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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냉면 열전③] 남한 냉면의 대표주자, 박군자 진주냉면
[냉면 열전③] 남한 냉면의 대표주자, 박군자 진주냉면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06.28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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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적인 다정한 맛’이 담긴 한 그릇
진주교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음식, 진주냉면. 사진 / 조아영 기자
<편집자 주>
냉면의 계절 여름이 왔다. 이에 <여행스케치> 편집부는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특색있는 냉면을 소개한다. 

[여행스케치=진주] '냉면' 하면 흔히 평양과 함흥, 한반도 북쪽 지명이 떠오르지만 남쪽에도 예로부터 냉면으로 유명한 지역이 있다. 바로 경남 진주다. 

소고기 육수에 해물을 한 번 더 우려내 감칠맛이 돌고, 육전 등 풍성한 고명이 올라가 넉넉한 인심까지 맛볼 수 있는 진주냉면은 단연 남한 냉면의 대표주자다.

디지털진주문화대전에 따르면 ‘진주냉면은 1960년대 중반에 진주지역에서 사라졌다가 1999년 진주냉면 원형을 중심으로 식생활문화연구가에 의해 재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박군자 진주냉면’은 진주냉면이 사라지기 이전인 광복 이후부터 2대에 걸쳐 근 70년이 넘는 시간동안 진주냉면의 맛을 이어오고 있다.

장터로 나온 교방음식, 진주냉면
박군자 진주냉면 본점은 진주성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인 강남동에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 대부터 2대째 진주냉면을 이어오고 있는 하연규 대표는 ‘원조’ 진주냉면이 교방에서 시작된 음식이라 말한다.

“진주냉면은 조선 시대 교방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 있습니다. 양반들이 술을 먹고 난 다음, 입가심과 해장으로 즐겨 먹은 음식이 바로 이 냉면이라고 하지요. 그때 기방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와 각자 식당을 열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부모님(하거홍ㆍ황덕이 부부)도 진주교방에서 만들었던 냉면의 원형을 알고 계셨고요.”

박군자 진주냉면 본점은 진주시 강남동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박군자 진주냉면의 대표 메뉴로 차린 푸짐한 한 상. 사진 / 조아영 기자

해산물이 풍부한 남쪽의 사천과 메밀이 잘 자랐던 북쪽의 합천, 그 사이 자리한 진주에서 해물로 낸 육수에 메밀 면을 말아먹는 음식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연규 대표가 기억하는 진주냉면의 변천사는 어땠을까.

“6.25전쟁 무렵까지 중앙시장에는 은하냉면, 평화냉면, 부산식육식당 등 냉면을 파는 가게가 예닐곱 개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가 부산식육식당이었어요. 그러나 1966년 시장에 큰 화재가 난 이후 봉곡동 서부시장으로 옮겨가게 되었죠. 부산냉면으로 상호를 바꾼 적도 있고, 제가 이어받으면서 또 한 번 상호가 바뀌었지만 화재로 인해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닙니다.”

화려한 교방음식에서 장터로 나와 서민들이 즐기는 외식 메뉴가 된 진주냉면. 부모님이 1945년부터 진주 장터에서 만들었던 냉면은 하연규 대표와 그의 아내 박군자 대표의 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헌에 기록된,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주냉면의 ‘전통성’ 보다 부모님의 손맛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우선이었다는 하 대표. 현재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 역시 3대째 가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감칠맛 도는 해물 육수, 냉면 위로 ‘육전’ 얹어
슴슴한 맛이 특징인 평양냉면과 달리, 진주냉면은 특유의 감칠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하연규 대표는 “진주냉면만의 특징은 총 세 가지가 있다”며 운을 뗀다.

첫째, 냉면 위로 수북하게 잘라 올려주는 ‘육전’이다. 육전은 소고기 중 기름이 적은 부위(우둔살, 홍두깨살, 부채살)을 2~3일간 숙성시킨 뒤, 넓고 얇게 썰어 약간의 소금 간을 더하고, 밀가루 옷과 계란 옷을 차례로 입혀 부쳐내는 음식이다.

얼핏 생각하면 차가운 냉면 위에 ‘전’을 올리는 것이 독특한 조합 같지만,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대를 이어 진주냉면을 만들고 있는 하연규 박군자 진주냉면 대표. 사진 / 조아영 기자
얇게 썬 소고기에 계란 옷을 입혀 부쳐내는 육전은 풍부한 육즙을 품고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내가 국민학생(초등학생)일 때부터 육전은 다 올라갔어요.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은 찬 성질을 가진 음식이고, 고기는 따뜻한 성질을 지녔잖아요. 찬 음식만 먹다 보면 쉽게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의 궁합을 고려해서 함께 먹은 것 같습니다. 또 요즘처럼 고기를 먹기 쉬운 환경이 아니다 보니 서민들이 비싸고 귀한 고기를 냉면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두 번째로 눈길을 끄는 것은 굵은 면발이다. 하연규 대표는 “면이 실같이 가늘면 식감이 덜하고, 고명과 따로 놀기 때문에 고명과 함께 씹는 맛을 고려해 면발이 굵게 만든 것”이라며 “반죽은 메밀을 주로 사용해 만들고 소량의 전분과 밀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들이는 품이 만만치 않은 육수다. 박군자 진주냉면의 육수는 양지를 삶은 육수를 사나흘 간 숙성시킨 뒤 마른 황태, 마른 오징어, 디포리, 다시마 등 다양한 해물과 표고버섯을 넣어 열두 시간가량 한 번 더 우려낸다.

해물을 건져낸 다음에는 독특한 과정을 또 한 번 거친다. 바로 2000도가량 달군 뜨거운 쇠막대기를 펄펄 끓는 육수에 담그는 것. 하연규 대표는 “정확한 과학적 근거는 모르지만, 이렇게 쇠막대기를 담그고 나면 육수에 퍼진 해물 비린내가 잡힌다”고 말한다. 이후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그제야 육수가 완성된다.

들어간 재료들로 짐작해보면 짜고 비린 맛이 앞설 것 같지만, 막상 한술 떠먹으면 입안에 감칠맛이 사르르 감돈다.

육수를 따르고 있는 하연규 대표. 사진 / 조아영 기자
육전을 비롯해 풍성한 고명이 올라간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하연규 대표는 “염도계를 사용해 간을 맞추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맛을 유지하고 있으며, (간이 센 음식을 즐기는)경상도이기 때문에 맛이 더욱 강렬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며 “한번 맛보면 또 찾게 되는 맛”이라고 소개한다.

서늘한 방짜유기(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냉면 한 그릇. 그 속에는 푸근한 인심과 70년 세월을 아우르는 진한 맛이 담겨있다.

1985년 출간된 이성우의 <한국요리문화사>에 기록된 ‘찡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평양냉면에 견줄만한 남국적인 다정한 맛’이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Info 박군자 진주냉면 본점
메뉴 진주 물냉면 9000원, 진주 비빔냉면 9500원, 진주 얼큰한냉면(섞음면) 9500원, 소고기육전 2만원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8시 30분(연중무휴)
주소 경남 진주시 망경로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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