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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수십 개의 암봉이 몽글몽글 융기한 봉화 청량산, 김생, 최치원, 이황도 찬사를 쏟아낸 비경
수십 개의 암봉이 몽글몽글 융기한 봉화 청량산, 김생, 최치원, 이황도 찬사를 쏟아낸 비경
  • 윤문기 객원기자 <발견이의 도보여행 운영자>
  • 승인 2018.05.2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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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청량산성 따라 축융봉으로 올라야
청량산에 폭 안긴 청량사. 자연지형을 이용한 가람배치의 백미로 꼽힌다.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봉화] 사나흘 간 쉼 없이 내린 비를 잔뜩 빨아들인 청량산의 숲은 포만감에 잔뜩 부풀었다. 오랜만에 햇살을 받아들인 숲은 여분의 물을 공기 중으로 뿜어내느라 바쁘다. 덕분에 숲은 여전히 촉촉하다.

바람이 살랑거릴 때, 바람의 통로처럼 청량사 응진전을 향하는 원효대사 구도의 길과 파노라마 선경이 펼쳐지는 청량산성에는 걷는 이들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주세붕(1495~1554)은 다섯 명산으로 북쪽 묘향산, 남쪽 지리산, 동쪽 금강산, 서쪽 구월산, 중앙 삼각산을 꼽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선이 살만한 곳을 말하라고 한다면 반드시 봉화 청량산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통일신라 시대 전설적인 명필 김생(711~미상)은 청량산에서 10년 간 글씨 공부를 한 끝에 입신의 경지에 이르러 하산했다. 신선이 됐다는 고은 최치원(857~미상) 역시 이곳에서 머리를 맑게 하는 총명수를 마시며 수학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퇴계 이황은 자신의 호를 ‘청량산인(淸凉山人)’ 으로 짓고 51편의 청량산 관련 시를 남겼다. 조선의 묵객들이 청량산을 다녀가며 남긴 기행문만 100편이 넘을 정도로 청량산은 예나 지금이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제비집처럼 암봉에 안겨 있는 응진전. 밖으로 돌출되어 외청량사라고도 불린다.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문득 들어섰다 인왕역사의 습격에 깜짝 놀랐던 응진전.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원효대사 구도의 길, 연꽃처럼 활짝 핀 명당을 찾아서

수십 개의 암봉들이 몽글몽글 융기한 봉화 청량산,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으나 송곳처럼 찌르지 않는 산세 덕분에 험준함의 농도가 옅다. 청량산과 같은 수성암으로 이뤄진 진안 마이산의 동그스름한 봉우리를 떠올리면 부드러운 산세에 수긍이 간다.

청량산에는 유림길과 원효대사 구도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다만 안내체계가 부실한 편이기 때문에 청량산 등산로 안내표지를 토대로 비교적 체력 부담이 적은 원효대사 구도의 길과 청량산의 비경이 펼쳐지는 청량산성 축융봉 코스를 소개한다.

원효대사 구도의 길은 동그스름한 암봉들을 연잎처럼 두르고, 연꽃 수술자리에 창건된 청량사를 향해 난 길이다. 원효대사(617~686)가 해골 물로 깨달음을 얻고 3년 후에 청량사를 창건하여 얻게 된 이름이다.

길은 낙동강 본류에서 청량산 쪽으로 꺾어 들어와 3km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는 입석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목적지인 응진전은 의상대사가 683년에 창건한 암자다. 해발 500m나 되는 높은 곳에 있지만 출발지인 입석주차장이 이미 해발 400m를 넘어선 곳이고, 길도 잘 정비되어 있어 급하게 서두르지만 않으면 누구나 가볼 수 있다.

출발한 지 10분 정도 되었을 때 오른쪽 응진전 이정표를 따르면 20여 분 만에 금탑봉 밑에 제비집처럼 붙은 응진전에 닿는다. 청량사 본당이 암봉으로 둘러싸인 안쪽에 있어 내청량사라고 불리는 데 반해 외부로 돌출된 응진전은 외청량사라고 부른다.

사나흘 간 쉼 없이 내린 비로 촉촉했던 청량산 숲길.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오색 연등으로 단장한 청량사.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응진전은 석가여래와 부처님 제자를 함께 모시는 전각의 당호다. 청량사 응진전은 협시보살 양쪽으로 십대제자 상을 모시고 후불탱화 가장 높은 위치에 1대 제자 가섭과 2대 제자 아난을 그려서 법식을 따랐다.

후불탱화에 중국 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가 중요한 위치에 그려진 것이 독특하다. 응진전 안쪽으로 인왕역사 조각상을 마치 도둑 쫓는 포졸들이 튀어 나오는 것처럼 조성해 흠칫 놀랐다가도 이내 미소 짓게 된다.

응진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암봉 사이로 석간수가 흐르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하므로 맛보길 권한다.

응진전에서 김생이 10년간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굴을 거쳐 청량사 가는 길은 조붓한 등산로다. 나무가 헐거워진 틈으로 거대한 봉우리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앉은 청량사가 입을 다물 수 없는 경관을 보여준다.

고무신 한 켤레에도 작은 우주가 자란다(청량사).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청량산성 축융봉 가는 길. 잘 정비되어 있어 천천히 걸으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다.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원효대사 구도의 길은 퇴계 이황이 공부했던 곳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를 거쳐 청량사에 이른다. 공민왕의 친필 편액으로 알려진 유리보전이 청량사의 본당이다.

이곳 약사불은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건칠불(삼베에 옻칠하는 작업을 되풀이하여 만든 불상)로 제작연대가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결국 두 차례에 걸친 탄소연대측정을 통해 통일신라 시대 후기나 고려 초기에 제작된 국내 최고(最古) 수준의 건칠불임이 밝혀지며 2016년 보물 1919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지장전의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임진왜란 직전에 조성된 불상이다. 동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걸작으로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보물 1666호로 지정된 국가지정 문화재다.

청량사에서 출발지인 입석까지 갈 때는 청량정사까지 왔던 길로 되짚고 이후로는 입석까지 질러가는 오솔길을 따르면 된다. 원효대사 구도의 길은 4km 정도지만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과 볼거리들이 많아 예상 소요시간은 3시간 내외다.

Info 청량사
주소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52

삼국시대 지어진 청량산성은 고려, 조선을 거쳐 최근까지 보수되고 복원됐다.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튼튼하게 복원된 청량산성 성곽을 따른다.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청량산성 길, 믿기지 않는 역대급 파노라마 풍경
봉화 청량산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남쪽 줄기 정상인 축융봉에 올라야 한다고들 한다.

더 정확하게는 동쪽 산성 입구를 출발해 축융봉으로 올라가는 청량산성 길을 걸어야 한다는 표현이 맞다. 등산 수준인 서쪽에 비해 청량산성을 통과하는 동쪽 루트는 해발 430m에서 시작하므로 어려움이 덜하다.

경사 난도가 있으므로 등산스틱을 지참하는 게 좋지만, 위험한 길은 전혀 없고 곳곳에 쉴 공간도 많다. 따라서 쉬엄쉬엄 올라간다면 노약자도 도전해볼 만하다.

산성입구 주차장에서 길을 시작한 지 채 10분이 안되어 등산로 입구 이정표가 있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곧바로 청량산성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청량산성은 본래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가 고려 공민왕(1330~1374)이 2차 홍건적의 난(1361)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했을 때 개축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청량산성 동문지~밀성대~축융봉 구간을 ‘공민왕산성’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보수한 청량산성을 근래에 여러 차례에 걸쳐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

청량산성 건너편으로 진경산수화 두루마리를 펼쳐낸 듯한 청량산 비경이 열린다.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찬시를 남겼던 청량산 풍광(청량산성 구간).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청량사 본당(왼쪽)에서 응진전(우측)을 오가는 절벽길은 가팔라 보여도 걸어서 오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사진 / 윤문기 객원기자

밀성대를 돌아 축융봉을 향할 때 육육봉이라 불리는 청량산 열두 봉우리 풍경이 두루마리에 말렸던 진경산수화 펼쳐내듯 스르륵 열린다. 걷는 길 곳곳이 사진 찍기 좋은 곳이요, 선경을 감상할 수 있는 쉼터가 된다. 청량산은 고도를 높여갈수록 자신의 속내를 아낌없이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나라에 이런 산이 또 있던가!

축융봉에 다다르면 서쪽으로 낙동강의 유려한 곡선이 풍경에 가세하고, 남쪽으로 산맥들의 파도가 끝없이 일렁인다. 풍경 사진 전문가들이 청량산 운해를 찍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하거나 아예 가까운 곳에서 캠핑하며 이곳 축융봉을 찾는다.

축융봉에서 산성 입구 주차장까지 다시 내려오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올라왔던 산성을 그대로 되짚으며 청량산의 비경을 한 번 더 간직하며 돌아올 수도 있고, 공민왕을 모신 공민왕당 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공민왕당 쪽은 산성마을과 인접하여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산성입구에서 축융봉까지의 거리는 5km 정도이며, 3시간이면 편안하게 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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