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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북촌 한옥마을, 지자체 무책임에 지역주민 ‘울분’
북촌 한옥마을, 지자체 무책임에 지역주민 ‘울분’
  • 장은진 기자
  • 승인 2018.07.24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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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못 살겠다”…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도 포착
북촌 한옥마을 내 메인 거리에 관광객들의 소음 자제를 부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장은진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서울시는 주인, 북촌 주민은 노예”

“새벽부터 오는 관광객, 주민은 쉬고 싶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북촌 한옥마을 골목마다 설치돼 있다. 이는 주거지역이 관광지화 되면서 소음과 쓰레기, 주차 문제 등 생활에 불편을 겪던 주민들이 불만을 표출한 목소리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 주민들은 매주 주말 집회를 연다. 북촌 한옥마을에 몰려드는 관광객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하루 1만 명 이상 관광객이 방문하는 북촌 한옥마을을 주민들 노력만으로 통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북촌 한옥마을 주민인 박모(60·여)씨는 “북촌 한옥마을 내에 관광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힘만으로 불가능하다”며 “주차문제와 거리통제 등 사안은 서울시에서 맡아야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되자 서울시에서 중재자 역할에 나섰다. 서울시는 이달 초부터 평일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북촌 한옥마을을 관광할 수 있도록 ‘관광 허용시간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주거한옥이 밀집한 북촌로 11길 주요 3개 출입구에 관리인력을 배치해 관광 허용시간을 알릴 예정이다. 사진/ 장은진 기자

강제성 없는 서울시 대책

서울시는 이달 초 주거한옥이 밀집한 북촌로 11길 일대에 관광 허용시간 제도를 도입했다.

관광 허용시간 제도는 북촌로11길 일대 관광을 평일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요일의 경우 ‘골목길 쉬는 날’로 지정해 주민들이 쉴 수 있도록 관광객들에게 양해를 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강제적 요소가 빠진 서울시 제안은 주거공간인 북촌 한옥마을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무책임한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마련한 관광 허용시간 제도에는 허용되지 않는 시간대와 일요일에 찾아온 관광객을 강제로 막을 권리가 없다. 또 관광객 수를 제한한다는 내용도 있지만 안내차원일 뿐 관광객의 입장을 강제로 막을 순 없다. 구청에서 선정된 지역주민 관리 인력들이 북촌 한옥마을 주요 3개 출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북촌지역 관광 허용시간 내용에 대해 알릴뿐이다.

북촌 한옥마을 주민 김모(57·여)씨는 “피켓을 통해 관광객을 계도하는 것은 10년 전부터 마을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하고 있던 방법”이라며 “현수막을 붙이고도 효과가 없자 알바생도 고용해 피켓을 들고 다녔지만 문제가 계속돼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한 건데 서울시에서 나서서 달라진 점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울시에서는 공무원들을 배치해 대대적인 계도 중이라고 얘기하지만 한 두시간정도 있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시는 일정기간 홍보 및 계도활동 등 자율적 제한을 우선적으로 시행한 후, 이를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의무시행에 대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겠단 입장이다. 북촌로 11길 일대는 거주지와 함께 상권도 발달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번 홍보 및 계도를 통해 자율적 제한이 성과를 거두면 의무시행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공무원의 북촌 한옥마을 홍보 및 계도활동은 지역주민 인력이 구성되기 전인 지난 15일까지만 임시로 진행된 것”이라며 “27일부터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관리팀이 북촌 한옥마을 주요 3개 출입구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활동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을 봐야 알겠지만 지역주민들의 홍보 및 계도활동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다양한 내용에 현수막들이 북촌한옥마을 골목 구석구석 붙어 있다. 사진/ 장은진 기자

북촌, 하루 1만 명 방문…외국인 관광객 다수

북촌 한옥마을 주민들이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해 고통 받는 모습은 통계자료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촌 한옥마을은 각종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촬영지로 활용되면서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장소다.

서울시가 2016년 10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조사한 결과 북촌을 찾는 관광객은 하루 평균 1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외국인 관광객들이 70% 비중을 차지했다.

시간대별로 방문하는 관광객 수의 차이도 있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시간대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35%)였다. 이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25%),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13%) 순으로 관광객 수가 많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북촌 한옥마을 특성상 늦은 저녁과 이른 아침에 찾아오는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북촌 한옥마을 전체 관광객 중 약 10%가 오전 6시 이전에 방문했으며, 오후 9시 넘어서 찾아온 경우도 4%를 기록했다.

관광객들이 밤낮으로 주거공간으로 찾아오자 북촌 한옥마을주민들 사이에선 관광객 공포증·혐오증을 뜻하는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가 확산 중이다. 또 관광객들의 사생활 침해를 못 버티고 거주민이 지역을 떠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fication)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 인구통계자료에 따르면 북촌 인근인 삼청동과 가회동 인구는 2012년 9천5명에서 2017년 7천537명으로 5년 사이 16.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서울 종로구 전체 주민 감소율(6.3%)의 배 이상이다. 관광지화 되면서 북촌 주변 집과 건물 임대료로 4배 가까이 폭등했다.

투어리즘 포비아와 투어리피케이션은 지역 규모에 비해 다수의 관광객이 몰린 과잉관광(overtourism) 현상이 나타날 경우 발생한다. 하루 방문객이 1만 명 이상인 북촌 한옥마을도 관광객 포화상태라는 지적이다.

북촌 한옥마을은 거주공간에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주차공간, 공중화장실 등 각종 편의시설 부족한 현상을 겪고 있다. 사진/ 장은진 기자

북촌 한옥마을 주민들 “실질적 대책 필요”

북촌 한옥마을 주민들은 사생활 침해, 대형버스 주차공간부족, 쓰레기 무단투기 등 문제에 대한 실질적 대책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북촌 한옥마을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다양한 시간대에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이 밤낮으로 발생한다는 소리다. 또 관광객들의 주거지 침입, 사생활 침해 등 문제로 대문을 열어두거나 문밖에 물건을 두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주차문제도 주민들의 오랜 불편 중 하나다.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면서 북촌 한옥마을 거리는 수시로 주차단속을 한다. 단체관광객들이 방문할 경우, 대형차량이 골목길로 유입돼 교통 혼잡까지 발생한다.

관광객 편의시설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길에는 공중화장실이 없다. 5분정도 걸어 내려와 주민 센터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지난 4월 정독도서관 근처 공중화장실이 추가로 개설됐으나 이도 한옥마을에서 10분 거리다. 화장실이 먼 거리에 자리한 결과 일부 외국인 관광객들은 주민 집 앞에 볼일을 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북촌 한옥마을이 관광지화 되면서 일어났다. 과거부터 주거지였던 북촌로 11길 일대는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해 주거환경 기능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서울시나 종로구 등 지자체가 나서 관광객을 통제하나 관광 편의시설을 마련하긴 힘들다. 북촌 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 대다수가 개별관광객이고 한옥마을 내에 주민들이 현재 거주 중이기 때문이다.

북촌 한옥마을 주민들은 골목길관광 사전예약제, 주변학교 운동장 개방, 필수생활 상권지정 등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특히 지자체에서 나서 한옥규제 등 지나친 규제는 풀어주고 공공시설을 확충해주길 바라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 주민 김모(72)씨는 “주거지를 관광지로 홍보하면서 주민들이 겪을 고통은 외면하고 있다”며 “60년 넘게 살아온 터전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범수 경기대 교수(관광개발학과)는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임시방편이 아닌 도심재생, 한옥관리 등 부서들이 참여한 대규모 지구단위 계획”이라며 “지역주민들이 피해를 본만큼 이익도 얻을 수 있게 마련하거나 박물관마을처럼 시에서 해당 지역을 매입한 후 거주민을 받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이 행복해야 관광객도 행복할 수 있단 사실을 기억해 쉽지 않겠지만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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