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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아산 여행] 은행나무와 함께 한 청백리의 삶… 충남 아산 맹씨행단
[아산 여행] 은행나무와 함께 한 청백리의 삶… 충남 아산 맹씨행단
  • 유인용 기자
  • 승인 2018.08.23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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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맹사성 정승이 손수 심은 수령 600년의 두 그루 은행나무
구괴정 앞의 느티나무는 세월의 흔적을 입어 허리가 휜 모습이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여행스케치=아산] 제법 서늘해진 날씨, 초록빛 은행잎이 황금빛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비로소 가을이 다가온 것이 실감난다. 은행나무는 가을을 대표하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조선 시대엔 서원이나 향교 등 유학을 가르치는 장소에 많이 심기도 했다. 충남 아산의 맹씨행단은 세종 때 좌의정과 우의정을 지낸 맹사성 정승이 제자들을 길렀던 곳이다.

맹씨행단 입구의 두 그루 은행나무는 맹사성 정승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수령 600년 이상의 은행나무는 여전히 매년 가을 맹씨행단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사진 제공 / 아산시청 문화관광과
사적 109호로 지정된 맹사성 고택. 사진 / 유인용 기자

설화산 북동쪽 자락에 위치한 맹씨행단은 맹사성 정승이 정계로 나가는 발판을 다진 곳이자 은퇴 후 내려와 살던 곳으로 고택과 사당, 정자를 통틀어 맹씨행단이라고 부른다. 고택은 은행나무를 비롯해 수령이 오래된 여러 나무들로 둘러 싸여 고즈넉한 멋이 있다.

맹사성 정승이 손수 심은 쌍행수
맹사성 정승은 황희 정승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부정청탁 등 정계와 관련해 집을 찾는 손님을 만나지 않으려 문을 걸어 닫고 지냈다고 전해지며 말이나 가마 대신 검은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다녔다고 한다.

맹사성과 관련된 일화 중에는 ‘정승님 가실 길을 웬 노인이 지나간다’며 바닥에 내쳤던 노비 이야기, 길에서 사귄 어부를 생일잔치에 초대했는데 나중에서야 맹사성이 정승임을 안 어부가 깜짝 놀란 이야기 등 꾸밈없는 행색 때문에 그가 정승인 것을 알아보지 못해 벌어진 에피소드가 많다.

맹씨행단의 여름 풍경. 뒤편으로 쌍행수가 보인다. 사진 / 유인용 기자

고택 입구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마당 한쪽의 은행나무다. 맹사성 정승이 심었다는 이 은행나무는 두 그루가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어 ‘쌍행수’라고도 부른다. 수령이 600년이 훌쩍 넘은 은행나무는 가까이서 보면 기둥이 여럿이다.

동선애 아산시청 문화관광해설사는 “나무가 긴 시간 자라면서 오래된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가 돋아 나온 것으로 ‘맹아’라고 부른다”며 “뿌리의 일부가 죽고 맹아가 새로 뻗어 나오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무가 여러 그루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뿌리는 하나”라고 설명한다.

맹씨행단의 은행나무는 뿌리에서 새 가지가 돋아나온 '맹아'로 인해 기둥이 여러 개인 것처럼 보인다. 사진 / 유인용 기자

600여 번의 계절을 지나면서 같은 자리를 지켜온 두 그루 은행나무는 여전히 가을이 되면 맹사성 정승이 지내던 고택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Info 맹씨행단
관람시간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
관람요금 무료
주소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5

수수한 매력의 맹사성 고택
흔히 정승의 집은 으리으리하게 클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맹사성 고택은 생각 외로 규모가 아담하다. 고려 시대 최영 장군의 아버지가 지은 집으로 실제 최영 장군이 살기도 했으며 이후 최영 장군이 죽으면서 그의 손녀사위였던 맹사성 정승이 살게 된 곳이다. ‘좌우에 다른 물건이라고는 하나 없이 간결하게 살았다’는 맹사성 정승의 집은 꾸밈없이 담백하면서도 절제된 매력이 있다.

맹사성 고택은 아담하고 수수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동선애 해설사는 “고택을 정면에서 보면 사랑채 아래 나무로 받친 문틀인 머름이 두터우며 천장을 살펴보면 안으로 굽은 솟을합장, 사다리꼴의 대공 등을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간 살림집인 맹사성 고택은 고려 말 조선 초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귀한 문화재로 사적 10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소박한 고택을 심심하지 않게 꾸미는 것은 주변 나무들의 역할이다. 맹사성 고택과 두 그루 은행나무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완성한다.

맹씨행단은 맹사성 정승이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사진 / 유인용 기자

고택에서 바라보면 위로 쭉 뻗은 은행나무의 수려한 모습을 비롯해 주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앞뒤로는 굽이치는 산의 능선이 시원하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롭게 살고자 했던 맹사성의 청렴한 정신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고택 옆으로는 맹사성 정승과 그의 부친 맹희도, 조부인 맹유까지 3대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세덕사가 있어 충절로 이름을 떨쳤던 맹씨 3대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맹사성 고택에서는 고려 후기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세 정승의 우의 담은 느티나무
맹씨행단에는 입구의 은행나무 외에도 눈여겨보아야 할 나무가 또 있다. 고택 뒤편 아담한 동산 위에 위치한 정자 옆 느티나무다. 황희와 권진, 맹사성 세 정승이 각각 3그루씩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해 ‘구괴정(九槐亭)’이라 부르며 세 정승이 국사를 논했던 곳이라는 뜻에서 ‘삼상당(三相堂)’이라고도 한다.

맹사성, 권진, 황희 세 정승이 각각 세 그루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구괴정. 사진 / 유인용 기자

현재 구괴정 앞에 서 있는 나무들 중 두 그루만 당시의 느티나무라고 전해지며 그 중 하나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허리가 꺾인 채 옆으로 자라는 모습이다.

동선애 해설사는 “느티나무는 예부터 충과 효, 예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했다”며 “세 정승의 선비 정신과 우의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구괴정 앞의 느티나무는 세월의 흔적을 입어 허리가 휜 모습이다. 사진 / 유인용 기자

구괴정에서는 느티나무와 소나무에 둘러싸인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맹사성 정승이 사계절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함께 임금의 은혜를 노래한 시조 <강호사시가>가 탄생한 곳도 바로 구괴정이다. 평생을 소탈하게 살다 간 맹사성 정승의 삶을 떠올리며 구괴정에서 내려와 행단을 나선다. 

한편 맹씨행단의 길 건너편에는 고불맹사성기념관이 있다. 맹사성 정승과 맹씨행단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는 곳으로 퍼즐 맞추기, 스탬프 찍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도 준비돼 있어 맹씨행단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좋다.

고불맹사성기념관에서는 맹사성 정승 및 맹씨행단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으며 스탬프 찍기 등 체험도 가능하다. 사진 / 유인용 기자

Info 고불맹사성기념관
관람시간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
관람요금 무료
주소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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