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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양소희의 섬여행] 바다와 소나무가 노래하는 푸른 섬, 대청도
[양소희의 섬여행] 바다와 소나무가 노래하는 푸른 섬, 대청도
  • 양소희 여행작가
  • 승인 2018.07.10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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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 모래사막을 품은 그곳
대청도 선진포 선착장 전경.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옹진] 대청도(大靑島)는 인천에서 쾌속선을 타고 3시간 반을 가야 하는 먼 거리와 유명세가 덜한 까닭에 북적임에 싫증 난 여행자들에게 딱 좋은 여행지이다.

나란 도대체 누구인가? 나를 알아야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에 나를 가장 나답게 찾아주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인천 옹진군 대청도를 추천한다. 뭍에서 떨어져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이 섬을 여행하다 보면 독특한 개성과 당당함에 매료된다.

예부터 푸른 섬이라 불린 곳
대청도는 숲이 무성하여 ‘푸른 섬’으로 불렸고 중국에서 오고 가며 그 음을 한자로 옮겨 ‘포을도(包乙島)’라 한 것을 다시 고려 초에 한자로 쓰게 된 것이 ‘청도(靑島)’이다.

지명의 유래를 뒷받침하는 문헌이 있는데,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1123년 고려에 와서 한 달 동안 머물면서 보고 듣고 한 사실들을 기록한 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다.

‘대청서(大靑嶼)는 멀리서 바라보면 울창한 것이 눈썹을 그리는 검푸른 먹과 같다고 해서 고려인들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날 오각에 배가 이곳을 지나갔다. 소청서(小靑嶼)는 대청서(大靑嶼)와 모양이 같은데 다만 산이 약간 작고 주위에 초석이 많을 뿐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대청서(大靑嶼)에서 ‘서(嶼)’는 작은 섬이라는 의미의 한자

모래요정의 장난인가? 대청도 모래사막은 바람이 만들어 준 진귀한 풍경이다.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옥죽동 모래사막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우리나라에 사막이 있다? 옥죽동 모래사막
대청도에는 매우 신기한 명소가 숨겨져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래가 바람을 타고 산을 넘어 다니는 기이한 진풍경이 바로 이 섬에서 일어나고 있다.

밀물에 밀려 온 옥죽포 해변의 모래가 썰물에 햇볕에 드러나 바짝 마르게 되면서 그 모래를 바람이 산을 오르며 날라 와 만든 사막으로 크라이밍듄(climbing dune)이라고 한다.

환경부에서 공식적으로 사막이라 부르는 활동 사구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연흔(ripple mark)이 생성돼 다양한 사층리 형성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또 인근 해안가 보링쉘(boring shell) 화석, 규암 등 암석 지대와 함께 위치해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자연유산으로 꼽힌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향하면 수령 200년이 넘은 노송들이 반겨준다.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200여 년 이상 된 노송 보호 구역
대청도에 왔다면 빠뜨리지 말고 소나무 숲이 있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가보자. 노송 보호 구역에서는 최소 200년은 넘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또 다른 군락지로는 바다 쪽으로부터 마을 감싸고 있는 사탄동 언덕에 있다.

그밖에도 바다와 맞닿은 곳곳에 적송 군락지가 조성되어있는데 이 소나무들은 섬 주민들이 모여 사는 내동 지역을 지켜주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적송들이 바다와 어울려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연이 주는 위안이 이런 것이구나.’ 저절로 깨닫게 된다.

적송이 가득한 솔숲 언덕에 앉아 사탄동해변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사색에 잠기게 된다. ‘참 아름다운 곳이다.’ 감탄하는 동안 솔바람은 어느새 내 머릿속 근심을 헤아려 다 날려준다.

농여해변을 걷다 보면 독특한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푸른 파도와 바위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농여해변.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자연이 채색한 푸른 바다와 금빛 모래, 대청도 해수욕장
섬을 뺑 둘러 돌아가며 형성된 해변들은 산자락에 갇힌 듯 혹은 산이 숨긴 듯 극적으로 아름답다.

농여해변은 길이 2㎞, 폭 500m의 티 없이 깨끗하다. 간조 때 드러나는 광활한 백사장은 단단한 고운 모래가 융단처럼 펼쳐져 걷기 좋으며 만조 때는 보이지 않던 풀등이 여기저기 나타나 신기한 경치를 펼쳐 보인다.

조금 멀리 시야를 넓혀보면 해변 주변에 바위이지만 나무 같은 결을 가지고 있는 고목나무 바위 등 독특한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푸른 파도와 바위가 어우러진 티 없이 깨끗한 농여해변의 모래사장을 걷노라면 누구나 이곳이 낙원이 아닐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농여해변 바로 옆으로는 미아동해변이 있는데 평소에는 두 개의 해변이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지면 농여해변과 하나로 연결되어 별칭으로 원 플러스 원(1+1) 해변이라고도 한다.
200m가량 되는 해안이 쌍둥이처럼 나란히 있으며 다른 해안과는 다르게 해변을 따라 풀들이 자라 초록의 천연 잔디가 펼쳐진 듯하다.

대청도 동백나무 숲은 1933년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다.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우리나라 최북단 동백나무 자생지
주로 우리나라 남쪽 지방의 따뜻한 해안에서 자라는 동백꽃을 서해, 그것도 위도로 보아서는 매우 북쪽에 위치한 대청도에서도 볼 수 있다. 동백나무 자생지가 있는 곳은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삼각산(343m)의 서쪽 능선과 남서 방향 능선 사이 남동향 산비탈이다.

북서 방향이 막혀 겨울철의 북서 계절풍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고 따뜻한 해류의 영향을 받아 난대성의 동백나무가 자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백나무는 전 세계의 식물구계(植物區系)를 설정할 때, 이것을 표지종(標識種)으로 삼는 중요한 식물이다. 또한 동백나무는 나비와 벌과 같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화분을 매개하여 종자가 생기는 조매화(鳥媒花)이다.

동박새는 깃털이 아름다운 작은 새로 동백나무의 꿀과 열매를 먹고 산다. 대청도의 동백나무자생지는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의 동백나무 가운데 가장 북쪽에서 자라고 있어 남쪽보다 추위에 강할 것으로 생각하여 품종개량 등의 학술적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대청도 동백나무 숲은 1933년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 우리나라에서 최북단 동백나무 자생지로 보호받고 있다.

매바위와 수리봉을 조망할 수 있는 매바위 전망대.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대청도는 전국 최고의 매로 유명했던 '해동청'이라는 송골매가 살던 곳이다.

날쌔고 용맹한 새의 자취를 좇다
매바위 전망대에 올라 경관을 바라보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형상을 닮은 매바위가 보인다. 예로부터 대청도는 다른 고장의 매보다 날쌔고 사냥을 잘해서 전국 최고의 매로 이름이 높았던 '해동청(海東靑)'이라는 새가 살던 곳이다.

해동청은 우리나라에서 산출되었던 사냥용 매의 옛 이름으로 송골매를 뜻한다. 그 명성은 원나라까지 알려져 해동청은 칸들의 매사냥과 세계를 누볐던 군의 통신용으로 사용되었다. 수리봉이 내려다보이는 매바위 전망대에 가면 해동청의 지나간 시간을 살펴볼 수 있다.

매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빠른 비행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송골매는 먹이를 쫓아가는 속도가 370km/h라고 한다. 이 속도는 우주선이 이착륙할 때의 속도와 같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매사냥 그림이나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의 매사냥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매사냥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렵문화 중 하나인 대한민국의 매사냥은 전통적 가치와 희귀성을 인정받아 2010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해동청은 최근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고대 문헌 자료를 살펴보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는 쿠빌라이 칸과 신하들이 해동청이라는 매로 대규모 매사냥을 즐겼다고 하며 중국 문헌에서는 고니를 잡을 수 있는 매는 황해고도에 위치한 고려의 해동청뿐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청초등학교 운동장 북쪽에서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드라마 <기황후>의 배경이 된 대청도
대청도는 예로부터 유배지였다. 대청도로 유배를 와야 했던 선비나 왕족은 배 위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출렁이는 배 위에서 어딘지 모를 섬으로 하염없이 가야만 했던 억울함과 두려움에 가슴 속으로 깊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도착하여 대청도에서 지내다 보면 아름다운 이곳에서의 시간이 일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으니 떠나는 배 위에서 아쉬움에 펑펑 울었을 것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초기 중국 원나라 순제가 태자 시절 대청도에 귀향 왔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의 오래된 이야기 이지만 인근의 섬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며 신향이 전설로 남아 전해져 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다. 1324년 중국 원나라 명종의 태자 도우첩목아(陶于帖木兒)가 계모의 모함으로 대청도에 유배를 오게 된다. 이듬해 원나라에 돌아가 황제(원 순제 1320~1370)가 되었다.

순제는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부인이 고려출신의 기황후이다. MBC TV 드라마 <기황후>가 큰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의 배경이 된 대청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원순제가 살았던 궁궐터는 어디?
태자는 가족과 따르는 신하 100여 명과 함께 대청도에 궁궐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 사실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대청도에는 고궁 3칸, 뒷칸 1칸과 담의 옛터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동에 있는 대청초등학교 운동장 북쪽에서 2006년 어골문이 시문된 기와편이 발견되었고 거처하던 집터인 거택기(居宅基)의 유지(遺趾)가 남아 있어 지금의 내동초등학교가 고려시대 원순제가 살았던 건물지라는 증거가 되고 있다.

Tip 대청도 가는 길

연안부두에서 출발하여 대청도를 왕복 운항하는 코리아킹호. 사진 / 양소희 여행작가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이 왕복 운항하며,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3시간 25~40분가량 소요된다. 소청도에서 대청도까지 10분, 대청도에서 백령도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섬 내 교통편은 대청공용버스(1일 4회)를 이용하면 된다.
● 코리아킹호 / 정원 449명ㆍ차량 X / 소요시간: 3시간 25분 / 운항횟수: 1일 1회
● 하모니플라워호 / 정원 564명ㆍ차량 70대 / 소요시간: 3시간 25분 / 운항횟수: 1일 1회

글ㆍ사진 양소희(梁昭嬉) 여행작가
<인천섬여행>의 저자이며 전남 가고 싶은 섬 자문위원으로 섬을 사랑하는 여행작가이다. 강의, 방송 활동, 여행 콘텐츠 개발, 여행콘서트 등 여행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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