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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박소희의 만화 <궁 외전: 별신의 밤> 속 안동 하회마을을 걷다
박소희의 만화 <궁 외전: 별신의 밤> 속 안동 하회마을을 걷다
  • 서찬휘 여행작가
  • 승인 2018.09.04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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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 타고 가는 부용대부터 달밤의 월영교까지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전경. 물이 돌아 든다는 마을 이름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안동]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명한 곳일수록 의외로 속을 잘 모른다. 너무나 유명해 다 안다고 생각했던 작품에서도 예상치 못한 재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국민 만화의 반열에 올랐던 만화 <궁>의 외전과 그 배경지인 안동 하회마을 이야기다.

만화 연재 당시는 물론 MBC TV 드라마로 큰 흥행을 구가했던 <궁>은 우리나라가 해방 후 민주공화정이 아닌 입헌군주제를 채택했다는 설정 위에서 펼쳐지는 작품이다.

평범한 여고생 신채경과 왕세자 이신은 친구 사이였던 서로의 할아버지들이 장난스럽게 교환한 약혼반지로 말미암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정혼자가 되었고, 결국 국혼을 치르며 부부가 된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로맨스 구도를 띠고 있지만, 우리나라 궁궐을 무대삼아 왕족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 색다르다.

만화 <궁 외전: 별신의 밤> 표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궁>의 외전인 <별신의 밤>은 28권에 달하는 긴 이야기 가운데 신혼 초기에 있었던 일화라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혼인 후 제주로 첫 휴가를 가기 직전, 임금은 ‘비밀 프로젝트다’라는 말 한 마디만 던지고 둘을 안동으로 떠나보낸다.

그런데 둘을 기다리고 있던 건 의례적 환영 인파와 의전 행렬만이 아니었다. 둘 앞에 나타난 인물 가운데 ‘허윤성’이라는 청년이 있다.

앞서 부왕이 말한 비밀 프로젝트란 바로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하회탈 14종 가운데 망실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3종을 왕실의 지원을 받아 복원하는 것이다. 허윤성은 이 복원 프로젝트에 참가 중인 ‘천재 장인’이다.

허윤성을 본 채경은 어쩐 일인지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이 아파오는 걸 느낀다. 허윤성은 한 술 더 떠 채경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기다려왔습니다, 빈궁마마”

이상한 첫 만남 이후 뭔가 알 수 없는 과거의 기억 같은 장면을 꿈에서 보기까지 한 채경, 그런 채경을 기다려왔다는 윤성. 대체 이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려 하는 걸까?

하회마을 쪽에서 바라본 부용대 전경. '부용대'는 연꽃(하회마을)을 내려다 보는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하회마을과 부용대를 오가는 나룻배.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설화와 픽션의 절묘한 조화
현재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 씨가 모여 사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에 앞서서는 안 씨, 그보다 더 앞서서는 허 씨가 살았다고 한다. 허 씨들이 하회마을에 터를 잡고 살던 시기, 마을에 가뭄을 비롯한 재앙이 계속 닥쳐 마을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허 씨 성을 지닌 도령의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난다. 산신령은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의 노여움 때문에 재앙이 끊이지 않는 것이며, 네가 탈을 만들어 춤을 추면 마을이 평온해질 것이나 탈을 만드는 일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일렀다. 이에 허 도령은 금줄을 치고, 매일 같이 목욕재계를 하며 탈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한데 허 도령을 사모하던 처녀가 보고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금줄을 넘어 방을 엿보았고, 마지막 탈을 깎던 허 도령은 별안간 떨어진 벼락과 함께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

처녀는 이에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벼랑에 올라 몸을 던진다. 이때 허 도령이 깎다 미완성으로 남긴 탈이 ‘이매’로 하회탈 가운데 유일하게 턱이 없다.

채경이 탈을 쓰고 이신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다 실수로 이장에게 고백하는 대참사를 일으키게 되는 각시탈(좌). 설화 속 허 도령이 완성하지 못하고 죽으면서 유일하게 턱이 없는 탈이 된 이매탈(우).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궁 외전: 별신의 밤>은 이러한 ‘허 도령 설화’를 소재로 삼아 작품 주요 인물의 ‘전생’이 설화 속 인물이라는 설정으로 엮은 웹툰이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전생(설화)과 현생을 함께 녹여내 꽤나 능청맞게 극을 완성해간다.

무엇보다도 무대가 되는 하회마을 구석구석을 이야기 위에 내세우지 않고 적절히 잘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라 하겠다.

Tip 박소희 작가의 만화 <궁>은 2002~2012년 서울문화사의 순정만화 잡지 <윙크>에 연재된 작품으로 전 28권 완결되었다. 발표 이듬해인 2003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신인상과 인기상, 독자만화대상 장편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이후 2006년 MBC에서 TV 드라마로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외전 <별신의 밤>은 안동시와 경상북도가 지원하고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웹툰콘텐츠제작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브랜드 웹툰이다.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이 작품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었으며, 지금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나룻배를 타고 부용대로 향하다
하회마을은 말 그대로 강물(河)이 마을을 돌아드는(回) 마을이다. S자로 굽어드는 낙동강 줄기에 어느 쪽으로 가도 물과 물 건너편 지대가 만들어내는 수려한 풍경이 매력적이다. 그 가운데 <궁 외전: 별신의 밤>에서 등장하는 곳들을 중심으로 마을을 살펴보자.

작품을 따라가는 여정은 허윤성이 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전생의 원한을 갚기 위해 채경을 데려가는 장소, 부용대를 시작점으로 꼽을 만 하다. 설화 속에서는 허 도령을 사모하던 처녀가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절벽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낙동강 건너편의 절벽 꼭대기에서 하회마을과 마을을 휘감는 강줄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부용대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래사장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을 입구에서 나가 차를 타고 돌아 들어가는 방법이다. 실제 나룻배는 모터엔진으로 움직이지만, 목선으로 강을 건너는 기분이 꽤 호젓하다.

서애 선생이 <징비록>을 쓴 옥연정사.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임진왜란 전후를 기록한 저술로 임진왜란에서만큼은 실록보다도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 <징비록>.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강을 건너 10여 분 정도 산을 오르면 부용대 꼭대기에 닿는데, 한눈에 하회마을을 담은 순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부용대 아래에는 영의정으로서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에 공을 세운 서애 유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쓴 옥연정사가 있다.

그 곁에는 지역 유림들이 유성룡 선생의 형인 겸암 유운룡 선생의 학력을 흠모하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었다는 화천서원이 자리한다.

다시 나룻배를 타고 마을 쪽으로 돌아오면 널따란 모래사장 저편에 펼쳐진 더욱 널찍한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유성룡ㆍ유운용 형제가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누르고 북서쪽의 약한 기운을 보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어 조성했다는 만송정이다.

작중에서는 부용대 건너편을 바라보는 장면에 등장하는 곳이다. 조성 당시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라지만 빼곡한 소나무가 자아내는 풍경은 가을날의 운치를 더한다.

삼신당 느티나무와 북촌댁, 그리고 ‘탈’
만송정을 지나 마을로 들어오면 마을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삼신당 느티나무로 향하게 된다. 작중 채경이 이신을 향한 소원을 빌어 오해를 낳는(?) 이 나무는 하회마을에 풍산 유 씨를 이끌고 들어왔다는 유종혜가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월대보름에 제를 올리는 곳으로, 하회 별신굿 탈놀이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삼신당 신목 옆에는 작중에서 오찬과 하회 별신굿 탈놀이가 진행되는 장소로 나오는 북촌댁(화경당) 뒤뜰이 있다. 탈춤 공연장에서는 매주 수ㆍ금ㆍ토ㆍ일요일 오후 2시부터 1시간가량  상설공연을 진행하며, 일정에 맞추어 방문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마을의 모든 길이 모이는 한 가운데에 자리한 600년 넘은 느티나무. 사람들의 소원이 담긴 소원 종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삼신당 느티나무를 멀리서 본 모습.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훌륭한 구성과 소장품이 돋보이는 하회세계탈박물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작중 허윤성이 전생의 기억에 시달리다 탈 제작에 뛰어드는 계기가 된 탈박물관이다.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하회세계탈박물관은 하회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각지의 탈과 세계의 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다.

소장품의 종류가 기대 이상으로 다양하고 전시 수준과 설명의 충실도도 높은 편이어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8000원짜리 도록을 구입하면 전시 내용을 다시 읽을 수 있지만, 입체 탈이 뿜어내는 생동감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Info 하회세계탈박물관
운영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주소 경북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206

병산서원과 월영교에서 맞은 안동의 달밤
한편, 작중에는 안동의 대표적인 서원 두 곳이 모두 언급된다. 한 곳은 ‘해동주자’퇴계 이황의 자취가 어린 도산서원, 그리고 서애 유성룡이 후학 양성을 했던 병산서원이다. 도산서원은 같은 안동에 있기는 하나 하회마을과는 50km가량 떨어져 있다.

만약 하회마을을 중심으로 서원 한 곳을 골라 둘러보고 싶다면 병산서원 쪽을 선택해 봄직하다. 저녁 무렵에 이르러 달과 절벽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을 만나니 없던 시심이 절로 솟는 기분마저 들었다.

병산서원을 가장 유명하게 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인 만대루. 강당 역할을 하는 이 공간에서 강연이 펼쳐졌다고 한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병산서원 정문인 복례문을 지나면 보이는 풍경. 만대루 아래의 기둥을 너머로 병산서원이라는 현판, 그리고 그 뒤로 강의실 격인 입교당의 현판이 보인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월영교 중간에 자리한 정자인 월영정.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하회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작중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곳이 월영교다. 안동댐 근처에 자리한 국내 최장 목조 교량으로 2003년 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 있던 월영대를 옮겨온 인연 등을 참고로 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밤에 만난 월영교는 말 그대로 야경을 만끽하기 좋은 다리였지만, 무엇보다도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 점이 흥미롭다.

1998년 택지 정리 차 묘들을 이장하던 중 이응태라는 이의 묘에서 발견된 아내 ‘원이 엄마’의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지은 미투리가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의 애절한 마음을 주제로 삼아 다리와 길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문화에 대한 안동시의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안동을 떠나기 전, 저녁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월영교로 향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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