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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제주 4·3사건 70주년, 북촌마을을 걷다
제주 4·3사건 70주년, 북촌마을을 걷다
  • 양수복 기자
  • 승인 2018.03.07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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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동백꽃, 희생당한 제주도민의 모습
북촌포구로 가는 4.3길. 사진 / 양수복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4월이 되면 제주는 어떤 기억을 떠올린다.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해 벌어진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되어야 했던 4·3사건이다. 오랫동안 말 못했던 제주의 아픔을 복원하고 기억하는 것이 ‘평화의 섬’ 제주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4·3사건을 세상에 알린 것은 소설 한 편이었다. 1978년,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는 고향의 알려지지 않은 아픔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했다.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은 단 하루에 300여 명의 주민들이 집단 학살된 북촌마을이다. 북촌마을에는 학살터, 은신처 등의 4·3유적을 따라가는 4·3길이 조성되어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의 전경. 사진 / 양수복 기자

북촌 ‘너븐숭이’에 새겨진 기억

제주 동쪽 조천읍에 자리한 해변마을, 북촌마을의 4·3길은 ‘북촌리 대학살’이 벌어졌던 ‘너븐숭이’에 건립된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출발한다. ‘너븐숭이’란 제주어로 ‘넓은 가슴’이라는 의미로, 사람의 흉곽을 닮은 현무암 지대의 모습에서 이름 지어졌다. 먼저 기념관 내부의 전시관을 관람하면 4·3의 원인과 경과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길 탐방에 나설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쓰러진 여인과 여인의 젖을 물고 있는 아기의 그림이다. 그림 위에는 시 한 편이 적혀 있다.

“수백의 죽음 속에서 살아남은 이의 내일은 또 다른 죽음 / 울음도 나오지 않는 원한이 사무쳐 구천에 가득할 때 / 젖먹이 하나 어미 피젖 빨며 자지러지게 울고 /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제주 출신인 강요배 화백은 그림을 통해 4·3사건으로 희생된 주민들의 통한을 절절하게 재현했다.

강요배 화백의 그림 <젖먹이>는 '북촌리대학살'의 잔혹함을 증언한다. 사진 / 양수복 기자
너븐숭이 4.3기념관의 전시실 내부. 사진 / 양수복 기자
현기영 작가가 <순이삼촌>을 집필을 위한 취재 때 사용했던 녹음기. 사진 / 양수복 기자

전시실에는 <순이삼촌>의 초판본을 비롯해 현 작가가 소설 집필을 위한 취재 때 사용한 녹음기도 전시되어 있다. <순이삼촌>은 4·3사건 때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았지만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4·3의 깊은 상처를 그렸다.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을 가리키지만 단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1954년 9월에 한라산 금족지역이 개방될 때까지 약 7년 간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무장대가 파출소와 극우 청년세력인 서북청년단, 대동청년단을 공격하며 촉발되었지만, 1947년 3월 1일의 3·1절 기념대회부터 이미 불씨는 던져졌다. 이지권 4·3길 해설사는 “3·1절 기념대회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아이가 치어 시민들이 항의했고 이에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사망했다”고 설명한다.

이 사건으로 민심은 극도로 경직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 전역이 민관합동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듬해인 48년 5월 10일, 총선거에서 제주 지역만 투표가 과반에 미달되자, 당시 정부에서는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해 더욱 모진 탄압을 벌였다고 한다. 이 해설사는 “사건을 주도한 남로당 무장대 300여 명을 잡기 위해 북촌에서는 최소 400여 명이, 제주 전역에서는 약 3만여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말한다.

길을 안내하는 4.3길의 표식. 사진 / 양수복 기자
4.3 당시 주민들은 일본군이 사용했던 진지동굴을 피신터로 이용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4.3길의 코스마다 장소의 의미를 설명하는 표지가 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피신터, 학살터… 마을 전역이 4·3의 현장

너븐숭이 기념관을 나와 아래로 난 길을 10여분 걷다보면 4·3길의 첫 지점, ‘일제진지동굴’이 있는 서우봉이 나타난다. 서우봉에는 일본군이 탄약과 식량을 저장했던 일제진지동굴 약 20기가 남아있는데, 이 동굴들이 4·3때 북촌마을 주민들이 학살을 피해 숨었던 피신처로 이용된 것이다. 진입로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삼형제 동굴’이 있다. 이지권 해설사는 “입구가 3개이고 내부는 연결되어있어 삼형제 동굴”이라며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연기가 잘 스며들었기 때문에 밤에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불을 피워도 발각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우봉부터 해안을 따라 걷다보면 바다로 침입하는 적을 막았던 성벽 ‘환해장성’,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본향당인 ‘가릿당’ 등을 지나고 4·3유적인 ‘등명대’가 모습을 보인다. 등명대는 날이 저물어도 고기잡이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주민들이 불을 밝혔던 마을의 등대이다. 등명대 위의 비석에는 4·3때 경찰의 총격으로 깨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늦은 밤 들어오는 고깃배를 위해 불을 밝히던 등명대. 사진 / 양수복 기자
등명대 위의 비석에는 총격에 깨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4.3을 상징하는 동백꽃이 그려진 마을의 벽화. 사진 / 양수복 기자
'북촌리 대학살'이 일어나 수많은 주민들이 무참히 희생된 마을의 '당팟'. 사진 / 양수복 기자
군인들이 북촌마을 주민들을 내몰았던 북촌초등학교. 사진 / 양수복 기자

한 날 한 시에 기리는 북촌 사람들의 넋

마을 안쪽으로 들어와 걷다보면 4·3사건을 상징하는 동백을 그린 벽화가 있다. 강요배 화백이 작품 <동백꽃 지다>에서 희생당한 제주도민을 떨어진 동백꽃에 비유하며 4·3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20여 분 동쪽으로 걷다보면 4·3길의 반환점 역할을 하는 ‘낸시빌레’가 있다. ‘낸시빌레’는 냉이가 많이 나는 곳을 의미하는데, 이곳 역시 북촌마을 청년들이 학살된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다음 장소는 너븐숭이로 돌아오는 길목의 북촌초등학교와 당팟(신당 옆의 밭)이다. 두 장소는 4·3 중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집단 학살되었던 ‘북촌리 대학살’이라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비극은 1949년 1월 17일 아침에 시작됐다. 2명의 군인이 너븐숭이 근처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아 사망했고 이에 분노한 군인들은 북촌마을 주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마을의 400여 채의 집들은 모두 불탔다. 이 해설사는 “이 날, 후손이 끊긴 집안이 적지 않아 북촌은 한때 ‘무남촌(無男村)’이라 불렸다”고 말한다. 마을의 집들은 매년 음력 1월 17일,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낸다.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을 상징해 '순이삼촌 문학비'는 바닥에 쓰러진 모양으로 조형되었다. 사진 / 양수복 기자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사진 / 양수복 기자
애기무덤 옆에 놓인 물건들은 방문자들이 두고 간 선물이다 . 사진 / 양수복 기자

다시 돌아온 너븐숭이 기념관 앞마당에서 <순이삼촌> 속 구절을 비석에 새긴 ‘순이삼촌 문학비’를 마주한다. 비석들은 바닥에 겹겹이 쌓여있거나 나뒹굴고 있다. 이 해설사는 “이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이곳을 지나 4·3 위령비로 발걸음을 옮긴다. 희생된 북촌의 이름들이 커다란 비에 빼곡히 쓰여 있다. ‘이근평녀(女)’, ‘홍영삼자(子)’처럼 누군가의 딸과 아들일 뿐, 이름이 채 적히지 못한 이들도 많다. 온가족이 희생되어 이름이 확인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름 몇 번 불려보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아이들의 수도 많다. 기념관 입구에는 ‘애기무덤’이라 불리는 20기의 작은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4·3 이전에도 아이들의 무덤으로 이용되던 곳인데 8기 이상은 북촌대학살 때 희생된 아이들의 묘라 한다. 옆에는 누군가 공들여 쌓은 돌탑과 사탕, 오리장난감, 양말 등이 보인다. 기념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안타까움에 두고 간 선물이다. 지금도 위령제를 지내면 어른들은 가슴이 아파 애기무덤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려 발길을 재촉한다고 한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에 필요한 것은 기억과 관심이다. 4·3길을 걷는 것. 거기에는 길을 걷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Info 북촌마을 4·3길
코스 
너븐숭이4·3기념관~서우봉(일제진지동굴,몬주기알)~환해장성~가릿당~북촌포구(4·3역사현장)~낸시빌레(4·3학살현장)~꿩동산(4·3역사현장)~포제단~마당궤(4·3은신처)~당팟(4·3희생터)~정지퐁낭 기념비~북촌초등학교~너븐숭이4·3기념관 (약 7㎞, 2시간 이상)

미리 해설을 요청하면 해설사와 동반해 길을 걸을 수 있다. 일부 구간만 선택해 걷는 등 조율도 가능하다. 문의는 너븐숭이 4·3기념관으로 하면 된다.

Info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둘째, 넷째 월요일 휴무)
관람비 무료
주소 제주 조천읍 북촌3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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