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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양소희의 섬여행] 시인 기형도의 고향, 연평도①
[양소희의 섬여행] 시인 기형도의 고향, 연평도①
  • 양소희 여행작가
  • 승인 2018.04.13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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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 진상하던 연평도 조기…천연기념물 백로도 만날 수 있어
연평도 풍경.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옹진] 연평도(延坪島)는 섬의 모양이 길고 평평하게 뻗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바다 위를 달려가고 있는 기차처럼 생겼다고도 한다. 대연평도는 면적 약 7.3㎢에 약 2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면적은 작은 편이지만 1일 9회 운영하는 연평도 버스가 운행되고 있고 걷는 길이 잘 정비돼 있어 굳이 차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아도 여행이 가능하다. 주변에는 대연평도에서 남쪽으로 약 4.5km 지점에 면적 0.24㎢의 소연평도가 있다.

연평도는 북한과의 접전으로 인해 안보관광지로만 생각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어느 섬보다 계절마다의 풍경이 고운 섬이다. 섬여행의 매력에 빠져 있다면 연평도 여행을 추천한다. 연평도는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플라잉카페리호(고려고속훼리)가 매일 1회 오전 9시에 출발한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거리이며 연평도에서 나올 때는 오후 12시에 출발해 오후 2시에 인천항 여객터미널로 돌아온다.

연평도로 들어가는 플라잉카페리호.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Info 연평도 버스
032-899-4377
 
Info 연평도 들어가기
인천항 여객터미널 www.icferry.or.kr
플라잉카페리호(고려고속훼리) www.kefship.com
 
연평도에서 기형도의 시(詩)를 만나다
연평도에서 해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형도의 시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바닷가를 만난다.
시인 기형도는 1960년 2월16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해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에서 일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인 기형도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곳이 연평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뭍에서보다 한 달 늦게 찾아오는 연평의 봄은 마당의 목련이 꽃을 피울 때가 되면 짙은 안개로 침묵한다. 그 깊이는 진공의 우주와 같으며 쉼 없이 들떠 지쳐가는 인간에게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충고하는 듯 정지된 시간을 내어준다. 기형도 때문인지 안개 때문인지 봄날의 연평도 여행은 한 편의 시가 된다.

기형도 시인.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이 읍(邑)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江)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일행(一行)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기형도의 <안개> 中
 
연평도 조기역사관.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연평도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조기역사관
당섬 선착장에서 연육교를 지나 왼편으로 올라가다보면 산 정상에 궁궐 같은 건물과 함께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조기배가 둥둥 떠 있다.

조기역사관은 선착장 근처에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조기 잡는 배는 왜 바다 근처에 있지 않고 산꼭대기에다 만들어 놓았을까? 조기역사관에 들어가 꼼꼼하게 전시물을 읽어보면 연평도에 조기가 밀려오던 시절의 영화(榮華)를 알게 되어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조기는 연평도에 황금시대를 열어 주었다. 1957년에 연평도 전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진짜 이곳이 연평도 인가 의심할 정도로 번화하다.

조기를 잡는 기간은 4월 중순부터 6월 상순까지 약 50일이었는데 전국의 어선들이 연평도로 모여 3000여척의 배에 선원만 수만 명이 오고 갔으며 연평도에서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니니 연평도에 가면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조기 떼와 조기잡이 배를 형상화한 연평도 조기탑.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조기파시는 일제 말기 최고 절정을 이루어 큰돈이 몰렸고 돈을 따라 술집과 잡화점등 즐비했다. 1950년대까지 흥청거리던 연평파시는 조기가 급격히 사라지면서 막을 내렸고 지금은 연평파출소 옆에서 시작되는 조기파시 탐방로를 걸으며 지나간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전시관 2층으로 올라가면 사방이 툭 트인 누마루 형태의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1, 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장소를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해질 무렵이면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보며 바다로 사라지는 낙조를 볼 수 있는 일몰 포인트이다.

조기역사관 뒤편으로 가면 추락주의라고 쓰인 푯말 왼쪽으로 높이 40여m의 깎아지른 빠삐용 절벽이 보인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뛰어내린 절벽과 닮았다고 해서 자연스레 빠삐용절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절벽 아래로 푸른 바다와 하얀 백사장이 어우러져있는 급경사의 빠삐용 절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바다에 빠질 것 같은 아찔함이 있다. 
 
풍어(豊漁)의 신 임경업 장군, 충민사 
병자호란 때 임경업 장군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었으며 이것이 연평도의 조기잡이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임 장군에 대한 고마움의 뜻을 보답하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장군의 공을 길이 전하며 봄, 가을로 제사를 올리면서 풍어와 함께 해상의 무사고와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임경업 장군을 기리기 위한 충민사.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원래 있던 사당은 현재의 위치가 아니고 당섬에 있었다. 어느 때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당섬에 불이 나서 임경업 장군의 사당이 전소하게 되었고, 이 때 임경업 장군의 영정이 불에 타면서 공중으로 올라 북쪽으로 날아가다가 현재의 당산마루에 타버린 임경업 장군의 영정이 재가 되어 조용히 내려앉았다고 한다. 이것을 본 연평도 주민들은 임경업 장군의 혼이 화재를 피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하여 지금의 자리에 충민사를 지어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밖에 임경업 사당에 얽힌 설화는 일제강점기 때도 있다. 연평도에서는 어기 때가 되면 전국에서 모여든 수천 척의 선박과 수만 명의 선원들이 임경업 장군의 사당에서 무사고를 기원하는 참배를 하고나서야 출어를 했고 음력 정월 초순에는 연중 가장 큰 행사로 풍어제를 올렸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본인들은 충민사 바로 뒤에 일본신사 건립을 하려고 했다. 신사 터를 닦던 날 밤에 잠이 든 일본인 책임자의 꿈에 임경업 장군이 나타나 원상태로 해 놓지 않으면 큰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다음날 일본인 책임자는 겁에 질려 원상태로 복구했고 그것으로도 안심이 안 돼 재물을 마련하여 마을 원로들을 모시고 직접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연평도뿐 아니라 어민들에게 임경업 장군은 고기를 많이 잡히게 도와주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다. 

 
임금께 진상하던 안목조기 맛보기, 안목어장 
임경업 장군이 한때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연평도에 들려 머물면서 간조 때 이곳에 가시나무를 꽂게 하였는데 수많은 고기가 가시마다 걸렸고 이것이 연평도 조기잡이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조기 잡는 방법을 주민에게 가르쳐 준 곳이 현재의 안목어장이라고 한다.
임금께 진상하던 연평도 조기.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예전에는 임금님에게 진상하는 조기는 안목조기가 아니면 안 될 정도로 제일 크고 맛이 좋은 조기로 이름이 났었다고 한다. 그 이유 역시 안목주기를 임 장군이 제일먼저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해도식 풍어제, 연평도 한마음 기원제 
황해도식 풍어제를 계승 및 발전한 연평면 한마음 기원제는 2014년부터 주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지역주민의 단합을 위한 행사로 확대하여 개최하고 있다. 행사는 충민사 사당에서 어업인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례를 시작으로 면민의 흥을 돋우고 마을간 화합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
연평도 한마음 기원제.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푸른 숲과 새하얀 백로의 조화, 서부리
연평도에서 서북쪽 해안가 절벽으로 가면 서부리라는 곳에 천연기념물 백로 서식지가 있다. 날이 따뜻해지는 4월 말부터 5월초까지 찾아와 늦가을까지 머물다 떠난다. 바닷가 소나무에 둥지를 만들어 서식하는데 흰색의 백로는 푸른 숲과 어울려 하얀 눈꽃송이가 피어 있는 듯 장관을 이룬다. 구리동 해변에서 바라보면 가장 멋진 백로의 숲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연평도에는 백로가 사는 숲인 서부리가 있다. 사진 제공 / 옹진군청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 보면 시문이나 화조화에 백로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새의 색이 희고 깨끗해 청렴한 선비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천연기념물인 만큼 아름다운 백로는 멀리서 눈으로만 즐겨주길 바란다.
 
서해의 지중해, 연평도의 해변들
조기역사관에서 평화공원 가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병풍바위와 가래칠기해변을 조망하기 좋다. 지중해의 절경이라는 터키 안탈리아 해안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연평도 가래칠기해변.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가래칠기해변은 알록달록한 자갈과 굵은 모래알이 밟히는 자연해안이다. 연평도는 오석(烏石)으로 유명한 곳이라 가래칠기 해변에서 쉽게 오석을 찾아 볼 수 있다. 오석은 다른 이름으로 흑요암(黑曜巖)이라 부르는 검은색 보석류의 돌이다.

가래칠기해변을 지나 조금 더 북쪽 해안에 위치한 구리동 해변은 길이 1km, 폭 200m의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연평도에서 가장 즐기기 좋은 해변이다. 해변에 앉아 오른쪽 숲으로 펼쳐진 해송을 바라보면 백로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해변을 둘러싼 푸른 바다 기암절벽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 온 듯 착각하게 한다.

연평도 구리동해변.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연평도의 해변은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모두 바다 건너 북한 땅과 마주 보고 있어 해가 지면 들어갈 수 없다. 
 
TIP 여객운임 50% 할인 받는 섬여행 정보 
옹진군에서는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고객들에게 여객운임 비용을 50% 할인해주는 ‘서해5도, 섬나들이’를 지난 1월1일부터 오는 12월31일까지 기간에 예산이 소진될 때까지 시행하고 있다. 대상지역은 연평면, 백령면, 대청면, 덕적면, 자월면이며 지원조건은 1박2일 이상 4박5일 이내의 일정을 갖는 타시도민(인천시민, 도서민 제외)이다. 단, 1인당 연 3회까지만 가능하고 여름성수기, 특별수송기간, 주말은 제외다.

이용일 1개월 전부터 하루 전날까지 개인별 온라인 예매를 하면 된다. 고려고속훼리(www.kefship.com) 또는 가보고싶은섬(island.haewoon.co.kr) 사이트에서 예매하기 클릭 후 승선자 정보입력 후 할인 종류를 '서해5도, 섬나들이'를 선택하면 된다.

연평도 빠삐용절벽.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양소희 여행작가
<인천섬여행>의 저자이며 전남 가고 싶은 섬 자문위원으로 섬을 사랑하는 여행작가이다. 강의, 방송활동, 여행 콘텐츠 개발, 여행콘서트 등 여행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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