔다 해요.” 

송만갑, 김정문 명창에게 사사하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박초월 명창이 어린 시절에 소리를 가다듬었던 집도 송 명창의 집 오른편에 나란히 자리한다. 

Tip 비전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운봉~인월 구간의 중간 쉼터이다. 걷기 여행 중에 둘러보아도 좋다.

Info 비전마을 송흥록 생가
주소 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7

국악의 성지 전경. 사진 / 양수복 기자

국악의 성지에서 발견하는 국보급 명창들의 흔적

“다른 집 여인들은 어린 자식을 곱게 곱게 입히어 선산 성묘를 보내는디 나는 무슨 팔자간디 삼순구식을 못 허고 살게 되니 이런 팔자가 어디가 있나 퍼버리고 앉어 울음을 운다” (박초월, 흥보가 가난타령 中)

동편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대중가요에 밀려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판소리 가락이 궁금해질지도 모른다. 비전마을 옆 국악의 성지 판소리기념관에서는 박초월, 안숙선 명창의 동편제 소리 가락을 감상할 수 있다.

기념실 한편에는 명창들이 기증한 여러 유물도 전시되어있다. 그 중 ‘전인삼 50만원, 이난초 5만원, 소숙자 5만원...’ 등 이름이 여럿 적힌 공책이 눈에 띈다. 강도근 명창의 학원 수강료 수납부다. 최 해설사는 “이렇게 이름이 빼곡한 것은 명창에게 배우고자 했던 열정이 그만큼 높았던 것”이라고 말한다. 기념관 옆 민속국악실에는 제주의 향토악기 허벅을 비롯해 사물놀이에 사용하는 국악기들이 있다. 직접 만지고 소리내볼 수 있어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 있다. 

강도근 명창의 학원 수강료 수납부가 전시되어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국악의 성지 앞마당에 자리한 독공실(위)과 폭포(아래). 사진 / 양수복 기자
독공실에서는 실제로 소리 연습이 이루어진다. 사진 / 양수복 기자

국악의 성지 앞마당에는 명창들이 판소리에 적합한 소리를 얻기 위한 수행 코스였던 폭포와 동굴 독공실도 마련되어있다. 작은 폭포 위, 돌벽과 두 개의 문으로 싸여있는 독공실에 들어가 보면 ‘득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자신과의 사투를 벌였을 명창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독공실을 지나면 국악의 성지 야외를 둘러볼 수 있는 소나무 숲길이 나타나고 선인의 묘역으로 통한다. 이곳에는 옥보고 선생을 비롯해 송흥록 명창, 박초월 명창 등 남원을 대표하는 국악인들의 묘가 만들어져있다. 가장 높은 자리의 옥보고 선생 묘역에서 비전마을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국악의 성지에 조성된 옥보고 선생 묘역. 사진 / 양수복 기자
국악의 성지 선인묘역에서 내려다본 운봉읍 비전마을 전경. 사진 / 양수복 기자

Info 국악의 성지
이용시간 화요일~토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이용요금 관람비 무료, 미니어처 장구 만들기 1만8000원
주소 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 69
문의 063-620-5740~2

소리꾼들이 득음을 위해 목청을 가다듬었던 구룡폭포. 사진 / 양수복 기자

남원 소리꾼 ‘득음의 성지’, 구룡폭포와 육모정

국악의 성지가 소리꾼들의 업적을 기리는 곳이라면 실제 남원의 명창들이 소리의 경지에 올랐던 곳은 어딜까. 폭포 밑에서 수련하는 소리꾼들이 연상되듯 남원 명창들은 주로 득음을 위해 구룡폭포를 찾았다. 

송흥록, 송만갑, 박초월 등이 폭포수를 뚫고 나오는 소리를 득음의 척도로 삼아 구룡폭포에서 수련했다. 나무 계단을 따라가면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리다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꼭 명창이 아니더라도 남원의 소리꾼이라면 모두 구룡폭포 아래에 서서 쏟아지는 폭포수를 뛰어넘기 위해 판소리 가락을 토해냈을 것이다. 구룡폭포에는 당대 소리꾼들의 피를 토하는 노력이 서려있다. 

400년 전 건립된 육각형의 정자 육모정. 사진 / 양수복 기자
육모정 뒤편 용소에는 '국창 권삼득 유적비'가 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구룡계곡 초입에 자리한 육모정에서도 소리는 계속되었다. 육모정은 육각형의 정자로, 약 400년 전 지어져 남원의 선비들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비가비’(양반 출신) 권삼득 명창이 육모정 아래 용소에서 소리를 연마했다고 널리 알려졌다.

권 명창이 판소리에 관심을 보이자 그의 집안에서는 천한 광대의 일이라며 집에서 쫓아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연습해 ‘초대 명창’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권 명창이 소리를 연습했던 용소 자리에는 ‘국창 권삼득 유적비’가 남아있다.  

남원 시내 요천을 따라 조성된 동편제 소리길. 사진 / 양수복 기자
체험과 공연 관람이 가능한 함파우 소리체험관 전경.

함파우에서 즐기는 신명 나는 농악 한 마당 

운봉과 구룡폭포을 지나 남원의 소리는 남원 시내 함파우까지 이어진다. 남원시 중심을 관통하는 요천변에는 길을 따라 판소리 용어와 다섯 마당을 설명하는 비가 서있는 동편제 소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소리길 부근에는 ‘물결이 머무는 고요한 곳’이라는 의미의 함파우 소리체험관이 있다. 판소리와 사물놀이를 비롯해 좌도농악의 중심인 남원농악도 배울 수 있다.

매주 남원시립농악단의 사물놀이와 판소리 공연도 열린다. 염창수 남원시립농악단 단무장은 “남원은 읍․면․동마다 농악단이 결성되어 있어 전수와 대회 참여가 활발하다"고 말한다. 동네마다 소리가 울려퍼지는, 남원의 소리는 결코 멈춤이 없다. 

함파우소리체험관에서는 매주 금,토요일에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제공 / 함파우소리체험관

Info 함파우 소리체험관
이용시간 매주 금•토요일마다 상설공연 진행 (동절기 오후 5시, 하절기 오후 7시)
이용요금 국악•전통놀이•전통공예 등 체험별 요금 상이, 한옥숙박관 이용 가능
주소 전북 남원시 술미안길 14-19
문의 063-620-574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