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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제주 여행] 제주 원도심으로 뚜벅이 시간 여행
[제주 여행] 제주 원도심으로 뚜벅이 시간 여행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18.09.13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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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이야기 흐르는 골목 투어
제주 원도심에 자리한 순아커피 내부.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여행스케치=제주] 제주 원도심은 옛 제주성 안쪽으로 발달해 왔다. 2000년대 초까지도 제주도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여행자들의 도시가 됐다. 재미있거나 예쁜 공간, 역사와 문화와 예술이 있는 곳, 공항 가기 전 딱 좋은 코스, 사진 찍기 좋은 원도심 골목을 걸어보자.

원도심 옛집들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켜온 관덕정과 박씨 초가가 있는가 하면 카페나 갤러리, 옷가게가 된 집도 있고 옛 영화를 뒤로 하고 철거 위기에 놓인 곳도 있다. 집집마다 구구절절한 원도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야기 품은 카페와 갤러리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집의 나이를 말해 준다. 빛을 받은 마루바닥도 반들반들 시간을 담고 있다. 다다미방과 미닫이문, 좁은 복도와 소품 또한 예사롭지 않다.

고풍스런 일본식 주택인 카페 ‘순아커피’에 오면 궁금한 게 많아진다. 손 때 묻은 구석구석이 모두 한마디씩 하고 있는 것 같다.

‘순아’는 집주인의 이름이다. 순아 할망(‘할머니’의 제주어)은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제주 4.3사건 등 제주의 지난한 역사와 함께 했다. 그 고생을 다 한 후엔 일본으로 건너가 또 다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지만 고단한 여건도 제주 여인의 근성을 누르지 못했다. 자식들을 성공시켰고 부를 얻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이 보상을 받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아 할망의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간절했다. 반드시 제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로 관덕정 앞에 처소를 마련했고 제주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순아커피의 외관.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곳곳에 놓인 소품이 분위기를 더한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이제 순아 할망은 하늘나라로 가셨고 조카딸이 이 공간을 지키며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할망의 힐링 공간이었던 낡고 작은 일식 주택은 이제 여행자들에게 쉼을 주는 공간이 됐다.

순아커피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도 옛 이야기를 품은 공간 ‘코지왓’이 있다. 코지왓은 과거 꽤 북적거리던 곳이었다. 철공소집 7남매가 생활했으니 그들의 아침과 저녁이 어땠을지, 철공소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제주항을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가 어땠을지 눈앞에 절로 그려진다.

얇고 좁은 모퉁이 집인 코지왓은 제주항과 산지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예전에는 철공소였고 이후 추어탕 식당이었다가 이제는 갤러리가 됐다.

철공소집 7남매가 살다가 지금은 갤러리가 된 코지왓.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밖에서 보면 밋밋한 삼각형 건물이지만 3층에 오르면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이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복도를 중심으로 방들이 미닫이문으로 연결 되어 있고 한쪽 끝에는 부엌이 있다. 연탄불 아궁이 3개는 건축 당시만 해도 상당히 현대적인 설비였을 것.

이후 연탄불 대신 가스레인지를 놓고 사용했다고 한다. 건물의 끝점에 해당하는 공간은 예리한 삼각형을 이루고 한쪽에 있는 작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오른다. 제주항과 산지천, 원도심이 가까이 들어오고 날씨가 좋으면 한라산 백록담까지 보인다.

Info 순아커피
메뉴
커피 3500원~, 차 4500원~ 등
이용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일요일은 오후 1시부터, 매주 수 휴무)
주소 제주 제주시 관덕로 32-1

Info 코지왓
주소
제주 제주시 임항로 57

제주의 초가와 기와집
박씨 초가는 제주 원도심에 있는 유일한 초가다. 조선 시대 제주에서는 기와를 굽지 않아서 부자와 양반도 초가에 살았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옛집을 다 허물어 버렸는데 박씨 초가는 이 때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으니 그 역사가 무려 300년이다.

300년간 자리를 지켜온 박씨 초가.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일제강점기 당시 건축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고씨주택.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집 앞에 말을 세우던 '하마비'와 집 옆의 우물터만 보아도 과거 이 집안이 성 안에서 어떤 권세를 누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박씨 초가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집주인이 故 박창택 판사였기 때문에 지금도 동네 사람들은 이 집을 ‘박 판사네’라 부른다.

현재는 아흔이 넘은 박 판사의 노모, 박 판사 부친인 故 박명효 북제주군수의 둘째 며느리가 집을 지키고 있는데 최근에는 유명해진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박 판사의 막내아들이다.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담당했던 박영수 특검이다.

한편, 고씨 주택은 일제강점기의 기와집이다. 제주에 기와집이 많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일본식 기와가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부터로, 고씨 주택은 일제강점기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이다. 기와뿐 아니라 내부에 복도가 있는 구조도 일식 가옥을 닮았다. 지난 봄 복원을 마치고 여행자를 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Info 박씨 초가
거주자가 있으니 집 안을 둘러볼 수 없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바깥에서 조용히 살피는 것으로 만족하자.
주소 제주 제주시 중앙로14길 15-16

Info 고씨주택
주소
제주 제주시 관덕로 17길 27-1

원도심 속 역사 돌아보기
보물 제322호인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세종 때인 1448년 병사를 훈련시키기 위해 지어진 관덕정은 제주성의 광장 역할을 해 왔다. 즉, 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이재수의 난’으로 알려진 신축민란에서 이재수가 효수된 곳이고 제주 4.3사건의 발단이 된 1947년 삼일절 행사와 발포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관덕정은 축제 현장의 주 무대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입춘굿, 콘서트 등 주요 행사가 벌어지는 제주의 ‘광장’이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관덕정.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옛 제주의 행정중심지였던 제주목관아.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관덕정 북쪽의 제주목관아는 조선 시대 제주의 행정중심지였다. ‘목’은 당시 조선의 주요 지역에 설치됐던 지방 행정 단위로, 해안에서 불과 약 500m 거리에 자리한 제주목관아는 아마도 조선팔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관아였을 것이다.

제주목관아는 일제강점기에 건물이 헐려 터만 남았던 것을 지난 1991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해 복원했다. 시설 면에서는 다른 지역의 관아와 흡사하지만 정원의 수종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풍긴다.

육지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도 있지만 제주에서 자생하는 퐁낭(‘팽나무’의 제주어)과 감귤나무가 인상적이다. 제주목 역사관에서 조선 시대 제주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고 망경루 2층에 올라 관아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Info 관덕정 
주소
제주 제주시 관덕로 19 

Info 제주목관아
운영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이용금액 어른 1500원, 청소년•군인 800원, 어린이 400원 
주소 제주 제주시 관덕로 7길 13

제주의 옛 중심가를 걷다
제주목관아 앞이 조선 시대 중심가이다. 성 안 사람들의 생활과 상업의 중심이자 각종 편의시설이 위치하던 곳이다. 최초의 교회가 있고 초기 극장도 있었으며 종합병원도 있었다. 

관덕정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제주 개신교의 발상지인 성내교회가 있다. 이기풍 목사가 1910년 지금의 성내 교회터에 있던 출신청 건물을 사들이면서 교회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군자금을 모금했고 이 때문에 일제로부터 핍박을 받기도 했다.

교회 옆으로는 그 유명한 ‘모퉁이옷장’이 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민박>에 나오면서 거리의 명소가 된 이 옷집은 창이 하나 달린 좁은 폭이 특징이다. 내부에서 성인 남자가 팔을 벌리면 양쪽 벽에 손이 닿으니 소인국 체험인가 싶다. 이 때문에 쇼핑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게 된다.

모퉁이옷장에서 만난 인형.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JTBC 프로그램 <효리네민박>에 나오면서 명소가 된 모퉁이옷장 외관.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과거 거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현대극장.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병원에서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예술공간 이아.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옷집 옆으로는 철거 직전의 건물 하나가 있다. 과거 거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옛 현대극장 건물이다. 1944년 건립된 현대극장은 영화관이자 공연장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위험을 경고하는 락카 스프레이 칠이 어지럽지만, 주변의 작은 집들과 비교하며 옛날을 상상해보자면 건립 당시 얼마나 호화로운 장소였는지 또 얼마나 현대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쉽게도 현대극장은 지난 1987년 폐관 후 현재는 안전 최하등급을 받아 존립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이다.

‘예술공간 이아’는 과거 제주대학병원이었다. 병원이 이사한 후 한동안 방치됐다가 작가들을 지원하고 전시와 각종 예술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하에서는 전시회가 열리고 3층으로 올라가면 카페와 독립서점, 예술서적 자료실이 있다.

입주 작가들이 도민과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정기, 비정기적으로 열린다. 퀄리티 높은 무료 전시와 관광지 물가를 적용하지 않은 카페가 원도심 걷기에 지친 다리를 쉬어 가라고 부른다.

Info 제주성내교회
주소
제주 제주시 중앙로 470

Info 모퉁이옷장
운영시간 매일 오전 11시 30분~오후 7시 30분
주소 제주 제주시 중앙로12길 40

Info 현대극장
주소
제주 제주시 관덕로2길 11 

Info 예술공간 이아
운영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8시, 주말 오전 10시~오후 6시
주소 제주 제주시 중앙로14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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